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20
00120 5-4. 평양 포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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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필은 함가윤, 함지윤을 붙잡고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필사적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궁지에 몰린 경우는 처음이었다. 숨을 곳을 찾아 사방을 돌아봤지만 안타깝게도 이 만주 벌판에는 좀처럼 그런 장소가 없었다.
“상필 오빠, 나 더 못 가겠어! 오빠라도 도망쳐!”
급기야 함가윤이 멈춰서더니 결연한 태도로 말한다.
당연히 임상필은 빽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서 시간을 끌게. 대신 지윤이는 꼭 데리고 가!”
“언니! 나 언니 두고는 안 가!”
함가윤에 말에 놀란 함지윤이 울며 매달린다.
쌍둥이 언니를 버리고 가다니, 함지윤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이럴 시간 없어! 지윤아!”
한가윤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도 그럴 게 뒤쪽에서 몬스터들이 그들을 추격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다 죽고 그들 셋만 남았다. 함가윤은 이게 정말 꿈인가 싶었다.
앞으로 그들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황망한 기분은 임상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 죄송해요. 제가 다 망쳐버렸어요.’
그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새로운 발견에 들떠서 몬스터에 대한 경계가 허술했다. 그때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아 자신만만하던 루키들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유제아가 보낸 이들은 하나같이 실력자였지만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정면에서 부딪치는 싸움이었다면 이런 결과는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갑자기 옆에서 웃던 동료가 육편으로 화해 날아오르는 꼴을 보고, 반은 전의가 꺾이고, 반은 멘탈이 갈려버렸다.
유제아 같은 베테랑 중의 베타랑이었다면, 얼굴에 붙은 동료의 내장을 떼어내고 악귀 같은 얼굴로 반격했을 거다. 이게 애송이와 베테랑의 차이였다.
베타랑은 적습이라도 일단 받아친다.
그래야 도망갈 타이밍이라도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장 몇이 겁에 질려 달음박질치기 시작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습격자 중에는 군주급 몬스터까지 섞여있었다.
가망이 없는 싸움이었다.
임상필, 함가윤, 함지윤이 유제아의 밑에서 워낙 강해진 탓에 제대로만 대처했다면 군주급 몬스터와 겨뤄볼 만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무너지는 동료를 수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군주급 몬스터라고 혼자 다닐 리가 없다.
수반하는 몬스터 중에도 고위 몬스터가 여럿이었으니 임상필의 그룹이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지윤아, 네가 버텨봐야 1분도 어려워. 오히려 흩어지지 않는 게 나아.”
각오는 숭고했지만 개죽음에 불과하다. 결국 그들은 계속 같이 도망치기로 했다.
다들 내심 어차피 가망이 없다면 죽는 순간은 함께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혼자라면 그건 무척 외로운 일이니까. 임상필은 자신을 따라오는 두 자매 때문에 억지로 버티고 있었지만 슬슬 포기하고 싶었다.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하늘이 다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포기하려는 찰나, 어째서인지 갑자기 유제아가 떠올랐다.
그는 임상필의 우상이었다.
헌터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인물.
강하고 위대한 군주급 몬스터조차 몇이나 지배하고 있다. 전설의 테이머인 자신이 그런 일에 대해 가능성만을 갖고 있을 뿐인 것에 비해서 말이다.
게임으로 치면 시스템을 뛰어넘어 버린 존재나 마찬가지다.
임상필 자신이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면 유제아는 선택 불가능한 캐릭터였다.
‘따라갈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닮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어차피 지금은 죽을지도 모르는 때가 아닌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드니, 자신도 유제아처럼 군주급 몬스터를 지배하는 일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만주에서 본 사실을 어떻게든 유제아에게 전해야 한다.
‘그래, 도박을 하는 거야.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도박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임상필을 속으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유제아의 도박 성향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자신이 그걸 따라 하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어차피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둘 다 내 곁으로 와.”
이미 포위된 상태였다.
헌터인 탓에 셋은 인간을 뛰어넘는 주행 능력을 가졌지만 역시 몬스터에게 당하기 어려웠다.
아까부터 몰이 사냥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기어코 이리 됐다. 주변의 몬스터들은 사냥개처럼 그들을 몰아넣고 위협을 할 뿐 숨통을 끊으려 하지는 않는다.
공을 세울 군주급 몬스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고생은 밑에서 다하고 공훈은 위에서 가져가는 게 실로 몬스터들 답다고 임상필은 생각했다.
쿵. 쿵. 쿵.
곧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군주급 몬스터가 무리 사이에서 걸어나왔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는 적이었다.
단지 그렇게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 아아….”
결국 함지윤이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들은 현재 딱 좋은 사냥감이었다. 한창 사냥개에 쫓겨다닌 멧돼지처럼 힘이 잔뜩 빠진 상태다. 그들 앞의 군주급 몬스터는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크르르릉.
낮게 우는 소리를 내며 늑대처럼 입맛을 다시는 게 말 그래도 진짜 먹어버리려는 듯했다.
그 군주급 몬스터는 곧 능숙한 말로 조롱하듯 묻는다.
“오느오느 동무가 가장 마싯갔쏘?”
“히잇!”
함가윤은 전신에 소름이 돋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교활하고 찐득거리는 군주급 몬스터의 눈빛이 자신을 훑고 지나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군주급 몬스터답지 않게 인간의 말이 자연스러운 것도 소름 끼쳤다.
“궁금한가 보구래? 내가 인간의 말에 익숙한 게 말이지. 킥킥킥. 사실 그간 나는 남몰래 많은 인민을 잡아먹기에 그로치. 그리고 그 인민들에게 이 말씨를 배웠다.”
아무래도 북한 주민들을 상습적으로 잡아먹던 놈 같았다.
임상필은 절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죽기 전에 이놈에게 말을 가르치면서 희생자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싶어서 말이다.
“용서할 수 없어.”
“크큭? 뭐 이 아새끼래 종신머리가 아주 나가버렸구먼. 얼른 종신차리라우. 키키키키키킥!”
마치 리카온과 같이 생기 얼굴을 가진 군주급 몬스터는 마구 웃어댔다. 녀석은 입에서 유황 냄새를 풍겼고 혓바닥은 화염으로 되어 있었다.
녀석은 불길로 된 혀를 날름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아주 맛있는 걸 먹게 되어 기분 좋다는 듯이 말이다.
함가윤은 이미 체념한 듯 오들오들 떨고 있는 동생 함지윤을 껴안을 뿐이었다.
반면 임상필은 생의 마지막 도박을 준비 중이었다.
지금까지의 배움을 정리해 두 번이 없을 힘을 발동했다. 어차피 뒤가 없는 탓에 부작용이나 반작용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잠력을 전부 폭발시켰다.
“굴복하라!”
빛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
세 남녀가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숨은 아주 가늘게만 붙어 있을 뿐, 누가 봐도 곧 숨이 끊어질 게 뻔해 보였다.
임상필.
함가윤.
함지윤.
그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밟고 리카온을 닮은 군주급 몬스터 보르카우가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캬캬캬캬캬캬! 감히 내게 덤비다니! 좋은 유흥거리였다!”
신이 난 군주급 몬스터는 짐승을 똑 닮은 발로 축 늘어진 세 남녀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그때 군주급 몬스터의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스윽 다가온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나타나 주변에서 소리를 지르던 몬스터들도 얼이 빠져버렸다. 심지어 군주급 몬스터 보르카우조차 움찔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보르카우는 황급히 부복한다.
“오셨습니까? 드보르크님.”
“침입자가 있다고 들었다.”
귀신처럼 나타난 자는 검은 실루엣만 보일 뿐 구체적인 형상을 도저히 감 잡기 어려운 외형이었다. 그의 이름은 드보르크로 이 만주에 거주하는 대군주급 몬스터다.
인간과 천사 누구도 그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다섯은 이미 먹었고 이 셋만 남았습니다.”
대군주급 몬스터 드보르크는 가는 숨만 쉬고 있는 그들 셋을 내려다본다.
그러자 군주급 몬스터 보르카우는 입맛을 다시며 입가에서 침을 흘려댔다.
“그게 가장 확실하고 흔적이 안 남는 방법이니까요.
“……뭐 좋다.”
드보르크는 유난히 인간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부하를 책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의 말대로 먹는 게 가장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알겠다. 경계에 만전을 기하도록. 우연히 흘러들어온 놈들 같지만, 혹시라도 우리 계획이 밖으로 흘러나가서는 안 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보르카우의 충성스러운 대답에 드보르크는 곧 몸을 돌려 떠났다. 더는 관심 없다는 태도였다.
그렇게 대군주급 몬스터의 압박이 사라지자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포위진을 형성했던 몬스터들은 먹잇감을 앞에 둔 하이에나처럼 꺽꺽거렸다.
다들 한 입이라도 먹어볼 수 있을까 기대가 가득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보르카우가 앞서 다섯의 헌터를 죽이고는 주변에 던져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꺼져! 이 욕심 많은 것들아! 이건 내 몫이다! 카아아아앙!”
보르카우가 포효하며 불을 토하자,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군주급 몬스터의 분노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군주급이라 함은 지배력을 행사해 그들 모두를 지배하는 존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변의 모두가 사라지자 보르카우는 낄낄 웃어대며 세 남녀는 짊어졌다. 워낙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보르카우라 인간 셋을 양어깨에 올려놓고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면 어디서 먹어치울까. 키키키킥.”
낄낄거리며 이동하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빨랐다. 마치 발걸음 하나하나가 지면을 주욱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게 움직인 그는 곧 야산의 빈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일견으로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식사하려는 것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며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지금까지의 태도가 철저한 연기였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매우 주의하며 어깨에 맨 세 남녀를 주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옷을 손으로 뜯어낸 뒤, 상처를 요리조리 살폈다.
‘이것 참 큰일이라우. 이대로라면 30분을 채 넘기지 못할 것인데.’
걱정스러운 표정의 보르카우는 곧 품에서 약초와 특별한 물약을 꺼내 정성스럽게 배합했다. 그리고는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세 남녀의 몸에 바른다.
잠시 그 약효가 스며들기를 기다리더니 곧 보르카우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한참이나 염불을 외우는 것 같은 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다. 이 주문을 처음 듣는 자라면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나, 엄격하고 절도 있으며 정성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어 보였다.
대체 왜 군주급 몬스터가 잡아먹으려던 인간을 이리 열심히 돌보는 걸까?
“후우! 후우!”
치료의 효과가 있었는지 시체처럼 안색이 창백하던 세 남녀가 가쁜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임상필이 첫 번째로 깨어났다.
“하아!”
곧 그는 자신이 죽음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돌파했음을 깨달았다.
힘겹게 허리춤을 더듬어 회복 포션을 찾아낸다.
“돕겠습네다.”
보르카우가 그의 모습을 보더니 허리춤에서 조심스레 약병을 꺼내 건넨다. 임상필은 곧 그걸 받아서 입에 흘려 넣었다.
“하아…….”
긴 한숨이 다시 터졌다.
천사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물약 덕에 임상필의 상세는 빠르게 회복됐다.
곧 그는 몸을 일으켜서는 서둘러 함가윤, 함지윤 자매에게도 치료 물약을 사용했다.
임상필은 비싼 물약도 아낌없이 퍼부었다.
환부에는 직접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부었고 입안에도 잔뜩 흘려 넣었다.
“아….”
“아앙…….”
함 씨 자매가 가는 숨소리와 함께 곧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멍하게 둘러보던 그들은 곧 비명을 지르며 동굴 한쪽 벽면으로 도망간다.
거대한 덩치의 보르카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임상필은 다소 책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보르카우를 쳐다봤다.
그러자 보르카우가 커다란 머리를 흙바닥에 대고는 예를 갖췄다.
“나의 주인이시여.”
그 모습에 함 씨 자매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도저히 어쩔 수 없었던 절망적인 존재가 마치 충실한 하인과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던 것이었다.
함가윤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오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임상필은 복잡한 표정을 대답한다.
“뭐긴 뭐야. 제아 형이 매번 하던 그거지.”
그 말에 함가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됐다.
“설, 설마 지배한 건가요? 이 군주급 몬스터를?”
임상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