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24
00124 5-4. 평양 포위전 =========================================================================
그러자 순간 날아오는 돌들이 훨씬 선명하고 느리게 보인다.
민첩성의 비약적인 상승으로 뇌가 주변을 인지하는 수준이 달라졌다. 나는 그간 전투로 쌓은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차례차례 포탄처럼 날아오는 돌들을 되돌렸다. 많은 돌들이 절대로 충돌하지 않게 완벽한 형태로 말이다.
퍼억!
내게 돌을 던졌던 거인의 머리가 깨져나간다.
놈은 표정이 풀리더니 팔다리의 힘이 빠지며 난간으로 몸이 기울어진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되돌린 돌은 최대한 안면 쪽으로 집중시켰다.
놈들은 워낙 덩치가 육죽하고 근육이 많았기에 얼굴에 들어가야 제대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퍽! 퍽! 퍼억!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거인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삽시간에 옥상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거인들이 줄줄이 추락하고 했다.
쿠웅! 하는 육중한 소리와 갑자기 옥상에서 떨어진 거인에게 깔린 몬스터의 비명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일부는 얻어 맞고도 옥상에서 버티고 있어 내가 직접 밀어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옥상이 정리되자 그 구역의 헌터들의 침입이 훨씬 쉬워졌다. 지상의 적에 공중에서 내리꽂히는 원거리 공격까지, 그간의 이중고가 극복된 거다.
덕분에 김일성 종합대학교의 공략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다들 왜 옥상에서의 공격이 멈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목표인 왕이다.
물론 그렇다고 숨을 것까지는 없다. 아군에게 목격된다면 대충 둘러대면 될 일이다.
“타핫!”
공중에서 뛰어서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넘어갔다.
착지하는 순간 현현한 후 사용 가능한 특수능력인 낙하를 썼다.
그러자 폭음과 함께 옥상이 무너져 내린다.
콰아아앙!
마법으로 보강되어 있던 건물이라도 이렇게 위쪽에서 내리찍는 공격에는 약했다. 전함의 경우도 보면 측면에서는 포탄을 견디는 힘이 강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것에는 취약하다.
이 마법 결계 역시 전함의 장갑과 같은 원리였다.
우르르르! 콰아앙!
옥상이 내려앉으면서 일대가 먼지로 뒤덮인다. 그게 마치 연막탄과 같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해줘 아군의 헌터들의 돌격을 도와주고 있었다.
물론 아군 역시 혼선이 있었지만 도움이 되는 측면이 더 컸다. 방어하는 몬스터들은 일순간 목표를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해 했다. 그러다 먼지를 뚫고 갑자기 나타난 아군의 공격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점점 전황이 아군의 공격에 유리해지고 있었다. 나는 계속 상황을 조정하기로 했다.
-유송연!
-주인님?
나는 전장에서 내 연합 헌터단을 지휘중인 유송연을 불렀다. 내 위치를 알려주자 그녀는 금세 날 찾아왔다.
“주인님!”
놀란 그녀가 대번에 다가와 내 손을 붙잡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게.”
“것보다 빨리 왔네. 몬스터 밭인데.”
“저야 변신해서 지나왔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시켜만 주세요!”
충성스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일단 나는 유송연과 같이 건물의 잔해에 숨었다. 그리고 노리는 목표를 가리켰다.
꽥꽥 사방에 소리를 지르고 있는 고위 몬스터 하나였다. 장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쟤 보이지?”
“네, 주인님.”
“네가 좀 유인해 와야겠어. 저 녀석이 지금 포인트를 막고 있어서 이쪽 아군의 진입이 까다로워.”
“어떻게요?”
“그거야 알아서 해야지.”
“와, 이 악덕 주인!”
유송연은 뭔가 하려거든 지배력이 낫지 않냐고 물어왔다.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지배력으로 저런 고위 몬스터를 스틸하면 윗선에서 눈치를 챌 거야. 이 공격이 성공하려면 특이사항이 발생했단 사실을 놈들이 최대한 늦게 아는 게 중요해.”
“알겠어요.”
앞으로 나선 유송연은 곧 변신했다.
그리고는 그 고위 몬스터에게 가서 다급하게 무언가를 얘기하기 시작한다.
고위 몬스터는 짜증을 내며 벌컥 소리를 질렀지만, 유송연은 급한 용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전투 중에 장교가 자리를 비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여긴 몬스터의 군대다.
윗선에서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
아마 유송연은 전령인 척하고 있는 거겠지.
그때 방어진을 들이받던 헌터들이 일시적으로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사이 고위 몬스터는 주변에 명을 내리고 유송연을 따라나섰다.
잠시 시간이 난 틈을 타 얼른 명을 받고 돌아갈 심산인가 보다.
유송연은 고위 몬스터를 내가 숨어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 고위몬스터가 투덜거리며 코너를 돌아오는 순간 나는 곧장 검을 날렸다.
부웅!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고위 몬스터의 머리가 날아갔다. 난 단번에 절명한 사체를 치우고는 유송연에게 이놈으로 변신하라고 주문했다.
곧 죽은 고위 몬스터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존재가 나타났다.
“자, 이제 가서 내가 시키는 대로 명을 내려.”
“알았어요.”
내가 숨어서 지켜보는 가운데 고위 몬스터로 화한 유송연이 몬스터 무리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내가 요구하는 것처럼 방어진을 바꿔서 배치하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배치 뿐 아니라 주변의 방어 시설 역시 손봤다.
-거기 바리케이드를 치우라고 해.
-네.
몬스터 중 일부가 유송연의 명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목이 달아나자 곧 군말이 없어졌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구조를 가진 탓이다. 이유불문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몬스토다.
게다가 유송연이 적의 예봉이 꺾였으니 이제 이쪽에서 돌격해서 밀어낼 것이라 하자 다들 명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최악이었다. 작업이 끝난 시점에서 헌터들이 다시 공격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데 헌터들은 막혀있던 앞이 뚫린 상태가 되자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함정인가 싶어서 좀처럼 달려오지 않는다.
그런데 유송연의 명으로 몬스터들이 달려 나가자 다시 제대로 싸움이 붙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몬스터들의 패배였다.
일단 헌터들이 숫자가 더 많았다. 그리고 지금 공격에 나서는 헌터들은 지난 세월 동안 단련된 베테랑들이었다. 금세 김일성 종합대학교 안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공격 지점 중 한 곳이 뚫리자 몬스터들의 윗선에서 난리가 났지만, 정작 책임자인 유송연은 이미 내 옆까지 도망온 뒤다.
“어때요? 잘 했죠?”
“그래.”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뒤늦게 달려온 간부급 몬스터들이 성질을 내며 난리였지만 이쪽은 이미 침입한 헌터들로 드글드글했다.
몬스터의 진영 전체가 이 문제 때문에 요동치고 있었다.
***
“왕이시여. 전황이 어렵습니다.”
“그런 것이냐.”
김일성 종합대학의 대강당 중 하나가 왕의 대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옥좌에 앉아 있는 왕은 가신들에게 둘러싸여서 보고를 받는 중이다. 보고를 하는 몬스터의 목소리에 무척이나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 지엄한 왕에게 이런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건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왕은 별로 흥미가 없단 표정이었다.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것이지?”
상황을 묻는 왕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자신과 관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그랬어야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서….”
보고를 하는 장교는 마법으로 보강한 옥상이 갑자기 무너진 일이나, 방비를 담당하던 자가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왕은 한참을 심드렁하게 듣다가 대꾸한다.
“벌레라도 들어온 모양이군.”
“반드시 찾아서 팔다리를 뽑아놓겠습니다!”
왕은 결의를 다지는 장교의 말에 손을 휘휘 저으며 나가보라 한다. 장교는 그러자 표정이 밝아져서는 도망치듯 강당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장교가 떠나자 가신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낸다. 전황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이었다.
하지만 왕은 그 모든 걸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그리고는 가신들 모두에게도 나가서 싸우라 말했다.
“에엣? 하지만 저희는 위대하신 분을 지켜야….”
“내 스스로 건사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전투가 급박하니 모두 나가서 한 명이라도 더 죽이도록.”
단호한 왕의 태도에 가신들 역시 건물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공허한 강당 안에는 왕만이 홀로 남아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소음이 아련하기만 하다.
어차피 그가 생각하기에 이 치열한 싸움은 다 부질없었다.
만주에서 일이 잘 진행 중일 테니까. 인간 놈들은 만주의 일은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이 할 일은 쳐들어온 발칙한 놈들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때, 왕의 예민한 귀에 강당 밖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왔군….”
자신을 노리고 들어온 침입자의 존재를 왕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다만 방기했을 뿐이다.
그는 옆에 놓아둔 자신의 무기를 쓰다듬었다.
그건 중국의 고대 무기인 극戟을 닮은 장병기의 일종이었다.
“꽤 재미있는 여흥이 되겠어. 지금 오는 놈이 최근에 있었던 모든 사건의 원흉인 듯하니. 크크크. 뭐, 이기든 지든 크게 상관없겠지만.”
***
“여긴가?”
어느새 나는 왕이 있는 강당 앞까지 와 있었다.
유송연과 내 근처에는 살아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대부분 전황이 다급해지자 싸우러 갔다. 그리고 일부 남아있던 녀석들은 우리에게 살해되었다.
“맞아요. 느껴지네요, 왕이.”
유송연은 두려운 표정이었다. 역시 몬스터 출신이라 그런 건가.
무슨 일이든 담담한 그녀가 흥분과 공포로 가늘게 떨고 있었다.
“걱정 하지마, 이 싸움은 내가 이길 테니까. 필승이라고.”
“네, 믿어요. 주인님. 저는 그저….”
“음?”
“그저 주인님의 지배력이 약해져 제가 다시 왕의 밑으로 돌아갈까 두려워요.”
계속 내 곁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기특한 소리를 하는군.
“그것 역시 괜찮아.”
내 지배력은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설령 왕이라고 해도 유송연을 도로 빼앗아 가기란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유송연을 배려해 문 밖에 남도록 했다.
“그렇지만!”
“아니야. 여길 지키면서 누가 이 싸움을 방해하지 않게 도와줘.”
어차피 왕과 결전이 벌어지면 유송연의 전투력으로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번을 세우는 게 낫다.
직접 그리 말한 건 아니지만 유송연은 내 의도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알겠어요, 주인님. 부디 무운을 빌어요.”
그녀는 함께 싸우지 못해서 아쉬운 듯했다.
“응.”
유송연과 일별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장중한 존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한 번 본 얼굴이다.
과거 평양에서 왕은 재밌게도 스스로 왕의 호위로 가장하고 있었다.
“너는?”
왕은 내 얼굴을 보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곧장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어찌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네놈은 목숨에 여벌이라도 있는 것이냐!”
왕이라 그런지 당황하기 보다는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왕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방심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좋을 대로 하라. 크크큭.”
내가 분노를 이글이글 불태우는 데도 왕은 여유만만하다.
흠? 이상한데?
기분 나쁘기보다는 뭔가 의심이 피어오른다.
왕과 내 능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저런 여유로운 태도는 아닐 텐데….
물론 왕은 강하다.
하지만 나도 강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싸우러 온 거고.
물론 비장의 수단도 있긴 하지만.
“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저런 태도는 뭔가 꿍꿍이속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급하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그게 뭔지 알기는 어려웠다.
찝찝한데.
저 달관한 듯한 태도는 뭐랄까, 죽음을 앞둔 하이에나에게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초연한 것 같은 표정이다. 내가 인상을 구기고 서 있자 왕은 여전히 앉은 채 두 팔을 벌리며 날 도발한다.
“왜 안 덤비지? 나를 쓰러뜨리러 온 게 아니었나? 설마 이제 와서 겁이라도 집어 먹은 것이냐?”
“미심쩍어서 그런다.”
“무엇이 말이냐? 자신의 실력이?”
이 녀석 보게. 왕이라 그런지 말빨이 좀 좋네.
“네놈이 하도 약해보여서 진짜 왕이 맞는지 말이야.”
“하하하. 그건 네 검으로 확인해 보라.”
이제 어쩔 수 없다.
더 생각해 봐야 뾰족한 수도 없고 말이야. 단번에 쳐서 박살내는 게 최선일 듯했다.
좋아. 가자.
나는 왕을 향해 달려들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헌터 유제아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