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08
00108 5-2. 무덤으로 =========================================================================
이게 갑자기 왜 반말이야.
어쩐지 좀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달려가서 놈의 무릎을 팍 까줬다. 그러자 비명이 터져나온다.
“아야! 고뱅이가 마이 아파요. 까지 말드래요.”
한 대 맞으니까 다시 존대가 나오는군.
“아프라고 찬 거 아니냐?”
“클날 소리 하시드래요. 내 고뱅이가 길가의 연탄 시레기도 아니고 그리 까시면 어떠카와.”
와… 이 자식 좀만 더 있으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란 드립도 치겠네.
뭐 이런 몬스터가 다 있지?
게다가 우리에 대한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미친놈도 아니고.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내 풍부한 경험으로도 이런 유니크한 존재는 처음이다.
전투에 대한 의욕이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이쪽 눈치를 보면 군주급 몬스터가 실실 웃는다.
“싸움은 안 좋은 거드래요. 문명인이니까 대화로 풀어보사.”
“……. 너 정체가 뭐야?”
“그리 궁금하다면 쪼매 알코드리겠어요.”
놈의 이름은 놀랍게도 한민준.
“민준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래요.”
“…….”
이쯤 되니까 할 말이 없다. 대체 왜 몬스터가 한국말을 쓰고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냐고 따져 묻자, 친구의 영향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한민준은 군주급 몬스터면서도 인간과 친구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친구의 이름은 이영철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식 이름을 받았다고.
“지금 그 친구는 어딨는데?”
“지금은 읎아요. 죽었드래요.”
“…아, 미안.”
“델리케이트가 부족한 거드래요.”
델리케이트라니… 이제는 슬슬 두통이 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설명해 보라고 했다.
“영철이랑 만난 건 제가 이 금강산 일대에 담당으로 파견나온 때였어요. 영철이는 힘깨나 쓰는 장쟁이여서 그런지 평범한 인간이면서도 이 금강산에 산삼을 캐러 오곤 했드래요.”
우연히 산에서 인간인 이영철을 만난 그는 무척 놀랬다고 한다.
그는 몬스터면서도 이북 지역에만 있어서 인간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몬스터들이 창궐한 세상에서 금강산까지 산삼 케러 오는 제정신 아닌 인간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한민준은 이영철에게 흥미를 느꼈다고.
“원래 한 방에 푹, 찍! 하고 터뜨려 버릴라꼬 했어요. 그런데 이 장쟁이가 날 무서워하지 않는 거드래요. 그래서 흥미가 적잰히 생기는 거였사.”
들어보니 어쩌다 이상한 몬스터랑 이상한 인간이 만나서 서로 친구가 된 모양이었다.
몬스터 사태가 일어난 이후 이 정도의 기담도 없을 듯했다.
아무튼, 그 뒤 그들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뭣 때문에 서로에게 끌렸던 건지 알 길이 없다.
“같이 이 봉오리에서 저 봉오리까지 돌아 댕기고 그리 놀았던 거 아니갔어요. 참 재미난 시절이었드래요.”
하지만 그런 일탈은 곧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몰래 만난다고 했는데 땅밑에서 머리를 내밀고 보던 벌레에게 들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벌레가 그걸 위에 고자질했고 한민준은 징계를 먹었다.
몬스터가 인간과 같이 즐겁게 놀고 자빠진 초유의 사태에 그는 군주급 몬스터의 직위를 박탈 당했다. 그리고 그의 인간 친구인 이영철은 살해됐다고 한다.
“어떻게 죽었는데?”
“땅밑의 벌레가 믁었사요. 그 숭악한 주딩이로 장쟁이 몸을 파뒹겨 버렸드래요.”
그리 말하는 한민준은 무척 슬픈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고블린 같이 생긴 놈에게 한민준이란 이름이 있으니까 진짜 적응 안 되네.
“저런, 안 됐군. 그런데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데?”
“복수지요. 복수를 원하는 거드래요.”
들어보니 그날 일 때문에 한민준은 이 창도군의 땅밑 벌레들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런 일을 지시한 몬스터 군주들 역시 증오한다고.
그래서 이 땅밑에서 복수를 위한 모종의 계획을 실현 중인데, 꽉 막혀서 진척이 없다는 것.
“아시다시피 이 땅밑은 물이 가득한기래요. 이 물첨벙이 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잘 설계를 했기에 히쓱히쓱 빠져나가는거지요.”
“그래, 나도 들었어.”
“기런데 그 물길을 싹싹 긁어매서, 똥구녕에 마개 막듯이 마가버리면 어찌 되갔어요?”
“물로 사방이 잠기겠지.”
“맞아요. 클나는 거드래요. 걸어 댕기는 발자구 발자구마다 물바다란 거 아니겠어요.”
꽤 과격한 복수다.
한민준은 이 지하의 물길을 막아서 벌레의 둥지를 완전히 침수시킬 작정이라는 것.
그렇게만 하면 이 창도군의 벌레들은 떼죽음이라고 한다.
그것참 혹하는 계획인데?
이북 지역의 부화장이 걱정인 나로서는 돕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서?”
“아무래도 그런 일이 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힘깨나 필요한 것인데….”
문제는 군주급의 힘으로도 여러 곳의 물길을 모두 막아버리기 어렵다는 것. 일부 단단한 화강암반 지대를 무너뜨리려면 가공할 위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한민준은 그 힘을 얻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지가 듣기로 과거에 어마어마한 냥반이 이곳에 묻혔다고 한기래요.”
요컨대 대군주급의 사체를 흡수해 자신의 위력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데 그게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놈은 남들이 없는 비기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만.
본디 군주급 몬스터 정도 되면 다들 비범한 힘을 갖고 있다. 겉모습만 보고 무시하면 좋지 않다.
그건 그렇고 나와 목표가 겹치는구나.
나 역시 그 사체가 검의 재가공을 위해 꼭 필요했으니까.
그렇다면 제거해야 맞는 걸까?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좀 더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있을 것인가?
“혹시 어느 부분을 무너뜨리면 이곳 둥지를 수장할 수 있는지 아는 거야?”
“물론이지요. 지난 수년간 이 둥지를 꼼꼼하게 조사해 왔드래요. 그 탓에 모르는 물길이 읎아요.”
그렇다면 그와 협력해 이 둥지를 수장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대군주급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조건으로 쿠른코의 남은 사체를 평화롭게 양보받는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그짝은 왜 이런 곳에 온 기래요?”
이 녀석은 우리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보자마자 공격하지 않은 게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과거 이영철이란 인간과의 교제 때문인지 우리를 반가워하는 기색마저 보인다.
“그게 말이야.”
나는 일단 상황을 정직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이 지하에 있는 일곱 개의 웅덩이를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 웅덩이에 있는 쿠른코의 사체가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 둥지를 수몰시키는 일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기 정말인기래요?”
“물론이다, 사체만 양보해 준다면 기꺼이 도와주지. 우리 입장에서도 이 둥지가 사라지면 좋으니까.”
한준민은 뛸 듯 기뻐하며 좋아했다.
그의 말로는 자신이 쿠른코의 사체를 얻어도 충분한 힘을 발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데 그런 문제가 해결되자 무척 좋아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 힘이 있는 거드래요? 보통 헌터라도 그 정도는 못하는 거라 들었사.”
좋아하긴 했지만 의심도 드는 모양이었다.
하긴 당연한 거다.
군주급인 자신도 쩔쩔매는 일을 처음 보는 인간이 해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의심을 풀어줄까?
여기서 현현을 했다가는 둥지 쪽에서 힘을 느끼고 벌레를 파견할 수도 있었다.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리스크는 피하고 싶다.
고민하던 나는 적당한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 능력치 집중으로 카리스마를 강화하는 거다.
일순간 대군주급의 위엄을 보이면 이 녀석도 납득하겠지.
“좋아, 잘 봐둬.”
곧장 능력치 집중을 사용했다. 그러자 카리스마 수치가 무려 +500이나 되면서 한준민을 압박한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끼치는 무형의 힘이 그의 정신을 찍어눌렀다.
“이기 염통이 쿵강쿵강 뛰댕기는 게 아무래도 거짓부렁이가 아닌 거 알겠드래요. 고만하기요. 염통이 마이 아파요.”
한준민은 가슴팍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곧 내가 카리스마의 위력으로 그를 압박하는 걸 그만두자 겨우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는 내 힘에 대해 진짜로 믿는 듯했다.
“다른 것도 보여줄까?”
한준민은 황급히 손사레를 친다.
“더 지한테 알코줄 거 없드래요.”
기본적으로 몬스터인지라 힘의 논리에 충실하다. 이쪽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되자 곧장 굽실거리는 태도가 된다. 애초에 군주급 특유의 프라이드가 안 느껴지는 놈이긴 했지만 그래도 태세전환이 빠른데.
“그럼 일단은 그 쿠른코의 사체를 회수하고 이후 이 둥지를 공략하자고.”
“그것이 이 근처긴 하지요. 하지만 지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드래요.”
“걱정할 거 없어.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하르담을 쳐다보자 그는 걱정할 거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보통 분들이 아닌기래요. 지는 몇 달을 돌아 댕겨도 어딘지 알 바가 없더만요.”
그렇다면 아무래도 비밀문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하르담에게 이 점에 유의해서 찾아볼 것을 명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땅밑의 굴은 저 같은 벌레형 게니스에겐 익숙하죠.”
과연 그 말대로 하르담은 앞서 가면서 30분 뒤에 첫 번째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 그 뒤에 세 번이나 숨겨진 길을 발견해 우리를 인도했다.
“이럴 수는 없는 기래요. 지가 여태 수터게 찾아 해멩구머는….”
“딱히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원래 각자의 능력이 다른 거다.
군주급 몬스터, 그 위의 대군주급 몬스터라고 해도 자신보다 한참 약한 평범한 몬스터가 가능한 걸 못하는 경우도 많다.
꼭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천사나 헌터 쪽도 마찬가지다.
메타트론이 아무리 잘났어도 초코우유 하나 못 만들지 않나.
“여기로군.”
하르담의 탁월한 인도 덕에 드디어 일곱 개의 웅덩이에 도착했다.
그곳은 넓은 공동이었고 이름처럼 일곱 개의 웅덩이가 있는 장소였다. 지하수가 흐르는 개천이 있었는데, 그 길 따라 웅덩이처럼 파인 곳이 일곱 군데가 보였다.
이래서 일곱 개의 웅덩이라고 부르는군.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자연적인 웅덩이가 아니로군.”
“맞습니다.”
내 의견에 하르담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한다.
이 일곱 개의 웅덩이는 그야말로 봉인을 위한 장소. 지형을 변화해 특정한 마법의 성질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마치 풍수지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풍수지리에 보면 나무를 심거나 거석을 배치하는 식으로 이점을 보강하지 않는가.
이 모습을 보고 한준민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카가지고는 클났다 안기래요. 봉인이 보통 강한 거치 아니니께, 쿠른코를 꼬낼 방법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옆에 있던 하르담 역시 비관적인 전망인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난 태연자약할 따름이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자 한준민이 깜짝 놀란다.
“이런 봉인을 잘못 건드리면 반동으로 귀빵맹이 맞아요. 이 봉인이 시레기 봉다리 뒤집어 씌와 놓은 거뚜 아니고 어찌 그리 자신있는 기래요?”
이놈이 날 아직 잘 모르는 듯한데, 실력 발휘 좀 해야겠다.
“그리 궁금하면 보고 있어.”
앞으로 나선 나는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방패가 등장하자 다들 놀라서 뒤로 주춤한다.
“이거시 뭐인 기래요? 눈탱이가 마이 아파요!”
한준민이 놀라서 눈을 가리고 도망간다.
짜식 생긴 게 고블린 같아서 그런지 군주급 몬스터인데도 호들갑이다.
앞으로 나선 나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마법 무효화를 사용했다. 이 마법 무효화는 일반적인 방법과 차원이 다르다. 여기의 봉인이 아무리 엄중해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번쩍.
빛이 작열하자 봉인에 상당한 타격이 간 게 느껴졌다.
그래도 한 번은 견뎌내는 걸 보니 보통 봉인이 아니다. 그리고 내 예상을 깨고, 봉인은 이후 세 번이나 마법 무효화를 견뎌냈다.
와장창!
결국 네 번째에 봉인은 유리창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지만 내 이마는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상태였다.
젠장, 이게 상당히 애먹이네.
그래도 한껏 여유있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봤냐?”
“대단한 거드래요. 설마 이 봉인을 이렇게 순식간에 까버릴 주는 몰랐어요.”
한준민은 정말 깜짝 놀란 듯했다.
자기는 엄두도 못 낸 봉인을 내가 이렇게 쉽게 처리하니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호들갑을 떨던 녀석이 입을 딱 벌리고 멈춰버렸다.
뭐야, 왜 그래?
웃긴 건 그런 표정을 짓는 게 한민준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일행 역시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내 물음에 상필이가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이제보니 날 보는 게 아니라 다들 내 어깨 너머에 관심이 있었구나.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한가윤이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오빠, 살아 있어요.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