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39
00139 6-3. 뒤틀어진 세계 =========================================================================
***
나는 빼앗은 담당 영역을 흡수했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의심의 반신격 유제아.
그게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었다.
이제 우주적 질서들의 말석에나마 서게 된 것이다.
반신격이 되자 기존 인간으로서, 대천사로서 얼마나 약했는지 실감하고는 헛웃음이 터졌다.
이런 힘을 갖고도 진 건가, 카르막스.
하긴, 그는 전송 중 방해를 받아 자기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긴 했다. 그리고 음모라는 담당 영역은 모사꾼에게 어울리지 전투에 재능을 발휘하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보니까 뒤에서 음험한 짓이나 하는 인상인데 모처럼의 현장 일이 안 맞았나 보다.
외형과 다르게 화이트칼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상태는 어떤가?”
일단 유송연부터 보러 갔다. 폭발 마법진보다 이쪽이 좀 더 화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5분을 채 견디지 못할 듯합니다. 이제 한계네요. 죄송합니다.”
더는 그녀의 숨결을 붙잡고 있기 어렵다는 듯 미카엘라가 사과한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카엘라는 최선을 다 해줬다.
“네게 맡긴 일을 잘 해줬구나. 고맙다.”
유송연을 구하기 위해 나는 몸안의 ‘신격의 정수’ 일부를 떼어났다. 이것은 신격의 근간으로 신격이 신격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천사들의 주인에게 받은 힘이 제대로 발아를 못하고 있다가 의심이란 담당 영역과 만나면서 신격의 정수로 자라났다.
이건 우주적인 보물이며 신격에겐 생명 그 자체이며 힘이다. 하지만 유송연에겐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떼어난 신격의 정수 일부를 죽어가고 있는 유송연의 입가로 가져갔다.
이미 그녀는 반쯤 기절한 상태다. 그래서 정수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듯했기에 결국 내가 입에 물고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을 맞추며 혀를 사용해 그녀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유송연의 혀는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것만 봐도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기 쉽다. 나는 정성을 다해 내 혀로 그녀의 혀를 마찰했다. 신격의 정수를 녹여가며 그녀의 몸 안에 온기가 가득 들도록 말이다. 점점 유송연의 혀가 따뜻해지고 매끄럽고 달콤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아!”
가벼운 한숨과 함께 유송연의 시체토막 같던 몸이 들썩인다. 그리고 긴 숨결이 흘러나왔다. 그 숨결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주인님.”
다시 뜬 그녀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괜찮아?”
“잠깐 사이에 더 잘생겨지셨네요?”
반신격에 올라서 외모가 더 멋져진 건지도 모르겠다.
거울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농담하는 거 보니까 살만한 가 보네.”
유송연은 일단 회복이 필요했기에 천사들에게 맡기고 마법진을 살피러 갔다.
“끔찍하군.”
반신격이 된 탓에 비로소 이 마법진의 위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게 터지면 정말로 한중일, 동양 삼국이 다 날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반신격이 된 탓에 해체가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폭발을 상당히 억누를 수 있지만, 아예 터지지 못하게 막는 건 불가능했다.
이미 마법진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더욱 억눌렀다가는 반발력 때문에 더 참담한 결과뿐이었다.
나는 즉각 신격의 영민한 두뇌로 예측되는 폭발력과 피해 반경을 계산했다.
반신격이 된 뒤 슈퍼컴퓨터도 뛰어넘을 연산력을 가진 나이기에, 순식간에 관련된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만주 일대가 날아갈 것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하니 당장 수하들을 대피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런 결과를 발표하고 모두 한반도로 피신할 것을 명했다.
“홀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 모두 서둘러 다오.”
나는 남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익숙한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일이라 혼자하려 했는데 그러지도 못하게 됐다. 어차피 말려도 들을 녀석이 아니니 함께하는 수밖에.
“철수한다! 모두 철수한다!”
천사들은 서둘러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기왕 결정한 거 굼뜨게 굴수록 방해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유송연은 가기 전에 내 손을 꽉 잡는다.
“주인님, 무사하셔야 해요.”
“걱정하지 마.”
유송연에겐 보답할 일이 많다. 나는 미카엘라에게 돌아가자마자 유송연을 입원시키라고 했다.
“쉬고 있어. 돌아가자마자 문병 갈 테니까.”
“고마워요, 주인님.”
그렇게 모두가 떠나자 나는 주변의 석재를 뜯어내 바닥의 마법진이 훤히 드러나게 했다.
인간이던 시절처럼 손으로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 의지만으로도 무거운 것들을 한꺼번에 들 수 있었다. 주문 능력과는 다른 일종의 염동력으로, 신격이면 기본으로 가진 것이다.
본격적으로 석재를 뜯어내자 좀 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익숙한 기운의 존재가 도착했다.
“뭐야? 하나인 줄 알았는데 둘이네?”
비슷한 기운이라 착각했다.
“형부, 저희는 원 플러스 원 같은 거예요!”
“뭐야? 나중에 시집도 같이 오는 거야?”
“이놈, 유제아. 누가 마트에 파는 냉동식품인 줄 아는 것이냐!”
메타트론과 산달폰이었다.
나는 얼른 메타트론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괜찮은 거야?”
“괜찮다. 미안하구나, 늦게 도착했다.”
어차피 전력 외로 분류했던 터다. 미안할 것까지야. 그녀는 아직도 별로 안색이 안 좋긴 하다. 나는 일단 시간이 없어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는 기왕 온 거 도와달라고 했다.
“이 마법진을 억눌러야 해. 도와줄 거지?”
“물론이다.”
“그럼요, 형부!”
원래라면 위험하니까 이들도 다른 대천사처럼 대피시켜야 했지만, 어쩌겠나, 함께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그리고 돕는 대천사가 여럿이면 폭발시에 보호 마법을 걸어줘야 하기에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이 강한 이 둘이라면 이득이 더 클 것 같았다.
특히 서열1위인 메타트론의 힘은 왕과 같으니 기대가 크다.
나는 일단 주문이 이뤄질 절차를 반복해 설명하고는 함께 마법진 손을 잡고 섰다.
가운데 내가 서고 오른쪽에는 메타트론, 왼쪽에는 산달폰이 자리 잡았다. 나는 양쪽의 그녀들에게 말했다.
“이건 세 번째 이야기의 시작이야. 첫 번째는 평화로운 지구였지. 두 번째는 영화처럼 괴물들이 나타난 시대였고. 그리고 세 번째 과연 뭐가 될까?”
***
3년 뒤.
K방송국의 윤PD는 스탭들을 데리고 만주에 와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서는 한동안 도로만 있는 산악지대를 지났다. 그리고 몇 번 꾸벅꾸벅 존 뒤에 만주 평야의 초입에 닿았는데 그곳은 완전히 별천지였다.
“시작부터 장난 아니네요.”
옆에 있던 AD가 감탄을 터뜨린다.
그도 그럴 게 눈앞에 무수히 많은 거목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바오밥나무처럼 생긴 거목들은 대체 왜 저런 게 여기 있는지란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판타지 세계에나 어울릴 듯한 나무인데 말이야.
“저 나무들을 지나야 경계를 넘어갈 수 있어.”
윤PD는 아는 척을 하며 애써 흥분을 감췄다. 그러나 과거 같이 방송을 했던 유제아가 이 만주의 소유자가 됐단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유제아는 몬스터 사태의 종결자였고 이제는 천사들의 섬김을 받는다고 했다. 몬스터 사태가 끝난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 전인데, 그 끝에 대폭발이 있었다.
원래라면 중국까지 날아갈 막강한 위력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제아와 메타트론, 산달폰의 덕으로 만주만 날아가는데 그쳤다. 셋은 만주 일대를 광범위한 결계로 감싸 폭발의 위력을 막아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일 때문에 만주 일대의 시공간이 뒤틀려서, 마치 다른 차원처럼 변해버린 점이었다. 이 바오밥 나무 같은 게 잔뜩 심어진 경계 지대를 지나면 기후도 시간도, 주민도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가 나오게 된다.
세계인의 관심이 쏟아지는 지역이었으나 소문만 무성할 뿐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취재가 허락된 것이다.
이 세계적인 이슈에 윤PD는가 낙점된 건, 그가 과거 유제아가 출현한 방송을 맡았던 경험 때문이다. 면식이 있으니 아무래도 좀 낫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윤PD의 입장에서는 거물 중의 거물이 된 유제아가 자신을 기억할지도 의문이었다.
현재 유제아의 능력이면 지구를 멸망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유제아 본인의 힘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몬스터 사태 때 활약한 천사 군단이 그의 휘하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도 이 기묘한 집단에 대해서 뭐라 하지 못했다. 중국조차 만주의 무단 점거라며 불만을 한 번 노출했을 뿐, 그 뒤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단순히 유제아 집단의 강력한 힘 때문만은 아니다. 입 다물고 있어야 이득이 떨어지기에 그랬다.
왜냐, 이 만주에서는 몬스터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아직도 몬스터 사냥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경계 안쪽의 만주란 세계란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영원히 몬스터와 싸우는, 마치 발할라와 같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천사장 유제아와 몬스터의 왕 다르쿠다가 끝없는 싸움을 펼치고 있다고, 세계인은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몬스터 부산물이 외부로 판매되고 있는지라, 이미 몬스터 사업으로 큰 덕을 본 세계는 그들 집단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히려 몬스터 사태가 끝났음에도 몬스터 부산물의 공급이 끊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는 자들이 많았다.
***
한편 그 시간.
“주인님, 아! 아, 하세요. 아.”
초승달형 뿔이 난 몬스터형 여성이 내 앞에서 알랑방귀를 뀌고 있다. 이 대단히 아름다운 이종족 여성은 요즘 케이크 만드는 게 취미라고 했다.
지구에는 몬스터의 왕 다르쿠다란 이름으로 알려진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사실 빵과 케이크를 좋아하는 매우 여성스러운 몬스터다.
“음? 오늘 건 더 맛있네.”
“그쵸? 호호호.”
그녀의 이름은 유송연으로 나와 함께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동업자였다.
바깥 세상에는 우리 둘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치고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대저택에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나의 일부인, 신격의 정수를 몸에 품고 있는 대단히 가까운 존재다.
현재 몬스터의 왕 다르쿠다의 거주지로 알려진 거대한 성은, 사실 세트장 같은 걸로 내부는 텅텅 빈 상태다. 몬스터들이 그 앞에서 세레모니를 할 때는 유송연이 출동해 폼을 잡곤 했다. 마치 바티칸의 교황이 안 부러워서, 열성적인 몬스터들은 그녀 앞에서 헌터들을 상대로 최종 승리를 열렬하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유송연은 더욱 더 가열찬 전투를 독려하고는 내 저택으로 다시 돌아와 케이크를 굽는 일상을 이어갔다.
“주인님, 그런데 말이죠.”
“응?”
“슬슬 첩을 들이실 생각 없으신가요? 3년이면 신혼 생활도 파탄이 날 때가 됐는데요.”
3년 전 메타트론과 나는 결혼했다.
지구에 천사들이 남고 시공간이 일그러진 만주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후, 나는 모두의 축복 속에서 그녀에게 청혼했다.
반짝이는 회색머리칼의 그 귀여운 천사는 내가 오랜 시간 짝사랑하던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첫 만남부터 반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매우 기쁘게도 메타트론은 내 청혼을 흔쾌히 받아줬다. 그녀 역시 날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천사와 헌터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까지 꿀처럼 달콤한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에서 뭔가 유혹이 많긴 하지만 나는 남편으로서 열심히 정조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메타트론 말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는데,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몇몇 여자들이 틈만 나면 후처 자리는 비었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메타트론이 발끈하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도무지 포기를 몰랐다.
“뭐? 파탄? 지금 뭐라고 한 것이야?”
아차.
유송연과 노닥노닥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놀란 유송연이 내 입가에 묻은 케이크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다가 황급히 떨어진다.
“형님, 오셨어요?”
“누가 니 형님인 것이야!”
발끈하는 메타트론을 보고도 유송연은 능글능글하다.
“에이, 같은 가족이 될 사람한테 너무 쌀쌀맞게 대하지 마세요.”
“가족은 무슨! 그리고 몬스터가 무슨 사람이야. 초코우유 공장에 시찰을 다녀왔더니 그새를 못 참고 서방님께 들이대다니!”
발끈한 메타트론이 빗자루를 들자 그제야 유송연이 도망갔다. 그러자 메타트론이 볼을 좀 부풀리고는 날 책망해 온다.
“원, 서방님. 서방님께서 너무 성격이 좋으시니까 이렇게 날파리들이 꼬이는 거 아닙니까?”
“미안. 케이크까지 구워왔는데 매정하게 대하긴 뭐해서. 그래도 난 너뿐이니까 걱정하지 마.”
품에 끌어당겨 안고 머리를 쓰다듬자 메타트론이 화를 푼다. 그리고는 강아지처럼 파고들어 안겨온다.
“공장은 마음에 들어?”
“네, 정말 최고입니다. 제 평생 이렇게 훌륭한 선물은 받아본 적이 없답니다.”
며칠 전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선물을 고민하던 나는 초코우유 공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로봇으로 자동화되어 있어서 관리하는 인원은 필요하지 않았다. 전원만 올리면 공장에서 알아서 무한의 초코우유를 생산하는 시설이었다.
메타트론은 그걸 보고 기절할 듯 놀라서, 요즘 매일 공장을 돌아보곤 했다. 혹시라도 공장에 침입자가 생길까 엄중하게 마법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방님, 오늘은 1,000초코우유를 생산했답니다. 이걸로 저는 세계 제일의 부자예요.”
============================ 작품 후기 ============================
다음화가 마지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