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30
00130 6-1. 만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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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대천사 둘에게 제압된 상태로 오고 있었다.
죽은 만주의 왕과 다른 평양의 왕이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끌려온 길을 따라 죽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왕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돌보고 상처는 치료해 주지 않았다.
계속된 출혈에도 불구하고 왕의 생명력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표독스러웠다.
역시 거물은 거물이라 다 죽어가면서도 의지가 꺾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건 해 보면 알 일이고.”
따로 옥신각신할 필요 없었다. 메타트론과 나는 이미 다 준비된 상태. 곧장 지배력을 발동했다.
“그으으윽!”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왕은 지배력에 저항한다.
눈이 뒤집어져 흰자위만 보이고 입에서 거품을 게처럼 뿜어낸다.
마치 귀신 들린 것 같은 모습이랄까.
그러던 왕도 곧 잠잠해 진다. 지배력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이제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왕을 지배하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우리는 즉각 그가 소환 마법진에 간섭하게 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왕은 지금까지의 태도와 다르게 아주 충직한 모습이었다. 지배력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물론 30분 정도면 본래대로 돌아가 아주 지랄발광을 하겠지만.
지금까지 지배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지배력이 풀린 순간 몬스터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가시면 그 이상의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 같았다.
지배력이 풀리자마자 다들 눈깔이 뒤집어져서 공격해 왔던 걸 생각해 보면 말이다. 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유송연 정도이다. 그녀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마지막까지 자제심을 잃지 않고 그저 도망가는 길을 택했다.
“최대한 그 존재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식으로 방해해.”
거리가 거리인 만큼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건 그 강력한 존재의 육체가 아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오는 건 그 존재의 정보이다.
정보가 시공간을 가로지르면서 우주의 에너지를 수집해, 지구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한데 그걸 중간 중간 방해한다면, 에너지 수집에 차질이 생기고 실제로 지구에서 구현되었을 때 그 존재의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왕이 작업하는 동안 우리는 그가 방해 받지 않게 번을 섰다. 그리고 작업의 과정을 꼼꼼하게 지켜봤다.
왕은 신중하게 마법진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로 접근하는 정보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 그 정보 역시 방해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작업 중인 왕의 보고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요구에 따라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보고해 왔다.
“정보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최대한 손실을 줄이고 지구로 도착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방해하는데 집중해. 느긋하게 에너지를 모으면서 오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니까.”
“알겠습니다.”
작업 중에 시간은 금방 가서 곧 지배력이 풀렸다.
왕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고, 대천사 둘이 금제를 걸어야 했다. 일시적으로 지배를 한 탓에 메타트론과 나의 지배력은 완전히 고갈됐다.
하루가 더 지나야 이 지배력이 회복될 것이다.
그러니 다음날 한 번 더 소환 과정을 방해하는 게 마지막이었다.
“충분할까?”
우려 섞인 내 말에 메타트론이 대꾸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걱정은 일단 접어 두거라. 그리고 우리만이 유일한 대비책은 아니니 부담을 좀 덜도록.”
이 소환을 방해하는 방법이 실패하면 천사들의 주인에게 SOS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네 말이 맞아. 싸움을 하기도 전에 근심부터 해서는 안 되지.”
다음날도 같은 과정이 이어졌다.
지배된 왕은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소환 마법을 방해했다. 이틀에 걸쳐 행해진지라 꽤 성과가 있었다.
“어느 정도 약해진 것 같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원래 정상적으로 강신했을 힘이 100이라 한다면 지금은 70정도 될 것 같습니다.”
견제가 상당히 들어가긴 했는데 과연 우리가 맞서 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대천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는데 합의를 보았다. 이제와서 주인에게 연락해 응원을 부른다고 해도, 그게 보장도 없을 뿐더러 도착하려면 닷새는 걸릴 거다. 그 사이 도망 다녀야 한다는 건데 그럴 바에는 싸우자는 게 대세였다.
“이제 다섯 시간 후면 도착할 겁니다.”
왕에게 들은 그 존재의 이름은 카르막스라고 한다.
우리는 카르막스와 상대할 인원 일부만 남기고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다.
어차피 그 정도 되는 존재에겐 숫자로 밀어봐야 무의미하다. 희생자만 어마어마하게 나올 뿐이었다.
하여 만주로 온 여덟 대천사와 내가 그를 직접 상대하기로 했다. 전투력으로 따지면 엽왕 임철웅도 끼기 충분했으나, 그는 물러나는 부대의 지휘하는 중요한 일을 맡았다.
그래서 카르막스를 상대하는 이는 총 아홉, 그중 인간은 내가 유일하다.
대천사가 여덟이나 모여 있으니 참 장관이다. 문제는 이런 이들조차 압도할 존재가 몇 시간 후에 도착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대천사들 태반이 이렇게 몰려오면 주인에게 연락하는 마법은 괜찮은 건가? 그 점을 묻자 대천사 가브리엘이 대답해줬다.
“유 위원께서 왕을 지배하기 위해 골몰하는 동안 우리끼리 모여서 그 문제를 해결해 놨습니다. 남은 과정은 대천사 두셋 정도가 진행하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래서 후방에 미카엘라가 남은 거고요.”
어쩐지 서열2위인 미카엘라가 안 온다 했더니, 후방에 중요한 연락을 담당하기로 했던 거였다. 만약 우리가 패퇴하거나 살해당하면 미카엘라가 주인에게 구원을 요청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니 제일 좋은 건 우리 선에서 끝내는 거다.
현재 여기 모인 대천사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지배의 대천사 메타트론.
환영과 지혜의 대천사 가브리엘.
자연의 대천사 라파엘.
별과 신비의 대천사 바라카엘.
냉기의 대천사 우리엘.
뇌격의 대천사 라미엘.
탐구의 대천사 나나엘.
역행의 대천사 카마엘.
이렇게 총 8위位였다.
거기에 메타트론의 화신인 나까지다. 어쩔 수 없는 인원을 빼고는 최대한 끌어 모은 숫자였다.
이길 수 있을까?
쿠우우웅!
점점 하늘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곧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친다. 번개줄기 역시 사방으로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저건 뭐랄까, 워프 게이트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이제 몇 시간 뒤면은 저 워프 게이트에서 카르막스가 출현할 것이다.
잠시 시간이 있는 사이 나는 평양의 왕을 처형했다.
이제 그는 쓸모를 다했으니 말이다.
왕은 온갖 저주를 다 퍼부었지만 나는 담담히 그의 흉부를 검으로 헤집을 뿐이었다. 이것으로 스이엘의 예언대로 다 되었다.
현재 내 마법 주머니에는 왕의 마정석이 두 개나 들어가 있다. 각각 21조 마력과 19조 마력이었다.
엄청난 횡재였는데 앞으로 이걸 쓸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해피엔딩으로 몬스터 사태가 끝나도 못 쓰고, 배드엔딩으로 우리 모두가 쓸려나가도 못 쓰니 말이다.
그 외에도 싸움을 앞두고 여러 가지를 점검했다.
그리고 대천사들과 공격에 대해 이런저런 의논을 나눴다.
이건 마치 보스 레이드 같은 상황이라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 속과는 전혀 다르겠지만.
“곧이다.”
그때 메타트론이 경고하고 나섰다. 이런저런 논의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대천사들은 저마다 독문병기를 꺼내들고 팽팽히 긴장한 상태였다. 이틀 전에 몬스터의 대군을 상대로 무쌍의 모습을 보이던 게 거짓말 같아만 보인다.
콰지지지직! 쿠아아앙!
하늘 위에서 전격의 비가 작렬하며 우리들에게 내리꽂힌다. 하나 하나가 엄청난 에너지를 담은 번개가 수천 가닥이나 한꺼번에 떨어진다.
그 때문에 일대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이건 딱히 누군가 우리를 공격한 건 아니고 거대한 에너지가 워프 게이트를 통해 튀어나오면서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우리는 황급히 방어막을 전개해 몸을 감싸야 했다.
저 번개를 잘못 맞으면 나라도 통구이가 되고 만다. 아니, 팔 다리 한쪽이 터져나가면서 타닥타닥 타오를지도 모르지.
콰앙! 캉! 콰앙!
연달아 계속 번개가 떨어지는 게 어지간한 불꽃 축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그러면서 하늘 한 가운데서 새하얀 에너지가 뭉치기 시작한다.
우주를 가로질러온 정보를 바탕으로 에너지가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걸 방해해야 한다.
“모두 한 곳을 일제히 공격하십시오!”
내 명에 대천사들이 뭉치고 있는 에너지체를 점사하기 시작한다. 마치 대공 미사일 수십 발이 동시에 발사되는 것 같다. 이 전투의 지휘는, 다수로 하나를 상대한 경험이 많은 내가 맡기로 했다.
콰아앙! 쾅! 쿠아아앙!
나는 사전에 이때 최대한 강력한 공격을 펼치라고 주문했다. 이후 전투가 벌어지면 지금 같은 여유도 없을 거고, 에너지체가 뭉치는 과정에 손실을 발생시켜 카르막스의 힘을 떨어뜨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대천사들은 오래 힘을 모아야 하는 크고 강력한 공격들을 퍼부을 수 있었다.
대부분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투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공성전에나 어울릴 듯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정 타켓을 상대로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기에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성공적입니다!”
대천사 바라카엘이 쾌재를 불렀다.
준비된 일격으로 카르막스의 힘을 제법 날려버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침내 몸을 구성해 나타난 카르막스가 무지막지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세상에, 우리가 저런 존재와 싸우려고 했던 건가?
대체 온전한 힘을 가지고 왔더라면 얼마나 강했던 걸까. 각고의 노력으로 힘을 상당히 날려버렸는데도 저 정도니 말이다. 다들 나처럼 질린 듯 추가로 공격할 생각을 못하고 강신한 카르막스를 쳐다보는 중이다.
그는 공중에서 서서히 내려오더니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점검하고 있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다.
“이곳인가, 지구라고 불리는 행성이.”
카르막스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곧 허리를 숙이고 지면을 흙을 한웅큼 쥐더니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는 허공에 스르륵 흙을 뿌리고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좋은 행성이로군. 주변에 머리 큰 놈의 아이들이 악취를 풍기는 것만 빼면 말이야.”
머리 큰 놈? 무슨 소리냐고 메타트론에게 눈빛으로 묻자 그녀가 속삭이며 답한다.
“우리 주인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이쪽에선 저쪽 주인을 최저임금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체 무슨 소린지 알 길이 없다.
아마 뭔가 사연이 있겠지. 원래 별명이란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건 나중에 물어보자. 내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너희들 제법 구체적인 형상을 하고 있구나. 원래는 빛이나 연기 같이 막연한 모습이었는데 말이야.”
카르막스는 주변의 대천사들을 보며 놀랐다는 듯한 몸짓을 해 보인다.
“재밌게도 인격 역시 갖게 된 걸로 보이는군. 그 등에 날개 달린 형상은 뭐지? 혹시 이 별의 신화 속에 나오는 자들의 모습인가? 거기 날개 없는 자는 이 별의 원주민으로 보이는군.”
카르막스는 손끝으로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그나저나 참으로 여유만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포위된 상황인데 대천사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추리력까지 뛰어난 걸 보니 머리까지 좋아 보인다.
지금까지 만난 적 중 가장 벅차고 어려운 상대였다.
대체 어떻게 요리해야 좋을까?
“그나저나….”
유들유들 말하던 카르막스의 태도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이 몸을 부른 녀석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분명히 여기 있어야 할 텐데….”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이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너 말이야, 원주민. 네놈 손에 나를 부른 이들의 피가 아직도 묻어 있구나. 이것에 대해 해명을 듣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카르막스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숨이 다 막힌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건 늘 내가 극복해 오던 거였으니까. 곧 마음이 진정됐다.
“따로 해명할 건 없다. 너도 이 핏자국 중의 하나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