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02
00102 5-1. 대군주급 사냥 =========================================================================
***
잘 만들어진 마법진 안에 아리엘이 차분히 서 있다.
이 마법진은 사용하고자 하는 주문을 보조해 주고 실패를 막아주는 효능을 가진 종류다.
처음 사용하는 기술이나 자신의 능력으로 버거운 걸 사용할 때 유용하다. 다만 전장에는 가져갈 수 없기에 새로운 주문의 시험용으로 자주 쓰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천사 복제가 S+등급인 데다가 처음 해 보는 거니 실패를 줄이고자 이 마법진을 사용하는 거다.
“아리엘 시작할게.”
“네.”
아리엘의 태도가 전과 다르게 고분고분, 협조적이다.
역시 지난번의 협상을 하길 잘했다. 아무리 지배관계라고 해도 억압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거겠지.
우우우웅.
내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마법진도 자동으로 작동한다.
차분하게 가자.
다섯 번 복제하는 동안 내 스탯은 무작위로 –50이 된다.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면 속이 쓰려서 못 참겠지.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천사 복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쉽지가 않았다.
첫 번째 천사부터 상당히 애를 먹이는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을 무렵, 드디어 복제된 천사가 등장했다.
마치 고치로 몸을 말고 있는 것처럼 잔뜩 웅크린 천사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다. 그러나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게 문제는 없어 보였다.
천사는 막 탈피를 끝낸 잠자리나 매미를 연상시켰다.
“두 번째 간다.”
처음에 고생하고 나니 다음은 좀 쉬웠다.
세 번째는 더욱 수월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여유까지 생겼다.
“흐….”
그래도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다행히 잘 끝났군. 스탯은 랜덤하게 –10이 다섯 번 적용됐지만 특별히 약해진 느낌은 없다. 이미 능력치가 몇백이나 되는 나인지라 별로 티도 안 나니 그렇겠지.
지금 내 앞에는 꿈틀거리는 천사 다섯이 보였다.
모두 십 대의 남녀의 외형이다.
여자애가 둘이고 남자애가 셋이었다.
“아리엘. 일단 얘들 정신 차리면 이런저런 상황 설명 좀 해줘. 저택에 방 배정도 해주고. 이제부터 네 부하들이니 신경써서 교육하라고. 이 녀석들이 성과를 올려야 네가 자유를 얻는 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리고 내가 이런 기회를 주는 게 무척 자비로운 행동이란 사실 역시 기억하고.”
“물론이에요. 감사드립니다.”
갓 태어난 천사들은 아리엘에게 맡겨놓고 동대문구로 가 며칠을 보냈다.
세르카두를 끌어들일 함정에 대해 협의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협의 끝에 함정의 형태와 매복시킬 병력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당일 날에는 외눈박이의 왕 콰르강 역시 동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협의를 끝낸 뒤 다시 노량진의 신성지로 돌아와 아리엘과 천사들을 만나러 갔다.
“인사드립니다!”
기합이 바짝 든 어린 천사 다섯이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해 온다. 이들의 기원이 어떻든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지라 하는 짓은 한국인과 비슷했다.
“반갑다. 다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여자 천사 둘은 리리엘, 노엘이었고 남자 천사 셋은 기드엘, 키엘, 가엘이었다.
“좋다. 리리엘, 노엘, 기드엘, 키엘, 가엘.”
이들은 모두 본류인 아리엘과 같이 평천사로 신성지를 갖고 패밀리를 구성할 수 있는 부류였다.
나는 그들을 여의도 땅밑으로 데리고 갔다.
“빛을 좋아하는 너희에겐 미안하지만, 앞으로 너희의 전역은 이 지하 세계다.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니 힘내주길 바란다.”
다섯 천사들은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해줬다.
나는 그들을 황금갑충의 간부들에게 소개해줬다. 간부들은 벌레 헌터들을 늘릴 절호의 기회였기에 다들 반색했다. 하지만 벌레 헌터가 될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해 왔다.
“그것은 걱정하지 말라. 1조 원이 넘는 마정석을 지원하겠다.”
“오오오!”
사방에서 경탄이 터져 나온다.
벌레들은 마정석의 에너지를 이용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1조 원가량의 마정석이면 엄청난 벌레떼가 태어날 거다. 헌터가 될 자원도 충분할 터. 설령 헌터가 되지 않아도 좋다. 전투 벌레로 키워도 북쪽 벌레를 공격할 수 있다.
“그대들은 모두 서둘러 전투를 준비하라. 진격의 때가 머지않을 테니까.”
벌레들은 불과 몇 주 정도면 전투대기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미진한 점이 있겠으나 북쪽 벌레와 다르게 이쪽 벌레에겐 헌터들이 있다.
전투력의 수준이 다르니 분명히 승산이 있었다.
***
“승리자시여. 위대한 당신께 정중한 요청을 드립니다.”
몬스터의 사신 하나가 권좌에 앉아 있는 세르카두에게 무언가 바친다.
그건 조공품과 서찰이었다.
보낸 이는 동대문구의 군주급 몬스터 비가디와 중랑구의 군주급 몬스터 오르파였다. 그 문서에는 자신들의 분쟁을 세르카두가 중재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동시에 한껏 세르카두의 위엄을 찬양하며 앞으로 그의 비호 하에 들어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크하하핫!”
오지랖 넓고 호호탕탕한 성정인 세르카두는 당연히 그 사실에 기뻐했다.
자신의 권위를 한껏 살릴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다. 일단 물러가서 기다리고 있으라.”
“황공하옵니다.”
세르카두는 자신의 무력을 믿고 안하무인에 기분에 따라 행동하긴 하지만, 아주 바보는 아니라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신의 모사와 상의할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어찌 생각하나? 골국.”
골국의 세르카두를 섬기는 모사로, 자기 직업에 어울리게 머리가 비대하게 발달한 몬스터였다. 동시에 뛰어난 주문 사용자로 거의 군주급에 준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 세르카두의 성공 가두에는 이 골국의 공로가 지대했다. 그래서 무례하고 방정맞은 세르카두조차 골국의 조언에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매우 좋은 기회 같습니다.”
“그렇지? 크하하핫!”
“하지만 그래서 수상하군요. 주군, 제가 전에 드린 말 기억하십니까?”
“아, 그거 말인가.”
이맛살을 찌푸리던 세르카두가 입을 연다.
“필요할 때 찾아온 딱 맞는 기회를 경계하란 거였지?”
“맞습니다. 주군. 우리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 같은 게 아닙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강적과 싸워야 할 때면 전설의 검이 나타나고, 옆구리가 허전하면 근사한 미녀가 하늘에서라도 떨어집니다.”
“크하하하핫!”
세르카두는 허벅지를 치며 웃어댔다. 이들은 인간의 이야기도 제법 알고 있는 편이었다. 천사들이 인간의 문화를 조사했던 것처럼 몬스터 역시 비슷한 일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건 사기꾼의 수법일 확률이 농후합니다.”
“그래서 함정이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조심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주군. 제가 일단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사신을 붙잡고 며칠 시간을 끌고 계시지요. 그 뒤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좋다! 그 의견 받아들이지.”
“영민하십니다, 주군.”
골국은 깊게 읍했고 세르카두는 교활한 얼굴로 주변에 명을 내렸다.
“연회를 열라! 크고 성대하게!”
그는 사신을 대접해서 방심을 유도할 작정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중재에 나설 것처럼 말이다.
그 사이 골국은 몸소 정예를 이끌고 동대문구로 정찰을 나섰다. 그리고 수상한 작업의 흔적을 발견했다.
비록 비가디, 오르파 등이 대군주급을 잡기 위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골국은 뛰어난 관찰력과 지혜를 가진 자였다.
다른 이라면 무시하고 지나갔을 작은 단서를 시작으로 결국 수상한 적정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돌아가자. 주군께 서둘러 이 점을 알려야 한다.”
골국은 그대로 수하들을 이끌고 세르카두에게 복귀했다. 그리고 함정이라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랬던 건가. 크크큭. 아주 맹랑한 놈들이 아니냐.”
“배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감히 군주급 둘이서 날 도모하려 했던 건 아닐 터. 어느 놈들인지는 뻔하군.”
“그렇습니다.”
그들은 원래부터 서울을 관리하던 대군주급 몬스터인 파르타스, 로크토를 배후로 판단했다.
유제아가 의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가 최초에 계획을 짤 때 고려하지 못한 골국의 두뇌 때문에 일이 틀어지긴 했으나, 세르카두와 기존의 두 대군주급 사이에 분영을 일으키는데는 성공했다.
유제아의 말대로 세르카두가 이 중재 건에 발을 들이는 순간 무슨 수를 써도 파멸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의 모사인 골국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배후에서 이 모든 걸 조율하는 유제아를 특정하기도 어려웠고.
“이상 황을 역이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군.”
“역이용이라? 재미있군. 함정을 판 놈들의 표정이 바뀌는 건 정말이지 즐겁겠군. 그리고 감히 내게 되지도 않는 짓을 하려던 녀석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줄 필요가 있겠지.”
“옳은 말씀이십니다, 주군.”
“좋다. 병력을 소집하고 놈들에게 간다. 중재를 해주는 척하다가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크하하하!”
“하지만 파르타스, 로크토와의 관계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시끄럽다! 감히 내게 도전한 놈들에게 자비라도 베풀란 말이냐?”
세르카두의 태도가 매우 강경했기에, 그의 성정을 잘 아는 골국은 그저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비가디와 오르파를 처단하고 난 뒤에 상황에 대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함정이 완성됐습니다. 주인이시여.”
“수고가 많았다.”
나는 고생한 비가디와 오르파를 치하했다. 그들이 만든 함정을 세르카두와 나를 격리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피해를 입히기 위한 장치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게다가 현현한 내 모습이 몬스터에게 들켜봐야 좋을 것도 없었고.
이미 사신을 보낸 상황이다.
세르카두는 이쪽의 중재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그러니 놈이 도착하면 일거에 들이치면 된다.
내가 격리된 환경에서 세르카두를 참하고, 그 사이 유송연, 비가디, 오르파, 세브크, 콰르강이 세르카두의 수하들을 정리할 작정이었다.
그러니 어서 와라, 세르카두.
일이 좀 틀어져도 상관없었다.
놈이 동대문구로 오기만 하면 이미 승리한 거니까.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세르카두가 자신의 위치에 어울리는 행렬을 이끌고 동대문구로 진입했다.
비가디와 오르파는 회담이 열릴 장소에서 대기 중이었고 콰르강, 세브크는 은밀히 숨어있는 상태였다.
나 역시 기척을 지우고 몸을 바짝 낮춘 채 회담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평양에서 당한 굴욕을 갚아줄 수 있게 됐다.
멀리 보이는 놈의 모습에 이가 절로 갈렸다.
한편으로는 곧 복수할 수 있다는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약간 이상하군요.”
그런데 그때 같이 숨어 있던 유송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골국이 안 보이네요.”
“골국이라면 그 세르카두가 아끼는 책사라는 놈.”
“네. 언제나 대동하거든요. 밖에 나갈 때도 예외는 아니에요. 그는 책사이면서 뛰어난 주문 사용자기도 해요.”
“흠….”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인데, 이미 고기는 그물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다. 무시해도 좋지 않을까?
괜히 이것저것 다 신경 쓰다가는 일을 그르친다.
그러나 무시하려고 해도 어쩐지 찝찝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고민하던 나는 감시의 눈길을 사용했다.
그리고 36개의 보이지 않는 눈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이 눈길은 레벨 업에 힘입어 이제는 1킬로미터 이상 뻗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눈을 움직이던 나는 500미터 전방에 숨어있는 적의 무리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마법 사용자들로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느껴지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송연아. 골국 말이야. 머리가 비대하게 크냐?”
“맞아요. 만화 같은데 나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이쪽 함정이 들킨 것 같다.”
“네?”
숨어있는 주문 사용자 무리는 이쪽의 함정을 무력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명의 마법사가 모여서 병렬회로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저건 주문 해체에 특화된 포지션이었다. 이대로라면 함정을 발동하지 않고 오히려 세르카두에게 비가디, 오르파가 살해당할 듯하다. 군주급 둘이서는 대군주급 하나를 절대 당해내지 못한다. 마치 호랑이와 싸우는 늑대와 같았다.
“작전 변경을 변경한다.”
“네?”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너랑 콰르강, 비가디, 오르파, 세브크 모두 출동해서 세르카두를 상대한다. 군주급 다섯이면 대군주급이랑 비등하게 싸울 수 있겠지.”
아니 그걸로도 좀 불안하다.
나는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내 유송연에게 건넸다.
“이 방패를 너도 쓸 수 있게 조치해 뒀어. 방패의 능력은 다루지 못하겠지만 방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야. 세르카두의 공격을 막는데 써.”
세르카두의 강력한 공격을 차단할 수 있다면 그걸로 큰 역할일 거다. 물론 그가 알아볼까 싶어서 외형도 변경하는 조치를 취했다. 느껴지는 힘이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그래도 뭔지는 모르겠지.
“제가 어찌 감히 이런 물건을!”
유송연은 위압감까지 느껴지는 태양신격의 방패를 거절하고 싶은 듯했다.
“부담 갖지 말고 써. 저놈이 무슨 짓을 하던 이 방패는 부서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빼앗아 갈 수도 없어.”
“그리 말씀하신다니 알겠어요. 한데 주인님은 무엇을 하시려고요?”
“숨어있는 골국을 찾았다. 나는 우회해서 그놈을 사로잡겠다. 너희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줘.”
“제가 가서 암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아니, 다음 수를 위해서 골국을 지배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협조 좀 해줘.”
일단 내가 요구한 전술적 목표는 이거다.
시간을 끌 것.
내가 신호하면 그 즉시 모든 걸 털고 도주할 것.
죽는 인원이 나오지 않게 다섯이 최대한 연계할 것.
그렇게 명을 내리고는 골국을 잡으러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 놓은 함정을 쓰긴 틀렸다.
그렇다면 상황에 맞춰 새롭게 대처하면 된다.
세르카두, 이미 너는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졌다는 걸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