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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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필사의 탈출5
용병은 몸뚱이가 재산이다. 자기 재산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맹렬히 몰아치던 모래폭풍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것 또한 두조랍 에르그의 특징적인 기후다. 바람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낙타를 날려버릴 듯이 맹렬한 바람이 순식간에 산들바람으로 변한다. 급작스럽게 발생한 폭풍이 수십미터의 사구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자, 시작하자.”
부리머가 작업을 독려했다.
팀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인계철선에 지뢰를 살포하고 크레모아를 설치했다.
모리스가 간격과 방향을 잡아주고, 부리머는 현황판에 매설 위치를 빨간 사인펜으로 일일이 기입했다.
이동시에는 지뢰를 회수해야 한다. 지뢰 회수 작업은 조심스럽고 지루하다. 보급상의 문제도 있지만 미테랑 정부가 앞장서서 지뢰 금지 협약을 추진하는 중이다. 국제적 비난을 피하려면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귀찮고 힘든 작업이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잠자다가 프롤리나트의 총검에 찔려 죽는 것 보단 낫다.
블랙맘바 외에는 팀원 누구라도 근접격투에서 서넛이 달라붙으면 끝장난다. 일당백이란 블랙맘바 같은 이상한 인간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모리스, 크레모아는 몇 세트 설치했나?”
“300미터 전면에 15미터 간격으로 총 8개를 설치했습니다.”
“지뢰는?”
“400미터와 350미터에 50세트씩 더블로 살포했습니다.”
깨비텐은 전방 400미터를 일차 저지선으로 정했다. 모리스가 팀원들을 지휘해서 저지선에 FM6a지뢰를 대량으로 매설했다.
FM6a지뢰는 미군이 개발한 M16a2대인지뢰를 베이스로 프랑스 GIAT가 개발한 지뢰다. 같은 도약식 지뢰지만 FM6a 무게는 500g에 불과했다. 4.1kg인 M16a2에 비하면 땅콩인 셈이다.
지뢰는 방어 무기다. FM6a는 살상력 보다는 저지력에 중점을 둔 지뢰로 폭발력을 희생해서 숫자를 늘렸다.
방어 목적에 충실한 FM6a는 100개를 뿌려도 고작 50kg에 불과하다. 깨비텐이 인정한 몇 안 되는 효율적인 프랑스 방산품이다.
지뢰 포설을 마친 팀원들이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참호 파기엔 블랙맘바도 뛰어들었다. 일곱 살부터 몸에 익힌 삽질은 짚은다리에서도 소문났다. 블랙맘바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스나이핑이 아니라 도끼질과 삽질이다.
막강한 피지컬과 오랜 경력이 노가다판에서 빛을 발했다.
퍽-쉭- 퍽-쉭- 삽을 꽂아 넣고 흙을 퍼 던지고, 다시 삽을 땅에 꽂는 동작이 물 흐르듯 끊어짐 없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엄폐호 한 개를 팔 때 그는 혼자서 두 개를 파냈다.
블랙맘바의 피지컬은 일반인의 18배다. 그가 무서운 힘과 속도로 삽을 휘두르자 동료들은 멀거니 구경을 했다.
“저거 사람이 맞나?”
모리스가 질린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땅강아지를 백만 배쯤 키우면 저렇게 되려나.”
벨맨도 혼자 중얼거렸다.
“뭣들 하나. 블랙이 파낸 참호를 정리하고 교통호를 파서 연결하라고. 엉덩이를 차줄까.”
마이크가 팀원들을 닦달했다.
깨비텐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다.
바위 군락아래의 숙영지는 일교차도 적고 습도도 높은 편이지만 또 다른 불안 요소와 교집합을 이루어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부리머, 내가 또 실수 한 걸까?”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실수를 했든 안했든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고열에 시달리는 샤트르를 직사광선과 열풍에 노출시킬 수 없습니다.”
부리머가 딱 잘라 말했다.
깨비텐의 얼굴에서 검은 빛이 조금 걷혔다.
고지대 숙영이 당연히 방어에 유리하다. 샤트르를 위해 직사광선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저지대를 숙영지로 잡았다. 막상 방어 진형을 짜다보니 걱정이 밀려들었다.
“부리머, 기분이 좋지 않다.”
“낮에 만난 캐러밴 때문입니까?”
“쏴 버렸어야 했어.”
“왜 블랙맘바를 말렸습니까?”
“나도 몰라!”
“여자 때문이었습니까?”
“으음!”
깨비텐은 대답 없이 깊은 신음소리를 흘렸다.낙타 다섯 마리, 사람 여섯인 대상 행렬에 젊은 여자가 한 명 섞여있었다.
슬그머니 글록을 뽑는 블랙맘바를 제지한 사람이 자신이다. 여자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죽은 아내가 생각나 버렸다.
“깨비텐 실수하는 거다.”
블랙맘바가 경고했지만 그냥 넘겼다. 커다란 눈망울이 가슴에 콱 틀어박히는 순간 깨비텐은 그들을 차마 죽일 수 없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들이 정보원이라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부리머가 위로했다.
“아니야, 블랙맘바는 쉽게 살인을 하는 놈이 아니야. 그놈이 권총을 뽑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눈만 뜨면 전투가 벌어지는 마당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블랙맘바가 있지 않습니까.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하면 됩니다.”
깨비텐은 블랙맘바가 ‘실수하는 겁니다.’할 때의 번득이던 눈빛이 생각났다.
“망할 놈, 주먹 세다고 툭하면 장교를 겁주고 지랄이여. 쫄병 무서워서 군대 생활 하겠나.”
깨비텐은 한국의 꼴통 고참병이 전매특허로 써먹는 말을 주절거렸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군복을 입으면 비슷해지는 모양이다.
툭하면 장교를 겁주는 놈은 샤트르 옆에 붙어 있었다.
근육 경련의 강도가 높아지면 몸이 뒤틀린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부상을 당할 위험이 높아진다. 샤트르는 목근육과 얼굴근육이 심하게 수축되었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하트만을 처치해 줄 수 없는 야전이다.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의학적 사망 원인이 된다.
“젠장, 급성 파상풍이 확실해.”
파상풍은 잠복기가 3일~20일이다. 몸에 박혔던 수류탄 파편이 끝내 말썽을 일으켰다.
“거지같은 놈들, 좀 깨끗한 수류탄을 사용하지.”
“이 자식아, 속 답답한 마당에 너까지 헛소리냐. 얼른 가서 모닥불이나 피워.”
벨맨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에밀을 쫓아냈다.
“끄 끅”
샤트르의 목이 갈라지는 기음이 울렸다.
“젠장 물을 먹여줘야 하는데. 저러다간 혀를 물겠어.”
다급해진 벨맨이 압박붕대를 물에 적셔서 샤트르의 입에 물려주었다. 사막 한 가운데서 기껏 해 줄 수 방법이다.
“치료제가 없나?”
마이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펜토바르비탈(pentobarbital)과 페니실린을 정맥주사 했다.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서 효과가 별로 없다.”
샤트르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만큼 벨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벨맨이 블랙맘바를 불렀다.
“블랙, 헬기를 불러야겠다.”
“이미 요청했다.”
“출발했나?”
벨맨은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 다급했다.
“확인해 보겠다.”
“급하다. 바로 조치해야 한다.”
“알았다.”
대답은 10미터 전방에서 들려왔다.
불행하게도 깨비텐과 블랙맘바는 오바뉴 본부 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까맣게 몰랐다. 국방부와 DGSE는 래쿤 작전에 투입된 용병들을 이미 전사자로 간주하고 신경을 끊었다.
필립 대령은 상부로부터 문책을 받고 라텔팀 작전권을 공정여단으로 넘겨주어야 했다. 구조팀을 독단적으로 사헬에 밀어 넣고 상부 보고를 누락했기 때문이다.
필립에게 올라가는 정보는 가공되거나 차단되었다. 깨비텐의 헬기 요청은 작전관의 손에서 묵살되었다. 헬기는 출동하지도 않았다.
“깨비텐, 헬기는 어떻게 되었나?”
블랙맘바가 고함을 지르자 대기가 우르릉 울렸다.
방어 편성을 점검하던 깨비텐의 얼굴이 검어졌다.
“두 시간 후에 출발한다고 했다. 비행시간을 감안하면 다섯 시간은 지나야 도착한다. 샤트르가 위험한가?”
“벨맨이 급성 파상풍이라 했다. 당장 응급실로 보내야 한다.”
새카맣게 탄 깨비텐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제 성질을 못 이긴 그가 손에 든 파무스를 땅바닥에 팽개쳤다.
“이런 제기랄, 더러운 놈들!”
깨비텐은 특정되지 않은 대상에게 분노를 폭출했다. 속이 끓어올랐지만 누구에게 욕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깨를 들썩거리던 그는 곧 안정을 찾았다. 리더가 감정에 휘둘리면 팀이 흔들린다.
“블랙, 팀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샤트르는 벨맨에게 맡겨두고 외곽 경계에 들어가라.”
“하지만……”
“명령이다. 블랙의 자리는 샤트르 옆이 아니다. 네가 지켜야 할 또 다른 동료가 여덟이다. 이곳이 폰뜨 루찌(레드 그라운드)임을 잊지 말라.”
블랙맘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았다.”
팀장의 말이 맞았다. 감정에 휩쓸려 징징거릴 때가 아니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할 때다.
“당신도 내 말을 잊지 않았겠지?”
블랙맘바의 스산한 어투에 깨비텐이 흠칫했다.
샤트르가 잘못되면 각오하라던 경고가 번득 머리를 스쳤다. 에르 엑딤 계곡에서 헬기 격추를 방조하도록 했을 때다.
‘샤트르 절대 죽으면 안 되네. 무지막지한 놈에게 나까지 맞아 죽게 생겼네. 빌어먹을 놈. 툭하면 패겠다네.’
멀어지는 블랙맘바의 등을 보며 깨비텐은 진심으로 샤트르가 잘못되지 않기를 빌었다.
이등병에게 구타를 당할세라 전전긍긍하는 장교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양새가 빠지지만 마이크가 당하는 모습을 봤다면 디망쉬 사령관도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제기랄, 블랙맘바를 말리지 말아야 했었는데.”
깨비텐의 표정이 불안감으로 흔들렸다. 라(La)사구 지역에서 낙타를 타고 지나간 원주민 여섯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리더답지 못하게 일시적인 감상으로 판단을 내렸다.
실수하는 거라던 블랙맘바의 말이 귀에 계속 남았다.
의심스럽다고 비무장 주민을 사살할 수 없지만 블랙맘바는 허튼 소리를 할 인간이 아니다.
‘그들이 아니라도 보루쿠에 풀린 정찰대는 늘리고 늘렸어.’ 깨비텐은 불안감을 달랬다. 실제로 오늘만 해도 이동 중에 블랙맘바가 정찰대 세 팀, 열다섯 명을 사살했다.
깨비텐은 안절부절못했다.
전장 감각이 계속 빨간 신호를 보냈다.
“블랙, 기분이 어떤가?”
“너희 부정한 무리가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 너희 같은 무리는 내게 조금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활동이란 너무 쉽사리 느슨해지고, 인간은 무조건 휴식하기를 즐기니 내 기꺼이 너희 부정한 무리를 그들에게 붙여 주리라. 그들을 자극하고 일깨우면서 악마 역할을 다하도록 하여라.”
블랙맘바의 입에서 파우스트의 한 구절이 흘러 나왔다.
“망할 놈!”
은유적인 한가한 소리지만 적이 온다는 소리다. 동시에 자신을 비아냥대는 소리다. 꼬레앙 녀석이 파우스트까지 외다니 별 일이었다.
깨비텐이 팀원을 모아 다시 주의를 주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 놈들의 활동이 갑자기 활발해졌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개인 수류탄을 충분히 휴대하라. 불을 피우지 말고 전원 경계 태세를 유지하라. 블랙이 하비브를 너무 열 받게 했나 보다.”
“옛썰”
“블랙맘바는 후방을 맡아라. 놈들의 주특기가 양동 작전이다. 옴부티, 인원이 부족하니 지난번처럼 장쒼을 도와주시오.”
“알겠소.”
“부리머, 유탄이 남았나?”
“ASG17말씀이군요. 사십 발 남았습니다.”
“지난번처럼 자네가 맡아. 자존심 상하지만 그놈이 최고야.”
“옛썰”
블랙맘바가 깨비텐의 팔굽을 툭 쳤다.
“깨비텐,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 부정한 무리가 오면 때려잡으면 된다. 동료들이 충분히 쉬어야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경계는 내가 서겠다. 모두 푹 쉬도록 한다.”
“으음, 블랙의 컨디션이 우선이다.”
“걱정마라.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블랙맘바가 까마득히 솟은 바위를 가리켰다.
“8km까지 볼 수 있다. 걱정 없다.”
블랙맘바와 바위를 번갈아 보던 깨비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블랙이 경계를 선다. 모두 쉬도록.”
“우와!”
너나없이 얼굴이 밝아졌다. 블랙맘바는 인간 레이더다. 그가 경계를 선다면 안심하고 잠 들 수 있다. 라텔팀 전원이 경계를 서도 블랙맘바 1인에 미치지 못한다.
용병들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블랙맘바를 올려다보았다. 거의 100m높이에 직각으로 솟은 바위다. 도마뱀처럼 왼쪽 오른쪽 상하체가 동시에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까마득히 올라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