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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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죽음은 용병의 친구4
엉겁결에 왕건이를 건진 옴부티는 기분이 째졌다.
알라의 은덕이요 와킬의 보살핌이다.
“알라후 아끄바르, 네놈 신분이 뭐냐?”
“……”
아무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늙어빠진 용병에게 포로로 잡힌 자신의 신세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물을 때 대답하는 게 좋아. 내 주인님을 만나면 네놈 눈으로 자신의 살과 피, 뇌수가 조각조각 나는 장면을 구경하게 될 거야.”
“……”
“흐흐, 내 주인님이 누군지 궁금하지? 오백 프랑 받지 않고 말해 줄게. 내 주인님은 너희들이 칸마라 부르는 분이시다.”
옴부티의 장난기가 계속되었다.
“으헉, 카카 칸마!”
경악한 아무드가 말을 더듬었다. 열릴 줄 모르던 아무드의 입이 절로 열렸다.
옴부티는 뿌듯했다.
사람은 잘나고 볼 일이다. 와킬이 한국 속담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주인의 별명만 듣고도 기절초풍하는 프롤리나트 지휘관이라니, 가슴이 뿌듯했다. 주인이 잘나면 하인도 잘났다. 그게 투아레그의 전통이다.
아무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정말이냐?”
“이 자식아, 내가 거짓말 할 이유가 어디 있어. 알라께 맹세코 나 옴부티는 그분의 하인이다.”
옴부티가 턱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늙은 투아레그인이 포로에게 거짓말 할 이유가 없다.
“그럼 너도 라텔 특공대냐?”
아무드가 미심쩍다는 듯이 옴부티를 쳐다보았다.
“어허, 그 자식 속고만 살았나. 넌 누구냐?”
잠시 망설이던 아무드가 탄식을 했다.
“휴우, 다 끝났군.”
다 끝났다. 투아레그족은 유난히 복수심이 강하다. 자신이 지워버린 투아레그 부락만 수십개다. 투아레그 전사란 늙은이가 자신을 살려 둘 리없다. 명색이 사령관이다. 이왕 죽을 몸, 당당한 사령관으로 죽고 싶었다. 그는 푸르스름하니 빛나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것이 사헬을 안방처럼 누비고 다니던 나 사헬의 무법자 할라미 아무드 대령의 최후인가!’
아무드의 눈에 회한이 스쳐갔다.
“내가 아무드다.”
“뭣? 당신이 할라미 아무드라고?”
옴부티의 우멍한 눈이 잔뜩 커졌다. 사헬의 무법자라 불리는 아무드가 바퀴벌레처럼 땅속에 숨어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왕건이가 아니라 대물이다.
아무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목이 절반쯤 잘린 사체를 향했다.
“내 부관이다. 충성스런 녀석인데 죽어 버렸군.”
마치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투다.
옴부티는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아무드의 얼굴을 모른다. 기회주의적이고 인정머리가 없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다. 녀석의 말투와 태도로 볼때 아무드 본인이 분명해 보였다.
“사막의 무법자란 이름이 아깝다. 네놈은 바퀴벌레다. 네놈이 보고싶어하는 내 주인님을 만나게 해주지.”
옴부티는 아무드를 끌고 숙영지로 향했다. 심문은 용병들이 할 일이다. 놈이 버텨 봐야 와킬이 몽둥이를 들면 단 1분도 버티지 못한다.
“잠깐, 옴부티가 보이지 않는다.”
장쒼이 소리를 질렀다. 전투와 동료의 죽음으로 모두 정신이 빠졌다.
“죽었나?”
마이크가 재 수없는 소리를 내뱉고는 지레 화들짝 놀라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걱정할 것 없다. 포로를 잡아오고 있다.”
“엥, 포로? 쏴 죽여 버리지 귀찮게 왜 잡아오나?”
마이크가 투덜거렸다.
“저기 오는군.”
부리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옴부티가 군복을 입은 40대 남자를 앞세우고 사구를 넘어오고 있었다.
“와킬, 다녀왔습니다.”
옴부티가 마치 포로를 잡으러 갔다 온 양 보고했다.
“옴부티, 보고는 깨비텐에게 하시오.”
부리머의 말에 깨비텐이 손을 저었다.
“됐어. 옴부티는 내 부하가 아니라 블랙의 하인이야. 처치 곤란한 포로는 왜 끌고 왔소?”
옴부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놈의 신분을 알면 깨비텐이 그렇게 말하지 못할거요.”
“그놈이 3군 사령관 아무드라도 된단 말이요?”
“그렇소. 바로 아무드요. 이 친구가 프롤리나트 최정예인 제3군 사령관 할라미 아무드 대령이오.”
옴부티가 자랑스럽게 답했다.
“헛!”
용병들이 일제히 헛바람을 들이켰다.
“네놈이 매번 살아서 도망치던 바로 그 바퀴벌레였군. 코로뭉가 사령부에서 용케도 살아 남았군.”
블랙맘바가 스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무드의 시선이 블랙맘바에게 못 박혔다.
코로뭉가를 언급한 저놈이 바로 칸마다. 원한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리탐을 감은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지만 체격이 탄탄할뿐 보통 사람과 별 다를바 없다. 그는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두려울 게 없었다.
부리머가 재빨리 품속에서 명함판 사진을 꺼냈다.
우멍한 눈에 높은 코, 짙은 일자 눈썹, 툭 튀어 나온 광대뼈, 땀젖은 모래가 얼굴에 눌어붙었지만 인물을 확인하기엔 충분했다.
“할라미 아무드가 맞습니다.”
“샤트르 장례식 제물로 안성마춤이군.”
아무드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그도 불어를 할 줄 안다. 말에 실린 살기가 가슴을 꾸욱 눌렀다. 역시 칸마다. 소름이 쭉 끼쳤다. 피부가 바늘에 찔린 듯 따끔따끔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지지않았다. 칸마에게 졌다.”
아무드의 말을 옴부티가 통역했다.
“임마, 우리도 다 알고 있어. 묶어 둬. 먼저 동료들의 장례를 치루고 심문하겠다.”
깨비텐의 말에 장쒼이 재빨리 아무드를 누에고치처럼 묶어서 구석에 처박았다.
“자살할지도 몰라.”
마이크가 한마디 하자 장쒼이 M60탄환을 입에 물려서 테이프로 친친 감았다.
아무드는 불만이 잔뜩 깃든 눈으로 마이크를 노려보았다. 삐딱한 눈길의 보답은 마이크의 발길질이었다. 이번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부리머 먼저 간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세.”
“그러시죠. 사제가 특이하고 기도문도 특이하지만 사헬에선 저만한 사제를 찾기도 힘들죠.”
“그렇지. 오늘의 사제로는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가 제격이고말고.”
거칠고 황량한 두조랍 사막에 무덤 세 개가 추가 되었다. 샤트르, 미구엘, 모리스다. 살아남은 용병 여섯과 늙은 투아레그 전사가 무덤을 빙 둘러쌌다.
짝퉁 사제인 블랙맘바가 무덤 앞에서 천수경을 독송했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을 도살한 인간이 영가 발원이라니 참으로 질 나쁜 농담이다. 어쩌랴. 사제 비슷한 인간이 블랙맘바밖에 없으니.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끊어질 듯 이어지던 애달픈 독송이 끝났다.
블랙맘바가 대표로 작별 인사를 했다.
“샤트르, 미구엘, 모리스 잘 가라. 당신들을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나 블랙맘바의 이름을 걸고 당신들의 남은 가족이 불행하지 않도록 하마. 지장보살, 지장보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어 깨비텐이 나섰다.
“친애하는 나의 동료 샤트르, 미구엘, 모리스 블랙맘바의 약속을 나도 하겠다. 남은 동료들을 꼭 살려서 돌아가겠다. 당신들을 팔아먹은 놈들의 턱을 부숴 주겠다. 거총!”
장쒼과 에밀이 파무스를 들어 올렸다.
“발사!”
탕- 탕-
“거총, 발사!”
탕- 탕-
쿵-
거대한 바위가 무덤 앞에 지축을 울리며 떨어졌다.
블랙맘바는 바위를 내려놓고 손을 툴툴 털었다.
“뭐, 뭐냐?”
마이크가 펄쩍뛰어 물러나며 소리를 질렀다. 무려 1톤에 가까운 길쭉한 바위다.
“비석이다.”
어이를 상실한 14쌍의 눈동자가 비석과 블랙맘바를 오갔다.
“비석?”
“비석 몰라? 지올리터, 지올라이터!”
마이크의 질문은 바위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블랙맘바는 용도만 주장했다. 장쒼과 에밀이 숨을 죽여 큭큭거렸다. 블랙맘바에게 찍힌 마이크가 벗어나기는 아직 요원했다.
무협 소설속의 초고수라면 손바닥으로 바위를 쓱 깎아 내겠지만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블랙맘바가 쿠크리를 뽑아 들고 공진을 발동했다. 우우웅 칼날이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생각을 모두 버렸다.
텅 빈 머릿속에 자른다는 일념 한 가지만 채워넣었다.
‘자른다!’ ‘자른다!’
슈악- 부지불식간에 쿠크리가 바위 면을 타고 흘렀다.
“와우!”
숨죽여 보고 있던 용병들이 함성을 질렀다. 칼날이 바위를 대패로 밀 듯이 깎아 냈다. 다시 볼 수 없는 마술 같은 장면이다. 서너 번 더 칼질을 하자 대충 평면이 만들어졌다.
‘아이구, 이거 객기부릴 일이 아이구마.’
근육이 풀린 블랙맘바가 털썩 주저앉았다.
몇 번의 칼질에 기력이 몽땅 방전되었다. 황소보다 더 강력한 근육이 수축을 일으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늘어졌다.
말 근육으로도 공진을 견디기엔 무리였다.
멋있는 비문을 쓰리라 했던 결심이 방귀 새듯 스르르 사라졌다. 칼끝에 공진을 일으켜서 겨우 이렇게 썼다.
[H.Shartre. Mouris. Migule 졸 -B.F Mussang-]최대한으로 글자 수를 줄였다. 오죽하면 샤트르와 동일한 H이니셜인 하캄, 후앙의 H를 생략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장난끼를 섞어 세운 비석이다. 그는 훗날 비석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깨비텐, 놈은 아무드 대령이 맞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드를 심문한 부리머가 깨비텐에게 보고했다.
“더 나빠질 상황도 없어. 놈들의 병력 배치와 하비브의 속내만 알면 돼.”
“프롤리나트는 현재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에 파열음이 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득세했던 매파가 분열되는 양상입니다. 구쿠니는 잠적했고, 하비브는 우리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라 세가 약해졌답니다.”
“그럼 좋은 소식 아닌가?”
“프롤리나트 상층부의 자존심이 잔뜩 상했습니다. 톰브예 위원장이 총 동원령을 내렸답니다. 티베스티에 웅거중인 병력 삼천 명을 추가로 투입해서 남하 통로를 틀어막았습니다. 톰브예와 로무의 병력 일천이 우리 뒤를 추적중입니다.”
듣고 있던 용병들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카넴주와 보루쿠주의 기존 병력에 추가로 삼천을 투입했다는 말은 프롤리나트가 총력을 기울인다는 소리다.
“젠장, 우리가 너무 설쳤나!”
깨비텐의 시선이 블랙맘바를 향했다.
“오는 놈은 죽이면 된다. 막는 놈도 죽이면 된다.”
“흐이구, 단순해서 좋구먼.”
깨비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만부막적의 블랙맘바다운 소리다.
“옴부티, 저놈에게 하비브 위치를 알아내라.”
블랙맘바가 불쑥 말했다. 그는 하비브란 놈을 반드시 손봐줄 작정이었다. 동료의 복수 이전에 백해무익한 인간이다.
옴부티의 얼굴에 환희가 넘쳤다.
바로 이것이다. 그가 아무드를 끌고 온 이유가 바로 하비브의 거취 때문이다. 역시 와킬은 자신이 지나가듯이 한 말을 잊지 않았다.
“이미 확인했습니다. 파야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저택 위치도 알아 두었습니다.”
“좋군!”
“놈들이 우리 정보를 얻은 통로는?”
“아무드는 하비브에게 정보를 받았답니다. 자신이 운용하는 정찰대 정보 외에는 모릅니다.”
“별 쓸모가 없군.”
마이크가 베레타를 뽑아 들었다.
“깨비텐, 사살할까요?”
“안 돼, 포로로 대우해 달라.”
눈치를 챈 아무드가 째지는 소리를 질렀다.
“옴부티, 저놈이 뭐라는 거야?”
깨비텐이 물었다.
“포로로 대우해 달랍니다.”
“와하하!”
용병들이 와르르 웃었다. 동료를 넷이나 죽인 놈이 포로 대우를 해 달라니 농담도 너무 웃긴 농담이다. 제네바 협약에도 비정규군 포로의 예우에 관한 조항은 없다.
“잠깐, 그놈이 여태껏 우리를 괴롭히고 동료 넷을 잡아먹은 놈이란 말이지. 제물로 쓰겠다.”
블랙맘바가 벌떡 일어서자 마이크가 두말없이 베레타를 홀드에 집어넣었다. 블랙맘바가 다가서자 아무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손으로 살을 뜯어내고 골수를 빨아먹는다는 칸마다. 죽더라도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와킬, 존귀한 분이 바퀴벌레를 잡으시렵니까. 바퀴벌레는 하인이 잡아야지요.”
옴부티가 간절한 눈빛으로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아무드가 직접적인 원수는 아니나 놈의 군대가 투아레그 마을 수십개를 파괴하고 주민을 죽였다. 이놈은 동족의 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