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06
00106 5-2. 무덤으로 =========================================================================
며칠 뒤 나나엘 패밀리를 직접 방문했다.
나나엘은 천사들의 대규모 이주 때 서초구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지방법원 건물이 비교적 멀쩡한 탓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금일 방문하기로 한 메타트론 패밀리의 유제아입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역천사와 헌터들에게 인사하자 그들은 날 반갑게 맞아줬다.
“유명인이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요즘 어딜 가나 이런 대접이었다. 그간의 전공에 엽왕 임철웅을 꺾은 이유 등으로, 어느새 헌터 중 1인자로 불린다. 그래서 다들 내게 잘 보이려 했다.
참 기분이 오묘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이에나의 왕이라 불렸는데, 이제 헌터의 정점에 서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헌터가 되지 못해서 열등감 폭발하던 시간들도 돌아보면 다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내가 정말 그랬던 건가 싶고 원래 이 위치의 내가 진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빠르게, 금방 적응해 버린다.
새로 산 옷이 마음에 들면 10년 동안 입었던 옷도 더는 거들떠보지 않는 법이다.
“나나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예쁜 여비서가 나를 안내해줬다. 패밀리에 속한 일반인인 종복으로 나나엘의 비서 중 하나라고 했다.
정장 치마를 입은 엉덩이가 앞에서 씰룩씰룩하는 걸 보며 따라갔다. 참 훌륭하신 분이야. 그 미모와 몸매 탓에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시니.
이런 여자는 움직이는 작은 등대나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그녀의 빛에 취해서 밝게 웃는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일반인들에 한한 것. 헌터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으로 수치를 가지는 카리스마가 최고다. 내 카리스마 수치는 압도적인 수준이며 이는 주변의 헌터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유제아님께서 나를 보셨어!”
“아니야! 옆의 마정석을 보신 거야!”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특히 여성 헌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무래도 심리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카리스마 수치 때문에 남자 연예인을 보는 것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유제아님!”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자 곧 비명에 가까운 반응이 돌아왔다.
“호호호, 인기가 대단하시군요. 이쪽으로.”
일반인인 비서가 보기에는 신기한 모양이다. 그녀는 일반인이라 카리스마 수치에 헌터만큼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 거물인 걸 알지만 저 여성 헌터처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격은 느끼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연신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곧 우리는 나나엘의 방으로 도착했다.
“들어가시지요.”
비서가 열어준 문을 통해 들어가자 안은 완전히 별세계였다. 매드사이언티스의 방과 같은 느낌이랄까?
온갖 도구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독특한 향이 떠돌아다녔다.
“어서 오세요.”
방 한가운데서 무언가를 골똘히 보고 있던 천사가 내게 인사한다.
맑은 하늘색 머리칼에 안경을 쓴 학구파 미녀로, 미리 들은 특징에 의하면 그녀가 나나엘이 맞는 것 같다. 복장은 대천사라 생각하기 어렵게 단촐하고 펜이나 이런저런 도구들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반갑습니다, 나나엘님.”
“네, 저도 반가워요. 유제아님.”
상당히 겸손한 인상이다. 먹물 냄새가 나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잠시 환담을 나눴다. 나는 그녀가 권한 자리에 앉아 처음 맛보는 특이한 차까지 즐겼다. 지구에는 없는 차라고 하니 나름대로 상당한 호사였다. 하지만 나는 아메리카노나 들이붓는 저렴한 혀라 이 차의 진가를 알 리가 없었다.
“뭔가 발견하신 게 있으십니까?”
우리가 앉은 탁자 옆에는 길이 2.5미터의 거대한 검이 놓여 있었다.
여전히 그 위압감이 대단하다. 녀석은 마치 우리에 갇힌 맹수같아 보였다.
분노하고 사나운 그 기세는 언제든지 포획자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것 같다. 아마 평범한 헌터는 이 검은 만진 것만으로도 죽음을 맞이할 거다.
“네, 일단 저 검 말이죠. 몬스터의 사체로 만들어진 물건이에요.”
“정말입니까?”
“네, 그것도 대군주급이 틀림없답니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뼈와 살을 가진 생물을 저런 쇳덩어리로 바꿀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것이야말로 마법의 영역이겠지.
“아마 이 검으로 화한 대군주급 몬스터는 쿠른코가 아닐까 싶네요.”
“쿠른코요?”
“네, 10년 전에 서울을 지배하던 대군주급 몬스터랍니다. 지금의 지배자인 파르타스, 로크토의 반란으로 실각했죠.”
나야 10년 전이면 하이에나 시절이라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대군주급은커녕 나름대로 사냥터에서 유명한 고위 몬스터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이에나가 고위 몬스터와 마주치면 그냥 죽는 게 답이다. 무언가 회피하거나 쓰러뜨릴 수단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후 파르타스와 로크토가 쿠른코의 사체로 무언가를 한다는 첩보가 있긴 했어요. 그런데 설마 이런 검을 만들었을 줄이야. 놀랍기만 하네요.”
“그렇군요.”
이제 이 검의 내력은 알았다. 하면 검을 줄일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점을 묻자 나나엘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 정도의 검은 단순히 축소 마법으로 처리할 수 없는 거 아시죠?”
“물론이죠.”
“그렇기에 복잡한 공정으로 재가공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재가공을 하려면 검의 원재료가 일부 필요해요.”
여기서 원재료라고 하면 죽은 쿠른코의 사체다.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이미 남아 있지도 않을 텐데요?”
“그래서 어려운 문제라고 한 거예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불가능한 문제 아닌가, 이 정도면.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으니 저리 말하는 거겠지.
들어는 보자는 표정을 하자 나나엘이 설명한다.
“당시 첩보에 의하면 쿠른코의 사체가 아주 없지는 않을 거예요. 파르타스와 로크토는 살해한 쿠른코의 사체를 나눠가졌지만 일부는 가공이 어려워 매장했다고 하더라고요. 유제아님께서 그 무덤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검의 재가공에 도전할 수 있어요.”
“크흠….”
진짜 어려운 문제다.
대체 어디다가 묻은 줄 알고 쿠른코의 무덤을 찾겠는가.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단다. 연구용으로 쓰기 위해 검을 해체하는 정도랄까. 그렇게 한다면 나나엘이 이 검을 매입하겠다고 했다. 이거 원, S+등급의 검을 그런 용도로 넘기긴 아까운데.
“알겠습니다. 일단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행운을 빌어요.”
***
나나엘과의 만남 후 며칠이 지났지만 일에 진척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탐사를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기 어려웠다.
강북을 점령한 뒤에 알아봐야 할까?
북쪽 땅밑을 벌레들로 뒤질 수 있다면 한결 수월하겠지.
아니, 애초에 강북 일대에 있단 보장도 없었지만.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반쯤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답은 의외의 인물이 갖고 있었다.
“형부, 뭐해요?”
소파에 퍼져 있는데 산달폰이 생글거리며 다가온다.
어째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라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게다가 난 그녀에게 반쯤 약점이 잡혀 있다.
“우리 데이트는 하러 언제 갈까나?”
“…그거 말이다. 아무래도 강북을 정리한 후에 가는 게 좋지 않겠니?”
“그러다 평양에서 데이트 해야겠네요.”
산달폰과의 데이트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는 건 당연히 메타트론 때문이다.
좋다고 졸래졸래 따라갔다가는 뒷감당이 안 된다.
요즘 가뜩이나 메타트론이 사근사근 내게 잘 해주는게 어째 더 무섭기도 하고.
“내가 고민이 많아서 말이야.”
“무슨 고민인데요?”
“아냐.”
“그러지 말고 말해 보세요.”
산달폰에게 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지만, 그녀가 달라붙어서 재차 얘기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답답해서 털어놓고 싶었다고 할까.
“지난번에 내가 가져온 칼 있잖아, 그거.”
“네, 그거 엄청 큰 거 말이죠?”
산달폰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두 손을 크게 벌린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리액션이 아주 좋다. 언제나 날 향한 눈빛에는 흥미가 눈동자에서 별처럼 반짝반짝거린다.
이러니 어찌 이야기를 안 하고 배기겠는가.
“응, 그걸 내가 쓰려면 크기를 줄여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나나엘에게 갔는데…….”
있었던 이야기를 요약해서 산달폰에게 들려줬다.
그러자 산달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쿠른코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원래 강북의 지배자였다고 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누구한테 들었더라….”
뭔가 생각나는 게 있어서 내버려 두니 곧 산달폰이 손뼉을 쳤다.
“맞다, 맞아요! 왕에게 들어봤어요, 그 이름.”
“그래?”
왕에게 지배된 후 산달폰은 평양에 있는 그의 궁전에서 한동안 지냈다고 한다. 딱히 하는 일은 없고 그냥 밥만 축내고 있었다는 것.
왕은 천사를 사로잡은 걸 자랑스러워해, 수하들과 식사를 할 때면 이따금씩 산달폰을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치 진귀한 보물을 보여주는 것처럼 산달폰을 군주급 몬스터들에게 공개했다고.
그러다보니 산달폰은 대외적인 비밀을 여러 가지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쿠른코의 이야기였다.
“그날 쿠른코의 죽음에 대해 왕과 그의 측근들이 격론을 벌였죠.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해 반역을 한 파르타스와 로크토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몬스터란 역시 지독한 놈들이다.
그런 반역은 조직을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된다. 당연히 엄단 해야 할 터인데 그 뿌리 깊은 힘의 논리 때문에 무마되다니.
하긴 그러니까 몬스터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리고 쿠른코가 일곱 개의 웅덩이가 있는 곳에 묻혔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정말!”
“네, 뭐하러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우리 형부에게.”
생각지도 못하게 쿠른코의 무덤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그래서 그 일곱 개의 웅덩이가 있는 곳이 어딘데?”
“그건 저도 모르죠.”
딱 잘라 대답하기에 갑자기 좀 맥이 빠졌다.
단서가 나타난 건 좋은데 일곱 개의 웅덩이는 뭐야. 완전 뜬금 없이. 무슨 해적이 보물을 묻어둔 장소도 아니고.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형부.”
“아니야. 포기하려고 했는데 네 덕에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게 됐어. 고마워, 산달폰.”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힘내시라고요.”
산달폰이 나간 뒤 나는 지도를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도 일곱 개의 웅덩이란 조건이 어울리는 장소는 안 보였다.
애초에 웅덩이 일곱 개 같은 건 지도에 안 나오겠지.
저수지 일곱 개면 모를까.
동네 뒷산에 물웅덩이 몇 개 있다고 해서 그게 지도에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흐음….”
다시 고민을 하다가 이 장소가 어쩌면 지하 세계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쿠른코의 사체 같은 걸 묻으려면 아주 깊은 곳에 봉인하 듯 처리했을 거다. 당시 파르타스, 로크토가 사체를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
어쩌면 사체를 파괴하는 게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사체의 일부는 무구로 만들고 나머지는 파묻은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깊은 곳에 무덤을 만들었겠지.
그리고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했는지 모른다.
역시 지저에 답이 있는 건가?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황금갑충의 벌레들과 만났다.
“일곱 개의 웅덩이란 말입니까?”
“그래. 반드시 찾아야 해. 지저에 있는 걸로 생각돼.”
“그러시다니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하르담의 황금갑충의 모두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강북의 지저를 누비고 다니는 벌레 헌터들이라면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하르담이 결과를 가져왔다.
“생각지도 못한 부류가 일곱 개의 웅덩이에 대한 첩보를 가져 왔습니다.”
“누가 가져왔는데?”
“탈북 벌레입니다.”
탈북 벌레는 다른 게 아니다. 몬스터에 의해 점령된 강북, 구 북한 지역의 벌레 중 이쪽으로 전향한 무리를 가리킨다.
지하 세계의 사정도 나름 복잡했다.
황금갑충이 메타트론의 보호 아래서 흥성하는 걸 보고 배고픈 벌레들이 탈북하는 일이 일어났다.
최근에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탈북 벌레가 뭐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인간들이 창도군이라고 부르는 지역 아래에 일곱 개의 웅덩이라고 불리는 폐쇄된 공동이 존재하고 있답니다.”
창도군은 과거 북한의 금강산댐이 있는 장소다.
그 근처의 지하에 벌레의 둥지가 있다고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 부분은 지하수의 침습이 대단한데, 그걸 이용해 수생 벌레들의 천국이 됐다는 것.
일곱 개의 무덤이 그쪽에 있었나.
산달폰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냥 삽질만 하다가 끝날 뻔했구나.
“좋아, 바로 탐사대를 꾸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