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22
00122 5-4. 평양 포위전 =========================================================================
이런 복수의 순간은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다.
헌터는 은혜를 갚는 일을 잊어선 안 되겠지만, 원한을 갚는 일은 더더욱 잊어선 안 된다.
특히 사람을 몇 번이고 죽인 몬스터는 살려놔서는 안 된다. 이쪽 패밀리를 건드리면 반드시 보복당한다는 인식을 심어둬야, 놈들도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호구로 보이는 패밀리랑 무슨 일이 있어도 보복하는 패밀리, 둘 중 누가 더 부담이 없겠는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문제다.
몬스터들 중 상당수가 패밀리를 구분할 수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말이다.
“카드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저쪽에서도 반응이 왔다.
이미 녀석은 진작부터 날 주시하고 있었다. 얼굴을 파먹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계속 느껴지고 있었다. 중앙부에서 혼자 난동을 부리고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었겠지.
게다가 내가 이제 이렇게 소리까지 질러대자 카크닥의 입장에서는 나오지 않고 못 배기리라. 이번 싸움의 결과를 가를 분수령이 지금인 데다가 부하들의 시선도 생각해야 한다.
쿵. 쿵. 쿵.
곧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적의 대열이 갈라진다.
그리고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물, 카크닥이 걸어나온다.
나 역시 똑바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중앙부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일시에 멈출 정도였다. 치열한 좌익, 우익과 달리 중앙에선 모두 숨조차 죽인다. 카크닥과 내가 뿜어내는 투기는 수많은 헌터와 몬스터를 압도했다.
“네놈… 대체 어떻게…?”
내 얼굴을 보며 카크닥은 믿을 수 없단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죽지 않았냐고? 하하하, 시체는 잘 확인했어야지.”
“크….”
“왕의 호위란 놈이 그렇게 어수룩해서야. 크하하하하하!”
나는 의도적으로 그를 크게 비웃었다.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한쪽은 웃고 한쪽은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주변의 시선이 어떻겠는가.
게다가 몬스터는 폭력과 위협으로 조직을 유지한다.
그런데 리더의 체면이 상하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직의 결속은 쉽게 흔들린다.
물론 물론 지배력이란 게 있긴 하지만 그 지배력의 근간까지 제거해 버리면 될 일이다.
“인간! 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다니! 좋다! 오늘을 네놈 인생에서 최악의 날로 기록해 주마.”
“그것참 자비롭군. 괴물 주제에. 그러면 나는 오늘을 네놈 인생의 끝으로 해주겠다!”
그 말을 끝으로 곧장 우리는 맞붙었다.
카크닥은 따로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다만 칼날 같이 날카로운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할 뿐이었다. 손 하나에 손가락이 여섯이었고 손이 가슴에 붙은 것까지 셋이었으니, 놈의 무기는 총 18개의 검인 셈이었다.
하나하나 손톱의 길이가 마치 조선 환도만큼이나 되는 듯했다. 녀석이 손 하나를 휘두르면 마치 환도 여섯 개가 베어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슴팍에 붙은 손은 앞으로 쭉 뻗어 찌르기만 사용했다.
카앙! 카앙! 캉! 캉!
격렬한 공방이 벌어지자 사방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적의 무기도 많았지만 이쪽도 적지는 않다.
일단 왼손에 태양신격의 방패, 오른손에 쿠른코의 검이 들려 있고, 등 뒤의 검은 마력의 날개가 여섯 장이다. 이 날개는 등 뒤에서 크게 움직이며 대낫처럼 놈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돌파당했을 때 명품인 황제 유진의 갑주가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는 터라 놈에게도 까다롭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 A등급 이상의 갑주를 공략한 때는 뚫은 부분을 계속 공격해 파괴 부위를 넓혀가게 된다.
때린 데 계속 때린다는 소리다.
하지만 황제 유진의 갑주는 빠르게 이것을 자가수복할 수 있다.
적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지.
“에에잇!”
급기야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카크닥은 역정을 냈다. 실로 교묘한 솜씨로 내게 한 방 먹여 갑주를 상하게 했는데 금세 원복해 버리니 그럴 수밖에.
“치사한 걸 입고 있군!”
“너 같은 괴물이랑 싸우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니 말이다!”
카크닥이 초조해하는 바람에 틈이 났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놈도 과연 대군주급이라 그런지 제대로 노린 그 일격을 피해낸다.
“큿!”
하지만 완벽하지 못했던 탓에 손가락 한 개가 잘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오른손의 검을 왼손으로 옮겼다.
왼손은 태양신격의 방패를 쥐고 있었지만, 방패의 손잡이를 잡은 손안이 가득 차는 건 아니다. 필요할 때는 오른손을 검을 옮겨 같이 쥘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빈 오른손을 이용해 허공의 손가락을 붙잡은 뒤 암기처럼 카크닥에게 던졌다.
“크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그도 그럴 게 던전 손가락이 카크닥의 눈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빌어먹을 쥐새끼 같은 놈!”
잠시 비틀거린 그는 눈에 박힌 자신의 손가락을 뽑아냈다. 그러자 시신경 다발이 매달린 안구까지 뽑혀 나왔다. 카크닥은 그걸 뜯어내더니 곧 자기 입안에 넣고 먹어치운다.
무슨 지가 하후돈이냐….
아마 일부러 저러는 거겠지.
지금 지켜보고 있는 부하들을 의식해서 말이다.
꽤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 저런 터프함을 어필하는 게 좋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 덕에 큰 틈이 나고 말았으니까.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나도 아니고.
이번에는 단순히 손가락이 아니라 팔을 날려버렸다.
카크닥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세 번째 팔을 말이다.
그리고 그걸로 그치지 않고 흉흉한 손톱으로 가득한 그 팔을 카크닥의 배때기에 쑤셔 박아줬다.
“크아아악! 이 빌어먹을 놈이!”
카크닥이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움켜쥔다. 등 뒤의 날개로 놈의 팔을 계속 내리찍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갑작스러운 압력과 견갑을 파고들어 오는 손톱의 위력에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 고통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양쪽 어깨가 통째로 뜯겨 나갈 것 같다.
빈틈을 찌른 좋았는데 놈의 간격 안에 너무 쉽게 들어와 버린 듯하다.
“어리석은 놈! 뭉개주마!”
카크닥은 기세를 타서 더욱 손아귀에 힘을 줬다.
하지만 이 순간 황제 유진의 갑주 때문에 난 버틸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힘에 찌그러지면서도 순식간에 자가 회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짧은 시간을 벌 수 있었는데 지금 내겐 그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나는 즉각 능력치 집중을 사용해 힘에 +500을 투자했다. 그리고는 카크닥의 배에 찌른 녀석의 팔을 붙잡고 있는 힘껏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카크닥의 뱃가죽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 개자식이!”
분노한 카크닥이 이번엔 주먹을 쥐더니 있는 힘껏 해머처럼 나를 내리쳐댔다.
카앙! 캉! 캉!
황제 유진의 갑주가 부서져 사방으로 날리기 시작한다.
또한 검은 마력의 날개 역시 내리꽂히는 그 주먹을 막느라 마력의 파열음과 함께 깨져나가고 있었다.
갑주와 마력의 날개로 버텼지만 한 방 한 방이 꽂힐 때마다 충격과 고통으로 혼이 날아가는 듯하다.
태양신격의 방패는 지금 카크닥의 팔을 양손을 쥐고 있는 상태라 땅바닥에 구르고 있어 도움이 안 됐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어고 박아넣은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부욱하며 카크닥의 배때기가 찢어졌고 안에서 내장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이 개자식이!”
결국 배가 찢어지자 카크닥은 자신의 주먹을 원을 그리며 크게 휘둘러 날 강타했다.
부웅! 하며 날아오는 게 마치 건축물을 철거할 때 쓰는 거대한 철추 같아 보였다.
안타깝지만 피할 타이밍이 안 나왔다.
나는 벌써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퍼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내 시야가 반전된다.
날아가면서 한 바퀴는 도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곧 자세를 잡고 제대로 착지할 수 있었다.
왜냐?
왼손으로 카크닥의 내장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기의 순간 나는 피하는 대신 녀석의 내장을 잡아채는 쪽을 택했다.
그 덕분에 공중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 역시 컸다.
치명적인 일격을 얻어맞은 탓에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즉각 치료를 사용했지만 대군주급의 공격이라 그런지 회복이 더디다. 또한 어지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적인 건 상대의 사정이 더 나빠 보인다는 점이었다.
내장이 뽑혀서 길게 늘어진 카크닥의 상태는 위중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앞쪽에 떨어져 있는 태양신격의 방패를 발견했다.
곧장 회수할까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붙잡고 있는 내장을 끌어당겼다.
카크닥은 반항했지만 내장이 붙잡힌 격통 때문인지 결국 끌려온다. 마치 고삐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카크닥은 중간에 몇 번이고 자기 내장을 끊어내려 했지만 내가 세게 잡아당기자 격통 때문에 실패했다.
아주 치욕스러운 꼴이었다.
“모두 보라! 이게 네놈들 대장의 꼬락서니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당혹감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반면 아군은 환호성이 터진다.
분위기가 급격히 내 쪽으로 기운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화룡점정을 할 수단이 있었다.
바로 카크닥 바로 밑에 있는 태양신격의 방패다. 녀석을 끌어온 건 굴욕감을 줄 생각도 있었지만 이게 진짜였다.
“이놈!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지 카크닥의 두 눈이 뒤집혔다.
그러더니 제자리에 버텨 선다. 내가 잡아당기기 때문에 내장이 뜯겨 나가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야말로 이제는 목숨도 돌보지 않겠다는 기백이 느껴졌다.
무언가 생명을 도외시하며 잠력을 폭발시키려는 듯했다. 원래 저 정도의 거물이면 무시무시한 비상수단 정도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중간에 끊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어릴 적 만화를 보면 주인공이 변신이나 합체를 하면 적이 기다려 주던데, 현실의 나는 그 정도로 신사는 아니라서 말이다.
번쩍.
빛이 작렬했다.
카크닥 아래에 있던 태양신격의 방패를 조작해, 태양광 폭사를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바로 앞에서 무방비하게, 정면으로 맞았다.
대군주급이라도 해도 커다란 타격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배가 갈라진 최악의 상황 아닌가.
털썩.
결국 온몸이 지글지글 구워진 카크닥이 무릎을 꿇는다.
주변에서는 온통 환호성이 터지기 시작한다.
반면 몬스터 무리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눈치 빠른 녀석들은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게 보인다.
나는 이걸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이미 그로기 상태인 카크닥은 그야말로 샌드백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아낌없기 기술을 퍼부었다.
일부러 보란 듯이 과시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 녀석의 목을 베면 몬스터의 대군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대군주급인 카크닥이 죽으면 지배력이 소실된다.
지금 이 장소에 묶여 있는 몬스터 태반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방으로 달음박질칠 거란 소리.
그게 몬스터 군대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지배력으로 묶으니 사기가 떨어져 도망가는 일은 없지만, 구심점이 사라지면 완벽하게 와해되어 버린다.
물론 여기에 충격 요법을 더하면 더욱 빨리 그런 일이 이뤄질 거다.
나는 최대한 카크닥을 잔인하게 살해하기 위해 마법 주머니에서 톱을 꺼냈다.
그리고 반쯤 쓰러진 카크닥에게 다가갔다.
뭐 마지막 반격 정도는 하겠지.
“죽어라!”
아니나 다를까 웅크리고 있던 카크닥이 사력을 다해 마법을 발현해 왔다.
하지만 모든 공격은 상대의 의도를 알고 대비할 수 있다면 무섭지 않다. 그 공격이 강하고 약하던 간에 의표를 찔러오니깐 당하는 거지, 알면 막는 건 물론 카운터까지 가능하다.
나는 걸음조차 멈추지 않았다.
날아온 공격 마법 중 일부는 무효화했고 나머지 일부는 반사해 카크닥에게 되돌렸다.
“크아아아악!”
자기 공격 마법에 당한 카크닥은 비명과 함께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나는 그의 이마에 돋은 뿔을 붙잡았다.
두껍고 단단한 뿔은 열기 때문에 뜨겁게 가열되어 있었다.
내 손바닥이 지글지글 타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 대신 톱으로 카크닥의 목을 썰기 시작했다.
카크닥은 몸을 뒤틀며 반항해 왔지만 나는 힘으로 찍어눌렀다. 인간인 내가 덩치는 훨씬 작다고 해도, 능력치 집중 탓에 완력에서 기실 별 차이가 없다.
나는 천천히 오래오래 톱질을 했다.
그러자 이 강대한 몬스터도 비참한 죽음 앞에서 도축되는 소처럼 길게 울부짖었다.
나는 이런 광경을 지금껏 몇 번이나 보아왔다.
아무리 대단하고, 아무리 거물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졸개나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목이 떨어졌고, 나는 그것을 몬스터의 진영에 힘껏 던졌다. 몬스터들은 그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도 되는 듯 화들짝 놀라서 피한다.
그때 나는 손을 앞으로 뻗어 아군에게 돌격할 것을 명했다.
중앙에서의 싸움은 적이 두 배였지만, 이제 그런 숫자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때 내 옆을 지나 달려가던 헌터 하나가 주변에 소리를 질렀다.
“다리만 빨리 움직여! 이제부터 칼질을 할 건 몬스터 등판 밖에 없으니까!”
정말 맞는 얘기여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