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31
00131 6-1. 만주로 =========================================================================
내 말에 카르막스는 크게 웃는다.
“크하하하! 재밌는 놈이로군. 제법 참신하기도 하고. 나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냐?”
“나는 언제나 강한 적과 싸워 이겨왔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마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말하는군. 눈앞에서 이 힘을 느끼고 그리 배짱을 부리지 못하는데.”
허세라면 허세가 맞다.
허세는 강적과 싸울 때 좋은 것이지만 실제로 사용하긴 쉽지 않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와중에 그 정도의 담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할까.
물론 그런 계획적인 허세도 쳐 맞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그럴싸하게 놀리던 입에선 비명 밖에 터져 나오지 않게 된다. 카르막스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유들유들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 날개를 뽑는 재미가 있겠군.”
단순히 걸어오기만 하는데도 팔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압력이 장난이 아니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 때문에 움직이는 게 괴상했다. 하지만 그런 동작도 두려움 때문에 전혀 실소할 수 없었다.
본래의 힘을 꽤 상실한 채 도착했음에도 이렇단 말인가.
“계획대로 하겠습니다!”
현현을 하며 외치자, 대천사들이 미리 상의한 포지션대로 움직인다. 메타트론, 가브리엘, 라파엘, 바라카엘이 일단 앞으로 나가 카르막스와 맞선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지는 우리엘, 라미엘, 나나엘, 카마엘은 거리를 두고 마법을 부렸다. 공격마법이나 지원마법 등 가능한 수단은 모조리 동원했다.
나는 일단 상황을 조율하다가 전방에서 싸우는 메타트론과 합류했다.
콰아아! 카아앙! 캉!
마력이 충돌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이건 정말 초월적인 수준의 싸움이었다.
처음에는 팽팽한가 싶더니 카르막스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자 상황이 어려워졌다.
카르막스는 라파엘의 어깨를 잡고 가브리엘에게 밀더니 들고 있던 검으로 단번에 둘을 꿰뚫어 버린다. 그리고 그 검에서 곧 강력한 화염과 전격이 발생한다.
라파엘과 가브리엘은 순식간에 전신이 불과 전기로 뒤덮혀 비명을 질러댔다. 아름다운 깃털이 빠르게 타올라, 마치 그들은 화염의 날개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메타트론은 그 틈에 곧장 카르막스는 손목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카르막스는 남은 왼손으로 메타트론을 강타했다.
퍽!
뭔가 뼈가 잔뜩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메타트론이 수십 미터는 날아가 근처의 바위를 부수며 뒹군다.
그녀의 처지가 걱정스러웠지만 자세히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쿠른코의 검으로 삼천베기를 사용했다.
부우웅!
강력한 검격에 카르막스가 뒤로 물러난다.
칼끝이지만 그의 얼굴에 혈흔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제법이군. 깃털 달린 날개들보다는 네가 낫구나, 원주민.”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서둘러 칼을 뽑고 치료가 이어졌지만 오래 정양해야할 중상이었다. 하지만 숙적에 대한 적개심인지 무기를 잡은 그들의 손에는 힘이 아직 잔뜩 들어가 있었다.
바위에 처박혔던 메타트론 역시 먼지를 털어내며 걸어 나온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몸을 추스를 동안 강공을 펼쳤다. 하지만 곧 쿠른코의 검이 카르막스에게 붙잡힌다.
“제법 괜찮은 물건이군. 하지만 이 몸에겐 어림없지.”
카르막스는 단번에 쿠른코의 검을 부러뜨려 버렸다.
깡!
대군주급 몬스터의 몸을 10년이나 벼려서 만든 검도 그에게 무용했다. 하긴 그는 대군주급은커녕 왕보다도 상위의 존재니 말이다.
나는 쿠른코의 검이 분질러지는 순간 미련 없이 포기하고는 태양신격의 방패를 그의 흉부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곧장 태양광 폭사를 사용했다.
번쩍! 하고 빛이 작렬하자 처음으로 카르막스가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을 흘렸다.
“크으윽!”
역시 이 방패만은 제대로 먹힌다.
몸이 그을린 카르막스가 분노에 차 일격을 날려 왔지만 나는 온전히 막을 수 있었다.
뒤로 30미터쯤 밀려났지만. 날아가던 나를 메타트론이 뒤에서 받아주었다.
“날 놀라게 하는군! 원주민! 좋아, 일단 주변을 정리한 뒤 철저히 밟아주지!”
분노를 감추지 않는 카르막스는 곧 가브리엘과 라파엘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우리 중 제일 강한 메타트론을 노리려 했으나 내가 필사적으로 방패로 막자 곧 공격 대상을 바꾼 것이다.
물론 나는 가브리엘과 라파엘에게도 태양신격의 방패를 이용해 도움을 주려 했지만, 혼자 셋이나 커버하긴 무리였다. 게다가 상대는 나랑 동급도 아니고 압도적인 강자이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를 따돌린 카르막스는 곧 가브리엘에게 압도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죽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원하고 있는 대천사들이 공격마법으로 견제해 주고 힐링까지 퍼부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카르막스는 육체적인 피해는 그냥 무시하고는 단번에 가브리엘의 목을 날려버렸다.
“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대천사가 이렇게 쉽게 죽다니. 더군다나 가브리엘은 대천사 서열3위가 아닌가.
하지만 불행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세를 올린 카르막스가 뒤쪽에서 마법을 쓰던 대천사들을 덮친 것이었다. 대천사들은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마치 양떼를 헤집는 늑대처럼 카르막스는 종횡무진이었다. 메타트론은 그를 막기 위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화염검을 휘둘러댔다. 나 역시 뒤따르려는데 라파엘이 어깨를 잡아 온다.
“유 위원님 틀린 것 같습니다. 메타트론과 함께 도망쳐 후일을 도모해 주십시오.”
라파엘은 전투를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혼자 비겁자처럼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나는 싸우고 있는 메타트론을 보며 도주를 거부했다.
하지만 라파엘은 남은 인원이라도 수습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방법이 있는 거냐고 눈길로 묻자 그는 고개만 끄덕인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무척 고심했다.
끝까지 싸우고 싶었지만 이 전투는 이미 희망을 잃은 상태였다. 고민하는 사이에도 역행의 대천사 카마엘이 사망하고 말았다.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파엘이 왕의 마정석을 하나 건네 달라고 부탁해 왔다. 서둘러 마법 주머니에서 빼서 주자 라파엘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카르막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나는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고 뒤로 라파엘이 따랐다.
우리 둘은 곧장 카르막스에게 나아갔다. 돌격해 오는 우리를 보며 그는 비웃음을 머금는다.
“어리석은!”
카르막스는 곧장 내게 강력한 마법을 쏘아냈으나 나는 그걸 방패를 써 되돌렸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아무리 태양신격의 방패가 대단해도 마법을 튕겨내는 게 아닌 되돌리는 거면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각도도 되돌려야 한다.
나는 그간 단련된 전투의 기예로 어렵사리 이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 틈에 라파엘이 튀어나가 카르막스에게 매달린다. 나는 그 순간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자폭이었다.
왕의 마정석을 달라고 한 것도 자폭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입니다! 모두 피하십시오!”
라파엘이 소리치자 사태를 파악한 대천사와 내가 황급히 뒤로 빠졌다. 말리기도 늦은 상황이었다.
사방이 빛에 휩싸이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마력의 스파크가 잔뜩 튀는 가운데서 카르막스를 붙잡고 있는 라파엘의 모습이었다.
안타깝지만 그걸로 카르막스는 죽지 않는다.
라파엘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시간 벌기다.
폭발이 일어나는 동안 전투에서 살아남은 우리는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했다. 다들 라파엘의 희생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카르막스의 위력에 질린 기색들이 역력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메타트론, 미카엘라에게 연락을 넣어. 최후 수단을 사용하라고.”
“알겠다.”
이제 천사들이 귀환을 할 수 있든 없든 답이 없었다.
이미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그런데 도주도 쉽지 않을 듯했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우리 뒤쪽으로 강력한 기운이 잡혔다.
“세상에! 이런!”
“맙소사.”
대천사들이 탄식을 터뜨린다.
만주의 쑹화호를 막 지나고 있는 우리는 곧 따라오고 있는 카르막스에게 붙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이제부터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겠습니다. 살아서 서울에서 봅시다. 이대로 다 함께 도망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일부라도 살아 돌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내 의견은 합리적이었기에 다들 동의해줬다.
적어도 화뎬시까지는 도망갔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따라잡혔다. 그 자폭 공격이 대단했음에도 엄청나게 회복이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다들 무사 귀환을 빌겠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했다.
메타트론은 나와 함께 움직였다. 우리는 이체동심異體同心의 관계라 떨어질 수 없었다.
일단 우리는 함께 빠르게 도망갔다. 한테 카르막스의 기척이 우리만 집요하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절로 혀가 차졌다.
“우리를 노릴 작정이네.”
안타깝게도 카르막스는 메타트론과 내게 제일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따라잡힐 것 같아 걱정이다.
메타트론은 곧 근처에 있는 산으로 숨어들자고 했다.
“소용없는 거 아냐? 녀석은 이쪽 기척을 느끼고 따라오는 것 같은데.”
“본녀가 아무 대책도 없이 산으로 가자고 했겠느냐? 따라오면 안다.”
갑자기 엄청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메타트론은 노량진 신성지에서 힘을 회복하며 여러 능력을 많이 개발했다고 한다. 그 중에 은신하는 능력도 있었다고.
“정말? 너답지 않은데?”
“그래, 하지만 지난 경험은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려 보거라.”
그때 메타트론은 대군주급 몬스터와 군주급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었다. 상당히 위험했었다고 할까.
“힘만 믿던 본녀는 솔직히 제대로 혼이 났지. 그래서 자랑인 힘을 잃어버렸을 때에도 대책이 필요하단 사실을 절감했느니라.”
“너답지 않게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군.”
“그래, 본녀답지 않은 것이었지.”
메타트론은 꽤 옹고집 성향이 있어서 은신을 익힌다는 걸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게다가 자기의 강한 힘 탓인지 싸움에서도 전술은 단순하다. 오로지 공격 지향적이라고 할까.
노량진 신성지에서 힘을 회복하면서 상당히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덕분에 꽤나 정교한 은신 마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나보다 강한 존재의 감각도 피하게 만든 거니 지금 상황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카르막스의 감각을 속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00미터까지 근접한다면 은신 마법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보이지 않게 산에 숨자고 하는 것이다.”
잘하면 카르막스를 피해 도망칠 수 있겠다.
암담하기만 했는데 메타트론이 뜻밖의 해법을 제시하자 희망이 샘솟았다.
우리는 나무로 무성한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대를 관찰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어느새 카르막스의 기척은 무척이나 가까워진 상태였다.
“곧 나타나겠구나.”
나는 긴장으로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에서 커다란 존재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오는 게 보였다.
카르막스는 팔다리가 굉장히 길고, 허리까지 긴 괴상한 체형이었다. 그래서 자기 몸을 제대로 못 가눠서 손을 앞으로 짚고 4족 보행 동물처럼 움직였다. 그러다 한 번씩 개미핥기처럼 두 팔을 벌리며 일어나서 양손에 쥔 커다란 칼을 휘둘러댔다.
아니면 긴 팔을 이용해 상대를 낚아채길 즐겼다.
참 괴상하고 기형적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강한 게 문제랄까.
“당황스러운 것 같구나.”
메타트론은 달리다 멈춰서서 사방을 보는 카르막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창 추적하다가 우리 쪽의 기감이 갑자기 사라져서 저런 모양이다.
곧 긴 팔로 땅을 두들기며 화를 내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긴 그럴 테지. 자기 같은 강자가 상대를 놓쳤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곧 카르막스는 우리가 숨은 산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큰일인데.”
왜 산으로 오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판단을 할 법도 했다. 기척이 갑자기 끊겼으니 멀어졌다기 보다 어딘가로 숨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평지보다는 산이 숨을 곳이 많기도 하고.
어차피 뒤질 곳도 없으니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낭패로다. 차라리 호숫가의 수풀 속에 숨는 게 나을 뻔했구나.”
“아직 들킨 건 아니잖아. 산으로 와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
100미터까지 접근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다.
그렇기에 맘을 놓고 있는데 카르막스는 점점 우리와 가까워져 왔다. 이건 그냥 순전히 우연이었고, 우리 입장에선 운이 나쁜 상황이었다.
녀석이 별 생각 없이 이동하는 경로에 우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러 길이 없고 접근하기 불편한 곳에 숨었는데 카르막스는 기다란 팔다리를 이용해 불편함 없이 산에 오른다.
“지금이라도 슬금슬금 움직여 빠지는 게 낫지 않을까?”
“움직이면 바로 걸리고 말 것이다. 저 정도의 거물이 기척만 감지한다고 보는 것이냐? 움직임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게 틀림없다. 지금도 이 산의 광범위한 반경의 기척을 스캔하고 있는 것 같구나.”
지독한 상황이다.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그저 저 괴물이 100미터 안으로 접근하지 말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이대로라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그때 산을 뒤지던 카르막스 옆을 누군가가 팍 튀어나와 빠르게 도망간다.
“뭐야?”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산을 뒤지던 카르막스조차 긴 팔다리를 당기며 뒤로 훌쩍 물러난다. 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경악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튀어나와서 도망가는 존재가 나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또다른 유제아가 튀어나와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카르막스는 노성을 터뜨리며 그를 뒤쫓았다. 지금껏 접근해 오던 우리의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뭐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다 나는 사태를 알아채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