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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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죽음은 용병의 친구1
2차 파편을 뒤집어 쓴 게릴라 셋이 미친 듯이 땅바닥을 굴렀다. 젠켐의 부작용으로 예민해진 신경이 통증을 여과 없이 뇌로 퍼 나른 탓이다. 젠켐 중독자는 약 기운이 떨어지면 일반인의 몇 배에 달하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퍽퍽퍽- 땅바닥을 구르던 게릴라들이 잠잠해졌다. 까마득한 거리에서 날아온 총탄이 고통을 끝장내 주었다. 블랙맘바의 자비심이다.
아무드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부하들의 죽음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자신의 부족도 아니다. 죽건 살건 신경쓸 일이 아니다. 분하고 원통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알라시여, 저를 벌하려고 칸마를 보내셨나이까! 왜 저를 이땅에 낳으시고 저 놈을 보내셨나이까!”
칸마는 친위대인 하지즈 조를 지우고 전투에 가세했다.
후방 침투조인 하지즈를 기다린 자신이 바보 병신이다. 어쩐지 개구리 새끼들이 강력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무엇이 부족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어쩌다 저런 존재와 맞서게 되었을까. 프롤리나트 위원이 될 꿈은 깨어진지 오래다. 당장 살아남을 일이 문제다. 그는 광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즈가 끝장난 이상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다. 저런 인간이 있는 한 프롤리나트는 끝장이다. 아니, 죽음이 눈앞에 성큼 다가선 자신이 문제다.
아무드는 공포에 질린 십여 명의 병사를 돌아보았다. 다 죽었다. 265명이란 대병을 끌고와서 겨우 이들과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대 여섯 명만이 살아남았다. 어차피 칸마의 손에 죽거나 총류탄 파편에 죽어 갈 놈들이다. 칸마, 저 놈에겐 숫자가 소용없다.
화약을 사용하는 현대전에서 단 한 놈이 전황을 좌지우지하다니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인생이 허무해졌다. 이미 군사적으로 전멸이요, 생물학적으로 소멸이다. 겁에 질린 오합지졸 이십여 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꽝- 장갑차가 들썩 흔들렸다.
“으, 저 망할 새끼!”
아무드는 치를 떨었다. 총류탄을 귀신처럼 날리는 놈이 있다. 20초마다 장갑차가 들썩 튀었다. 벌써 네 발을 얻어맞았다. 저놈도 무지막지한 놈이다. 장갑차를 해체할 심산이다.
엄폐물마저 사라지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도망? 칸마놈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무려 900m밖의 포격팀을 순식간에 분쇄하는 놈이다. 도망은 턱도 없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칸마를 잡을 수 있을까?’
박격포와 무반동포로 집중 공격을 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놈이다. 대구경 야포로 도트 포격을 하기 전에는 칸마를 잡을 방법이 없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퇴각을 결심했다.
아니 은퇴를 고려했다. 하비브에게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칸마란 놈에게는 변명을 할 수 없다. 저 놈은 산채로 껍질을 벗긴다고 소문난 놈이다. 하비브보다 칸마가 더 무서웠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이유다.
아무드의 생존 비법은 물러날 때를 파악하는 동물적 본능이다.
“부관, 퇴각 신호를 보내라.”
부관이 재빨리 피리를 꺼내 불었다.
삐익- 삐익- 삐익-
기다렸다는 듯이 피신해 있던 게릴라들이 개미새끼처럼 흩어졌다. 달아나는 게릴라들의 뒤를 총류탄과 저격탄이 뒤쫓았다. 연속 장갑차를 때리던 총류탄도 도망치는 게릴라를 향해 날아갔다.
‘그렇지, 그게 너희들이 마지막 할 일이고 충성이야.’
포격과 저격을 유인해가는 늙은 개미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를 보는 아무드의 눈빛은 덤덤했다. 여기서 늙고 젊고는 연륜의 문제가 아니라 관념의 문제다.
아무드는 꿋꿋한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관은 갑자기 존경심이 솟았다.
“사령관님, 피하시죠. 알라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겁니다.”
아무드가 흘낏 뒤돌아 보았다. 장갑차 후미쪽에 깊숙이 파낸 참호가 있다. 기관총 진지다. 물론 기관총 사수는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망할 놈의 알라, 내가 뭘 잘못했길래 저딴 악령을 보냈나.”
불경스런 말이지만 혼자 중얼거린 말이라 부관이 듣지 못했다.
아무드가 훌쩍 참호에 뛰어들었다.
“부관, 나를 묻어라.”
“각하,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이 새끼야, 묻어라면 묻어.”
아무드가 버럭 소리 질렀다.
부관의 눈이 존경심으로 가득찼다. 패전의 책임을 지고 생매장 당하겠다는 결심을 하다니, 가히 지휘관의 귀감이다.
“사령관님을 기회주의자라고 욕하는 놈들이 많습니다. 그 놈들의 목을 몽땅 매달겠습니다. 존경합니다. 충성!”
아무드는 기가 찼다. 그야말로 삽질을 하는 놈에게 삽질을 시켰다.
존경심이 솟아 오른 부관이 열심을 삽질했다.
몸통이 모래에 덮이자 아무드가 간두라 품속에서 링게르 도관처럼 생긴 파이프를 슬쩍 바깓으로 내밀었다.
‘병신같은 새끼, 저 새끼도 오래 못 살겠네. 정의로운척, 성실한척 하는 놈들은 절대로 오래살지 못해.’
꽝- 장쒼이 날린 총류탄이 다섯 번째로 장갑차를 때렸다.
콰장창- 연속 총류탄을 얻어맞은 BTR이 버티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철판이 떨어져 나가고 포탑이 내려 앉았다. 역시 얇은 철판을 두드려 만든 허접이다. 옆면 철판 한 장이 아무드가 매장된 참호위에 떨어져서 뚜껑이 되었다.
총대신 삽을 든 부관이 핑그르르 한바퀴 돌아 풀썩 쓰러졌다. 총류탄 파편이 목을 절반쯤 끊어 놓았다. 아무드의 다섯 번째 부관도 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역시 아무드는 부관 킬러였다.
전장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푸르스름한 포연과 피비린내가 바람을 따라 일렁였다. 용병들이 치른 전투중 가장 큰 전투다.
깨비텐이 먼저 엄폐 참호에서 기어나왔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에 눈알만 번들거렸다. 그는 부들거리는 팔다리를 겨우 제어해서 기어 나왔다. 과도하게 분출된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눈꺼풀에 작용하는 중력이 열배쯤 강해졌다.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었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부상당한 몸으로 한숨도 못자고 전투를 벌인 블랙맘바도 있다. 물론 그놈은 인간이 아니지만 부하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무지막지한 무게로 떨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렸다. 할 일이 태산이다.
-전투 종료. 부리머 살았나?
-위, 살아서 죄송합니다.
부리머가 참호속에서 기어 나왔다. 참호 정면에 쌓아둔 모래 주머니는 모두 터졌다. 총탄이 수백발 박힌 흔적이다.
“다쳤나?”
부리머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유탄이 이마를 긁고 지나갔거나 바위 파편에 찢겼을 것이다. 그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쓰윽 훔쳤다.
“조금 긁힌 겁니다.”
“바로 소독해. 놈들이 퇴근했다. 우리도 퇴근하자.”
“옛썰, 야간 수당을 단단히 청구하겠습니다.”
“경리단에 청구서가 잔뜩 쌓이겠군.”
“흐흐, 돌아가면 콩코르디아를 타고 세계 일주 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콩코르디아는 낚시용 갑판이 따로 있다니 자네에게 딱이군.”
“같이 가시죠.”
“음, 블랙이 가면 나도 가지.”
“블랙은 왜요?”
“그 놈이 받을 수당이 어마어마해. 좀 나눠 쓰야지. 큭큭큭!”
두 사람은 흰소리로 긴장을 풀었다.
-블랙맘바
-옛썰
-배후는 어떻게 되었나?
-36명 클리어. 에밀이 감시중이다.
-좋아! 호출해.
대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두가 지치고 침울한 얼굴이었다. 블랙맘바가 미구엘의 시체를 어깨에 메고 왔다. 벨맨은 모리스의 상체를 들고 왔다. 하체를 찾을 겨를이 없었다.
살아남은 팀원들이 우울한 얼굴로 모리스와 미구엘을 내려다 보았다. 모리스는 골반 아랫부분과 오른팔이 사라졌다.
미구엘은 두부 관통상이다.
“고통없이 죽었다.”
블랙맘바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살아 남은 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단백질 덩어리가 되어버린 동료를 망연히 내려다 볼 따름이었다.
깨비텐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모두 잘해 주었다. 개활지에 캠프를 친 내 잘못이다. 블랙맘바가 30초만 늦게 가세했으면 우리 모두 나무 코트를 입었다. 모리스와 미구엘은 동료를 지키려다 목숨을 내 놓았다.”
용병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일제 돌격하기 직전에 불랙맘바가 돌아왔다. 아차했으면 끝장날뻔 했다.
“크흑, 미구엘!”
“모리스, 바보같은 놈!”
“성질 급한 새끼, 내 빚이나 갚고 죽을 것이지. 크흐흐!”
동료의 처참한 모습에 숨죽인 오열이 터져 나왔다. 싸우느라 동료의 죽음조차 몰랐다. 아니 전력의 하락이 올때 이미 알았다. 애써 부인했을 따름이다.
“애도는 살아 있을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살았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미구엘 미안하다. 치료도 못해주고 너를 보냈군나.”
벨맨이 미구엘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었다.
“크흐흐흑, 모리스, 정말 미안하다. 네가 살 수만 있으면 블랙에게 한번 더 맞아도 좋다. 흑흑, 뭐 어차피 맞겠지만 이왕이면 살아나 다오.”
마이크가 예의 그 말도 안되는 넔두리를 시작했다.
선굵고 거친 용병들도 동료의 죽음앞에서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모두들 냉정을 유지하도록, 전장 정리할 시간도 부족하다.”
깨비텐의 일갈에 살아 남은 용병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삐 움직였다. 장쒼이 모리스의 일을 이어받아 기록 사진을 남겼다. 몇 명 안되는 인원으로 쓸만한 장비를 챙기기도 벅찼다.
미구엘을 안고 캠프로 향하던 블랙맘바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나?”
벨맨이 물었다.
블랙맘바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벨맨의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샤트르?”
블랙맘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트르의 생기가 잡히지 않았다. 음울한 사기(邪氣)만 둥둥 떠 다녔다.
일행의 걸음이 빨라졌다.
벨맨이 허겁지겁 막사로 뛰어 들었다.
캠프에 돌아온 일행은 또다시 가슴 아픈 현실을 맞이했다. 캠프에 홀로 남겨진 샤트르가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한계를 넘긴 근육 강직과 호흡곤란이었다.
근육 강직은 엄청난 통증을 유발한다.
샤트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고통의 흔적이다. 인텔리 용병 샤트르는 지켜보는 동료 한 명없이 고통에 시달리다 죽었다.
벨맨이 열심히 주물러도 강직된 근육이 펴지지 않았다. 피부가 고목처럼 딱딱했다.
“샤트르 못난 놈, 용병이 파상품 따위에 지다니. 크흐흐흐!”
부리머가 야전침대 목봉을 치며 울었다.
블랙맘바는 샤트르의 몸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손을 떼는 순간 시체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수많은 죽음을 겪었지만 샤트르의 죽음은 특별했다. 그는 친구이자 멘토였다.
“주여,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이 참담하고 거친 땅에 진정 당신은 없는 것입니까! 이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내가 왜 이런 마음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밥값이라고요? 밥값이 무서운 줄은 알고 있지만 생명으로 치러야 할 만큼 비싼것이었습니까!”
“블랙, 땡중이 왜 주님을 찾나? 샤트르는 무신론자라구. 장례를 치르고 빨리 튀어야지.”
장쒼은 평소답지 않게 주절거리는 블랙맘바를 만류했다.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는 모양새가 불안했다. 맹수가 폭주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
“끄으으 샤트르, 우오오오!”
아니나 다를까. 괴수의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분노와 슬픔이 뒤범벅된 공진파가 바위 절벽을 때렸다. 절벽이 우르릉 울리며 돌조각이 굴러 떨어졌다. 식겁을 한 용병들이 귀를 싸쥐고 막사를 뛰쳐 나갔다.
“샤트르, 샤트르!”
비통한 울부짖음에 사막이 웅웅 울렸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었어.”
마이크가 부리머에게 속삭였다.
“인간이 되고 싶은 슬픈 괴물이지.”
부리머의 말이 젖어 나왔다.
샤트르는 유럽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근.현대사에 해박했다.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에도 능통했다. 동료들은 더 이상 샤트르의 명 강의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한차례 슬픔을 쏟아낸 블랙맘바는 샤트르의 눈꺼풀을 쓸어 내렸다. 벨맨이 애써도 감기지 않던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그는 굳어진 샤트르의 얼굴 근육을 공진파를 발휘해서 하나하나 쓰다듬어서 폈다.
허망했다. 제 아무리 수 십 년간 노력해서 지식을 쌓아 본들 무슨 소용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에게 끝장났다. 10g도 안되는 총알 한방이면 단백질 덩어리로 변해 버린다.
벨맨이 샤트르를 검시했다. 사인은 파상풍 대증 조치로 정맥 주사한 펜토바르비탈(pentobarbital)의 부작용이었다. 과량 투입된 펜토바르비탈이 빈맥을 일으켰다. 벨맨은 자신의 천박한 의술을 자학했다.
고통, 슬픔, 우울, 울분 등등의 온갖 음차원의 감정 덩어리가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