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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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장 내 주소는 지옥이다4
블랙맘바는 처연한 얼굴로 파리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꺼풀이 흔들렸다. 갈라 터진 입술에 설핏 미소가 떠올랐다. 입꼬리에서 시작된 미소가 물결처럼 퍼졌다. 렘수면 상태, 혜영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무쌍과 손을 잡고 아침가리골을 올랐다. 천지가 설백으로 반짝였다. 응달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고 양지는 빙판이었다. 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든데 무쌍은 잘도 걸었다. 얼어붙은 개울을 건너다 엉덩방아를 찧고 벌러덩 자빠졌다.
끄끄끄! 무쌍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인기척에 놀란 새끼 노루가 다복솔 아래서 튀어나왔다. 방향을 잃고 진동한동 날뛰던 녀석이 소나무를 들이받았다. 가지에 쌓인 눈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눈 벼락을 맞은 무쌍이 울상을 지었다. 쌤통이다. 깔깔깔! 손뼉을 치며 웃었다. 무쌍이 널찍한 등을 들이밀었다. 마당쇠야 달려라. 네에 네! 마당쇠는 마님을 업고 눈 덮인 험한 산길을 평지처럼 달렸다.
무쌍이 솜씨를 부려서 직접 만든 핀란드식 사우나, 창밖엔 목화송이 같은 눈이 쏟아지고 페치카엔 벌겋게 달아오른 차돌이 열기를 뿜었다. 천국이 따로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었다. 무쌍이 달아오른 패치카에 물을 끼얹었다. 솨아아- 뜨거운 증기가 확 덮쳤다.
“앗 뜨거워!”
의식이 돌아왔다.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시큼한 냄새와 텁텁한 공기가 왈칵 밀려들었다. 싫다. 비참한 현실보다 끊어진 꿈이 아쉬웠다. 의식은 현실의 언저리에서 꿈의 경계를 찾아 헤맸다.
‘응!’
접속을 거부하던 의식이 움찔했다. 꿈속의 꿈인가? 누군가에게 안겨있다. 편안했다. 너무 편안했다. 영혼이 거부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토록 굳세고 편안한 팔은 무쌍밖에 없는데…….
“영아!”
“싫어!”
한없이 편안하고 끝없이 달콤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허약해진 정신과 육체가 현실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영아!”
깊은 물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중저음이 뇌를 흔들고 영혼을 울렸다. 그리운 목소리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엉덩이와 잔등을 쓰다듬었다.
“무쌍?”
혜영이 눈을 번쩍 떴다. 뇌가 판단하기 전에 몸이 알았다. 그이다. 꿈에라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 미칠 듯이 그립던 손길, 그이다.
“그래, 내가 왔다!”
축축하고 갈라진 음성이 웅 울렸다. ‘내가 왔다!’ 한 마디가 주문인양 상체가 벌떡 일어났다. 마땅히 떠올려야 할 수많은 의문이 사라졌다. 내가 왔다는 말만 주문처럼 웅웅 울렸다.
“으윽!”
바닥을 딛고 일어서던 무릎이 툭 꺾였다. 아랫도리에서 시작된 끔찍한 통증이 신경을 치달렸다. 몸을 두 쪽으로 찢어지는 듯했다. 턱- 굳건한 팔이 허리를 감아올렸다. 너무나 익숙한 감각, 온몸의 신경이 자르르 울렸다.
“으흐흐흐~”
꿈이 아니었다. 어디에 힘이 남았을까. 황소 같은 힘으로 왈칵 움켜잡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흐느꼈다. 그이다. 꿈에도 그리던 무쌍이 왔다.
“가자!”
블랙맘바가 모포로 혜영을 감아서 품에 안았다.
“앗!”
혜영이 화들짝 놀랐다. 의식이 현재 진행형 상황과 연결되었다. 수천 명의 군인과 괴물이 우글거리는 그린존, 그것도 괴물 같은 검은 군복이 지키는 유치장이다. 큰일 났다.
‘아아, 하느님 맙소사! 안돼!’
혜영이 몸부림쳤다. 온전히 정신이 돌아오자 큰일 났다는 생각만 머리를 가득 채웠다. 진작에 죽지 않고 무쌍을 끌어들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 바보야, 어쩌자고 온 거야. 어서 빠져나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말어.”
블랙맘바는 태연했다.
“아아, 어떡해. 잡히면 죽는단 말이야.”
혜영이 안달복달했다.
“나는 무쌍이다.”
굵은 바리톤 목소리가 좁은 감방을 울렸다. 강력한 간섭장이 불안정한 정신을 쓰다듬었다.
“맞아, 국사무쌍, 마당쇠!”
거짓말처럼 공포와 불안이 사라졌다. 무쌍이 오면 악몽은 끝이다.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겼다. 더러운 양키의 썩은 입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고무로 만든 몽둥이에 맞지 않아도 되고, 끝없는 질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헉!”
유치장을 나서는 순간 혜영이 고개를 돌렸다. 목이 떨어진 시신 두 구와 목이 반대쪽으로 돌아간 시신, 질펀한 피바다. 꿈에 볼까 끔찍한 장면이었다.
“보지 마!”
“괜찮아. 걱정하지 마!”
혜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캠프는 모텔이 아니다. 무쌍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나타났을 때 당연히 벌어질 사건이었다. 역시 마당쇠! 10년 만에 마당쇠가 돌아왔다.
샤아악- 발사라가 철문을 종이처럼 오려냈다. 뜨드등- 억수갑이 10mm 강철판을 동그랗게 말았다. 쭈우웅- 새파란 불꽃이 일며 강철판이 용접하듯 붙었다. 퍽퍽퍽- 손가락이 창호지를 뚫듯이 철판에 구멍을 뚫었다.
순식간에 뚜껑까지 달린 강철 바구니가 만들어졌다. 혜영을 데리고 유람하듯 캠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혼자라면 겁날 것이 없지만, 혜영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혜영이 입을 쩍 벌렸다. 철판은 철판일 뿐 종이나 진흙이 아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무쌍이 괴물로 변했다.
“어쩌다 보니까!”
“많이 듣던 말이네.”
혜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무쌍은 늘 그랬다. 예전에도 인간이 아닌 능력을 보이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답답해도 참아라.”
“무거울 텐데…….”
혜영이 커다란 백 팩과 강철 바구니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힘센 무쌍이지만 걱정이 앞섰다.
“마당쇠만 믿어라!”
블랙맘바가 바닥에 옷을 두툼하게 깔고 혜영을 번쩍 들어서 급조한 강철 바구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백 팩을 앞으로 돌려 메고, 아미 로프로 강철 바구니를 등에 단단히 고박했다.
삑삑- 쉐도우가 움켜쥔 무전기 인디케이터가 깜박거렸다. 으직- 가차 없이 짓밟고 락샤샤를 뽑았다. 놈들의 경계 상태로 볼 때 행적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컸다. 어물거릴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조용히 물러나 주지.”
쉬이이- 검은 그림자가 바람처럼 캠프를 가로질렀다. 아니나다를까 연병장을 가로지를 무렵에 사이렌이 급박하게 울렸다. 침입자에게 시달려온 캠프의 대응은 눈부시게 빨랐다.
외곽 경계등이 주르륵 불을 밝혔다. 건물 옥상과 경계 망루에서 수많은 붉은색 레이저 포인트가 어지러이 지면을 훑었다. 우르릉- 장갑차가 기동하고, 막사에서 무장 병력이 쏟아져나왔다.
“정지, 쏜다!”
한 떼의 병력이 앞을 막았다. 문답무용, 위이잉- 락샤샤가 토네이도를 일으켰다. 콰아아- 회오리가 들이닥쳤다. 출동 대기조 쉐도우 팀은 방아쇠를 당길 틈도 없었다. 육편과 핏물이 흩날렸다.
“잠자리를 두고 갈 수는 없지.”
헬기가 추적하면 우듬지 상부 캐노피로 빠져나가려던 계획이 틀어진다. 휘이잉- 토네이도가 주기장에 줄지어 서 있는 항공 대대를 덮쳤다. 대대 편제로 바뀐 미해병 17연대 항공 대대가 음속으로 날아드는 채찍 벼락을 만났다.
콰차창- 꽝꽝- 캐노피, 로터, 테일 붐, 랜딩 기어 할 것 없이 도마에 올려진 양배추처럼 채 썰렸다. 만부막적, 거칠 것 없이 헬기 24대를 고철 조각으로 만든 토네이도가 외곽으로 치달렸다.
“아악, 저게 뭐야?”
“쏴, 쏘란 말이야!”
투투투투- 타타타타- 항공대 경비 중대가 뒤늦게 총탄을 뿌렸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블랙맘바가 전력 질주하면 100m를 2.5초에 주파한다. 인간의 동체 시력으로 표적 고정이 불가능했다.
블랙맘바가 혜영을 빼내서 항공 대대를 박살 내고 외곽 철조망에 다다를 때까지 10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천하의 블랙맘바도 앞뒤로 140kg 짐을 진 부자연한 자세로 높이 5m, 넓이 10m에 이르는 고압 철조망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더욱이 야간에는 ADS 방어 시스템이 가동된다. 허공에서 중기관총 교차 화망을 덮어쓰면 대책이 없다. 백 팩에서 수류탄 20발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꺼냈다.
“귀 막아!”
쌩쌩쌩- 수류탄이 줄지어 날아갔다. 쾅- 콰쾅- 거의 동시에 폭음이 울렸다. 일시에 수류탄 20발을 덮어쓴 철조망이 뻥 뚫렸다. 위잉- 락샤샤가 토네이도를 일으켰다. 회오리바람이 돌진했다.
“정문이닷!”
“찰리 레드 포인트! 찰리 레드 포인트!”
투투투투- 정문 토치카에 거치 된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레이저 포인트가 일제히 몰려들었다. 투투투투- 철조망 상단에 설치된 ADS 기총이 일제히 총탄을 퍼부었다. 락샤샤 편막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튕겨냈다. 쩡쩡쩡쩡- 귀를 찢는 파열음이 콩 볶듯이 울렸다.
까랑- 까랑- LAV25 보병전투장갑차가 기동했다. 위이잉- 포탑 돌아가는 소리가 총성에 섞였다. LAV25에 장착된 부시마스터 25mm 체인 건은 분당 3,000발을 쏟아붓는다. 블랙맘바 아니라 블랙맘바 할아버지라도 화망을 덮어쓰면 혈구로 변한다.
급해진 블랙맘바가 가속했다. 슈앙- 회오리가 정면에서 불을 뿜는 토치카를 덮쳤다. 푸왁- 핏물과 쇳조각이 흩날렸다. 회오리가 휑하니 뚫린 철조망을 통과해서 위병소를 박살 내고 캠프 진입로를 가로질렀다.
“아아악!”
“크악!”
회오리에 휩쓸린 철조망과 파쇄물을 덮어쓴 위병 근무자들이 갈가리 찢어졌다. 콰르르르- 콰콰콰콰- 부시마스터 체인 건 수십 문이 불을 토했지만, 박살 난 정문만 콩가루로 만들었다.
******
포성과 총성이 캠프 진입로에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파비우스 팀원을 몽땅 깨웠다. 고개를 빼고 있던 팀원들이 쏟아지는 포탄에 기겁해서 엄폐했다.
“으헉, 께스?(뭐야?)”
토네이도가 빠송의 코앞을 휭 지나갔다. 풍압에 옷자락이 찢어질 듯 날렸다. 야시경을 들여다보던 빠송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쳤다. 고개를 돌렸을 땐 진입로에 달빛과 먼지만 남았다.
“스페씨알레!(특별고문!)”
파비우스가 중얼거렸다. 특별고문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꽈? 쎄 땅크화이아블르!(뭐라고? 믿을 수 없어!)”
빠송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저것 봐!”
가짜 취재진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콰르르- 장갑차와 험비가 성난 멧돼지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뒤를 보병이 둑 터진 저수지 물처럼 몰려나왔다.
“흐흐흐! 뭔지 모르지만, 특별 고문께서 제대로 뒤집어엎었구먼. 빠송, 이것이 나쇼널트레조르의 위용이다.”
파비우스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했다.
쾅- 쾅- 쾅- 콰콰콰- 크고 작은 시뻘건 불덩이가 쉴 새 없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블랙맘바가 사라진 방향에서 폭음과 섬광이 끝없이 이어졌다.
“파비우스, 웃을 때가 아니오. 양키가 미쳤소. 고문께서 시끄러워지면 철수하라고 했지 않소?”
빠송이 서둘렀다. 어물거리다간 고래 싸움에 등 터지게 생겼다.
“흐흐흐, 눈먼 포격에 잡힐 고문이라면 국보가 아니지. 철수!”
목적을 달성한 루웁뎅과 작전부 요원이 텐트를 걷었다.
******
캠프 측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블랙맘바가 도주한 반향은 정문 반대 방향인 마그바그바(Magbagba) 원 포인트였다. 그는 땅을 밟지 않았다. 지상 60~100m 상공에 양탄자처럼 펼쳐진 캐노피를 밟고 달렸다. 공진파와 청파보가 아니면 턱도 없는 일이었다.
숨 쉴 틈도 없이 6km를 질주한 블랙맘바가 GPS를 확인하고 우듬지를 타고 주르르 내려갔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지면을 훑었다. 블랙맘바의 시선이 천 년 고목을 향했다. 아름드리 무화과 덩굴에 휘감긴 둥치는 승용차가 충분히 드나들 만큼 구멍이 뻥 뚫렸다. 이투리 정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림발리 노거수다.
“제대로 숨었군!”
고목 안쪽으로 쑥 들어가서 발을 네 번 굴렀다. 땅바닥이 맨홀 뚜껑처럼 들리고 못생긴 면상이 쑥 올라왔다.
“와킬, 어서 오기요.”
“급하다. 뒤처리해!”
강철 바구니를 조심스럽게 비트로 내려보내고 지체없이 비트로 뛰어들었다. 선우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블랙맘바가 저토록 서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비트는 제법 넓었다. 휴대용 나트륨등이 벽에 걸려있고, 바닥에는 갈대가 두툼하게 깔렸다. 리엘드린을 잔뜩 뿌려둔 덕분에 달려드는 벌레도 없었다. 비트 만들기 대가인 선우현과 숲 사람 올롱게의 합작품이었다.
“휴!”
블랙맘바가 방탄복을 벗어 던졌다.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솟았다. 급한 나머지 체력 안배를 할 틈도 없이 전력으로 움직였다. 강철 바구니에서 혜영을 꺼냈다.
“으헉!”
정필수와 올롱게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여자가 강철 통에서 나왔다. 동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현실이었다.
“이런! 기절했네.”
팔다리가 흐느적거렸다. 여리고 빠르게 뛰는 심장, 겨우 손에 잡힐듯한 맥, 빈맥 증상이다. 쇠약한 몸으로 롤러코스터를 탔으니 기절할 만했다.
“이 이거이 무시기 일입네까?”
식겁한 선우현이 꽥 소리 질렀다. 죽을 고생 한 결과물이 곧 죽을 것 같은 에미나이라니……억장이 무너졌다.
“아무것도 묻지 마!”
선우현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무시기 에미나이지비? 진순은? 에델은? 와킬이 저래도 되나? 진순은 승질이 보통 아인디. 뒷감당은 어케 하려고?’
무수한 의문사가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입이 간질거렸지만, 한마디라도 했다간 뒈지게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