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09
00109 5-2. 무덤으로 =========================================================================
뭐? 살아있다고?
순간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여기서 살아있다는 대상이 무언지 깨달았다.
“맙소사.”
죽었잖아? 죽어서 몸을 조각내고 무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 깊은 곳에 봉인했다고 한다. 한데 설마 그게 죽이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란 말인가.
“그으으으….”
심연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깊은 울음소리와 함께 한 생명체가 웅덩이 밖으로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기괴한 생김새였다.
본디 위엄있고 당당했을 거 같은 그 생명체는 팔다리가 모두 잘리고 몸 이곳저곳이 망가진 몰골이었다.
속된 말로 하면 병신이라 그거다. 그렇기에 기어나온다고 해도 비참하게 꿈틀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이게 그 쿠른코란 말인가.
“모두 물러나. 위험할 수 있어.”
나는 일행을 일단 물렸다. 아무리 몸이 저래도 대군주급이었던 존재다. 무슨 짓을 할 줄 모르니 경계하는 게 좋다.
“그으으…. 이 봉인에서 드디어… 드디어….”
쿠른코는 아주 괴로운 듯 보였다.
하긴 10년 넘게 봉인되어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일단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 보자.
“네가 쿠른코인가?”
“…맞다. 그대가 날 해방시킨 건가? 인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쿠른코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헌터가 날 해방하다니.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런 거겠군. …그렇다면 일단 뭐라도 먹을 걸 주지 않겠나. 날 이용하려면 기운부터 차리게 하는 게 이득일 텐데? 지금은 말하는 것도 힘겹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마법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몇 개 꺼내서 던져줬다. 그러자 쿠른코는 마정석을 터프하게도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그동안 내가 여기 갇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그리고 너는 무슨 목적으로 내 봉인을 푼 건가?”
“설명해 줄 테니까 먹으면서 들어.”
처음에 경계심은 이미 빠르게 누그러들고 있었다.
이 녀석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건 정말 놀랄 일이었으나, 이미 재기불능의 상태라는 게 자명하다. 과거에 얼마나 거물이었던지 상관없지 지금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런 걸 느꼈는지 바짝 긴장했던 내 일행들도 조금 풀어져 있었다.
“널 몰아냈던 파르타스와 로크토는 최근 큰 사건에 휘말려 있지. 왕의 측근이었던 세르카두와 전투를 벌였거든.”
나는 그간의 일을 설명해줬다. 보안이 필요한 부분은 적당히 각색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강탈한 검을 재가공하기 위해 쿠른코의 신체가 필요하단 얘기도 했다.
“크크큭, 재밌군. 재미난 일들이 있었어.”
그 순간만큼은 쿠른코의 안광이 번뜩였다.
아마 반역을 일으켰던 파르타스와 로크토가 생각나서겠지.
그나저나 이 녀석, 과거에는 정말 대단한 놈이었던 거 같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소름이 돋았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네 신체를 원한다. 얌전히 죽어줘야겠는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글러 먹은 이 육체, 내겐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봉인되어 있는 동안 수도 없이 죽고 싶었지. 죽음은 내게 간절히 원하는 휴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얘기가 편하겠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자기 처지를 모르나 본데? 나는 지금 여기서 그냥 널 죽일 수 있다고.”
“나쁜 얘기는 아닐 거다. 일단 들어봐라.”
뭐, 얘기 좀 더 듣는다고 해서 상관없겠지. 말해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내 조건은 그거다. 내 눈앞에 파르타스와 로크토의 머리를 가져다 줄 것.”
“그래서 넌 뭘 해줄 건데?”
일단 신체를 넘겨받는 건 당연한 거라 그건 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 둘의 약점을 알려주마. 너는 강해 보이긴 하지만 그 둘을 한꺼번에 당하지는 못할 거다. 약점을 반드시 알아야 하지.”
맞는 얘기다.
대군주급과 싸울 기량은 충분하다. 나름대로 자신도 있다. 하지만 둘이나 덤벼든다면 얘기가 다르다.
“원한 때문에 날 돕겠다는 거군.”
“그래. 사실 이 신체를 넘겨주고 검으로 벼려져 그 둘을 베는데 일조해도 좋겠지. 하지만 죽기 전에 놈들의 잘린 목을 꼭 보고 싶다. 그래서 약점을 알려주는 걸로 대체하고자 한다. 검의 재가공은 둘을 쓰러뜨린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내가 알려주는 약점만 안다면, 검이 없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으니까. 아니, 너는 이미 터무니없는 걸 들고 있지 않나.”
쿠른코는 시선으로 태양신격의 방패를 가리켰다.
역시 안목이 있군, 이 물건을 알아보다니.
“좋아, 그 조건 받아들이지. 대신 내가 놈들의 목을 가져올 때까지 구속되어 있어야겠어.”
“물론이다. 배식이 제대로 되는 감방이면 좋겠군.”
쿠른코는 메타트론의 신성지에 몰래 가둬두기로 했다.
“좋아, 이제 이곳에서 빠져나가도록 하자.”
상필이가 데리고 있던 몬스터들을 불러내서 쿠른코를 들게 했다. 참 신기한 재주란 말이야.
녀석은 다른 공간에 몬스터를 보냈다가 필요할 때 불러내는 능력을 가졌다. 나는 전혀 할 줄 모르는 거다.
아무래도 전문 테이머다 보니까 기술적으로는 나보다 우월하다. 나야 메타트론의 화신인 탓에 무식할 정도의 지배력으로 그걸 벌충하는 거지만.
“일단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겠다.”
우선은 다들 쉘터로 보낸 뒤에 한민준과 지하에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제대로 수몰시켜 보자.”
드디어 때가 왔다고 한민준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선 지상으로 갔다가, 쉘터에 일행이 자리 잡은 걸 보고는 한민준과 다시 지하로 들어왔다. 우리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안의 물길에 대해 토론했다.
“이쪽에 물이 차면 벌레들이 어디로 빠져나갈까?”
“아마도 여기로 이동할기래요.”
“그러면 그 부분도 막아버려야겠네.”
탈출로도 막고 물이 빠져나가는 길도 막고, 마지막엔 우리도 빠져나가야 했다. 동선을 잘 계산하지 않으면 어처구니없게 죽을 수도 있었다.
“일단 물길을 막은 뒤에 탈출로는 가장 마지막에 건드려야겠네. 우리가 빠져나가기 직전에.”
“맞아요. 그리하면 딱 맞는 거드래요.”
“자, 그러면 바로 움직이자.”
어디로 가야 할지는 지난 몇 년간이나 이어진 한민준의 조사 덕분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곳이 이 둥지에서 가장 큰 물길이드래요. 까광! 하고 뽀사뜨리면 놈들이 아주 물지옥에서 지절로 다 대져버릴거예요.”
한민준은 벌써부터 흥분 상태였다.
나 역시 원하는 결과였기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현현하라!”
즉각 힘을 발동해서 화강암 암반 지대를 무너뜨렸다.
콰아아앙!
단단한 지반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는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도망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정리하자. 벌레 놈들이 내 힘을 이미 느꼈을 거다.”
“물론인기래요!”
이후 우리는 몇 군데나 중요한 물길을 막아버렸다. 강력한 위력이 필요했지만 현현한 내가 감당할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제 다섯 시간 정도는 유지되는 현현이라 도중에 풀려버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우리는 그대로 중요한 포인트를 모조리 부수고 다녔다. 물론 모든 물길을 다 막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빠져나가는 물에 비해 침수가 압도적일 거다.
“이제 가장 중요한 곳만 남았드래요.”
둥지의 윗부분, 즉 금강산댐 아래쪽이다.
그 천장을 무너뜨리면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릴 거다.
이미 거칠 게 없는 우리는 벌레들을 피해 다니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벌레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며 빠르게 나아갔다.
현현한 나와 생긴 건 우스워도 군주급인 한민준의 위력에 벌레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미 녀석들은 난리가 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벌레들이 굴을 잘 파도, 무너진 화강암 지대를 단기간에 어쩌긴 무리다.
“여기인 거드래요!”
유난히 침습이 심한 지대에 도착하고는 나는 여기가 금강산댐 아래인 걸 직감했다. 천장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잘 만들어진 물길을 따라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힘을 모으는 동안 지켜줘.”
“알겠드래요! 마이마이 모으기요.”
전투에서 사용할 기술은 힘을 응집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급박한 상황에 발동해야 하니 타협할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광역 파괴 기술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15분은 걸린다!”
“알콧어요!”
강력한 파괴 마법을 준비하자 그 힘에 이끌려 벌레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맹렬하게 공격해 왔다.
이제 한민준이 그걸 막아줘야 한다.
“크하하하!”
녀석은 대소하며 날뛰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인데도 벌레들을 학살할 수 있다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그동안의 원한을 풀기라도 하겠다는 듯 힘을 아낌없이 써가며 벌레들을 곤죽으로 만든다.
덤벼오는 무리 중에는 특별히 강력한 벌레도 섞여 있었지만 분노한 한민준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과연 군주급은 군주급이구나 싶다.
우우우웅!
그러는 사이 내 파괴 마법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탈출로를 확보해!”
“알았드래요!”
한민준은 빠져나갈 방향의 벌레들을 본격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때가 된 순간 천장으로 파괴 마법을 쏘아냈다.
콰가아아아앙!
지저를 울리는 대폭음에 난장판으로 벌어지던 주변의 싸움이 모두 멈출 정도였다.
일대가 완전히 먼지로 뒤덮였는데 미리 방진 마스크를 쓰고 있던 터라 괜찮았다.
우지지직. 지지지직.
위쪽에서는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음이 들린다. 그리고 마치 어뢰를 맞은 배의 내부에서 누수가 일어나는 것처럼,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이 나오면 나올수록 천장의 균열은 더욱 깊어져 갔다.
아직은 천장이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했다.
키에엑! 키익! 킥!
벌레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우리도 빠진다!”
나와 한민준 역시 미리 봐둔 통로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지면으로 향하는 최단 코스다. 눈치 빠른 벌레들은 우리를 따라왔다.
이미 싸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벌레들은 물바다가 되고 있는 둥지를 복구하려고 하거나, 침수로부터 알이나 마정석을 옮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성실하면 역시 손해를 보는 법이다.
우리를 따라온 놈들은 적어도 그 기민함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될 거다. 다만 한민준의 손길을 피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야 기어나온 놈들을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한민준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이곳을 무너뜨리기래요!”
빠져나가면서 한민준은 출구를 막기 위해 무너뜨릴 포인트를 잡아줬다.
한두군데가 아니라 계속 힘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 일대에는 벌레 구멍이 몇 개나 있기에 그걸 모두 막아야 했다.
콰아아앙!
기암괴석 아래에 있던 구멍이, 위에서 무너져 내린 바위덩이에 깔끔하게 막힌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둥지를 빠져나올 여지를 모조리 차단해 버렸다. 이제 침수되고 있는 땅밑 둥지의 운명은 끝장이었다. 마침내 한민준의 복수가 이뤄진 것이다.
“크하하하하!”
그는 아주 상쾌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원수를 갚고도 복수는 허망한 것이야, 라며 똥폼 잡는데 현실은 달랐다.
아니, 몬스터라 좀 사고가 단순해서 그런 걸까.
너무 좋아한다.
“이 장쟁이야! 드디어 내 니그 원수를 갚았드래이!”
즐거워하니까 다행이다.
나도 이 녀석 때문에 상당한 득을 봤다.
이번에 한 짓거리는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만약 혼자 하려고 했다면 저 밑에 갇혀서 나도 같이 죽었을 확률이 높다.
뭐랄까, 이번 일은 몬스터와 서로 윈윈하는 아주 드문 경우였다.
“축하한다.”
“고맙운거드래요. 덕분에 원통함을 풀 수 있었사.”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았다. 뭐랄까, 몬스터와의 적대관계도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이 사태가 끝나면 몬스터들과 공존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지배력에 의해 행동이 강제되고 있다.
내가 하이에나 시절 본 것에 의하면 많은 몬스터들이 인간과 관계되지 않고도 자기들끼리 잘 살아갔다. 만약 그들을 통솔하는 군주급들이 없다면, 그리고 그들이 살 땅만 있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바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가장 멋진 엔딩일까?
천사와 인간과 몬스터 모두가 만족할.
나는 오늘의 일을 계기로, 승리보다 바람직한 결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순히 쳐부수는 것 말고, 트루 엔딩을 위한 루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