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00
00100 4-6.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자 =========================================================================
***
첫 번째 천사의 파편은 지도에 의하면 숭인원 근처 깊은 땅밑에 있다고 했다.
숭인원이 뭐하는 곳이냐, 검색을 해보니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영왕英王과 이방자李方子 사이에 태어난 아들 진晉의 묘소라고 한다.
대한제국 시절에 조성된 거로군.
예전이라면 좀 경건한 마음으로 방문했겠지만, 지금은 몬스터가 굴러다니는 곳이라 심드렁한 기분이었다.
“꺼져라!”
내 옆에서 수행하고 있는 비가디가 호통치자 숭인원에서 쉬고 있던 몬스터들이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개중에는 몸길이가 30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 거대한 녀석도 있었다.
쿠웅! 쿠웅!
놈의 움직임으로 땅이 진동하자 비가디가 다시 역정을 낸다.
“조용히 꺼지라고!”
그러자 어마어마한 덩치의 녀석이 움찔해서는 최대한 살금살금 움직인다.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현재 내 옆에는 비가디와 유송연, 그리고 안구에 특별한 마법을 써 햇빛을 막고 있는 하르담이 있었다. 우리는 이 숭인원 어딘가에 있을, 지하로 통하는 통로를 찾기 위해 왔다.
그곳을 통해 내려가면 천사의 파편이 있으리라.
“하르담 부탁할게.”
“맡겨주십시오.”
하르담은 일대의 지면을 스캔하는 힘이 있다. 숨겨진 굴을 찾기 그만이다. 그를 뺀 우리도 저마다의 힘을 사용해 사방을 살폈다.
나 같은 경우는 감시의 눈길을 뿌리거나 진실의 시야로 땅을 비추고 다녔다. 진실의 시야라면 가려진 통로를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역시나 하르담이 제일 먼저 통로를 찾아냈다. 아무래도 일대의 지형을 읽는 방식은 당하기 어려구나.
“이쪽으로 오시죠.”
진입은 하르담, 나, 유송연만 하기로 했다. 비가디도 따라오고 싶어했으나 그는 영지의 일이 산적해 있어 반려했다.
“별일 없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파편을 주우러 가는 거야. 솔직히 지금도 인원이 과해.”
“그리 말씀하신다니 알겠습니다.”
비가디와 헤어진 후 우리는 땅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과거 벌레들이 사용하던 통로군요.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막힌 곳도 있을 겁니다.”
과연 하르담의 말처럼 흙이 무너져 길이 끊긴 곳도 있었다. 일부 구간을 벌레 인간인 하르담이 실력을 발휘했지만, 그가 도저히 어쩌기 어려운 곳도 몇 있었다. 결국 튼튼한 앞다리를 가진 일꾼 벌레들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멈춰 서서 한동안 기다리자 주변에 들썩들썩하더니 통로를 뚫고 벌레들이 나타났다. 그들 하르담의 지시를 받아서는 통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키릭. 키릭.
특유의 더듬이 소리가 요란하다. 일꾼 벌레들이 활기차게 움직이자 땅 밑에서 갈 수 없는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앞에서 그런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방진 마스크를 쓰고는 느긋하게 뒤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우리는 곧 깊은 지하 공동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부화장도 아닌데 이렇게 넓은 곳은 처음 봤다.
폭이 1킬로미터 정도, 높이는 100미터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공동 안에 가장 시선을 끄는 건 그 가운데 있는 두꺼운 원기둥이었다.
원기둥의 폭은 무려 200미터가 넘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건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인공적이라고 하기에도 스케일이 비상하게 컸다.
보면 원기둥의 위쪽은 천장과 붙어있었는데, 아래쪽은 10센티미터 정도 붕 떠있었다. 실로 기괴한, 중력을 무시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그 아래쪽 틈으로부터 서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르담, 대체 이것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죄송합니다만, 평생 지하에서 살아왔어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절대 벌레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겠습니다. 북쪽 벌레라고 우리와 하는 짓이 다른 거 아니니까요.”
다른 의견을 구하기 위해 유송연을 쳐다보자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인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겠군요. 이 안에 천사의 파편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건 확실히 그랬다.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 이 독특한 구조물 안에 천사의 파편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동시에 서늘하고 섬뜩한 기운 역시 같이 느껴졌다.
“이것 참. 어딘가에 진입로가 있나?”
우리는 일꾼 벌레를 기다리게 하고는 거대한 원기둥을 따라 돌았다.
발밑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빛 때문에,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공동 안으로 늘어진다. 그림자는 우리를 따라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시계의 초침과 분침 같아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도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마땅치 않아 난처해 하고 있을 때, 낯선 인물이 나타났다.
“누구요? 거기 누구요?”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지팡이에 의지한 붕두난발蓬頭亂髮의 늙은이였다.
“그러는 노인장은 누구시오?”
내 물음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고 혼자 횡설수설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제 보니 헌터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흠….”
저 복장, 꽤 예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이다.
대략 10년 전쯤일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는 저렇게 몬스터의 외피와 털로 만든 옷이 유행했었지.
노인은 시력이 매우 약한 듯 우리에게 빛나는 지팡이를 가까이 대고는 바짝 다가온다.
“이놈.”
하르담이 나서려고 하자 나는 그를 제지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노인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노인장, 이름이 뭐요?”
“나는 노인이 아닐세. 올해로 42살이지.”
겉보기에는 당장 쓰러져 죽어도 안 이상해 보인다. 검버섯이 성성하고 주름살이 깊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언제 이곳에 온 것이오?”
그 물음에 일순간 노인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연다.
“내 이름은 황윤이지. 꽤 오래전에 이 지하로 동료들과 내려왔어.”
“그들은 어디에 있소?”
“모두 파편을 욕심냈기에 벌을 받았지. 그윽하신 분들께서 그 불경한 놈들을 단죄하셨어.”
“단죄요?”
“그래, 곧장 붙잡아서 생기를 빨아내셨지. 진정 그건 놀라운 모습이었네! 빨려나오는 인간의 생기가 그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그것뿐이 아니야! 그분들께서는 헌터뿐 아니라 지하에서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벌레들조차 그렇게 처리하셨지.”
상당히 꼬인 얘기구나.
그래도 대강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 이 노인은 동료들과 천사의 파편을 찾으러 이 지하에 왔던 게 틀림없다. 복색으로 판단하건데 최소 10년 전이다. 그리고 그때 동료들은 모종의 존재에 의해 전멸했지만 본인만은 살아남았다는 거다.
또한 그 존재들은 헌터뿐 아니라 벌레들까지도 잡아먹는 게 틀림없다.
“위험한 냄새가 나는데요, 주인님.”
“그러네. 생기를 집어삼키는 부류에 대해 알고 있어?”
“글쎄요. 얘기만 들어보면 뭔가 게니스들과도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하르담을 쳐다보았다. 지저의 일이니 아는 게 없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현명한 그조차 고개를 젓는다.
“노인장, 그윽한 존재들이란 누굽니까?”
“진정 아름답고 강하신 분이지. 나는 그분들에게 선택받았다네! 내 탐욕스러운 동료들이 비명에 갈 때도 그분들은 내게 자비를 베푸셨지. 크크큭! 하하하핫!”
어쩐지 광기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자네들도 그분들을 만나보지 않겠나? 여기까지 왔다면 천사의 파편을 찾아온 거겠지. 자네들에게 자격이 있다면 그분들께서 친히 파편을 건넬 거야.”
어찌 대답할까 고민하는데 하르담과 유송연이 위험한 느낌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나는 천사의 파편을 꼭 얻고 싶었다.
“위험은 극복하면 그만이야.”
“…주인님의 사고방식은 참 놀라워요.”
“걱정하지 마. 이기면 아무런 문제도 없어.”
나는 그들을 만나겠다고 노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눈을 번쩍이며 좋아한다.
“잘 말했네!”
그러면서 쾅! 하고 지팡이를 땅에 내려친다. 그러자 곧 원기둥의 일부가 기계장치처럼 돌아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겼다.
“이리로.”
노인이 앞장 서서 우리를 이끌었다.
원기둥 안은 도넛처럼 비어 있는 구조였다. 걸어 들어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게 됐다.
“이매망량… 백귀야행….”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은하의 핵처럼 빛나고 있는 천사의 파편을 중심으로 엄청난 수의 망령과 요괴 같은 무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그들을 처음 본 순간 자연히 알았다.
저건 천사도 몬스터도 아닌 제3의 존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로 흘러와 이 지하에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게 틀림없다.
그들은 불빛에 이끌리는 나방처럼 천사의 파편 주위를 뱅뱅 돌기만 한다. 나는 그들이 그런 행동에서 기쁨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방에 이해할 수 없는 화음의 노래가 가득하다. 아니, 이걸 노래라고 할 수 있을까?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오오! 그윽하신 분들이여!”
노인은 절을 하기 시작한다.
“제가 여기 살아있는 공물을 가져왔습니다. 부디 흡족하게 받아주시길!”
역시 그런 것이군.
이 노인의 역할은 어쩌다 이곳에 당도한 헌터나 벌레를 이쪽으로 유도하는 역할이었던 거다.
특별히 선택을 받은 게 아니다.
미끼로 쓰기 위해 지금까지 살려둔 거겠지.
노인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건 세뇌라도 당한 탓인 거 같다.
“이놈이!”
하르담은 분노를 터뜨리며 노인을 걷어차려 했다.
그러나 그럴 틈이 없었다.
키에에에엑!
길고 긴 귀공성이 울리더니 유유히 파편 주위를 떠다니던 이매망량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눈에 봐도 3천여 마리도 넘어 보인다.
그들은 마치 피라냐처럼 우리를 먹어치우기 위해 꿈틀거린다. 아직 달려들기 전에 틈을 보고 있었지만 곧 순식간에 몰려올 것처럼 보였다.
위기라면 상당한 위기다.
녀석들이 곧장 우리를 빨아먹어 버릴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주인님!”
놀란 유송연이 온몸으로 날 막아서려고 하기에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녀에겐 무리다.
이 정도 무리에 덮쳐지면 군주급이라도 어림없었다.
유송연은 날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할 여자기에 서둘러 내 뒤로 감췄다.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지켜줄 테니까.”
“아…. 주인님….”
뭔가 좀 아련한 느낌의 한숨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하르담, 자네도 내 뒤로 오도록.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네!”
그렇게 수하들을 뒤로 물리고는 나는 즉각 위엄 발현을 사용했다.
메타트론에게 받은 이 힘은 나의 카리스마 수치를 갑작스레 늘려준다.
키에에에엑!
사악한 기세를 뿜어내던 이매망량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난다. 마치 파도가 몰아쳐 오다가 갑자기 뒤로 빠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놀라게 했지만 곧 다시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능력치 집중을 사용해 카리스마 수치를 한층 올렸다.
덕분에 현재 내 카리스마는 무려 1,000을 넘어가고 있었다.
대군주급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카리스마 수치를 갖지 못한다. 카리스마만 보자면 왕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키에에엑! 키에에엑!
놀란 이매망량들이 발버둥을 쳐댄다.
왕과 같은 위압감을 가진 이를 만났으니 혼비백산할 수밖에.
나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3천이 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분명히 내가 천사의 파편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에도 제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이익! 키이익!
이매망량들에게서 고통이 느껴졌다.
눈앞에서 천사의 파편을 잃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대로 천사의 파편을 취하는 건 위험해 보였다. 몸을 눌러오는 위력에도 불구하고 악을 쓰며 반항해 올 듯했기 때문이다.
“둘 다 눈을 가리도록.”
유송연과 하르담에게 그리 명하고는 태양신격의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쥐어짜 태양광을 방출해 냈다.
번쩍.
일대가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이매망량은 그 빛에 눌려서 구석으로, 구석으로 몰려갔다. 이 거대한 원통 안에서 어떻게든 빛이 없는 곳을 찾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닥의 틈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빛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 뒤 태양광이 사라지자 이매망량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위대하신 분들께서!”
노인이 절규하며 자기 옷을 찢어댄다.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이매망량이 마지막에서 서로 뭉쳐서 발버둥치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색의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가 있었다.
그렇군,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한 녀석들이 이 항아리 속으로 숨어버린 건가.
뚜껑을 살짝 열어보자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이거 잘하면 써먹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검은 항아리를 마법 주머니에게 던져넣고는 이번에는 허공에 떠있는 천사의 파편으로 향해갔다.
이제 나를 방해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
천사의 파편을 움켜쥐자 곧장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상태창에 레벨 업 버튼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는 거다.
드디어 9레벨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레벨 업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무슨 특수 능력이 생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