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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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장 내 주소는 지옥이다5
“디곡신(digoxin)!”
선우현이 0.25mg 앰플을 준비했다. 정필수가 손을 저었다.
“와킬, 환자 상태는 전기적 이상으로 보입니다. 디곡신을 처방하면 심실 압력이 떨어집니다. 제게 모르핀이 있습니다.”
“돌팔이였나?”
블랙맘바가 뜨악한 눈으로 정필수를 쳐다보았다.
“군의관이었습니다.”
“다행이구마!”
약물 길항작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급한 마음에 실수할 뻔했다. 정필수가 익숙한 솜씨로 앰플을 잘라내고 정맥에 주사기를 꽂았다.
심장이 안정을 찾아야 공진파로 내기를 다스릴 수 있다. 약효가 돌기를 기다리는 몇 분이 하루처럼 길었다. 핏기없는 여윈 얼굴에 화려한 삼단 찬합, 하얀 쌀밥에 까만 콩으로 수놓은 하트가 오버랩되었다. 분노와 증오로 돌덩이처럼 뭉쳐진 심장을 녹인 혜영표 만나(manna)였다.
즐거움을 함께할 사람은 많아도 어려움을 함께할 사람은 드물다.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가슴을 내어준 여인이 혜영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해서야 어찌 사나이라 할 수 있겠는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환자가 눈을 뜨고 초점을 잡으려 애썼다.
“푹 자고 나면 좋아질 거다. 내가 여기 있다.”
손바닥으로 눈꺼풀을 쓸었다. 혜영이 거짓말처럼 잠들었다. 정필수가 슬그머니 맥을 잡고 심장에 귀를 붙였다.
“와킬,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라더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었군.”
블랙맘바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망할 인간! 말을 해도…….’
정필수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칭찬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돌팔이가 뭔가? 자격증을 박탈당한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씨댕아, 오감타 함둥. 내래 바퀴벌레임메.’
선우현이 부러운 눈으로 정필수를 쳐다보았다. 자신은 와킬의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고맙다. 살아있어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통 속에서 자신을 얼마나 목메어 불렀을까! 가슴이 저렸다. 처연한 눈길이 잠든 혜영의 얼굴에서 떠날 줄 몰랐다.
정필수가 선우현을 쳐다보았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선우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낮도깨비처럼 튀어나온 한국인 여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요리담당 올롱게가 레이션을 뜯었다. 주인의 여자가 깨어나면 먹일 음식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잔뜩 숨을 죽이고 있던 선우현이 눈을 부라렸다. 올롱게의 목이 쑥 들어갔다. 한국인과 피그미는 여자가 깰세라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
이튿날 정오 무렵 혜영이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지?’
진한 흙냄새가 훅 끼쳤다. 후각을 괴롭히던 텁텁하고 비릿한 냄새가 아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안개를 헤매듯 몽롱했던 머리가 가을 하늘처럼 개운했다. 불그스름한 나트륨등이 눈에 들어왔다.
캠프 유치장이 아니다. 끝없이 계속되던 고문, 악귀 같은 사령관, 거짓말처럼 나타난 무쌍, 하늘을 휙휙 나는 무쌍, 폭음과 비명, 정신없이 흔들리는 강철통, 진하게 스며드는 그리운 땀 냄새가 주르르 스쳐 갔다.
‘꿈이 아니었어!’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지옥을 벗어났다. 가장 절망적일 때 마당쇠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태풍이 불고 해일이 덮쳐도 흔들리지 않을 천 년 거암이 되어서 나타났다.
“똑똑한 척 하디마는 이기 머꼬?”
흙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블랙맘바가 투덜거렸다. 이웃에 놀러 갔다가 밤늦게 귀가한 누이를 야단치는 오라비처럼 심상한 어투였다.
“쌍!”
혜영은 뜯어먹을 듯이 연인의 얼굴을 더듬었다. 영혼에 새기고 싶었다. 둥글던 얼굴각이 선명해지고, 칼날처럼 예리하던 눈초리가 호수처럼 깊어졌다. 백설기처럼 하얗던 얼굴은 까맣게 타서 번들거렸다.
표범 발톱에 긁혔던 왼쪽 뺨의 흉터에 가로 흉터가 덧붙었다. 험한 삶을 살아온 증거다. 지부티에서 만난 용병 장교 폴이 생각났다. 용병 무쌍! 각박한 세상이 기어이 무쌍을 험악한 세상으로 내몰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에 가슴이 타는 듯 아렸다.
“어이쿠, 남들이 들으면 욕하는 줄 알겠구마.”
블랙맘바는 지난 일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혜영은 결벽증이 있고, 자존심이 강한 여자다. 행여나 자살할까 두려워 자리를 비우지도 못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흑흑흑!”
혜영은 목이 메었다. 기적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만났건만 이 꼴이 뭐란 말인가!
[사월 팔 일에 노인송에서 만났네. 인적없는 지하에서 깊은 정을 주었네! 바라오니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땅에선 연리지가 되게 하소서. 영원한 천지가 다함이 있을지라도 한스러움은 끝없이 이어져 다하지 않으리.]비통한 울부짖음이 귀를 쟁쟁 울렸다. 찢어지는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10년이 지나도 어제인 듯 변함없지만, 선뜻 품에 안길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슬펐다.
“으흐흑! 미안해!”
말라붙은 줄 알았던 눈물샘이 터졌다.
“고마 울어라. 홍수 나겠구마. 말을 아끼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몸띠부터 추슬러야 하능 기라.”
블랙맘바가 두툼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백전을 거친 노장이요. 삶의 쓰고 매운 맛을 맛볼 만큼 맛보고 알 만큼 알았다. 혜영의 심정을 알고도 남았지만, 감정을 소모할 장소도 아니고 때도 아니었다.
양키 수색조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정글을 헤집고 다니는 기척이 잡혔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놈들에겐 사냥개보다 감각이 예민한 프레데터가 있다. 비트가 발각되기 전에 튀어야 한다.
“어디 함 보까?”
가슴에 장심을 붙였다. 혜영이 움찔했다. 불도장을 콱 찍는 기분이었다. 물리적인 통증보다 정신적인 통증이 백배는 컸다.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제보다 기맥이 한결 나아졌다. 공진파를 실처럼 가늘게 풀어서 뭉친 울혈을 풀고 막힌 혈관을 뚫었다. 혜영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내 손이 약손이지?”
“정말! 여긴 어디야?”
“비트, 쉽게 말하마 땅속이다. 올롱게!”
“이야!”
눈치 빠른 올롱게가 과일과 시레이션을 챙겨왔다.
“고맙습니다!”
“히히히!”
올롱게가 검은 이빨이 온통 드러내고 웃었다. 넙데데한 얼굴이 자글자글한 주름으로 덮였다. 좋은 냄새가 나는 여자다. 선우현이 코코넛을 잘라서 내밀었다.
“물부터 드시라요.”
“감사합니다.”
“과한 인사는 마시라요. 내래 와킬의 쫄따구입네다. 저 친구는 쫄짜니끼니 그냥 쫄짜라고 부르면 됩네다. 키 작은 친구는 피그미족 올롱게입네다.”
선우현이 코를 땅에 박았다. 새로운 실세일지도 모를 여자다. 관계를 우선우선해서 나쁠 게 없었다.
“고마워요!”
혜영이 배시시 웃었다. 10년 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삼불의 친위대를 자청했던 혈갈, 비각, 폭저 등등 웃기는 별명을 붙인 농땡이들이 선우현의 얼굴에 오버랩되었다.
고삐리 무쌍은 삼불이라 불렸다. 무쌍이 책을 볼 때 건드리면 안 된다. 무쌍이 말을 할 때 입을 열면 안 된다. 무쌍이 생각할 때 앞을 가로질러 가면 안 된다의 삼불(三不)이었다.
배추흰나비 팔랑이던 농업 실습포, 구부정한 노인송, 노인송 아래 무쌍암, 정물처럼 풍경에 녹아든 무쌍, 조숙하고 비범한 고삐리와 철없는 교생은 노인송 아래서 운명처럼 만났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쌍은 여전한데 사랑은 낙엽따라 가버렸다. 아니다. 사랑은 여전하건만 어리석은 선택으로 망쳐버린 몸뚱이, 무슨 염치로 사랑이 머물까!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렸다. 인생은 정답이 없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입술을 깨물었다. 무쌍에게 줄 것이라곤 숨겨둔 오파츠밖에 없다.
“자기야, 오파츠는~”
블랙맘바가 손가락으로 혜영의 입술을 눌렀다. 정필수는 가족이 아니다. 그리고 오파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 ‘헉, 자기라고라!’
선우현이 움찔했다. 초췌한 모습이지만, 본바탕은 진순보다 더 예쁜 여인이다. 양손에 꽃놀이 패를 들었는데 또 꽃이다. 옴부티를 비롯한 슈베르제가 거품 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쫄따구, 올롱게와 주변을 확인하라.”
“넵!”
눈치 빠른 정필수도 선우현을 따라나섰다.
“오파츠는 나도 알아. 먼저 기운을 차려야 빠져나갈 수 있어.”
블랙맘바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혜영이 숨긴 오파츠야말로 콘크레투스 과학의 정수였다.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거를 더듬어서 미래를 예단할 뿐, 베리타스(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
혜영은 가슴이 쿵 떨어졌다. 캠프에 주둔하는 미군 전력은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엄청났다. 연인에게 도움은 못되고 끝없이 짐만 되는 자신이 슬펐다.
‘내 인생에 남자는 너뿐이야. 하지만 난 망가져 버린걸!’
목이 콱 메었다. 혜영은 푸석한 스테이크와 연어구이를 꾸역꾸역 먹었다. 감정에 휘돌릴 때가 아니었다. 무쌍의 부담을 덜려면 기운을 차려야 했다. 혜영은 식곤증과 모르핀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잠들었다.
블랙맘바는 곧바로 블라우스를 벗겼다. 몸을 살피려고 쫄따구를 내보냈다. 하얀 젖가슴에 새겨진 시커먼 멍 자국 여덟 개가 눈을 푹 찔렀다. 양손으로 움켜쥔 자국이다.
‘빌어먹을!’
남자가 극악한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고환이라면 여자는 젖가슴이다. 혜영이 느꼈을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쳐 바지를 벗겼다. 나트륨등에 비친 빨간 팬티가 슬펐다. 혜영은 빨간 팬티를 입지 않는다. 팬티를 벗겼을 때 드러날 진실에 가슴이 떨렸다. 차라리 기갑여단을 상대하고 싶었다.
“흐흐흐, 그랬단 말이지!”
블랙맘바가 상처 입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불길한 예감은 너무 잘 맞아 탈이었다. 국부가 밴크로프트사상충이 기생한 듯 피멍이 들고 잔뜩 부풀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국부 안쪽을 더듬었다.
선홍색 피가 묻어 나왔다. 죽은 피가 아니라 혈관이 터져서 새 나온 신선한 피다. 단순 강간이 아니라 거친 물건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블랙맘바의 눈꼬리가 곤두섰다.
“끄윽, 이것들이 감히!”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툭 끊어졌다. 육체적인 상처는 치료하면 되지만, 강간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노바토피아에서도 강간범은 제일 험난한 방풍림 관리소행이다.
산채로 항문에 말뚝을 박는 아시리아식 처형, 예리한 칼로 천 번을 베어내는 칼리큘라식 처형, 타르를 발라서 인간 횃불 대용으로 쓰는 네로식 처형, 산 채로 묻어서 야생 동물에게 생사를 맡기는 투아레그식 처형법 등이 주르르 스쳐 갔다.
“악몽은 끝났어. 마당쇠가 없는 사이에 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해. 이제부터 악몽은 놈들의 몫이거든.”
분노에 휩싸인 블랙맘바는 혜영의 눈꼬리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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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은신 3일째, 혜영의 상태는 급속히 호전되었다. 돌팔이 정필수가 제 몫을 하고, 공진파가 내기를 다둑이고 세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짐이 되지 않으려는 혜영의 의지가 강했다.
“와킬, 정찰대 출현 빈도가 부쩍 높아졌습네다.”
“알고 있다. 준비하도록.”
프레데터의 전자 코는 개 코를 능가한다. 공기 중에 떠도는 분자 몇 개만으로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 공진파로 주변의 공기를 날려버리고 뒤섞은 덕분에 아직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 발각은 시간문제다.
“가젤을 부르기요. 여성 동지래 아직 쇠약합네다.”
“안돼, 위성통신을 열려면 다연장 로켓 폭우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가까운 아레바 광산은 어때?”
“마찬가집네다. 미제 아새끼래 자존심이 상하면 막 나가는 성향이 있디요. 아레바를 통째로 날리고 남을 놈들입네다.”
“으음!”
선우현의 말대로 독이 바짝 오른 코브라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캠프 전력이 덮치면 아레바를 수비하는 11공정 여단 단위부대는 홍수에 휩쓸리는 흙담 꼴이 된다.
성질대로라면 가루라를 소환해서 캠프를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은 히틀러나 도조 히데끼가 아니다. 바칠킬레에서 본의 아니게 무고한 원주민 수천 명이 죽였다. 광선 포와 플라스마 입자 포는 핵무기와 다를 바 없다. 가루라를 부르면 미국이 핵폭탄을 투발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혜영이 가루라에 탑승할 수 있으면 간단하지만, 아쉽게도 가루라 내부에는 자신밖에 탑승할 수 없다. 이래저래 본인의 팔을 흔들어야 할 상황이다.
“마비비까지 뚫고 나간다. 부카브 자원개발본부에 내무국 소속 병원이 있다. 마비비 거점에서 가젤로 후송한다.”
“알겠습네다.”
블랙맘바가 방탄복 내피를 벗어서 혜영에게 입혔다. 강철 바구니를 메고 캠프 측의 파상공세에 맞서면 혜영이 압력파를 견디지 못한다.
“쫄따구, 업어라!”
“걱정 마시라요. 내래 기꺼이 미녀 동지 몸빵하겠습네다.”
“죄송해요.”
혜영이 얼굴을 붉히자 선우현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말씀 마시라요. 불편해도 헬멧을 벗으면 아이됩네다.”
선우현이 베레타 슬라이드를 당겨서 격발 시범을 보인 다음 혜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호신용으로 쓰시라요.”
혜영은 베레타를 가슴에 밀어 넣었다. 차가운 금속 질감이 섬뜩했다.
“헤드셋 사용도 하지 마라. 신호는 숲 뜸부기 소리로 대신한다. 가자!”
선우현이 강철 바구니를 아쉬운 듯 쳐다보았다. 쇠약한 여자를 업고 징글징글한 정글을 빠져나가려니 한숨이 앞섰다. 올롱게가 선두를 잡고 블랙맘바가 후미에 섰다. 땅속에서 빠져나온 그림자 넷이 잉크 스며들 듯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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