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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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장 내 주소는 지옥이다20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기다리던 소식이지만, 막상 일이 터지자 겁이 덜컥 났다.
“상황은?”
“작전부 사고 수습 반과 루웁뎅이 출동했습니다.”
“현장 확보하고 정위치에 대기하라. 내가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요원을 돌려보내고 언덕을 올랐다.
‘끙, 세상이 뒤집히겠군.’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때늦은 후회가 일었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졌다. 아리바는 발이 천근인 듯 무거웠다.
“와킬, 저 녀석 속이 타는 모양입네다.”
“죽으라고 재주만 부린 곰은 당연히 억울하지. 그래서 사람은 곰이 되면 안 되는 법이다.”
‘곰이 되지 말라고?’
선우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데 묻기가 겁났다. 듣기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질린다. 하물며 무식, 쪼다, 빙충이를 자주 듣다 보니 주눅이 들었다.
“어라! 곰이 언덕을 올라옵네다.”
“참을성 없는 곰은 채찍을 맞는 법이지.”
블랙맘바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원인 모를 불안감 때문에 식당을 마다하고 바람의 언덕에 나왔다. 한가하게 투정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고문, 나쁜 소식입니다.”
“내가 아직도 아프리카를 떠나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소식은 없어.”
아리바가 말없이 메모를 내밀었다.
[16:15 카멘베 비행장 남서쪽 2km 지점, 비행장으로 향하던 가젤 세 대 추락. 지대공 미사일 공격으로 추정.]“이게 뭐야?”
블랙맘바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해졌다. 불안감의 정체가 이것이었던가. 심장이 툭 떨어졌다.
“환자가 탔던 가젤과 호위 가젤입니다.”
“뭣? 15시 출발이 아니었나?”
블랙맘바가 눈을 부릅떴다.
“SA341에 정비 불량이 발견되었습니다. 마비비에서 예비 기체를 요청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이럴 수가!”
블랙맘바가 비틀하며 손에든 메모지가 툭 떨어졌다.
“탑승자는?”
“전원 사망했습니다.”
아리바는 간절한 눈길을 슬쩍 외면하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죽었다고?”
노호성에 대기가 우르릉 울렸다.
“윽!”
아리바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턱 막혔다.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후우웅- 사나운 기파가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흙먼지를 말아 올렸다.
“범인은?”
뼛골이 시릴 만큼 서늘한 음성이 울렸다. 블랙맘바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선홍색으로 물들었던 눈동자가 고개를 숙였다가 드는 순간에 흑백이 분명한 맑은 눈동자로 돌아갔다.
‘과연 죽음의 천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블랙맘바는 찰나의 순간에 분노를 수습하고 안정을 찾았다. 아니 분노를 삼켰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에 불구하고 하르마탄에 휩쓸린 듯 숨이 막히고 피부가 따끔거렸다.
“스팅어로 추정됩니다. SA342 가젤은 플레어를 세 번 쏟아낼 수 있습니다. 현용 휴대용 미사일 중에 능동형 시커 장착형은 스팅어가 유일합니다.”
아리바는 직접적으로 미군을 거론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면 분노는 배가 된다.
“카멘베 비행장까지 거리는?”
“31km입니다. N3번 주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음, 헬기를 띄웠다간 지대공 미사일을 얻어맞겠지. 쫄따구!”
“넵!”
척하면 착이다. 얼어붙어 있던 선우현과 즐루가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흐으, 절반은 성공인가!’
아리바는 쾌재를 불렀다. 오파츠를 언급할 기회는 놓쳤지만, 블랙맘바의 분노는 생각 이상이었다. 양키가 오십억 불 아니라 오백억 불을 배팅해도 틀렸다. 희생된 가젤 조종사에겐 미안하지만,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었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DGSE다운 수단이다.
그아앙- 본부 격납고에서 고기동 차량이 먼지를 날리며 언덕을 향해 달려왔다.
“아리바, 세상에 우연은 없어.”
블랙맘바가 하얗게 웃고는 고기동 차량에 올랐다.
‘설마!’
자신이 생각해도 일 처리는 완벽했다. 자신은 환자 후송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아리바는 잔뜩 굳은 얼굴로 사라지는 차량 꽁무니를 바라보았다.
******
“와킬!”
선우현이 샛노란 신호탄 연기를 가리켰다. 카멘베 비행장 서남쪽 고원이었다.
“뚜바이부르파님, 2시 방향 4km 전방입니다.”
즐루가 전송받은 GPS 자료를 확인했다. 부카부에서 비행장으로 진입하는 노선이다. 블랙맘바가 대답도 않고 달리는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어차피 차량으로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다.
앞을 막은 깎아지른 절벽을 차고 오르자 시야가 확 터지며 깊은 계곡이 입을 쩍 벌렸다. 까마득한 계곡 바닥에 꼴사납게 처박힌 가젤 동체와 떨어져 나간 테일 로터가 보였다. 다행히 유폭은 면했다.
‘떨거지들은 뭐야?’
녹색 헬멧을 쓴 루웁뎅이 정체불명의 무장 집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청바지에 하와이안 민소매 남방을 걸친 놈, 진바지에 리복 셔츠를 걸친 놈, 심지어는 간두라를 걸친 놈도 있었지만, 삼엄한 분위기로 볼 때 허접한 게릴라가 아니었다.
관안으로 무기를 확인했다. 스팅어, 미니미, MP5, MGL유탄 발사기, 볼 것 없이 미군 특수부대다. 절벽에 뿌리박은 관목을 발판삼아 70~80도 경사를 날 듯이 타고 내려갔다. 휘익- 시커먼 물체가 부채머리 수리처럼 소리도 없이 낙하했다.
“오우, 쉿!”
“울라!”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수십 쌍의 눈동자가 하늘에서 떨어진 듯 땅에서 솟은 듯 갑자기 나타난 인간에게 집중되었다.
“책임자가 누군가?”
“악트! 루웁뎅 칠조 조장 농 무어 대위입니다.”
블랙맘바를 알아본 무어가 경례를 붙였다.
“깨비텐 무어, 왜 이러고 있나?”
“이들은 씰 팀으로 짐작됩니다. 헬기를 조사하겠답니다.”
무어의 얼굴에 안도감이 흘렀다. 고문이 등장하면 모든 난제가 풀린다.
“깡패 새끼들이군.”
추락한 프랑스 헬기를 미군이 왜 조사한단 말인가? 잡탕 미군을 쓱 둘러보았다. 34명 중에 검은 복장은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쉐도우의 씨를 말린 장본인이 바로 블랙맘바다.
“탑승자는?”
“사망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는 중에 놈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이들이 범인인가?”
“시인도 부인도 않습니다.”
“양키 놈들이 자주 써먹는 못된 버릇이지. 이봐, 책임자가 누군가?”
곧바로 쓸어버리고 싶지만, 서로가 신분을 훤히 아는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책임자다.”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흑인이 나섰다. NBA 센터를 맡아도 좋을 만큼 체격이 좋았다.
“신분을 밝혀라?”
“밝힐 수 없다.”
“흐흥, 곧 증조할머니 이름까지 기억하게 될 거야.”
싸늘한 눈빛을 받은 흑인이 움찔했다.
“헬기는 비행금지구역에 들어왔다. 조사만 하고 조용히 물러가겠다.”
씰 팀장 브리먼 소령은 왠지 상대가 껄끄러웠다. 전장에서 갈고닦은 육감이 경고를 발했다.
“웃기는 놈일세. 네놈들은 타국 민간 비행장 진입로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나? 그러니까 네 멋대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격추했다는 말이군. 신분을 밝힐 수 없다는 말은 테러범으로 간주해도 좋다는 말이겠지?”
‘혓바닥이 예리한 놈이군.’
브리먼은 답변이 궁해졌다. 어차피 말로 해결할 수 없으면 주먹으로 해결해야 한다. 압도적인 전력인데 주먹을 아낄 이유가 없다.
“나는 명령에 따를 뿐이다. 마지막 경고다. 물러서라.”
브리먼이 입을 꾹 다물고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렸다. 오른손은 허리에 찬 권총 손잡이를 잡고 왼손을 까닥거렸다. 어서 꺼지라는 모욕적인 행동이다.
블랙맘바의 눈이 서늘해졌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지만, 피 묻은 손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지지 싶지 않아 분노를 눌렀다. 비켜서지 않으면 죽여줄 수밖에.
“네놈이 저승 문고리를 잡아당기는데 난들 어쩌겠나.”
쉭- 희끗한 그림자가 브리먼 소령을 덮쳤다. 좌우 가드가 움직임을 인식하기도 전에 표창이 손을 떠났다. 끄륵- 목젖에 표창이 꽂힌 가드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강철같은 손아귀가 브리먼의 목을 움켜잡았다. 왼손이 락샤샤 핸들을 잡아챘다. 콰르르- 락샤샤가 위용을 드러냈다.
쩍- 따귀 한방에 이빨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브리먼의 눈알이 허옇게 뒤집혔다.
“묶어둬!”
거구가 10m를 휭 날아가서 루웁뎅 진영에 철퍼덕 떨어졌다. 슈앙- 죽음의 회오리가 씰 팀을 덮쳤다.
“오우, 쉿!”
“어택!”
퍽퍽퍽- 총탄이 쏟아지는 동시에 토네이도가 씰 팀을 삼켰다. 콰콰콰- 땅이 패고 바위가 깨지고 관목과 풀이 회오리에 박살 났다. 굉음이 비명을 삼켰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은 돈가스용 돼지고기처럼 썰리고 다져졌다.
죽음의 토네이도는 나타날 때 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솟구쳤던 파쇄물이 비 오듯이 낙하했다. 파쇄물과 뒤섞인 피와 육편이 방원 30m를 덮었다. 인간의 형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거대한 채찍을 든 아수라만이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울라!”
“워워!”
루웁뎅의 얼굴이 허옇게 떴다. 눈을 찢어지라 부릅뜨고 벙어리처럼 어어 소리만 냈다. 블랙맘바가 루웁뎅을 흘끗 돌아보고 락샤샤를 갈무리했다.
‘젠장, 흥분했군.’
그는 자책했다. 보여서는 안 되는 장면을 보였다.
“깨비텐 무어!”
“네 넵!”
무어 대위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앗 하는 순간에 씰 팀 34명을 사료 파쇄기로 갈 듯이 갈아버린 괴물이다. 사지가 뜯겨나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특별군사고문의 명령이다. 잊어라!”
“넵,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블랙맘바가 루웁뎅을 쓱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열네 명이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좋아! 오래 살려면 입이 무거워야 해.”
엎어져 있는 거한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서 손바닥으로 등을 퉁 쳤다.
“컥컥!
거한이 피를 왈칵 토하고 눈을 떴다.
“무어!”
“넵, 고문!”
“이 자식 본부 병원으로 후송해. 내장이 엉켰다. 물을 먹이지 말도록.”
“넵, 알겠습니다.”
루웁뎅이 삶은 배추처럼 늘어진 브리먼을 가젤에 실었다.
******
블랙맘바는 망연한 눈으로 방수포에 안치된 혜영을 내려다보았다. 미사일은 테일 붐을 끊었다. 꼬리를 잃은 헬기가 거꾸로 처박혔다.
충격을 받은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뒤틀렸다. 직접적인 사인은 왼쪽 가슴을 박살 내고 등으로 삐져나온 블레이드 파편이었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즉사했을 것이다.
“영아!”
혜영은 말이 없었다. 불가능한 각도로 돌아간 목을 제자리로 돌리고, 부러진 척추를 당겨 맞추었다. 공진파로 조직을 압박해서 출혈을 막고 블레이드 파편을 뽑아냈다.
“마이 아프제?”
떨리는 손이 볼을 쓰다듬었다. 생명력이 충만한 옅은 분홍빛이 백납으로 변했다. 따스하던 온기가 완강한 차가움으로 돌아왔다. 찬란한 영혼의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사라져버린 그녀의 향기가 가슴을 찢었다.
“신이여, 인사 한마디 나눌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싸늘한 볼에 떨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따뜻한 품을 내준 여인, 불꽃 같은 열정을 불사르고 떠난 여인, 이제는 평생의 그리움으로 남을 여인.
바삭- 피에 절은 브래지어 안쪽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머리를 처박고 울던 블랙맘바가 고개를 들었다.
‘뭐지?’
똘똘 뭉친 종이가 나왔다. 난삽한 글씨로 두 줄이 쓰여 있었다.
[무너진 병풍바위 벼락목, 죽어도 사랑해. 미안해!]“아아!”
눈을 질끈 감았다. 헬기가 추락하는 순간에 적은 메모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면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해와 미안해’는 여린 영혼을 가득 채운 잠시광경이었다.
“으흐흐, 등신아!”
앞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랑해와 미안해 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변치 않을 것 같은 사랑도 감내못할 미움도 지나가면 잠시광경인데 무엇이 그리도 미안하단 말인가!
비상 구급낭에서 방수 포장된 손톱만 한 물건을 꺼냈다. 혜영이 며칠 전에 몰래 주머니에 넣었던 물건이다. 내용물을 짐작했기에 풀어보지 않았다.
포장을 풀자 역시나 싸구려 은반지가 나왔다. 노인송 아래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며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징표다. 반지를 돌려줄 때 찢어졌을 심정이 애달팠다.
“내 주소는 지옥이지만, 먼 훗날 다시 만날지도 모르잖아.”
딱딱한 손가락을 펴서 반지를 밀어 넣었다. 총알이 관통한 듯 가슴이 아팠다. 시린 바람이 구멍을 드나들었다.
“으아아!”
비통한 울부짖음이 대기를 흔들었다. 새떼가 날아오르고, 원숭이 떼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루웁뎅은 귀를 움켜쥐고 맴돌았다.
“아아!”
무어는 자신의 내장이 뽑히는 기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껏 저토록 비통한 인간의 슬픔을 보지 못했다.
무어가 손짓했다. 루웁뎅이 일제히 뒤돌아서서 사주 경계에 들어갔다. 그들은 전설을 보았다. 전설이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하는 시간을 지켜주고 싶었다.
******
“내래 허파가 터지겠슴둥!”
죽을 둥 살 둥 블랙맘바를 뒤쫓은 선우현과 즐루가 혀를 빼고 헐떡거렸다. 정글에서 4km는 로드 40km 이상이다. 블랙맘바는 우듬지를 밟고 휭 날아가지만, 온갖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그들로선 식겁할 노릇이었다.
“쉿!”
무어 대위가 손을 흔들고 블랙맘바를 가리켰다. 선우현은 오열하는 블랙맘바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위로하거나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