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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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머나 먼 샤리강6
“짐작은 했지만…….옴부티의 말에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마피아식 더블 컨트랙터입니다. 배경은 깨비텐도 짐작하고 있을 거요.
깨비텐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더블 컨트랙트란 조직의 외곽 팀이나 상관없는 팀을 동원하고, 작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해당 작전 팀을 소거시키는 것을 말한다. 관련된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토사구팽이다. 마피아가 흔히 사용하는 뒤통수치기다.
“아무리 DGSE가 지저분한 놈들이지만 군부 동의 없이 더블 컨트랙트 작전을 펼치기 힘들 텐데.”
깨비텐은 애써 부인했다. 벨맨의 말을 수긍하기엔 장교로서 자부심이 거치적거렸다.
“프랑스 군부는 골(Gaul)의식이 강합니다. 수탉은 스스로에 도취되어 거드름을 피우고, 말 잘 듣는 놈도 수시로 쪼아댑니다. 외부에서 들어 온 놈은 언제나 차별 대상이 되죠. 레종 에뜨랑제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놈들도 많습니다.”
벨맨은 말을 끊고 우직한 깨비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벨맨의 전직은 CIA동아프리카 담당이다.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드러내지 않지만 커튼 뒤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암묵적 동의를 했다?”
“최소한 DGSE의 행동을 눈감았겠죠. 군부와 정보국은 우리 덕분에 마쿰보를 확보하고 정치적으로도 큰 이니셔티브를 얻었습니다. 대대적인 승진 잔치가 벌어질 겁니다. 인간은 블랙맘바가 말한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가 아닙니다. 생환한 라텔팀원들이 나발을 불기 시작하면 난처해질 대가리가 한두 놈이 아니죠.”
“그래서 히트맨을 보냈다?”
“백도어 작전 초기에는 더블 컨트랙트까지 생각지는 않았을 겁니다. 적당히 분탕질 치다가 사막에 묻힐 거라 예상했겠지요. 작전이 성공하고, 우리가 계속 살아남자 마음이 달라졌을 겁니다.”
“입을 막기가 쉽지 않으니 사막에 묻어 버리면 간단하다는 말인가?”
“우린 이중으로 뒤통수를 맞은 거요. DGSE도 CIA만큼이나 더러운 공작을 즐기는 모양이요.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살아서 돌아가야 합니다.”
‘악어 풀에 던져진 오소리 꼴이 되었어. 게다가 피라니어까지 풀어 넣고, 고대 맹수까지 불렀어. 지독하군.’
깨비텐은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피라니어는 파야 호텔의 침입한 히트맨이다. 고대 맹수는 말할 것도 없이 오셀롯이다. 벨맨의 말이 아니라도 도마뱀 꼬리자르기라 불리는 더블 컨트랙트 작전이 틀림없다.
블랙맘바가 있기에 백도어 작전이 성공했고, 더블 컨트랙트는 실패했다. 덕분에 용병들은 반드시 죽어야 할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진실은 언제나 더럽다. 깨비텐은 자신의 입으로 더러움을 뱉어내고 싶지 않았다.
“놈들은 큰 실수를 한 겁니다. 챠드를 확보한 이득이 너무 커 보이겠지만 블랙맘바의 가치는 그 이상입니다. 거드름이나 피우는 닭대가리들이 계산을 잘못 한 거죠. 적으로 돌아선 블랙맘바를 상상해 보십시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악몽이겠지.”
깨비텐의 입술꼬리가 슬며시 비틀려 올라갔다.
“우리가 귀환하면 상부가 블랙맘바를 어떻게 제어할지 기대됩니다.”
“후후, 저 괴물을 말인가? 과연 제어가 가능할까?”
동료에겐 수호신이지만 적에게는 악몽과 같은 존재가 블랙맘바다. 오셀롯을 상대하면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전부가 사막에 묻히더라도 블랙은 귀환해야 합니다. 더러운 놈들을 응징하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합니다.”
벨맨이 평소답지 않게 강하게 말했다.
“자네가 어떻게?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르몽드도 국가를 똥통에 빠뜨리는 폭로 기사는 싣지 않을 걸.”
“그러니까 우리가 희생해서라도 블랙을 귀환시켜야죠.”
“아아 시끄럽고, 십대 계집애들도 아니고 노친네들이 웬 수다야!”
블랙맘바가 눈을 떴다.
“잠을 깨웠나?”
“아니다. 오셀롯이라는 놈에게 청부한 놈이 누굴까 생각했다. 그놈이 용병 여덟이라고 숫자도 적시 했단 말이야. 청부자는 미구엘과 모리스의 사망까지 파악하고 있는 놈들이다. 우리를 체스 판에 올려놓고 구경하는 놈이 누구일까?”
“이젠 놀랍지도 않아. 소비에트 연방에서 핵미사일을 날려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
깨비텐의 말에 벨맨이 고개를 저었다.
“간덩이가 부었다면 좋은 일이지만 무기력은 좋지 않습니다. 구경하는 놈은 여럿이겠지만 의뢰자는 뻔 하지요. 블랙 자네가 들은 대로다.”
“작전 중인 자국 군인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히트맨을 고용해서 보내다니 프랑스도 볼장 다 보았어. 알쪼야.”
블랙맘바의 신랄한 비난에 깨비텐의 얼굴이 썩어문드러졌다.
“군부는 아니다. 백도어에 이어 더블 컨트랙트 작전을 쓸 만큼 타락하지 않았어. DGSE일 가능성이 높다. DGSE라면 슬리퍼를 통해 우리 행로를 대략 짐작했을 거다.”
깨비텐의 말에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국방부든 정보국이든, 미테랑이든, 그 누구든 상관없다. 이번 작전에 한 발을 들여 놓은 놈들은 내 계산법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할 거다.”
블랙맘바의 말에 냉기와 무게가 실렸다.
깨비텐과 벨맨이 부르르 떨었다. 허공에 떠오르는 머리통, 이리저리 떨어져 나뒹구는 팔다리가 눈에 선했다. 블랙맘바가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기득권과 권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놈이다. 장관, 사령관, 국장 따위의 지위를 개차반으로 여기는 놈이다.
“내가 미쳐 날뛰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흐음!”
속내를 들킨 깨비텐이 씁쓸하게 웃었다.
더러워도 자신의 조국이다. 블랙맘바가 작정하고 날뛰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몸은 괜찮은가?”
“견딜 만하다. 곧 회복된다.”
“조심해. 창상만 43곳이야. 바느질할 때 다시 확인해 보니 일곱이 늘었더라고. 창상보다 골절이 문제다. 당분간 조심하라고. 으흐! 지금도 떨리는군.”
벨맨이 진저리를 쳤다. 페스츄리가 된 상체와 본인의 손으로 부러진 갈비뼈를 당겨 맞추는 뚜드득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블랙, 회복에만 전념해. 자네 손에 우리 목숨이 달려 있네. 그런데 그 끔찍스런 놈의 정체가 뭔가? 뮤턴트 어쩌고 하던데.”
“나와 비슷한 놈이다. 무예를 익히지 않았으면 내가 당했다. 그놈에 대해선 함구하는 게 좋겠다.”
무쌍은 슬쩍 비켜 갔다. 시시콜콜 설명하기도 귀찮고, 지금은 그냥 쉬고 싶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말해 봐야 누가 믿겠나. 채찍으로 사람의 목을 잘라 내고, 총탄을 피하는 놈이라니, 할리우드 스크린에서 뛰쳐나온 놈이겠지.”
“나는 그놈보다 우리 팀을 이렇게 써먹는 놈들이 더 놀랍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은 모양이다. 늙은이들이 히트맨만 보내지 않았으면 몇 대 때리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부끄러운 일일세. 리더로서, 프랑스 장교로서 내가 사과하네.”
“피해자가 무슨 사과를 해. 깨비텐은 남은 가족들을 건사할 계획이나 세워 둬.”
“그러지.”
깨비텐은 머쓱하니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웠다. 자신은 여전히 조직의 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국인 녀석은 죽은 동료의 가족을 챙길 계획을 짜고 있다. 자신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회의를 느낄 때 한국인 녀석은 귀환 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블랙, 한국에도 너구리와 오소리가 있나?”
“있다. 북미산과 외형은 조금 다르다.”
눈을 반개하고 명상에 잠겨 있던 블랙맘바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하는 깨비텐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너구리가 오소리보다 비싼가?”
“너구리는 진돗개 훈련용으로나 쓰인다. 오소리는 약재로 비싸게 팔린다.”
“젠장, 삐에프가 팀 이름을 잘못 지었어. 오소리가 너구리나 낚는 미끼로 쓰였으니 말이야. 왜 우리가 이 꼴이 되어야 하지.”
깨비텐답지 않게 폴 중위가 주절거렸다.
“조직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지. 개인은 조직 속에 서서히 매몰되고,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조직의 목적을 선이라 착각하고 수단을 정당화함에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샤트르가 말한 늙은 괴물로 변한다. 그들이 수단으로 쓰고 버린 소모품을 기억이나 하겠어?”
블랙맘바가 심드렁하니 말했다.
“개죽음 당한 부하들은 어쩌란 말이야. 이 망할 새끼들아!”
깨비텐이 주먹으로 윈드 실드를 꽝꽝 두드렸다.
대원들과 프롤리나트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접점이 생긴 원인은 명령이다. 당위성을 제공한 임무 명령이 허구요. 사기다. 죽은 부하들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군인은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 깨비텐이다. 우리는 군인이고 맡겨진 임무를 완수했다. 문제는 없다.”
깨비텐은 어이없는 눈으로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이놈의 말과 행동이 바뀌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요한 자세, 높낮이 없는 음성,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놈이다.
“블랙, 너는 분하지 않나?”
“깨비텐, 우리는 군인이다. 프랑스가 첫 번째 총알받이로 내 세우는 외인부대 용병이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지불해야 한다. 밥을 먹지도 못하고 밥값을 지불하는 사람도 많다. 밥상을 엎어놓고 밥값을 내라는 놈도 있다. 배신당하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결정인데 내 왜 그런 얼토당토않은 결정을 내렸을까? 얻은 것 없이 부하들만 희생되었다. 나 같은 멍청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깨비텐, 한국에서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 유행중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국민에게 총탄을 퍼부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하는 말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나면 원인과 과정 결과로 이어지는 사슬이 자명해 보인다. 내 그럴 줄 알았지하고 관련자들을 탓하고 자신의 가슴을 친다. 쉽게 말하면 후견지명(後見之明)이고 어렵게 말하면 사후과잉확신편향이다. 결과를 알고 나면 그 일을 처음부터 예측 가능했다고 착각하는 심리라고나 할까. 깨비텐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 됐다. 당신이나 나나 부족한 인간이다. 지금 당신이 할 일은 후견지명이 아니라 선견지명이다.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
깨비텐은 블랙맘바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한때 승려였다고 하더니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더 인생의 쓴맛 단맛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인생을 살아 온 인간일까? 갑자기 증폭된 호기심이 무력감을 밀어냈다.
“자네 말이 맞다. 살아서 돌아가야 놈들을 때려죽이던 쏴 죽이던 할 수 있겠지. 자네는 지금부터 모든 일에 열외다. 짐을 옮기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컨디션 유지와 전투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알았나!”
“알았다.”
더블 컨트랙트는 심증이 가지만 물증이 없다. 용병들은 서로 간에 확증이 뒷받침되지 않는 의혹을 언급하지 않았다. 자존심 상하고 사기가 죽기 때문이다.
파야에서 은자메나 연대 본부까지 지도위에 직선을 그으면 889km다. 직선거리가 889km일뿐, 도주 거리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피에 물든 장정이 눈에 선했다. 도주로 1,800km를 예상한 깨비텐의 마음은 픽업이 일으키는 뿌연 먼지만큼이나 흐려졌다.
픽업이 남서진 코스를 잡아 내 달렸다.
강행돌파다.
‘헛!’
명상에 잠겨 있던 블랙맘바가 황급히 운전대를 잡아 꺾었다. 픽업이 쓰러진 아카시아 둥치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이런, 졸았군. 와킬, 죄송합니다.”
옴부티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사막이 고향인 옴부티조차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떨어진 체력과 부족한 수면 때문에 반은 졸면서 운전했다.
“옴부티, 내가 운전하겠다. 눈 좀 붙여라.”
“블랙맘바, 너는 닭대가리냐. 내가 한 말을 벌써 잊었나?”
깨비텐이 시퍼렇게 화를 냈다.
“속 좁은 새끼!”
블랙맘바는 속으로 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