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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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죽음은 용병의 친구6
옴부티가 황홀한 눈빛으로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느끼한 눈빛에 블랙맘바가 으스스 떨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그도 늙은 투아레그 전사의 구애는 무서웠다.
“휴우!”
벨맨의 눈물겨운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다. 숨을 돌린 깨비텐이 꾸물꾸물 상체를 일으켰다.
“썩어도 준치인가!”
살짝 놀란 블랙맘바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한 시간은 깨어나지 못할 줄 알았다. 역시 전장에서 단련된 육신은 달랐다.
깨비텐이 머리를 흔들었다
몽롱하던 눈빛에 초점이 잡혔다. 정신을 차린 깨비텐이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나는 때렸고 당신은 맞았다.”
“젠장, 더할 수 없이 명확한 답변이군. 한바탕 얻어맞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좀 더 시원하게 해줄까?”
“됐어 임마. 차라리 아프리카 물소에게 덤비고 말지.”
때린 놈과 맞은 놈이 마주보고 씩 웃었다. 남자는 주먹질로 앙금을 터는 동물이다. 두 사람은 주먹질로 쌓인 앙금을 털어버렸다.
래쿤 작전 26일째,
허를 찔린 프롤리나트는 라텔 팀의 행적을 놓쳤다. 픽업은 별다른 장애 없이 파야 남쪽 40km지점까지 치고 올라갔다.
파야(Faya)는 티베스티 주도(州都)로 북부 최대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 도시로 비행장과 호텔이 있으며 인구가 25만에 달한다. 오아시스 도시의 인구가 수십만이라면 놀라운 규모다.
파야라르고는 파야의 옛 지명이다.
현재는 두 가지 명칭이 함께 쓰인다. 파야는 도시, 파야라르고는 시가지를 뜻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아무리 치안이 개판인 챠드지만 대포와 기관총을 들고 도심으로 들어 갈 수는 없다. 용병들은 또 한 번 땀을 흘리며 삽질을 했다. 픽업 두 대에 무기를 적재하고 방수포로 포장을 쳤다. 모래 구덩이에 픽업을 밀어 넣고 모래를 덮었다. 사막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작업을 끝내고 늘어진 용병들에게 옴부티가 헐렁한 바지를 내 밀었다.
“파야는 챠드의 대도시오. 가능한 시선을 끌지 않아야 하오.”
통이 엄청나게 넓은 바지로 다리 기장이 짧고 주름이 풍성하게 들어갔다. 영화 속의 페르시아 왕자나 입을 법한 바지다.
용병들의 눈이 옴부티를 향했다.
옴부티가 간두라 아래에 드러난 황갈색 전투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들의 눈이 너무 많소. 파야에서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소. 이 옷은 아랍인들이 외출할 때 입는 ‘샬로와르’란 바지요. 팬티를 겸해서 입는 옷이요.”
“샬로와르를 입으면 팬티를 입지 않는다고?”
“그렇소. 답답하게 팬티는 왜 입소?”
에밀의 의문에 옴부티가 반문했다.
“당신도 팬티를 입지 않았소?”
“그렇소. 베두인이나 투아레그는 원래 팬티를 입지 않소. 당신들에게 팬티를 벗으란 소리는 안 할 테니 모두 갈아입으시오.”
전투복위에 샬로와르를 겹쳐 입는 장쒼을 블랙맘바가 말렸다.
“장쒼, 사타구니에 습진을 달고 싶지 않으면 벗고 입어라.”
“모양새는 이상하지만 통기성은 좋겠어.”
장쒼이 거대한 자루 같은 옷을 들고 쩔쩔맸다. 허리둘레가 2m남짓한 샬로와르는 한복 바지 서너 배 풍성하다.
“내가 입혀 주겠소.”
옴부티가 장쒼을 불렀다. 원래 숙달된 조교의 시범엔 막내가 동원되는 법이다.
옴부티는 샬로와르를 입히고 허리부분의 끈을 쭉 당겨서 묶었다. 남은 우수리는 둘둘 말아서 허리끈에 쿡 찔러 넣었다. 바지 아랫단은 종아리와 발목사이에서 끈을 적당히 당겨서 묶었다.
용병들은 두말없이 전투복 바지를 벗고 샬로와르로 갈아입었다. 블랙맘바도 소금기로 뻣뻣해진 전투복을 벗어던지고 아랍 바지를 입었다.
“좋군!”
헐렁한 샬로와르는 통기도 잘되고, 활동성이 좋았다. 음식만이 신토불이가 아니라 옷도 신토불이다. 사헬에는 사헬에 맞는 옷이 있다. 팬티도 벗고 싶지만 문화적 불안감이 행동을 막았다.
“흠, 집단 가출한 원주민들이구먼.”
샬로와르를 입고, 간두라를 걸친 데다 리탐으로 얼굴을 감았다. 용병들의 외양은 사하라 남부 원주민들의 차림과 다를 바 없었다.
무기는 각자 권총과 냉병기만 챙겼다.
덩치 여덟이 픽업 한 대에 구겨 탔다. 무기를 소지했다면 어림도 없는 탑승 인원이다.
파야(Faya)는 사하라 사막 티베스티 대산괴 아래 위치해 있다. 지구상에서 강수량이 제일 적은 지역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강수량이 거의 없는 파야의 주요 산업이 농업이다. 그 비밀은 지하 저류지에 있다.
비가 오지 않는 파야 곳곳에 호소가 있다.
지하 저류지에서 뽑아 올린 물이다. 보델레 저지와 티베스티 산악지대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지하수로를 따라 흐른다.
지하 수로를 흘러 온 물이 파야 지하에 거대한 저류지를 형성한다. 파야는 물위에 떠 있는 도시인 셈이다. 주민들은 지하 저수지에서 물을 뽑아 올려서 밀, 대추야자, 무화과 등의 농산물을 재배한다. 인간의 알량한 머리로 헤아리기에 자연의 신비는 너무나 깊고 넓었다.
파야라르고에 진입한 라텔 팀은 레 메르엔 호텔로 향했다. 어둠속에 외따로 우뚝 선 건물이 호텔이다. 회벽을 칠한 5층 건물 앞에 촉수 낮은 외등이 껌벅거렸다. 호텔이 아니라 화장장 같은 분위기가 푹푹 풍겼다.
“이봐, 잠은 집에서 자라고.”
마이크가 데스크를 쿵 쳤다. 데스크에 엎어져 자던 흑인이 부스스 일어났다.
“룸 넷, 식사는 필요 없다.”
“하루 숙박에 사십 프랑 내슈. 중간에 체크아웃해도 환불은 없소.”
콧방울이 넙데데한 흑인이 반쯤 감긴 눈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았으니 키나 줘.”
권태가 주렁주렁 매달린 눈길이 일행을 슥 훑어보고는 키 박스를 열었다.
“316호부터 319호까지 쓰시오.
데스크 직원은 신분증 확인도 없이 키를 집어 던졌다.
“이봐 엘리베이터 있나?”
“계단으로 올라가슈.”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계단을 손짓했다. 총을 난사해도 권태로운 얼굴이 달라질 것 같지 같았다.
“최강의 권태로군. 사슴을 삼킨 보어 뱀도 저 녀석보단 부지런하겠어.”
부리머가 혀를 찼다.
“비 일상도 계속되면 일상이 되거든.”
깨비텐이 부리머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하긴, 저놈이 권총을 뽑는다고 우리가 놀라겠어? 우린 전투가 일상이고 저놈은 권태가 일상인 셈이지.”
마이크가 그답지 않게 철학적인 말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는 않지만 맞으면 철학적으로 변하는 안간이 더러 있다.
로비는 텅 비었다. 수사적이 아니라 실제로 텅 비었다.
딱 한 명, 터번을 쓴 아랍인 한명이 벽에 기대어 타블로이드 판 르몽드를 보고 있었다.
블랙맘바는 아랍인이 보는 신문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매보다 날카롭고 독일제 밀링 머신보다 더 정밀하다. 30m거리에서 신문 활자를 읽을 수 있다.
르몽드지 11월 4일자다.
11월 3일자에 라텔 팀이 작전 투입되었다. 발행 일자가 30일이나 지난 신문이다. 파야가 사하라 사막 권에 위치한 오지인 만큼 납득할 수 있다.
아랍인의 눈은 신문을 보고 있지 않았다. 신문을 보든 말든 본인의 의사지만 보는 척하는 놈은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수상한 놈이군.’
아랍인의 혈류와 뇌파가 순간적으로 강해졌다. 분명히 라텔 팀을 보고 난 후다.
공진파가 쫙 풀려 나갔다. 주르륵 풀려나간 진동이 기둥을 휘돌고 코너를 돌아나갔다.
“현재 위험 요소는 없다.”
삼십대 아랍인 외에는 사람도 없고 위험 요소도 잡히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확실치 않은 일에 지레 호들갑을 떠는 성격이 아이다. 동료들과 계단을 올랐다.
일행이 계단을 올라가자 로비에서 신문을 보던 아랍인이 느긋하니 호텔을 나섰다. 데스크의 흑인도 슬며시 뒷문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아랍인의 등에 시선이 붙었다. 3층 룸 베란다의 블랙맘바다.
“에밀, 꼬리가 붙었다. 떼고 오겠다.”
“응, 꼬리?”
에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베란다에 린넨 커튼만 펄럭였다.
“망할 자식, 또 깨비텐에게 깨지게 만들어.”
구라디에서 걷어차인 정강이가 은은히 저렸다.
파야는 식민 시대에 프랑스인들이 건설한 도시다.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시내 곳곳에 수목이 울창한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은 극과 극이다. 붉고 흰 벽돌로 지은 2~3층짜리 건물이 즐비한 반면, 양철 쪼가리와 갈대로 지은 움막 수준의 가옥도 다닥다닥 붙어 있다.
프랑스풍의 벽돌 건물은 대부분이 식민 시대의 건축물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해 버린 파야의 슬픈 자화상이다.
호텔을 빠져 나간 아랍인은 익숙한 길인 듯 밤길을 거침없이 단축했다.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좁은 골목길로 사라졌다. 블랙맘바는 느긋하니 뒤 따랐다.
아랍인의 뒤통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블랙맘바는 느긋했다. 눈으로 보는 미행이 아니라 기억된 체취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은신, 잠입, 미행이야말로 그의 주특기다. 채취가 지워져도 걱정 없다. 300m이내 거리면 어떤 생물도 공간지각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랍인의 흔적이 붉은 벽돌 단층집으로 이어졌다.
슬슬 지겨워지던 그는 반색 했다. 발 구름도 없이 3m높이의 담 위에 가볍게 올라섰다. 내부를 슬쩍 일별하고 몸을 띄워 지붕에 착지했다.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실내의 대화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이런, 젠장!’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그가 아는 아랍어는 인사말과 주워들은 단어 몇 개가 전부다. 더욱이 모로코쪽 방언은 한 마디도 모른다. 뇌가 입력된 데이터 처리를 못하니 들어도 소용이 없다.
인기척은 다섯, 전부 기가 강하게 방사되는 놈들이다. 희미한 화약 냄새도 후각에 잡혔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무화과를 키우는 농부나 상사에게 깨지는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다.
‘조금 무식해도 할 수 없지. 꼬리라면 지긋지긋하거든.’
경찰이라면 현관에서 용건을 말하고, 거동 수상자를 검문해야겠지만 자신은 경찰이 아니다.
본부 통신만 연결되면 즉시 파야를 이탈해야 할 입장이다. 호텔에 남은 동료들도 걱정되었다. 먼저 덤비지 않는 놈을 팬 적이 없지만 시간이 없다.
지붕 물받이에 발을 걸고 도괘주렴의 방식으로 실내를 들여다보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대화중인 두 사람이 보였다. 미행해온 아랍인이 조금 더 나이든 인물에게 뭔가를 설명중이다.
“뛔메!(뭐야!)”
창밖의 남자, 블랙맘바의 도립된 얼굴을 발견한 아랍인이 놀랄 만큼 빠르게 권총을 뽑았다. 빠른 동작이 불운을 불렀다.
와장창- 퍽- 퍽- 왼손이 통풍용 창문을 박살내고 오른손의 글록이 불을 뿜었다. 블랙맘바가 실내로 뛰어드는 동시에 이마에 구멍이 뚫린 두 사람이 털썩 엎어졌다.
권총을 뽑지 않았으면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안의 대화가 뚝 끊어졌다.
이왕 내친 김이다. 그는 삼인용 소파를 번쩍 들어 문짝을 향해 집어 던졌다.
와지끈- 육중한 원목 소파가 문짝을 박살냈다.
두두두- 퍽퍽퍽- 방안에서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소음기를 장착한 총기다.
소파는 미끼다. 강력한 어깨가 좌측 벽을 들이받았다.
꽝- 쉭- 벽돌 벽이 와르르 무너진 구멍으로 블랙맘바가 눕다시피 수평으로 뜨서 방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파보의 금리도천파다.
자욱한 먼지가 눈앞을 가렸지만 블랙맘바에겐 하등의 지장을 주지 못했다.
퍽퍽퍽- 마구잡이로 총탄을 난사하던 인물들이 벌떡 나자빠졌다. 전등갓을 잡고 천정에 매달려 있던 블랙맘바가 뚝 떨어졌다.
호오- 그제야 탁한 숨을 뿜어냈다.
소파를 던져서 도어를 박살내고, 벽을 부수고 들어가 천정의 백열등 전선에 매달려 속사로 셋을 처리하기까지 한 호흡이 걸렸다.
셋 모두 전통 아랍 복장이다. 둘은 백인, 한 사람은 체형이 눈에 익었다. 발끝으로 밀어 엎어진 시체를 뒤집었다.
“어, 한국인?”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