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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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죽음은 용병의 친구7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은 외양이 비슷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딱 꼬집어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약간의 눈썰미만 있으면 구분할 수 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동족을 죽였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총기를 휴대하고 있다고 해서 죽을죄는 아니다. 무단 가택 침입을 했으니 총을 쏴도 할 말 없다. 애먼 녀석을 죽이지 않았는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젠장, 엽전이 주어 먹을끼 머 있다꼬 여까지 기어 들어왔노.”
투덜거리며 간두라를 벗기자 황갈색 군복이 나왔다.
군복 왼쪽 포켓 상단에 부착된 화려한 배지가 눈길을 끌었다. 붉은 바탕의 배지 중앙에 만면에 웃음을 띤 김일성 사진이 위치했다. 소위 김일성 배지다.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보는 물건이다.
“허, 김일성 배지? 빨갱이 새끼구먼.”
찜찜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북한이 아프리카에 군사 고문단을 파견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배지를 뽑아 잡낭에 넣었다. 시체를 뒤졌지만 독침과 대검, 약간의 달러 외에 별다른 물품이 나오지 않았다.
나머지 시체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달러와 프랑화, 지도, 무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흔한 콘돔조차 없었다. 전형적인 첩보원의 행색이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각종 성병의 원인은 빈곤, 위생, 성 관념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럽인들의 영향도 크다. 이들이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매독, 임질, 트리코모나스를 열심히 아프리카로 퍼 날랐다. 자신들이 퍼뜨린 성병이 무서워서 콘돔을 필수품으로 지참하는 유럽인들도 딱한 사람들이다.
“이 자슥들은 주민등록증도 없나? 마카 다국적 간첩 새끼들이구마.”
놈들이 사용한 권총은 동일했다. 브라운 색상 손잡이, 손잡이 중앙에 별이 박혀 있는 마카로프 반자동 권총이다. 마카로프는 토카레프같은 싸구려가 아니다.
마카로프는 토카레프의 후속 모델이다. 소련이 독일의 발터 PPK를 모방해서 개발한 마카로프는 휴대성과 펀치력이 좋다. 소련과 동구권 스파이는 거의 토카레프를 사용한다. 충분히 주민등록증이 될 만했다.
흑인 둘, 백인 둘, 한국인 하나, 인종 전시장처럼 모인 이 놈들의 정체는 상당히 모호했다. 소음기를 낀 마카로프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소련쪽 정보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적성국 첩보원이라고 해서 죽을죄는 아니다. 다만, 동족을 죽였다는 부담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블랙맘바는 거실에서 찾아낸 서류 가방에 마카로프와 털어 낸 소지품을 챙겨 넣었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정체불명의 서류도 몽땅 챙겼다. 모르면 아는 놈에게 주면 된다.
밤 도깨비처럼 나타나서 건장한 남자 다섯을 지워 버린 블랙맘바다. 양쪽 다 소음 총을 사용했지만 문짝을 부수고 벽을 부수었다.
적지 않은 소동에 이웃집의 불이 켜졌다.
쉭- 검은 그림자가 허깨비처럼 담을 넘어 사라져 버렸다.
깨비텐은 프롤리나트 배후인 리비아를 간과했다.
챠드 북부는 리비아의 영향력이 챠드 정부를 압도한다. 리비아 정보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블랙맘바가 지워 버린 다섯이 리비아정보국 요원들이다. 이들은 호텔에 투숙중인 라텔 팀 공격을 준비하던 헤드 쿼터다. 대가리가 잘려 나간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블랙맘바 본인조차도 몰랐다. 엉겁결에 미구에 닥칠 위협을 제거했지만 또 다른 위협이 덮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깨비텐도 바보가 아니다.
프롤리나트의 촉수가 호텔에 닿아 있을 가능성을 예상했지만 위험을 감수했다. 챠드 북부 사헬에서 은자메나로 전화가 가능한 곳은 레 메르엔 호텔 밖에 없다.
챠드의 사회 인프라는 참혹할 정도로 열악했다.
철도망은 아예 없고, 도로망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부족한 도로망마저 우기에는 유실되기 일쑤였다. 전력은 은자메나 인근과 대도시 몇 곳에만 공급되었다.
통신망인들 온전할 리 없다. 도시간 장거리 통신망은 구석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전과 부패로 인해 프랑스 식민 시절보다 오히려 퇴보했다. 나아진 부분이라면 고위관료의 뒷주머니밖에 없었다.
깨비텐은 칸막이 너머 뚱뚱한 전화 교환수의 뒤통수를 구멍이 나도록 노려보았다. 부하들을 살리려면 통신을 열어 항공기를 불러야 한다. 애꿎은 교환수만 살벌한 눈빛에 진땀을 흘렸다.
그는 허벅지를 쥐어뜯어 잠을 쫓았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았다. 절로 고개가 중력 낙하했다. 휴식보다 통신이 급하건만 통신 연결은 기약이 없었다.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 나오도록 마음이 급했지만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통신이 연결되었다.
-알파 여기는 브라보
-브라보 여기는 알파
-알파, 여기는 치치칙
“크아악, 이런 제기라알!”
깨비텐은 괴성을 질렀다. 불량 회선이 절박한 심정을 외면했다. 상대방 확인 절차를 마치자 말자 회선이 끊어져 버렸다.
깨비텐은 챠드의 형편없는 사회 인프라를 저주했다.
그는 손에 들린 투박한 수화기를 박살내지 않기 위해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다.
절망적인 심정이 된 그는 다시 회선이 연결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챠드의 통신망은 사막의 물줄기만큼이나 말라붙어 있었다. 기다림은 기약이 없었다.
은자메나에서 발신지를 추적해서 위치를 파악한다?
턱도 없는 소리다. 통신망이 정비된 국가라면 가능하다. 통신선로가 엉망인 챠드에서는 착신 지점에서 발신 지점을 파악할 수 없다.
프랑스는 식민지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보다는 원자재의 수탈에 골몰했다. 다른 유럽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백년 이상이 흘러갔다.
본래 가진 것 없는 놈이 백년 이상 뜯어 먹혔으니 뼈밖에 남지 않았다. 챠드의 현실은 해방 후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한심한 챠드 현실에 조국인 프랑스의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그는 상상도 못했다.
호텔로 돌아 온 블랙맘바는 벽을 타고 소리 없이 룸으로 스며들었다. 에밀이 코고는 소리에 베란다 창이 드렁드렁 울렸다. 한 달이나 잠을 제대로 못자고 사헬을 헤매고 다닌 후유증이다.
그는 옷을 훌훌 벗어젖히고 욕실로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틀자 맑은 물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파야는 사막 도시지만 지하 저류조로 인해 물이 풍부하다.
“마법이다!”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웠다. 조악한 비누지만 오랜만에 켜켜이 쌓인 땀과 먼지, 핏물을 시원하게 씻어 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씻어야 한다. 마음껏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행복이다. 목욕이야말로 인간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인간은 ‘호모 라바레스(Homo Lavares, 목욕하는 인간, Lavare는 라틴어의 목욕하다.)다. 사막을 한 달 쯤 헤매고 다니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사시사철 쏟아져 내리는 천생산 계곡, 그때는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짐작도 못했다. 인간은 역시 겪어 본만큼 알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다.
에밀은 샬로와르만 입고 침대에 널브러져 단잠에 빠졌다. 피곤한 줄은 알지만 기본을 잊어버린 파트너가 볼썽사나웠다.
“멍청한 놈, 에밀!”
나지막한 부름에 에밀이 번쩍 눈을 떴다. 그의 손이 베게 밑을 더듬었다. 전장에서 단련된 신경망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옷 입고 피스톨을 쥐고 자라.”
“이런, 내가 언제 잠들었지?”
에밀은 자신의 머리를 쳤다. 큰 실수를 했다. 오랜만의 휴식에 심신이 풀어져 버렸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파트너가 내미는 글록을 받았다.
호텔 통신실에서 이빨을 갈고 있는 깨비텐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의 모양새도 에밀과 다르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코골지 마. 총알을 콧구멍에 박을 거야.”
블랙맘바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남기고 침대에 등을 붙였다.
‘쉴 땐 쉬어야지.’
딱딱하고 지저분한 침대지만 등을 붙이는 순간 수마가 덮쳤다. 작전에 투입된 날부터 지난 한 달간 단 하루도 편히 잠들어 보지 못했다.
육체는 에너지가 넘쳤지만 정신이 버티지 못했다. 누적된 정신 피로가 메뚜기 떼처럼 덮쳤다. 무쌍은 죽은 듯 잠들었다.
파란 기와를 올린 목조 2층 주택이다.
주택의 정원은 연못을 중심으로 활엽수를 오밀조밀하게 배치한 일본의 평지 정원 히라니와형이다. 갑작스런 돌풍이 정원에 쌓인 낙엽을 말아 올렸다.
자욱이 떠오른 낙엽이 2층격자 창문으로 우수수 날아들었다. 창가에 서 있던 남자가 창을 닫았다. 유리창에 붙은 갈색 단풍잎 한 장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렸다. 남자는 창유리에 붙어 미끄러져 내리는 낙엽을 무심한 눈으로 응시했다.
바람이 휘몰아 올린 낙엽 군이 허공을 떠돌다 추진력을 잃고 낙하했다. 낙엽은 조그만 연못에 떨어져 둥둥 떠다니거나 잔디밭에 어지러이 흩어졌다. 남자의 시선은 낙엽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잃어버린 삶을 궤적 일부분을 따라갔다.
눈을 즐겁게 만들던 형형색색의 단풍은 순간일 뿐이다. 초겨울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말라비틀어진 낙엽은 흉한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나무를 떠난 단풍은 더 이상 단풍이 아니다. 쓰레기로 불린다.
근본을 잃고 정처 없이 날리는 낙엽이 바로 자신이다. 제망매가의 한 자락처럼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간곳 모르는 낙엽, 뿌리 없이 떠도는 부평초가 자신이다. 자신의 신세가 새삼 비감스러워졌다.
“꽃도 한철이고, 단풍도 한철이구나.”
무쌍의 입에서 70대 노인이나 할 법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공연히 가슴이 먹먹해진 무쌍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빨간 입술이 이마에 얹혔다. 화인 이 찍힌 듯 뜨거움이 주르르 신경을 타고 치달렸다.
“사랑해!”
천상의 음률처럼 감미로운 소리가 귀속 솜털을 흔들었다.
수많은 연인들이 영혼을 걸고 또는 영혼 없이 주절대는 진부한 대사다. 물론 나 아닌 남의 이야기다.
희고 길쭉한 손가락이 단추를 풀고 슬그머니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이, 조금만 부드러우면 더 좋을 텐데.”
뼈도 없는 부드러운 손이 강철판 같은 가슴을 쓰다듬었다.
“어머, 자기 젖꼭지가 화를 냈어. 다른 곳도 확인할게.”
가슴을 빠져 나간 손이 바지 지퍼를 내리고 슬쩍 파고들었다. 이마에 머물러 있던 입술이 스르르 얼굴을 훑고 내려와 입술과 이빨을 두드려 열고 제집인양 파고들었다.
“으허!”
남자가 기묘한 신음을 토했다. 시골국민학교 조개탄처럼 뜨거워진 젊은 육체가 부딪혔다.
엄마 품안인지, 큰집 행랑방인지, 천성사 큰방인지, 비진도 민박집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혜영이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데 어딘들 무슨 상관이랴. 혜영은 여전히 서툴렀다. 물론 자신도 서툴렀다. 서툴게 키스하고 서툴게 애무했다. 이빨이 서로 부딪히고, 붉은 흔적이 이곳저곳 남았다.
혜영이 그의 손을 끌어 팬티 속으로 넣었다. 까슬까슬한 음모가 손끝에 느껴졌다.
그녀의 음모는 정확히 좌우 대칭이다. 빗으로 정성껏 빗은 듯 늘 가지런하다. 머리 빗을 때 그기도 빗냐고 물었다가 일주일 동안 접근금지를 판결 받았다.
그것이 어제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하루도 못 참다니, 역시 혜영이다. 그녀가 빨판처럼 달라붙었다. 중심부를 아나콘다처럼 삼켰다. 깊은 유사로 빠져들어 가는 아득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찰칵-
현실속의 미세한 소음, 두뇌 회로 신경망이 현실과 접속되었다. 일순간에 무수한 기명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외인부대, 챠드 파견 특공대, 스나이퍼,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게릴라. 응! 게릴라?
번쩍 깨어난 신경망이 무수한 전기 신호를 발생시켰다.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찰칵 소리가 도어 록 풀리는 소리임이 재인되었다.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침입자가 계단을 오를 때 알아 차렸을 것이다. 혜영은 늘 그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놈들이 침입했다는 사실보다 중단된 꿈이 그를 분노케 했다. 새벽마다 텐트치는 거시기에 시달린지 몇 년이던가!
“존만이 쉐이, 썰어 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