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1
00011 1-3. 사지로 가는 하이에나의 왕 =========================================================================
그 후 스이엘에게 마법 물품을 다룰 때 요구되는 주의 사항에 대해 들었다.
천운이 함께한 건지 이 태양 신격 오즈의 방패는 등급 제한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일반인인 나도 사용이 가능했다.
다만 방패의 특수 능력을 발휘할 때 사용자가 돕지 못하고 방패의 힘에만 의존해야 하니, 위력이 다소 약해질 거라나.
“예를 들면 이거지. 노트북 돌릴 때 코드를 연결해야 더 쌩쌩 돌아가잖아. 배터리로만 쓰는 것보다.”
이해하기 편한 비유였다.
“당분간 날 찾아와, 이 방패에 깃든 특능을 사용하는 요령을 알려줄게.”
“정말 감사합니다. 스이엘 님.”
“네가 죽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어.”
스이엘의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 우리는 할 말이 엄청 많았지만 오늘은 더 무리였다.
“내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네. 오늘 일을 미룰 수 있으니까.”
***
인생을 건 뽑기의 날로부터 나흘 뒤.
“지친다, 지쳐.”
파김치가 돼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계속 스이엘을 만나며 마법 물품 사용법을 배웠다. 오늘이 마지막이었고 드디어 끝났다.
덕분에 방패의 사용법을 대강이나 익힐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건 앞으로 내가 스스로 연구해갈 부분이었다.
이번에 스이엘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다.
언젠가 그녀에게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왔으면 한다.
그러려면 일단 살아야겠지.
“휴우….”
고단함이 묻어나는 한숨과 함께 방패를 창가에 내려놓았다.
며칠간의 교육도 끝난 이제는 드디어 내 운명과 맞서야 한다.
피하지도 않고.
미루지도 말아야 한다.
사실 대강 짐작하고 있다.
왜 99%의 사망 확률이 뜨는지.
스이엘의 예언을 듣기 전부터, 이미 내 마음은 한 곳으로 온전히 향하고 있었다.
바로 윈드 워커의 사진 속에 담긴 메타트론이 있는 장소로 말이다.
그건 마치 불나방의 무모함과도 같은 것이었다.
거부하지 못하고 달려든다는 것 역시 동일하다.
게다가 피해도 소용없다는 걸 스이엘의 예언으로 알게 되었다.
죽음의 위험 때문에 내가 안양에 계속 머문다면 운명은 돌발적인 형태로 발현되어 내 머리 뒤를 때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운명에 마주한다면 어떤 행복한 결과도 얻지 못하겠지.
운명은 겁쟁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으니까.
스이엘의 말에 따르면 킹슬레이어라는 거창한 운명을 가진만큼, 운명을 피하려한 반동은 클 거라고 했다.
아마 가장 흔한 패턴으로는 거주하는 안양시가 파괴되거나 친누나가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 그때는 좀 화가 나서 항의했지만 스이엘은 침착히 대꾸해 왔다.
“영웅들의 이야기에 왜 항상 가족이 죽고 고향 마을이 파괴되는지 모르겠어?”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운명에는 부족한 인간의 지혜로는 해량할 수 없는 일종의 법칙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운명을 피하지 않고 1%의 확률을 잡기 위해 도전할 수밖에 없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잘못되면 누나가 죽을지도 모른다니 결국 메타트론을 만날 수밖에. 스이엘의 말에 의하면 운명은 마땅한 소명을 가진 사람을 가혹하게 부추긴다고 한다. 그 채찍을 피하려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남에게 말 못하는 기대 역시 있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울분을 감추고 살아왔다. 헌터가 되지 못해서 말이다.
하지만 메타트론이라면 내 소망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녀는 천사 중에서도 아웃사이더고 이레귤러다. 일반적인 헌터 시스템을 넘어 그녀만의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피어올랐다.
사실 그냥 은퇴하려고만 했었다.
지쳤고, 더는 헌터가 되지 못했다고 떼쓰는 아이처럼 무모함에 몸을 내던지는 생활에 질렸던 차이다. 그저 누나와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제 갑작스러운 킹슬레이어의 운명 때문에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헌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망은 내 마음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었다.
솔직히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창가의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이게 생의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따라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석양이었다.
언제나 이 노곤하고 다정한 일몰을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태양신격의 방패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
검은 하이에나 팀.
내가 팀장으로 있는,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하이에나 팀이다.
이 재기발랄한 팀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건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바로 죽은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를 회수하는 일이다.
현재 윈드 워커가 남긴 정보에 의해 그 사체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은 군주급 몬스터의 획득하고, 가능하다면 녀석의 마정석까지 노리겠다. 남아 있다면 말이다.”
브리핑 룸에 모인 팀원들은 내가 공개한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윈드 워커에게서 얻은 사진을 공개하고, 군주급 몬스터 사체의 회수 계획을 발표했다. 팀원들은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군주급이라! 저것만 얻으면 더는 이 짓을 그만해도 돼!”
“위험하지 않을까?”
“멍청하긴! 죽어 있잖아!”
“대체 누가 죽인 건데?”
메타트론에 대한 정보는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 이건 스이엘의 조언을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일단 준비한 변명을 읊었다.
“사진을 판독한 결과 다른 군주급 몬스터에게 죽은 것 같다.”
“질문있습니다, 팀장 님.”
“묻도록.”
“사진의 날짜로부터 벌서 일주일이나 지나지 않았습니까? 사체가 과연 멀쩡할까요?”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는 잘 썩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몬스터가 겁을 내어 좀처럼 뜯어먹는 일도 없다고 한다. 3주 정도 지나면 본격적으로 부패하는 데 그때가 되야 사체를 먹으려는 무리가 달려든다는 군. 하니 우리가 제때 들어가기만 하면 멀쩡한 사체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를 아는 건 현재 우리 팀이 유일하다. 모두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도록.”
인생을 바꿀 대박의 기회인지라 다들 엉덩이가 들썩들썩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근심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부팀장은 벌써부터 걱정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사진 상의 위치가 노량진 아닙니까? 하이에나가 잠입하기 극히 위험한 곳입니다. 아니, 노량진까지 간 하이에나는 지금까지 없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바뀌려고 하기에 나는 강하게 나갔다.
“우리가 최초로 가겠다. 겁나는 자는 빠져도 좋다.”
10년간 느낀 점이 있는데 리더는 강해야 한다.
특히 하이에나 같은 약한 무리의 리더는 더더욱.
일단 세게 나간 뒤에 살살 달래는 게, 팀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유리했다.
“하이에나 팀이 노량진에 들어간 적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헌터들은 몇 번이고 드나드는 곳이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노량진은 최고 등급 사냥터도 아니다.”
여기에 팀원들이 혹할 게 하나 더 있었다.
“미카엘라의 헌터들에게 노량진 사냥터의 정보를 사기로 했다. 걱정할 것 없다. 정보만 안다면, 피할 적에 대해서 안다면, 하이에나는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건에 관해서는 스이엘의 도움을 받았다.
미카엘라가 스이엘의 직속상관이기에 힘을 써준 것이다.
“오! 미카엘라 패밀리에서!”
“강한 만큼 재수 없는 놈들이라 하이에나는 상대 안 할 텐데 말입니다. 대단하십니다, 팀장님. 인맥이 장난 아니시군요.”
“과연 하이에나의 왕!”
팀원들이 입을 모아 감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카엘라의 헌터는 강하기로 이름 높다.
미카엘라 본인도 대천사 중 서열 2위일 정도니 말이다.
대신 싸가지 없기로도 그만큼 유명하다. 미카엘라의 도도한 성품 때문인지 휘하 헌터들도 그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하이에나의 왕이란 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내 얘기는 아닌 거 같고, 최근에 그런 거창한 별명을 얻을 정도로 유능한 하이에나가 나왔나 보지?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엄청 신경 쓰인다.
틀림없이 재수 없는 놈일 듯하다. 하이에나의 왕이라니, 이 유제아 님을 놔두고 잘도 그런 별명을.
“미카엘라 패밀리의 정보라면 확실하지. 해볼만 하겠는데.”
“이건 인생에 한 번 밖에 안 올 기회라고.”
분위기 다시 긍정적으로 변하자 부팀장이 날 보고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 됐다.
부팀장은 팀에서 야당의 당수와도 같았다. 내 무모한 계획에 제동을 거는 건 늘 그의 역할이었다.
그의 적절한 조언 덕에 지금까지 균형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나 그런 그도 이번 계획이 위험한 만큼 메리트가 있다고 여겼는지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죽으면 죽는 게 하이에나 아닙니까?”
내 시선에 부팀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주변에서 가볍게 웃음이 터진다.
유일한 브레이크인 부팀장이 동의하자 팀원들은 이미 이 건을 확정으로 여기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알렸다.
“좋다. 출발은 사흘 뒤다. 절대 보안을 유지하고 준비 철저히 하도록. 이번 작전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하다. 죽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자각하도록 해. 하지만 우리가 무사히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 냄새나고 더러운 일과 작별이란 점을 상기하도록.”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는 이지스함보다도 비싸다.
팀원 개인당 수백억이 떨어질 테니 어찌 구미가 안 당기겠나.
나는 그런 그들에게 제안했다.
“아예 이 참에 팀을 없애버리자. 이번 일 성공시키고 다 같이 은퇴하는 거다!”
박수와 함께 뜨거운 호응이 터져 나왔다.
“좋아! 팀을 해체하자!”
“공중분해!”
소속된 곳을 없애버리자는데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보이는 건 아마 하이에나들 밖에 없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팀을 해체한다는 건 우리에게 행복한 결말이기 때문이었다.
***
나는 팀원들을 속이고 무작정 위험에 끌고가려는 건 아니다.
이 역대급 임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단 자신감이 있었다.
나 개인의 운명적 도전은 오히려 부산물 수확이 끝난 뒤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성공적으로 일이 끝나면 부팀장에게 모든 걸 인계하고 팀을 이탈할 작정이었다.
경험 많은 부팀장이라면 팀을 이끌고 무사귀환하는 건 일도 아니니라.
다만, 분명히 혼자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이다.
개척된 루트까지는 분명히 단신으로 가는 게 유리할 것 같다. 하지만 동작 이후에는 미개척 지역이니 팀원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렇기에 팀을 이끌고 가려는 것이나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건 분명히 미안한 일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팀원 모두에게 사과했다.
대신 그들이 군주급 몬스터의 부산물을 가지고 금의환향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작정이다. 개인당 백 억이 넘게 돌아갈 그 보상이라면 아무 것도 모른 채 말려든 것에 대한 보상이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제아야, 누나가 부탁인데 안 가면 안 돼?”
아침에 짐을 꾸려서 나서려 하자 현관에서 누나가 막는다.
요즘 누나는 자주 내 집에서 자고 간다.
저러다 은근슬쩍 눌러 앉을 작정인 거 모르지 않는다. 누나가 쓰는 방에 자꾸 짐이 늘고 있으니 말이다. 원래라면 정색하고 쫓아냈겠지만 예언 탓에 맘이 변했다.
그냥 누나만 봐도 뭔가 애틋하고 미안해졌다.
나 죽으면 대체 어떻게 살까 걱정도 많이 됐다.
누나는 수완도 좋고 똑똑한데 왜 이리 믿음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덜렁이 같은 면 때문에 그렇다.
누가 데리고 갈지 걱정도 한 가득이고.
그래서 평소라면 귀찮아했을 누나의 방문도 선뜻 받아들였다.
나는 요 며칠 누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죽으러 간다는 극한 상황에도 평정을 유지했던 건 누나의 따뜻함에 기댄 탓이 크다.
그런 것만 보면 역시 누나는 누나다.
가기 전에 한 번 꼭 안아줄까 했지만 민망해서 관뒀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목에서 그 말이 턱 막혀 나오지 않는다.
무사히 잘 다녀온다면 누나한테 그간 속 썩여서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해주자.
그때는 이 무거운 입이 열리겠지.
나는 애써 덤덤한 척하며 말했다.
“야, 걱정도 팔자다. 내가 서울에 하루 이틀 가냐? 비켜. 나가게.”
“제아야. 누나가 이번에는 좀 불안해서 그래.”
역시 여자란 촉이 좋은 걸까.
내가 여태 하이에나 일을 하러 갈 때 이런 적이 없었는데.
누나는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나 보다. 우리 남매는 어려서 부터 이런 직감이 뛰어났다.
“새삼스레 왜 그래? 늙으니까 걱정만 느는구나?”
겉으로는 툴툴대도 속으로는 사과했다.
미안, 자꾸 모난 소리만 하는 동생이라서.
결국 나는 고민 끝에 누나의 등을 살짝 두들겼다. 좀처럼 애정 표현을 안 하는 나인지라 이 정도가 한계였다.
사실 맘 같아선 꽉 안아주고 싶었다. 이게 누나를 보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금방 갔다 올게. 항상 그랬잖아.”
“그럼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더는 말리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누나는 내 상의 소매만 잡고 있었다.
“그래, 돌아올게.”
“늘 조심하고.”
“응, 알았어.”
나는 그 뒤로 서둘러 현관을 나섰다.
누나의 옆에 오래있으면 나는 흐물흐물해진다.
사실 누나가 의지가 안 되고 허당이라고 생각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내가 약해지는 게 싫은 거였다.
***
“다들 도시락 시간을 갖겠다.”
경기도 과천시.
사냥터로의 입구가 있는 곳이다.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을 갈 때 과천의 남태령 고개를 넘어갔다고 한다.
이제는 헌터들이 사냥터로 가기 위해 이 남태령을 넘어간다.
물론 과천에도 몬스터가 있긴 하지만 약체뿐이라 하이에나들도 편히 다닐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도시락 시간은 다른 게 아니다.
팀원들의 가족이 싸준 도시락을 까먹는 시간이다.
하이에나의 가족은 모두 모른다.
우리가 사냥터에서 건조된 특수 식량만 먹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우 맛없지만 영양은 있는, 군대의 특전 식량과 비슷한 거다. 냄새가 거의 안 나는 게 특징이다.
하면, 왜 이걸 모르느냐? 하이에나들이 집에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사지에서 더러운 일을 한다. 그런데 밥도 못 먹고 굳은 막대 같은 것만 씹어 먹는다는 걸 알면, 가족의 마음이 얼마나 짠하겠나.
그래서 일부러 함구하는 거였다.
일반적인 식사는 몬스터의 후각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했다. 헌터들이라면 다르겠지만 하이에나는 작은 것 하나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서 절대 사냥터 안에는 평범한 음식을 갖고 가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남태령에 넘어가기 전, 과천에서 가족들이 싸준 음식을 나눠먹고 갔다. 남은 건 이 일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에게도 건넨다.
“우리 어머니도 정성이시네.”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는 부팀장이 도시락을 보더니 웃는다. 화려함은 없는, 옛날 시골 밥상에 올라올 듯한 반찬이다. 하지만 그것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저 고구마 순을 다듬느라 노모의 품이 얼마나 들었을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고구마 순 껍질을 침침한 눈으로 일일이 벗기셨겠지.
가족의 입장에서는 사지로 가는 하이에나에게 밥이라도 정성껏 싸주고 싶어 한다. 그런 맘을 모두 헤아리기에 묵묵히 도시락을 받아오는 거다. 어쩐지 저걸 보니 마음이 짠하다.
동시에 진짜 무슨 일이 있던 우리 팀원들을 무사히 돌아가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나도 약간의 기대를 안고 누나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열었다.
우리 누나도 분명히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을…….
어? 이게 뭐야.
도시락 위에 웬 종이 하나가 놓여있다.
누나의 메시지인가?
이런 걸 남기는 사람이 아닌데.
의아해하며 열어보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너 안 돌아오면 꽁쳐둔 재산 누나가 명품 사는 데 다 써버릴 거야.]
“하하하.”
헛웃음이 터진다.
진짜 지아 누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비밀번호까지 안 걸까?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았다.
1226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옛날에 부모님이 몰던 차번호다. 내가 이걸 비밀번호로 한 걸 어떻게 눈치챈 걸까. 역시 누나는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듯했다.
메모에도 네가 그래봐야 이 누님 손바닥 안이야, 란 느낌이 확 들었다.
“그래, 돌아가야지.”
우리 누나는 명품 써 본적이 없다. 그런 여자인데 명품을 한 번 사고 나면 어떻겠는가? 늦바람이 더 무서운 거다.
분명히 내 통장 잔고를 다 탕진하고 말 거야. 이래서는 진짜 꼭 돌아가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도시락을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다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네, 누나표 도시락.
“얘들아, 이제 우리의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어느새 모두 도시락을 치우고 준비 완료된 상태였다.
도시락 시간이 끝나자 다들 약속한 것처럼 태도가 변했다. 하나같이 베테랑의 표정이었다.
사냥터에서 하이에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팀원들은 절절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목표는 노량진, 정찰병은 선두로.”
하이에나들은 남태령의 고갯길을 천천히 오른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