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6
00016 1-4. 아름다운 시간은 계속된다 =========================================================================
주변에서 다들 기뻐하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군주급 몬스터의 마정석이다. 희희낙락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내 심장이 이렇게 미친 듯이 뛰는 거지? 평생 잘 작동하던 직감이란 녀석이 지금만큼은 더욱 강해진 듯했다. 목이 턱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다.
식은땀이 흐르고 입에선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그, 그만!”
억지로 짜낸 듯한 목소리가 입에서 나온 그 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폭음이 들린 듯했다.
팀원들의 비명이 터졌던 것 같으나 그건 너무나 미약하게 압도적인 소음에 묻혀버렸다.
이후에는 전신의 피부가 타버리는 듯한 열기를 느꼈다.
“크아아아!”
격통에 사방으로 팔을 휘젓다가 내가 바닥을 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간신히 눈을 뜨게 전방의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잃어버렸다.
온통 불바다였다.
지옥도를 연상케 할 정도다.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한 덩어리가 설마 우리 팀원들인가?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는 가슴이 완전히 터져나가 있었다. 안에서 튀어나온 살점과 거기에 붙은 지방 덩어리에는 불길이 붙어 타올랐다.
“우웩!”
토악질이 절로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간신히 반쯤 몸을 일으키고는 소리쳤다.
“부팀장!”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막내야! 씨발! 막내 이 새끼야!”
이 난리가 난 와중에도 주변은 조용했다.
“어흑! 어흐윽!”
목구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려고 한다. 코끝이 시리고 눈가에서 무언가 뜨뜻한 게 뭉치려고 한다.
이를 악물고 참아냈지만 결국 뚝뚝 무언가가 떨어져 바닥에 작은 물방울 자국을 만든다.
“이 개새끼들아!”
단 한 명도 대답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어째서 나만 살아남은 걸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발치에서 구르고 있는 태양신격의 방패 때문이겠지.
지하철에서 일이 있은 후 그냥 꺼내서 들고 다녔다.
등에 메고 다니자 다들 미국 대장 같다고 웃음을 터뜨렸었다.
저 방패만 있으면 내 신체는 3등급 고위 헌터에 준할 정도로 강화된다. 게다가 화염 저항 +30%의 옵션도 붙어있다. 그러니 견딘 거겠지.
“우욱!”
그래도 상태는 좋지 않았다.
입에서 피가 한 바가지 쏟아져 나온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황급히 포션을 꺼내 마셔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폭파는 단순한 게 아니다.
특별한 마법에 의한 피해라 포션으로는 수복하기 무리였다. 마치 터진 보를 모종삽으로 막는 것 같았다.
데구르르.
반도 먹지 못한 포션병이 주변을 구른다.
나는 다시 주우려고 손을 몇 번이나 뻗어 보았지만 계속 실패하고는 그만 둔다. 손이 제어가 되지 않는다. 원하는 걸 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폭파는 뭐였을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팀원들을 이끌고 여길 오지 않았다.
이 무슨 불찰이란 말인가. 나는 이후에 모든 문제를 떠안으려 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무리 도움이 필요했다고 해서 절대 팀원을 데려와서는 안 됐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다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팀에서 여섯 명은 10년이나 함께한 전우였다. 그런데 다 죽었다. 무언가 번쩍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길가는 사람에게 밟힌 벌레처럼,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았다.
“하…….”
귀찮구나. 이런 처지가 되자 이제 눈을 감고 쉬고만 싶었다. 유일하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누나였다.
어떻게 하지, 우리 누나 불쌍해서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돌연 불길이 거세게 요동친다.
강풍에 가까운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었다.
사방으로 불티가 회오리처럼 날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 천사가 강림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지옥도와 잘 어울리는 존재였다.
“아…….”
죽어가는 이 상황에서도 넋 놓고 볼 정도로 아름다운 천사였다.
천사의 날개는 검은 색이었다.
총 여섯 장이었고, 깃털은 빽빽하고 윤기가 났다.
날개마다 크기는 서로 달랐지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천사의 눈과 머리칼은 회색이었다. 피부는 우유처럼 깨끗하고 한 점의 티도 없는 흰색이다.
완전히 무채색으로 구성된 외형이었다.
그래서인지 천사는 마치 흑백사진처럼 보였다.
선명하고 밝은 불길 한 가운데 흑백사진 같은 그녀가 오연하게 서있다.
콘크라스트도 이런 콘트라스트가 없구나.
천사는 날 발견하고는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불길은 전혀 천사를 상하게 하지 못했다.
나는 저 천사가 누군지 안다.
모를 리가 없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메타트론….”
메마른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천사는 체형은 날씬했다. 생김새는 중3이나 고1 정도로 어리게 보인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그녀에게 대해 판단하기에는 그간 무성했던 소문을 너무 많이 들었다. 속칭 그년, 개년, 쌍년으로 통하는 천사니까.
아니나 다를까 날 쓰레기처럼 내려다본다.
“너희들이 모두 망쳤군. 본녀가 공을 들인 함정을.”
분노가 느껴지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곱디 고왔지만 듣기만 해서 서릿발 같이 싸늘하다.
“함정이었다고?”
“그래. 또 다른 군주급 몬스터를 잡기 위해 신중히 설치한 함정이다. 군주급은 다른 군주급의 마정석을 탐내고 빼앗으려 한다. 하니 이건 더 없이 좋은 함정이었지. 하지만 멍청한 네놈들이 모두 망쳤다.”
메타트론은 잿더미로 변한 팀원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멍청한 것들에게 딱 어울리는 최후로군.”
“부당한 비난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어.”
“무지는 죄악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
메타트론의 말투는 차가웠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모하게 군주급 몬스터를 해체할 때 말려줄 수 있지 않았나. 듣자니 코어를 건든 순간에 터지는 함정을 설치한 모양인데.”
“네놈들이 그런 천치 같은 짓을 하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 함정은 준비한 여러 가지의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폭음에 함정이 발동한 줄 알고 날아왔건만 이런 꼴이라니. 기가 막히군! 역시 인간 따위는 곤란하기만 하고 쓸모없다.”
이 녀석, 상당한 독설녀구나.
나는 그녀가 함정을 설치한 까닭에 팀이 전멸한 것에 대해 따져볼까 했다. 하지만 금세 그만 뒀다.
애초에 그녀가 우리를 초대한 것도 아니다. 이쪽에서의 멋대로 끼어들어 메타트론의 수고를 망쳐 놨다.
“우욱!”
다시 입에서 피가 솟아져 나왔다.
방패의 덕에 목숨은 잠시 부지했지만 그뿐이었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애초에 이 함정은 군주급 몬스터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얼마나 강력했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도 나는 이대로 죽기 싫어졌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다가 메타트론의 등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살려줘.”
갑자기 추하게 나타난 생의 미련에 난 사로잡혔다.
“뭐? 내가 왜 네놈을 살려야 하지. 미안하지만 무리다. 그 정도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은 갖고 있지 않다.”
“대천사잖나, 너는. 아웃사이더라고 해도 서열 1위일 텐데.”
“분명 상처를 치유할 힘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본녀에게만 먹힌다. 이질적인 힘이기에 다른 이에게 부여하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지.”
새삼 왜 메타트론이 타락한 천사라고 불리는 지 알겠다.
천사 중 서열 1위인 이 녀석이 치료 마법 따위가 없을 리 없다.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 자신말고는 안 먹힌다고 한다. 이러니 타락했단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쿠아아아앙!
그때 멀리서 장중한 포효가 터져나왔다.
메타트론은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이 왔군. 이대로 싸우는 건 아무래도 사절인데 말이야.”
크게 일이 잘못됐다.
우리 팀은 나 빼고 모두 죽었고, 메타트론은 계획이 꼬였다.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있나.
“고통을 덜어주지. 이대로 있다가는 산채로 몬스터에게 뜯어먹힐 거다.”
“어차피 내버려둬도 곧 죽을 것 같은데.”
“뭘 모르는군? 미천한 것 주제에 어째서 이리 터무니없는 방패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방패가 널 순순히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장소가 온갖 괴물로 가득 찬 곳이란 점이지. 너는 편히 죽지도 못하고 끙끙대다가 어슬렁 어슬렁 기어 나온 몬스터에게 씹어 먹힐 거다.”
듣고 보니 무섭구나.
어쩔 수 없다. 죽기 싫었지만 방법이 없는 걸 어쩌랴. 포기하자, 그냥.
나는 곧 부탁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자 메타트론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네놈의 이름은 뭐냐?”
“하하, 나 같이 천한 놈의 이름도 기억해 주려는 거냐?”
“자신이 죽인 자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는 게 예의다.”
“유제아.”
메타트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마냥 싸가지라고 들었는데 의외로군.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얼마나 정확했던 걸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의문이었다.
“내 방패가 필요하면 가져다 써. 놀랄 정도로 좋은 물건이니까.”
“…멍청한. 이건 귀속된 물건이다. 그것도 보통 귀속이 아니군. 설령 네놈이 죽는다고 해도 몇 천년간 풀리지 않을 테니, 본녀도 쓸 수 없다. 그야말로 돼지 목의 진주로군.”
“하하하.”
가볍게 웃고 말았다. 메타트론의 시니컬함에 별다른 악의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녀와 더 대화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강력한 무언가가 이쪽으로 접근 중이었으니까.
내가 더 메타트론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곤란하다.
“그럼.”
메타트론은 화염으로 불타는 검을 뽑아들고는 내 심장을 정확히 겨눴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지른다.
푸욱!
뜨겁다. 가열된 화로가 가슴팍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도 곧 느낄 수 없었고 나는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시야에 메타트론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무슨 일일까?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황금색 광채가 그녀의 검을 점점 휘감는 게 보인다.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눈을 감자 어둠만이 그곳에 있었다.
***
인생을 건 뽑기의 날로부터 나흘 뒤.
“지친다, 지쳐.”
파김치가 돼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계속 스이엘을 만나며 마법 물품 사용법을 배웠다. 오늘이 마지막이었고 드디어 끝났다.
덕분에 방패의 사용법을 대강이나 익힐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건 앞으로 내가 스스로 연구해갈 부분이었다.
“휴우….”
고단함이 묻어나는 한숨과 함께 방패를 창가에 내려놓았다.
며칠간의 교육도 끝난 이제는 드디어 내 운명과 맞서야 한다.
피하지도 않고.
미루지도 말아야 한다.
사실 대강 짐작하고 있다.
왜 99%의 사망 확률이 뜨는지.
스이엘의 예언을 듣기 전부터, 이미 내 마음은 한 곳으로 온전히 향하고 있었다.
바로 윈드 워커의 사진 속에 담긴 메타트론이 있는 장소로 말이다.
그건 마치 불나방의 무모함과도 같은 것이었다.
거부하지 못하고 달려든다는 것 역시 동일하다.
솔직히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창가의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이게 생의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따라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석양이었다.
언제나 이 노곤하고 다정한 일몰을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태양신격의 방패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 아름다운 시간이 계속되길.”
가볍게 미소 짓던 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데자뷰인가.
어쩐지 이 광경과 이 시간을 이미 겪었다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