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5
00015 1-4. 아름다운 시간은 계속된다 =========================================================================
원래라면 범인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이나, 전 스탯을 +75해준 덕에 감당할 수 있었다.
과연 신병神兵은 신병이구나 싶다.
지금 내가 사용하려는 능력은 태양의 분노란 것이다.
일시적으로 전방에 막강한 태양열을 투사한다, 라고 들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는 모른다.
“팀장님! 그 알 수 없는 방패로 뭔가 할 셈이라면,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
거대 벌레가 거의 앞까지 전진해 왔다.
앞으로 10초도 더 버티기 어렵겠다. 아니, 그 전에 이쪽의 탄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우우우우우웅.
방패가 계속 진동한다.
이제 조금만, 이제 조금만.
“팀장님!”
“도망가든 뭐든 해야 합니다! 이대로 다 죽습니다!”
팀원들이 비명을 질러댄다.
“개새끼들아! 멋지게 죽겠다며!”
내가 소리를 지르자 사방에서 욕설이 난무한다.
“씨발!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든 해보라고 팀장 새퀴야!”
“그래 좆같은 놈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진짜 거지같은 새끼들.
이런 생명의 위기에선 날 믿지 말고 도망을 치라고 좀.
그때 방패의 충전이 완료됐다.
“닥치고 모두 야투경 벗어!”
쿠르르르릉!
지하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 벌레가 우릴 덮쳐오던 그 순간, 새하얀 빛이 작렬한다.
어둠이 가득해도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완벽하리만큼 사방을 채우는 빛 앞에 시야가 완전히 날아갔다. 아니, 시야뿐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마비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져 도저히 이 시간이 풀릴 것 같지 않던 그때,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처럼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우리 앞은 불바다였다.
맹렬하지 않지만 넓게 퍼져 타닥타닥 타오른다.
원래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검은 덩어리 위에 붙은 불길은 오래가지 못할 듯했다.
사방에는 독한 연기가 가득 찼고 콘크리트 벽면은 그림자로 일렁였다.
“방독면 착용한다. 신속히.”
지하의 공기는 지독했다. 수십 초를 더 들이마시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방독면에 익숙했다.
모두 빠르게 착용하고는 불가로 몰려들었다.
-이 시커멓게 변한 게 설마 그 벌레입니까?
-기가 막히군요.
방독면에는 기본적으로 통신 장비가 붙어있는 탓에 팀원들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렸다.
-팀장님, 그 방패 가지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뭐라 대답해야 할까.
-설명하자면 복잡해. 일단 여길 신속히 벗어나고 나서 얘기하자.
다들 심경이 어안이 벙벙하리라.
헌터, 그것도 고위 헌터나 돼야 가능할 듯한 능력을 하이에나가 썼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게다가 신물에 가까운 이 방패는 또 무엇이고.
-그래도 일단 코어를 회수하는 게 좋겠습니다.
부팀장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현실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팀원들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대를 꺼내서는 앞의 시커먼 잔해를 헤집기 시작했다.
다행이 머리 쪽에서 금세 커다란 마정석이 나왔다.
오래 걸린다면 마정석이고 뭐고 안전을 위해 팀을 빼려고 했는데 다행이다.
“맙소사, 팀장님. 이 마정석, 측정기로 재보니 130억이 나왔습니다.”
주변에서 감탄이 터진다.
130억이라니. 그렇다면 이 죽은 거대 벌레가 3등급 몬스터는 된다는 소리였다.
“이게 얼마냐! 대박이다!”
“죽다 살아난 보상치고는 괜찮군.”
주변에선 엄청난 금액에 정신이 팔린 듯했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서 전율하고 있었다. 세상에, 위험 몬스터로 분류하는 3등급을 일격에 날려버리는 힘이라니.
3등급 몬스터라면 군소 도시 하나쯤은 혼자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단번에 태워버렸다. 나는 새삼 이 SS등급 마법 물품의 위력에 소름이 돋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 힘을 또 한 번 쓰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방패에선 에너지가 방전된 것 같았다. 스스로 다시 힘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는데, 역시 사용자가 보조해 주지 않으니 이런 모양이었다.
“부팀장, 마정석 챙기고 빨리 주변을 정리해. 이 지긋지긋한 지하에서 어서 나가자고.”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혹시라도 한 마리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팀원들은 손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였다.
***
노량진에 도착한 후 여섯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과거 학원으로 쓰였던 훌륭한 건물 안에 묵었다. 18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낡은 층별 안내판을 보니, 이 건물 전체가 학원이었던 모양이다.
새삼 과거 노량진의 성세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안산에 이런 학원가가 생겼다. 서울이 망하기 전이나 후나 공무원 시험 열풍인 건 똑같았다. 아니, 요즘은 더하다.
“왜, 더 자지?”
불침번을 서던 나는 예정보다 일찍 일어난 부팀장을 보며 물었다. 그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번 원정에 우리가 모르는 게 있습니까?”
단도직입적인 물음에는 나는 좀 양심이 저려왔다.
그렇지만 진실하게 대답해 줄 수는 없어. 미안하다, 부팀장.
“이번 원정은 평상시와 같아. 위험하지만 할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야. 내가 너희들을 속인 건 없어.”
“하지만 감춘 것은 있으시죠. 그 방패는 대체 뭡니까? 경황이 없어 제대로 묻지 못했지만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됩니다.”
“방패에 대해서는 미안해. 하지만 이건 팀원들을 속인 게 아니라 불필요해서 감춘 것뿐이다. 이 방패를 보면 평범하지 않은 일이 내게 관련된 걸 짐작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팀을 이탈한 뒤에 해결할 예정이야.”
대박의 기회가 와서 움직인 것뿐이라는 걸 설명했다.
“애초에 그런 사고만 없었다면 방패가 출현할 일은 없었을 거야. 일은 예정대로 잘 마무리됐겠지.”
내 개인적인 일과 팀은 무관하다, 그렇게 선을 그었다.
“말해주실 순 없는 겁니까?”
“나중에. 때가되면 얘기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부팀장은 할 말이 많은 얼굴이었으나 더 묻지 않았다.
역시 좋은 녀석이다.
결과가 어떻든 이런 좋은 녀석과 더 함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약간 비애를 느꼈다.
“정말, 정말 너희에겐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그건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기도 했다.
***
군주급 몬스터의 시체가 있는 곳은 동작구청 앞이다.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에서 도보로 불과 100미터 정도다. 동작구청까지 도착하자 주변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경계심 많은 부팀장까지 총기를 아래로 내릴 정도였다.
역시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에는 몬스터가 꼬이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린 가장 위험한 몬스터가 죽은 곳에서 안전을 얻었다.
무작정 신뢰하긴 어렵지만 레이더에 걸리는 것도 당장 없었다.
과거 구청으로 쓰였던 건물은 반파되어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었는데 부서지고 넘어진 차의 잔해로 어지럽다. 마치 폐차장의 찌그러진 차를 사방에 뿌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어쩐지 미로와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벽처럼 쌓여있던 차 무더기를 옆으로 지났고, 곧장 원하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아…….”
주변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진다.
우리 눈앞에 거대한 몬스터 사체가 있었다.
저게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라는 걸 누가 설명해줄 필요도 없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죽어서도 이 정도인데 살았을 때는 대체 어땠을까?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공포가 피어오른다. 당장이라도 저 몬스터가 일어나 우리를 씹어 먹을 것 같았다.
옆을 보니 다들 주춤거리며 사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군주급 몬스터는 거대한 고릴라를 닮은 외형이었다. 고릴라의 몸에 비늘로 덮인 꼬리가 달렸고, 등 뒤에는 박쥐 날개와 비슷한 게 두쌍이었다.
그리고 얼굴은 거대한 뿔이 난 악마와 같았다.
지옥에 장군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팀원 중 누군가 내 심경을 대번하듯 중얼거린다.
“악마다. 역시 천사님들은 악마와 싸우고 계셨어.”
우리는 천사가 진짜 천사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진짜 천사나 다름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군주급 몬스터가 이런 악마적인 외형을 하고 있어서야 더더욱 그런 관념이 퍼질 것 같았다.
짝. 짝.
나는 가볍게 박수를 쳐 주의를 이끌어냈다.
팀원들은 이 죽은 군주급 몬스터에게 경의를 느끼는 듯했다. 분명 그런 감정은 이해가는 것이었다.
숨결이 끊어지고도 이리 고고함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이건 고깃덩어리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켜서는 곤란하다.
나는 모두가 보는 가운데 앞으로 걸어갔다.
다들 뭘 하려는 거지? 라는 얼굴이다. 나는 아공간에서 다이아몬드 날을 가진 전기톱을 꺼냈다. 공업용으로 주로 콘크리트를 자를 때 사용된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죽은 몬스터의 사체를 처리할 때도 매우 유용했다.
지이이이잉!
칼날을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서서히 피부가 갈려나가기 시작한다. 정말 엄청난 내구도다. 나는 뒤에서 멍하니 보고 있는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이건 사체일 뿐이야. 생전에 얼마나 쩌는 놈이었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세상에 어떤 하이에나가 사체를 두고 꼬리를 마는 건가? 어서 전기톱을 꺼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주변의 몬스터를 자극할 수 있다고.”
이미 소음이 발생했다.
주변의 몬스터들은 쉽게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에 다가오지 못하겠지만, 어느 순간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할 거다. 지체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어쨌든 리더인 내가 솔선하자 팀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 이것만 잘라 가면 끝이야.”
“제대로 하자고.”
부팀장은 일부 인원을 빼서 경계를 하게 했다.
“너랑 너, 이쪽으로 가서 특이사항 없는지 계속 살펴.”
“알겠습니다. 부팀장님.”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업이 시작됐다. 이때가 제일 위험하고 하이에나가 취약한 순간이다.
나는 주변에 목적을 정확히 상기시켰다.
“이 큰 몬스터를 완전히 해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죽과 이빨, 손톱, 심장 등 돈이 될 것부터 처리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코어다. 코어 하나면 완전 끝이니까 어디에 코어가 있는지부터 찾는다.”
군주급 몬스터의 몸길이는 10미터가 넘었다. 게다가 어찌나 몸이 단단한지 다이아몬드 커터로도 애를 먹고 있었다. 이래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듯했기에 나는 코어부터 찾게 했다.
“딱 3시간이다. 그 후에는 상황이 어찌되던 작업은 없어. 우리는 그 사이 챙긴 것만 들고 돌아간다.”
노량진은 한강과 가까운 위험지대다. 어쩌면 3시간도 무리일지 모른다. 해체 중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도망가야 했기에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작업을 했다.
위이이이잉!
전기톱 소리가 시끄러워질수록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왜지?
왜 이리 불안할까?
몬스터들은 이 군주급 몬스터의 위압감에 쉽게 접근하지는 않을 터.
지금 발생하는 소음도 총소리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불안이 기어 나와 목을 옥죈다.
그러나 아무 탈 없이 작업이 2시간 넘게 이어지자 긴장감도 사그라졌다. 이대로 별 탈 없이 끝날 것 같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확신을 더 하는 건, 멘탈 관리를 위해 내 개인적인 노하우다.
나는 그래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괜찮아. 내 팀은 모두 무사히 돌려보낼 거야. 이제 10년 세월의 마지막이다. 괜찮아, 끝이다.”
옆에서 보면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팀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늘 중압감에 시달리는 날 동정했다.
“으앗! 오오오오!”
그때 사체 위에 올라가 있던 하이에나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코어입니다! 팀장님, 코어가 나타났습니다!”
코어라니. 군주급 몬스터의 코어라니!
남아 있으리라 기대는 했지만 설마 진짜로 찾을 줄이야.
갑자기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최상위 헌터단도 얻지 못하는 게 군주급 몬스터의 코어다.
한데 일개 하이에나 팀이 군주급 몬스터의 코어를 들고가면 세상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