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35
00135 6-3. 뒤틀어진 세계 =========================================================================
지구의 지배자라?
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혼자 그런 상상 한 번 안 해본 건 아니다. 지구의 운명을 이 손안에 쥐고 마음대로 해본다니, 재밌지 않는가.
“생각해 볼게.”
몬스터 사태 종결 후도 고려해 봐야겠지만 아직은 확실히 이르다. 이번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우선 나는 카르막스를 토벌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만주로 이동하면서도 계속 정찰을 보내 적의 동정을 살폈다. 지금 카르막스가 뭘하는지 아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정찰병들은 속속 상황을 전해왔다.
“상당한 수의 몬스터가 집결해 있습니다. 대략 1만은 넘습니다.”
한 번 패퇴해 병력이 흩어진 몬스터 진영이다. 1만이면 급하게 모은 것치고 상당한 수였다. 그래도 싸움은 어디까지나 나와 카르막스의 대결으로 갈릴 거다. 몬스터고 천사고 이 결전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언가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구조물?”
“네, 자세한 용도는 모르겠습니다만.”
“자네가 보기에는 뭘로 보이던가? 그리고 같이 같던 인원들의 의견은?”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보기에 그건 커다란 시합장 같았습니다.”
시합장이라.
카르막스에게 그게 왜 필요한 걸까.
어쩌면 나와의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합장까지 만들 필요가 있는걸까. 쓸데없이 거창한데.
“녹화해 온 게 있으면 보여보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영상은 정찰병의 말대로 마치 시합장과 비슷해 보였다.
이상하군. 어쩌면 생긴 거랑 다르게 침입자들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만드는 마법진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함부로 돌격해서 큰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나는 만주로 가면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계획을 짰다.
우리는 퉁화시와 바이산시를 지났다. 그리고 쫓기며 지났던 쑹화호도 지났다.
“이대로 쑹화강을 지나 지린시로 향하면 됩니다.”
길 안내를 맡은 천사가 내게 설명했다. 쑹화호에서 이어진 쑹화강을 따라가면 지린시가 나온다. 지린시 외곽의 평지에 카르막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적의 분위기는 어떤가?”
“느긋하더군요.”
“느긋해?”
“그렇습니다. 정찰을 나갔던 저희를 발견하고도 신경을 안 쓸 정도였습니다.”
올 테면 오라 그건가.
좋아, 그렇다면 가서 결판을 내자. 나는 천사들을 이끌고 지린시 근교로 나아갔다.
중간중간 몬스터들을 만났지만 우리 군세에 놀랐는지 황급히 줄행랑칠 뿐이었다. 그리고 지린시 외곽에 다다르자 우리는 아군보다 다섯 배는 많은 적과 조우하게 됐다.
하지만 천사들 중 누구도 그 점을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저쪽은 흩어진 군세를 급한 데로 끌어모은 모습이지만 이쪽은 정예만 모였다. 다섯 배라고 해도 두려울 건 없었다.
결국 이 전투의 성패는 내게 달렸다.
“정말 시합장 같은 모양인데.”
좌우로 갈라진 몬스터들 가운데 거대한 시합장 같은 시설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카르막스가 홀로 서 있었다. 멀리서 보는데도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긴 체형이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온다.
시합장은 둘레를 따라 9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천사들과 저게 덫이 아닌지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나 덫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진실의 시야를 사용해 봐도 먹통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몬스터 진영에서 사신이 왔다.
카르막스는 자신과 일 대 일로 겨루고 싶다면 응하겠다고 해왔다. 내가 시합장에 대해 의심하자 몬스터 사신은 그런 걸 예상했다는 듯 대답했다.
“원하시면 시합장 바깥도 상관없다고 하십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더 의심하기도 애매해졌다.
단순히 폼잡고 싶어 그럴싸한 무대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북진했을 때부터 이미 휘하의 정찰병을 통해서 상황을 전달받고 있었을 테니, 승리의 순간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내가 혼자 너무 의심암귀疑心暗鬼에 빠져들었던 걸까?
어차피 양측 부대의 싸움이 별 의미가 없는 이상, 기습하고 유인하고 매복하는 전술적 선택도 필요없는 상황이다. 지금 카르막스나 나나 부하들을 모은 건 어찌 보면 응원단과도 같았다.
“좋다, 가겠다.”
우리가 접근하자 몬스터 무리들이 뒤로 빠졌다. 그래서 결국 시합장 가운데의 카르막스와 나를 천사와 몬스터가 콜로세움의 관중들처럼 구경하는 형국이 되었다.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너의 마지막 무대가.”
곱추처럼 구부정하게 있던 카르막스는 몸을 일으켜 팔로 보란 듯 주위를 가리켰다. 그가 굽어 있던 허리를 펴자 키가 어찌나 큰지 마치 곰이 제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거창하군.”
“내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이 정도 시설을 창조하는 것 말이야. 그건 그렇고 꼬리 말고 도망간 것치고는 꽤 당당히 돌아왔군. 게다가 열흘도 안 돼서 이렇게 변해서 오다니 정말 놀라워. 이거 잘못하다가는 나도 위험하겠는걸.”
그렇지만 말투는 전혀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그 사이 어떻게 힘을 전송받아서 온 것 건가. 게다가 너는 더 이상 이 별의 원주민이 아니군?”
“네놈 덕분에 말이지.”
더는 잡담을 나누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에 바로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냈다. 그러자 그 화려한 모습에 나는 속으로 좀 놀라고 말았다.
원래 태양신격의 방패는 화려하게 양각된 원형 방패였는데, 지금은 찬란한 빛을 저절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 신물은 사용자의 힘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더니 역시 그런 모양이었다. 필멸자가 들 때는 보통 방패와 같지만, 그 이상의 존재가 사용하면 본래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하니 내가 그동안 좋다고 쓰던 태양신격의 방패는 원래 모습에서 상당히 열화된 형태였던 거다.
물론 지금 이 모습도 원형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카르막스와는 싸우기 충분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떻게 네놈이 그런 신물을 들고 있는 거지!”
카르막스는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전에도 대단한 방패를 들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니, 전의 것과 같은 물건인 거 같은데.”
방패의 빛이 따갑다는 듯 카르막스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물러난다.
“그렇군, 알겠어! 역시 사용자의 위치에 맞게 형태가 변하는 신물인 건가.”
오면서 스이엘에게 추가로 설명을 들었는데, 보통 신물이란 그런 식이란다. 어리석은 인간의 손에 우주적인 파괴 병기가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미국에서도 보면 애들이 가끔 총기 사고를 일으키지 않나. 그러니 이런 신물은 사용자의 위치에 맞게 힘과 능력이 달라진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자에게만 그 정도의 힘을 빌려주는 것이다.
“교활한 놈! 간악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그 방패를 믿고 여기까지 쳐들어온 것이구나!”
갑자기 출현한 방패 때문에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는 듯 카르막스는 분노했다. 추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노여움이 가득하다.
나는 더 기다릴 것 없이 태양신격의 방패를 처음으로 운용해 보았다. 방패의 사용법은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지만, 쥐는 순간 자연히 알 수 있었다.
마치 사용법이 머릿속에 인스톨된 듯한 느낌이다.
왼손에 든 태양신격의 방패를 들어 올리고 힘을 집중하자 갑자기 하늘 위의 태양빛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뭐지! 갑자기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여유만만했던 카르막스는 내가 강화된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내자마자 신경질적인 인물이 되어버렸다.
전형적인 소인배라고 할까.
한껏 거물인 척하지만 조금만 여유가 없어져도 이리 과민반응하는 것이다. 그는 긴 팔로 나를 덮쳐왔다.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저 메뚜기 같이 긴 다리로 성큼 걷고, 그만큼 긴 팔을 휘두르자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하늘에서 집중된 태양광이 작렬하더니 덮쳐오는 그를 정통으로 그을렸다.
“크아아아악!”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카르막스가 발광을 했다.
이건 단순히 그을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곤충을 한여름에 돋보기로 태우는 듯한 느낌이다.
카르막스의 전신에서 엄청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연막탄이라도 터뜨린 듯하다. 그리고 곧 불길이 일어나더니 카르막스를 태워 나간다.
“이 고약한! 끄아아악!”
놀란 카르막스는 사방으로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그러나 집중된 태양광도 움직이며 집요하게 카르막스를 따라간다. 마치 누군가 위에서, 도망가는 벌레를 향해 돋보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대로만 계속한다면 카르막스를 구워버리기 충분했으나, 강력한 기술이 으레 그렇듯 이것도 지속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엄청난 규모의 마력사용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는 중간에 머리 위로 들고 있던 방패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계속했다가는 마력 탈진이 일어나고 오히려 내 쪽이 손해가 된다.
게다가 이미 카르막스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일격을 날린 듯하고. 카르막스의 몸은 태양광이 사라진 지금도 연기가 가득하다.
툭.
일부 타버린 살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땅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제법 근사해졌군.”
“감히! 감히 내게! 이놈! 불멸자를 능멸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불멸자라고 해도 이들도 역시 죽는다.
언젠가는 되살아날 수 있지만, 목숨을 잃으면 오랜 시간 물질계에서 추방된다고 했다. 그러니 아무리 불멸자라고 위세를 떨어도 카르막스에게도 죽음은 가볍지 않다.
부우웅!
카다란 손이 내게 떨어져 내린다.
그 짧은 순간에도 똑똑히 보았는데 카르막스의 손톱은 불길한 자주색이었다. 아마 저 손톱에는 극악한 독이 묻어있는 것 같다. 메타트론도 일격을 당한 뒤 몸져눕지 않았나.
물론 내가 그 정도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았다.
카앙!
방패로 막자 마치 금속 무기가 때리고 지나간 듯한 소음이 울렸다. 그리고 순간 눈앞으로 독이 수증기처럼 퍼진다.
“큭!”
황급히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빠졌다.
이 망할 놈이 독을 사방에 뿌려대는 기술도 가진 것 같았다.
그러나 카르막스는 내 그런 움직임을 계산하고 있었다.
“잡았다! 이놈!”
독운을 피해 뒤로 뛴 나를 잡아챈 카르막스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웃어댄다.
“크하하하하!”
그는 내 손에서 태양신격의 방패를 빼앗더니 뒤로 집어 던진다. 태양신격의 방패를 쥐는 순간 뜨거웠던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커다란 입을 벌리고 좋아했다.
“감히 신에게 반항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천천히 괴롭히다 죽여주마!”
신?
어처구니없는 소리.
이런 놈이 신이라니 우주가 웃겠다.
나도 스이엘에게 설명을 들었다. 신격이라고 불리는 무리는 엄밀히 말하면 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부류는 자신의 자긍심 때문에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무지 강한 괴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신?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이놈! 끝까지 무례하구나! 어디 팔다리가 하나씩 뽑히고 나서도 그럴 수 있나 보자!”
“글쎄, 신이면 자기 뒤통수 정도는 볼 수 있어야지.”
“뭐?”
퍼어억!
강렬한 타격음이 울린다.
“끄아악!”
볼품없는 비명을 내지르는 카르막스의 한쪽 눈알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게 지금 그의 뒤통수에 태양신격의 방패가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방패를 조종하는 기술은 굳이 인간을 버리기 전에도 탁월했던 나다. 빼앗은 방패를 부주의하게 뒤로 던진 게 이놈의 실수다.
아마 나와 여러 차례 치고받았던 기존의 군주급 몬스터들이면 이런 실수는 안 할 거다. 번쩍이는 방패를 든 헌터가 자기 방패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단 소문을 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카르막스에겐 그런 점을 설명해줄 군주급 몬스터가 없었다. 그들을 이쪽에서 다 죽여버렸으니까. 일반 몬스터들은 만주 쪽 녀석들이라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하다. 설령 아는 게 있더라도 카르막스가 일반 몬스터와 대화를 나눌 리도 없고. 듣자니 카르막스는 자신의 위치 때문에 절대 일반 몬스터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카르막스의 손아귀에 힘이 빠진 걸 이용해 빠져나와서는 즉각 방패에 힘을 집중했다. 그러자 뒤통수에 박힌 방패가 갑자기 강한 마력을 머금고 강렬하게 진동한다.
“이놈! 이 벌레같은 놈이 감히!”
카르막스는 사방으로 손을 휘저으며 보이지 않는 나를 찾으려 악을 썼다. 그도 그럴게 방패가 진동하면서 나머지 눈알도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마력을 머금은 태양신격의 방패는 곧 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카르막스의 머리를 태우기 시작했다.
카르막스는 머리에만 불이 붙어서 사방으로 날뛰어댔다.
마치 화염의 관을 쓰고 기뻐하는 미치광이 왕과 같은 모습이었다.
“끄아아악! 크으으으! 감히! 신에게! 나는 신이란 말이다! 네깟 놈과는 차원이 다른 신이야! 신이라고! 나는 지배하는 존재다. 그렇게 태어났어! 너희 열등한 놈들과는 혈통이 다른 선택받은 존재라고!”
콰아앙! 콰앙!
돌이 깔린 시합장의 바닥이 카르막스의 무지막지한 일격에 부서져 나간다. 그는 악을 쓰며 보이지도 않는 나를 공격하려 했다.
“고귀한 혈통이란 말이다! 너희 쓰레기들 수억 마리와도 바꿀 수 없는! 네놈들의 존재는 내게 지배당하고 정복당하기 위해 태어난 걸 왜 모르냐! 감히 노예가 신을 공격해!”
우리의 고귀하신 신께서는 갈수록 추한 몰골이 되어갔다.
그리고 방패에 집중되던 마력이 마침내 최고조가 되었을 때 폭발이 일어났다.
퍼엉!
폭음과 함께 카르막스의 머리가 깨끗하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