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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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죽음은 용병의 친구3
“휴우, 이게 말이 되나!”
깨비텐은 정리를 하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24일 동안 소소한 전투를 제외하고 대규모 전투만 일곱 번을 치렀다.
다소 오차가 있겠지만 사살한 반군이 일천 명이다. 이동 중에 블랙맘바가 지워 버린 소소한 정찰대도 50명이 넘는다. 전과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벅찼다.
역사상 이런 기막힌 전투를 치룬 부대가 있었던가!
이번 전투에서만 257명을 죽였다.
블랙맘바가 코로뭉가의 3군사령부를 박살내지 않았으면 얼마나 많은 프롤리나트가 몰려왔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4명의 팀원을 잃었다.
적을 아무리 많이 죽인들 무슨 소용인가!
깨비텐의 임무는 작전 성공과 무사 귀환이다. 무의미한 전투다. 의미가 없어진 작전, 계속 죽어 나가는 부하, 장담할 수 없는 귀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블랙맘바가 후방의 적을 처리하는 동안에 부하를 둘이나 잃었다. 지금까지 블랙맘바의 무력에 기대어 살아 있는 셈이다.
깨비텐은 가부좌라는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블랙맘바를 돌아보았다.
‘블랙맘바!’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존재, 사실상 라텔 팀의 생존과 귀환이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려 있다.
갈수록 전투력이 강해지는 별종, 동료라는 짐이 없었으면 휘파람을 불며 산보하듯 은자메나로 돌아갈 능력자다.
본부는 요청한 헬기 대신에 프롤리나트를 개떼처럼 보냈다. 이젠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필립 연대장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그의 인간성이 아니라 조직을 못 믿는 것이다.
아무드는 자체 정보망을 통해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라텔 팀을 영격했다. 평정을 잃은 깨비텐은 여전히 본부에서 정보가 새 나가고 있다고 오인했다. 그로 인해 그는 또 다른 오판을 하게 된다. 선입견이 이래서 무섭다.
“부리머!”
“위!”
“오늘 습격을 어떻게 보나?”
“지난번과 마찬가집니다. 헬기를 호출하는 바람에 숙영지가 노출되었습니다. 쥐새끼가 있든 없든 본부를 믿을 수 없습니다.”
부리머도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깨비텐과 부리머는 본부 스파이가 정리된 사실을 몰랐다. 필립 대령이 48시간이 지나 구조대를 투입한 사실도 몰랐다. 신뢰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당분간 본부와 연락을 끊는다.”
“어차피 통신은 틀렸습니다. 위성 전화기가 박격포에 맞아 박살났습니다.”
부리머의 폭탄 보고에 깨비텐의 얼굴이 석어 문드러졌다.
“빌어먹을! 예비 전화기는?”
“죄송합니다. 전투 중에 유실되었습니다.”
“쀠텡, 쀠텡!”
깨비텐은 정신이 아찔했다. 욕이 절로 나왔다.
불행이란 놈은 혼자 오지 않는다더니 난감한 일이 계속 벌어졌다.
이젠 본부와 연락할 길도 없어졌다. 사헬엔 공중전화도 없고 우체국도 없다. 안한다 와 못한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광막한 사헬 황무지에 고립되어 버렸다. 급작스레 폐쇄공포증에 물든 듯 호흡이 가빠졌다.
“후송 헬기가 올까요?”
“보낸다고 했지만 쉽게 띄우지 못한다. 아니, 보낼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브흐델(빌어먹을), 에스뻬드 데 메흐드!(갈보 같은 것들!)”
부리머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욕이라곤 쀠텡이나 꽁(바보)정도밖에 모르는 부리머의 입에서 심한 욕이 튀어 나왔다.
두 사람은 잔뜩 흐려진 얼굴을 하늘로 돌렸다. 마치 헬기가 날아오기라도 하듯이.
예정된 헬기가 도착하려면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두 시간!”
깨비텐은 입을 꾹 다물었다.
희박한 기대이은 알고 있다. 희망을 버리기엔 상황이 너무 엄중했다. 새벽녘의 격렬한 전투에 모두 죽을 만큼 지쳤다. 용병들이 총을 안고 꾸벅거렸다.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한계에 몰리고 있다.
헬기만 오면!
그는 간절히 바랬다. 육상 귀환 루트는 1,700km가 넘는다. 라텔팀은 컨디션이 바닥이다. 프롤리나트가 우글거리는 사헬을 계속 헤매다간 모두 죽는다. 살아남을 사람은 블랙맘바밖에 없다.
가젤에는 4명이 탐승할 수 있다. 무장을 들어내면 옹색하나마 6명까지 탑승 가능하다. 자신과 블랙맘바만 남으면 나머지는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공미사일?
땅에서 난장을 치느니 격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백번 낫다.
적이 언제 들이칠지 모르는 레드 그라운드다.
두 시간이면 긴 시간이다. 통신마저 불가능해진 깨비텐은 울분과 번민을 씹으며 오지 않는 헬기를 기다렸다.
블랙맘바만 언제나 그렇듯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겼다. 쏴아아 밀려드는 사막의 기운이 새로운 활력을 북돋아 주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오금공으로 몸을 풀었다.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거리던 용병들의 눈에 황당함이 가득 찼다.
아침 6시, 헬기는 결국 공염불이 되었다. 위성전화기가 박살났으니 항의를 할 수도 없다.
내습한 프롤리나트의 대군을 박살냈음에도 라텔 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당분간 현지 보급으로 버텨야 할 지랄 같은 상황에 처했다.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날이 밝자 격전지의 참상이 드러났다.
양측이 박격포, 무반동포, 유탄발사기, 기관총을 총 동원해서 전면전을 벌였다. 지뢰와 크레모아의 비산 탄체는 신체를 찢어발긴다. 인계철선 부근에는 제 모습을 유지한 시체가 드물었다.
저격을 당한 깔끔한(?)시체도 인계철선 양쪽에서 때린 포격에 휘말려 엉망이 되었다. 복부에서 흘러내린 창자를 끌고가다 죽은 시체도 여럿 눈에 띄었다. 반면에 인계철선을 벗어나 멀리 떨어진 시체는 깔끔했다. 블랙맘바의 저격에 당한 게릴라다.
“인세에 도래한 게헨나인가!”
깨비텐이 우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샤트르라면 인간의 존재 이유와 야수성을 탓했겠죠.”
“흐음, 샤트르의 제자는 또 수련중인가?”
깨비텐의 물음에 에밀이 바위기둥을 가리켰다. 블랙맘바가 초저녁에 올랐던 바위다. 까마득한 바위 꼭대기에서 풀풀 날리는 흰 간두라 자락이 보였다.
짱 짱 짜앙- 짱 짱 짜앙-
음울한 단조 가락이 들렸다.
“뭐하는 짓인가?”
“가슴이 아픈 모양입니다.”
“여러 가지 하는군.”
블랙맘바는 쿠크리 칼등으로 드라구노프 총신을 두드리며 전우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샤트르, 미구엘, 모리스 영가시여, 나와 동료들이 일심으로 바라오니 무명업장 소멸하고 반야지혜 드러내어 생사고해 벗어나서 해탈열반 성취하사 극락왕생 하옵시고 모두 성불 하옵소서. 사대육신 허망하여 결국에는 사라지니, 이 육신에 집착 말고 참된 도리 깨달아 모든 고통 벗어나고 부처님을 친견하리. 살아생전 애착하던 사대육신……]영가 발원문이 목탁소리 아닌 총열소리와 어우러졌다.
피를 머금은 칼과 총으로 박자를 맞추는 영가 발원이다. 죽음을 부르는 도구가 죽은 자를 애도하는 도구로 쓰였다. 총구에서 총알대신 발원문 장단이 나오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자의 하울링 같은 무거운 바리톤 음성이 금속성 리듬과 의외의 조화를 이루었다. 장중한 독송이 두조랍 에르그 사구를 타고 굽이굽이 퍼져 나갔다.
깨비텐, 부리머, 마이크, 벨맨, 에밀, 장쒼이 귀를 기울였다. 구슬픈 가락과 무거운 음정이 어우러져 동료들의 가슴을 헤집었다.
“샤트르 나의 친구, 인간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써 온 그대를 잊지 않겠다. 모리스 나의 친구, 말없이 자신의 임무를 다 해온 과묵한 너를 잊지 않겠다. 미구엘 나의 친구, 책임감 강한 너를 잊지 않겠다. 혼이여 용화세계로 가고, 백이여 흩어져서 세상을 풍요롭게 하라……”
땅 땅 따앙- 따르르 땅 따르르 땅-
통짜 총신에서 울리는 묵직한 소리가 죽은 자를 위로하는 독송과 박자를 맞추어 산사람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내용을 모르지만 안타까운 심정과 절절한 기원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씨바, 도대체 저 인간 정체가 뭐여?”
마이크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렸다.
“조또, 저 인간은 별 요상한 재주가 다 있구먼. 큼큼”
에밀이 쿨쩍거리는 코를 훔쳤다. 인종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거친 용병들도 눈물을 줄줄 쏟았다.
인간이 오를 수 없는 까마득한 허공에서 총으로 박자를 맞추는 사악한 악령, 영가 발원을 소리 높여 독송하는 죽음의 천사, 휘우웅 악마의 호곡인양 불어제치는 모래바람, 눈물을 줄줄 흘리는 각양각색의 인종, 이곳이 사헬이다. 야만의 땅, 인간의 값어치가 낙타 한 마리 값에도 못 미치는 두조랍 에르그다.
옴부티는 총성이 그치자 슬며시 바위틈에서 빠져 나왔다. 간두라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여명이 희끄무레 비치는 사막을 둘러보았다. 포성도 총성도 뚝 그쳤다. 소음에 놀란 생물들이 모두 도망가거나 잠적했다. 적막한 사막에 피비린내만 가득했다.
“와킬이 끝장냈구먼.”
간단한 소회를 뱉어내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밀어내기를 해결 못한 아랫배가 무주룩했다. 워낙 맹렬한 전투다. 볼 일을 보고 싶었지만 와킬이 건재한지 확인이 먼저다.
박살이 난 BTR를 지나치던 옴부티가 귀를 쫑긋 세웠다. 사라락 사라락 모래 파내는 소리다. 옴부티는 블랙맘바에게 받은 토카레프를 뽑아 들었다.
소리 없이 접근한 옴부티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지면을 노려보았다. 사막에 사는 투아레그족의 눈은 엄청나게 시력이 좋은 편이다. 어둑한 여명에 불구하고 옴부티는 모래 밖으로 삐죽이 나온 대롱을 발견했다.
가느다란 흰색 파이프다.
“큭! 바퀴벌레 같은 놈이군.”
웃음이 절로 나왔다. 투아레그 전사들이 매복할 때 흔히 써먹던 방법이다. 게릴라중의 한 놈이 숨어 있다.
그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숨어 버린 자신의 행동이 찝찝했다. 포로를 획득하게 되었으니 얼마든지 목에 힘을 줄 수 있다.
장난끼가 발동한 옴부티가 파이프 끝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금방 반응이 왔다. 널찍한 철판이 움찔거렸다.
땅속의 아무드는 죽을 맛이었다.
갑자기 숨구멍이 막혔다. 힘껏 불었지만 뚫리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그는 뚜껑처럼 덮인 철판을 밀었다. 옴부티가 올라 서 있는 철판이 밀릴 리 없다.
숨이 막힌 아무드는 몸부림을 쳤다. 정신이 몽롱해질 즈음에 파이프가 뚫렸다. 그는 정신없이 공기를 빨아들였다.
‘이런 망할!’
다시 파이프가 막혔다.
그제야 아무드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 괴롭히고 있음을 눈치 챘다.
‘알라시여, 어째서 진실된 자식을 이리도 괴롭히나이까!’
그는 절규했다.
아무드는 세 번 거듭 숨구멍이 막히자 기진맥진했다. 힘이 탁 풀리며 기절직전에 몰렸다.
스르릉- 철판이 밀려났다. 구덩이 속의 아무드는 팔만 자유로운 상태다. 두 팔이 허공을 정신없이 더듬었다.
“어이 바퀴벌레, 넌 포로야. 얌전히 굴면 때리지는 않겠어.”
손이 까딱까딱했다.
“말을 잘 듣는군. 너는 북부군이냐?”
다시 손이 까닥거렸다.
“아무드의 부하인가?”
“이번에는 손이 좌우로 흔들렸다.”
옴부티는 리탐을 쭉 찢어서 모래 밖으로 드러난 손목을 꽁꽁 묶었다. 아무드는 절망했다. 기회를 봐서 권총을 뽑으려던 기도가 물 건너갔다.
옴부티가 삽으로 모래를 파내고 아무드를 거칠게 끌어냈다. 프롤리나트 3군 사령관이 이런 치욕을 겪다니, 아무드는 혀를 물고 죽고 싶었다.
옴부티는 아무드가 혀를 물고 죽든, 페니스를 물고 죽든 상관하지 않았다. 관심은 군복에 온통 집중되었다. 허리에 꽂힌 권총을 쑥 뽑아낸 옴부티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놈은 고급 지휘관이다.
투아레그 속담 중에 옆집 아가씨 짐들어 주다 마누라 얻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껌 떼려고 주웠더니 오백 원짜리 동전이더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