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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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장 내 주소는 지옥이다21
“참 좋은 아가씨였는디……. 이거이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났디!”
선우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주군이 캠프에서 여자를 구해올 때 쏟은 정성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뻔했다. 묻지 말라 해서 모른 척 했을 뿐이다.
갑자기 등장한 새 여자가 못마땅했지만, 겪어보니 진순과 에델 못지않은 기품과 배려심에 홀딱 반했다. 자신은 15살짜리 철없는 흑인 계집애에게 발목이 잡혔는데 주군은 만나는 여자마다 킹카였다.
전생에 3천 궁녀라도 구했는지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아가씨를 업고 정글을 주파하는 동안에 정들었는데 거짓말처럼 덜컥 죽어버렸다. 캠프와 프리메이슨을 지운다고 주군의 마음이 풀릴지 의문이었다.
“서누준장, 상황이 심각하게 되었소. 고문이 미해군 씰 팀을 마늘 다지듯 다져버렸소.”
무어 대위의 표정이 말만큼이나 심각했다.
“그까짓 일이 무시기 심각임메? 와킬의 슬픔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슴메.”
선우현이 뱁새눈을 부릅떴다.
“고문의 슬픔은 이해하지만, 미합중국은 프랑스 우방이오. 에이전트 간에 죽고 죽이는 일이야 다반사지만, 저들은 해군 특전대요. 주군은 무려 34명이나 비인도적으로 학살했소. 조국은 외교 공세를 펼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큰 부담을 지게 되었소.”
무어 대위는 고지식했다. 충격이 지나가자 사건 보고가 걱정이었다. 고문이 함구령을 지시했지만, 자신은 국방부 소속이다. 가슴과 머리가 충돌했다.
“이거이 패배주의에 물든 종간나새끼 아임둥. 눈깔이 있으면 열심히 보라우. 어디 시체 한 조각이라도 있슴둥? ”
선우현이 토마토케첩을 뿌린듯한 현장을 가리켰다.
무어 대위가 후르르 몸을 떨었다. 꿈에도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거이 서곡이디. 피가 강물처럼 흐를 테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우.”
선우현의 눈이 사디스트적인 쾌감으로 번들거렸다. 짝 잃은 맹수는 배고픈 맹수보다 사나운 법이다. 주군이 감정에 휘둘릴 사람은 아니지만, 은혜는 열 배로 원한은 백배로 갚는 인간이다.
미국과 아무런 관련 없는 몸이 되었지만, 미 제국주의는 민족의 원수다.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세뇌로 인한 증오는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쫄따구님, 뚜바이부르파님이…… 흑흑!”
안절부절못하던 즐루가 흐느꼈다.
“설명충 종간나새끼래 울긴 왜 울어. 젠장, 나도 눈물이 나네. 그나저나 폴 종내기는 왜 안 오는 거야?”
선우현이 신경질을 부렸다. 블랙맘바를 말리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둠이 몰려오는데 와야 할 폴은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저기 폴 슈베르제가 옵니다!”
즐루가 하늘을 가리켰다. 파란 패러슈트가 어둠이 깃드는 하늘을 배경으로 나타났다. 폴은 역전의 공수 용병답게 사뿐히 착지했다.
“연락받았으면 날래 이동하라우.”
“본부에서 가젤을 띄우지 않으려고 해서 말이야. 얼마 동안 저러고 있었나?”
폴이 하네스를 벗어던지고 블랙맘바를 눈짓했다.
“30분은 됐어야. 잘 달래보라우.”
“음, 와킬도 인간은 인간이군.”
폴이 성큼성큼 걸어가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친구, 그만 돌아가세. 그분은 이제 놔 드리게.”
“폴, 놈들이 내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블랙맘바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폴은 섬뜩했다. 블랙맘바의 잠재력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안다. 스스로 족쇄를 채운 괴수가 족쇄를 풀고 날뛰면 세상이 피로 물든다.
“복수는 이미 끝냈잖아. 그분은 거대한 조직의 탐욕과 광기에 희생되었네. 그렇다고 양키를 모조리 죽일 수야 없지 않나. 그들도 아내와 자식이 있고, 자네처럼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할걸세.”
폴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걱정했다.
“폴, 몽둥이로 사람을 때리면 몽둥이 잘못이 아니라 때린 놈이 책임을 져야 해. 잘못된 선택과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이 세상은 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게헨나로 변할걸세.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위선적인 말일세. 몽둥이를 벌줬으니 몽둥이를 휘두른 놈은 용서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자네는 친구이자 주군이고, 내가 살아가는 의미일세. 자넨 진정한 사나이야. 마음 상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네.”
“흐흐흐,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남자에게 사나이는 무슨……. 내가 타인의 목숨을 지울 때는 나 역시 아픔을 겪을 각오를 했네. 걱정하지 말게. 나는 사헬에서 울부짖던 풋내기가 아닐세.”
블랙맘바가 단호한 말을 던지고 혜영의 시신을 안았다.
“쫄따구, 레옹을 돌려보내라. 내 고객이 탑승권을 반납했다.”
물기 젖은 한 마디를 남기고 헬기에 올랐다. 폴의 안타까운 눈빛이 구부정한 뒷등에 머물렀다.
******
브리먼 소령은 FEADC 병원에서 기계적 장폐색과 타박상을 치료하고 양질의 식사로 기운을 차렸다. 그는 프랑스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포로 치료와 인간적인 대우는 제네바 협약에 명시된 사항이다.
그는 별다른 걱정을 않았다. 자신의 조국 아메리카합중국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 포로가 된 군인을 나 몰라라 하는 미개국이 아니다. 부하들이 어육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렸다.
브리먼의 야무진 꿈은 자신만큼이나 체격이 좋은 흑인이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악몽으로 변했다.
“뚜비바(의사), 치료는 끝났습니까?”
“원판이 튼튼한 분이지만, 아직 활동은 무립니다.”
“어쩌나, 지금부터 격렬한 운동을 할 텐데.”
“안됩니다. 아직 심문은~”
“주인께서 이놈을 끌고 오라고 했소.”
뻑- 사심이 깃든 즐루의 펀치가 커다란 머리통을 사정없이 갈겼다.
‘새끼, 펀치 세네.’
브리먼의 정신이 까무룩 꺼졌다. 즐루가 환자복 목깃을 잡고 지하 시체 안치실로 질질 끌고 갔다. 끌고 오라고 했으니 끌고 가는 즐루다.
“끄윽!”
극악한 통증이 정신을 깨웠다. 브리먼이 눈을 깜박였다. 원숭이처럼 작고 못생긴 동양인이 자신의 엄지를 잡고 허연 이를 내놓고 웃고 있었다. 브리먼 소령의 눈이 손톱 밑에 박힌 쇠붙이를 발견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브리먼이 버럭 했다.
“시작해 볼까?”
난장이 동양인의 뒤쪽에서 묵직한 바리톤 목소리가 웅하고 울렸다.
“헉!”
브리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들어본 목소리, 동양인답지 않게 장신인 그놈이다. 무시무시한 일격이 기억났다. 그림자가 덮치는 순간 몸이 부서지는 감각에 이어 세상이 까맣게 변했었다. 눈앞에 알짱대는 동양인을 패대기치려던 생각이 천리만리 달아났다.
“소속?”
선우현이 뱁새눈으로 노려보았다. 브리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짐작과 자백은 천지 차이다. 프랑스는 미국의 우방 중에도 제법 힘 있는 우방이다. 신분이 노출되면 조국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말할 수 없다.”
블랙맘바의 얼굴에 흰 선이 그어졌다. 질식 고문을 하려다 선우현에게 맡겼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혜영을 장례 치르기 전까지는 가급적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훌륭한 자세다. 증조할머니 이름까지 기억할 거라고 했던 말 기억나나? 쫄따구, 도와줘라.”
“흐흐흐! 종간나새끼, 뼈대를 확인해 보자우.”
딱- 왼손 중지가 손등에 붙었다. 부러진 뼈가 손바닥을 뚫고 튀어나왔다. 끊어진 혈관과 도라지 뿌리 같은 힘줄이 뒤엉켰다.
“끄아악!”
브리먼은 목이 터지라고 비명을 질렀다.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이런 식의 야만적인 고문은 상상도 못 했다. 완강한 손이 오른손 중지를 잡았다.
“나 나는 포로다. 제네바 협약에 따라~ 끄아악!”
브리먼이 말을 하다말고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선우현이 잡아 뜯은 왼쪽 귀를 쓰레기통에 휙 집어 던졌다.
“49호 새끼래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 하는 모양이디.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말을 잘 들으라는 조물주의 뜻이디. 뒈지면 앙이 되겠지비.”
선우현이 테이블에 부착된 벨을 눌렀다. 흰 가운이 들어와서 지혈 처리만 하고 서둘러나갔다.
“이제 시작이디. 손가락, 발가락, 손, 발, 팔, 다리, 갈비뼈의 순서로 뽑아주디. 뼈는 많고 시간도 많디.”
선우현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역시 많이 배운 사람의 말이 찰졌다.
“크으으~”
브리먼은 공황에 빠졌다. 이놈은 미군인 줄 뻔히 알면서 신체를 훼손하는 야만인이다. 아니 야만인이 아니라 악마다. 미친놈이다.
선우현이 오른손 엄지를 잡았다.
“스톱, 스토옵!”브리먼의 인내심과 충성심은 손가락 한 개가 한계였다. 특화된 고문 대응 훈련을 받은 첩보원이 아닌 이상 당연한 현상이다.
“소속과 이름?”
“팔라완 주둔 해병 17여단 파견 씰 팀장 브리먼 소령이다.”
“가젤을 격추한 목적은?”
“목적은 모른다. 카멘베 비행장으로 향하는 헬기를 격추하라는 명령만 받았다.”
“누가 명령했나?”
“그린 캠프 미셀 중령과 맥킨리 사령관이다.”
“그림 캠프 주둔군의 명령 라인을 말해라?”
“해병 15연대장은 맥퍼슨 대령, 17연대장은 로빈 대령이다. 보안팀과 쉐도우는 미셀 중령이 책임자다. 작전통제실은 워머 소령 담당이다. 최종 책임자는 맥킨리 준장이다.”
“프레데터는 누가 움직이나?”
“말만 들었을뿐, 나는 알지 못한다.”
선우현이 블랙맘바를 슬쩍 돌아보았다.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맥킨리 명령권자는?”
“모른다. 나는 구축함 잉거솔에서 투입되었다. 다르에스살람에 7함대 소속 구축함 잉거솔과 블루릿지, 이지스 순양함 벙커 힐이 대기 중이다. 최종 명령은 벙커힐 CIC에서 나온다.”
브리먼은 순순히 대답했다. 개구리 따위가 알아서 어쩔 것인가.
“MLRS 포대가 부카부로 이동했나?”
블랙맘바가 불쑥 물었다.
“헉!”
브리먼이 흠칫했다. 이놈은 모르는 게 없다. 딱- 선우현이 잡고 있던 새끼손가락을 여지없이 꺾었다.
“끄악! 이동했다. 카롱고(Kalonge)에 포대 3개가 배치되었다.”
블랙맘바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롱고는 스반다(Tshibinda)활화산에서 가까운 마을로 부카부와 32km 떨어져 있다. MLRS가 강철 폭우를 쏟아붓기에 적절한 포지션이다. MLRS와 에이태킴스는 슈퍼 그렌델보다 훨씬 위협적인 존재다. 놈들이 벙커 버스터를 사용하면 용천투발공으로 지하를 파고들어도 위험하다.
“다이슨 준장은 어디 있나?”
“다이슨? 모르는 이름이다.”
브리먼이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이놈은 프레데터와 프리메이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만 보내줘라.”
브리먼의 얼굴이 환해졌다. 뿌득- 선우현이 사정없이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좋은 곳으로 가라우. 줄줄이 따라갈 놈이 많을테니 외롭진 않겠디.”
선우현이 시신 안치용 캐비닛에 브리먼을 집어넣고 꽝 닫았다.
******
키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바람의 언덕, 블랙맘바 홀로 무덤을 만들었다. 발사라에서 오파츠 원으로 격하된 사다리꼴 오파츠로 화강암을 쓱쓱 잘라내고 억수갑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서 이음새 없는 석관을 만들었다.
석관에 혜영의 시신을 안치하고 발사라를 거대한 화강암에 푹 꽂고 휘저었다. 지우웅- 석관이 들어갈 구멍이 뻥 뚫렸다. 바위에 석관을 밀어 넣고 발사라로 바위를 녹여서 이음새마저 없앴다. 혜영은 마지막 소원대로 바람의 언덕에 묻혔다.
“등신 같은기 재수 없는 소리 하디마는……바람맞으며 호수 실컷 봐라.”
바위에 아프리카 적토 한 줌을 뿌리고 투덜거렸다. 혼이 떠난 육신은 덧없는 원소의 조합에 불과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디 그런가. 끝나지 않은 슬픔을 비문으로 풀었다.
비문은 안구사(雁丘詞)로 대신했다. 안구사를 지은이는 원호문이지만,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적련선자 이막수다. 이막수는 안구사를 소리높여 외치며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던져 악녀의 생을 끝장냈다. 비장한 노랫말, 비참한 최후, 구슬픈 사연이 혜영과 오버랩되었다.
問人間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문인간 정시하물 직교생사상허)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천남지북쌍비객 노시기회한서)
歡樂趣 離別苦 是中更有癡兒女(환낙취 이별고 시중갱유치아녀)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幕景 隻影爲誰去(군응유어 묘만리층운 천산막경 척영위수거)
橫汾路 寂寞當年蕭鼓 荒煙依舊平楚(횡분노 적막당년소고 황연의구평초)
招魂楚些何磋及 山鬼自啼風雨(초혼초사하차급 산귀자제풍우)
天也妬 未信與 鶯兒燕子俱黃土(천야투 미신여 앵아연자구황토)
千秋萬古 爲留待騷人 狂歌痛飮 來訪雁丘處(천추만고 위류대소인 광가통음 내방안구처)
[세상 사람에게 묻노라. 정이란 무엇이기에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가?하늘과 땅을 쌍쌍이 나는 새, 지친 날개에 쌓인 세월이 얼마던가.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어리석은 여인이 몸부림치네.
임께서 불러 주셔야지 아득한 하늘에 구름만 첩첩하네.
온 산에 저녁 노을지면 외로운 그림자 그 어디로 가야 하나?
분수길 따라 걸어도 피리 소리 북소리 간곳없이 자욱한 안개만 그때처럼 펼쳐있네.
초혼가를 부른들 어찌 그대에게 이를까. 산바람만 비바람 속에 우는구나.
하늘이 질투하여 믿음을 버리라 하네. 어찌 잡새처럼 흙바닥에 구르리오.
긴긴 세월 울어줄 사람 기다렸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무덤을 찾아 미친 듯이 노래 부르리.]
글자 한 자를 새기고 눈물 한 방울, 글자 두 자를 새기면 눈물 두 방울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