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20
00020 1-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
지금 내 앞에는 도합 150억 어치의 마정석이 빛나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황홀하다.
마정석은 세상 어떤 보석보다도 크고 아름답다.
빛을 반사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광하기에 무척 환상적인 모습을 자랑한다.
그런 이유로 서구에서는 마정석을 수집 용도로 구매하는 갑부도 꽤 있었다. 사냥터를 전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그쪽에는 몬스터가 많이 안 나타났으니 여기랑 감각이 다를 수밖에.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문제인 몬스터는 서울과 북한, 만주 지역에 그 세가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 비교적 많이 나오는 곳은 중국, 러시아 정도일까. 물론 지구 곳곳에 몬스터가 출몰해 문제를 일으키곤 했으나 상대적으로 약하고 수도 적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도 몬스터로 난리를 겪었어도 한국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나타난 몬스터의 수준도 별로 높지 않았다. 그래서 천사가 없는 나라도 부지기수였다.
괜히 안산이 몬스터 부산물을 가공하는 메카로 떠오른 게 아니다.
대천사급의 천사들이 한국에 몰려있는 것도 서울을 시작으로 북한, 만주까지 고위 몬스터가 바글바글한 게 이유다.
내가 듣기로 중국과 러시아에는 다 합쳐도 대천사가 3위位* 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 대한민국에만 대천사가 12위位나 모여 있었다.
기본적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과거 북한 괴뢰가 있던 지역을 밀어버리는 게 천사들의 계획이다.
그 때문에 인류와 몬스터의 싸움에 있어서 주인공도 한국이요, 최대 피해자도 한국이요, 이래저래 세계의 시선이 한국에 쏠리는 상황이었다. 초기에는 그런 이유로 강대국들이 이것저것 간섭하려 했으나, 분노한 대천사들의 일갈에 다 나가 떨어져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대천사들을 지원하며 몬스터 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도 반쯤 망했던 국가, 몬스터 사업이 유일한 생로임을 인식하고 매우 열심이었다.
현재 한국은 이런 이유로 국가가 다시 회복되는 추세이다.
안산의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서는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며 전 세계로 몬스터 가공 상품을 수출한다. 그리고 안산에는 몬스터 부산물을 취급하기 위해 세계에서 몰려든 기업과, 상인, 투자자들로 북적였다.
안산이 괜히 인구 1,500만의 국제도시가 된 게 아니다.
지금 안산은 거의 뉴욕이나 마찬가지의 화려한 도시다. 게다가 한국인에게 천사나 몬스터는 일상이지만, 외국인들에겐 그야말로 판타지 그 자체.
못 만날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한국으로 기어들어와 천사의 깃털이라도 보려고 난리였다. 뭐, 관광 회사만 노난 거지.
스윽, 스윽.
마정석에 묻은 피를 천으로 잘 닦은 후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었다. 150억이면 천사의 상점에서 많은 걸 할 수 있다. 천사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마법 물품을 소환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스킬 구입이나 할 수 있는 등 다양하다. 심지어 사랑스러운 엘프 서번트 소환까지도 가능했다.
“흠…….”
말 잘 듣는 엘프 서번트라. 좀 혹하는데.
아무튼 마정석을 수확한 건 좋았는데 돌아갈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다.
또 뒤져서 타임 루프를 하게 되면 꽝 아닌가.
게다가 이 타임 루프에 횟수의 제한이 있다고 하니 실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순간 죽고 그게 끝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잘 하자.
나는 각오를 다지며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폈다.
보고 있는 곳은 동작 구청의 주차장. 정확히는 그 위에 쓰러져 있는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다.
이미 3번이나 폭파에 휘말린 경험이 있는 나다.
더는 접근하기 싫었다.
게다가 메타트론이 공들여 설치한 함정이라지 않나. 그래서 상황을 관망하기로 했다.
함정에 누가 걸려드는 건지.
메타트론은 어떻게 행동할지.
“흐음…….”
기다리기만 하니 지루하다.
의외로 우리가 폭탄을 터뜨렸던 시간에 무슨 일이 터지지 않았다.
그때는 우리 팀의 개입으로 상황이 달라졌던 거겠지.
지금은 메타트론도 그리고 그녀가 노리는 적도 서로 간만 보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그날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끄응…….”
하룻밤을 건물 속에서 잔 나는 꽤 피곤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가 아니다.
혹시라도 습격을 받을까 싶어서 졸다 깨다, 졸다 깨기를 반복해서 그랬다.
사냥터에서 혼자 다니면 편한 것도 있지만 잘 때만큼은 불편하다. 아무리 노련한 하이에나라도 계속 이러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짹짹.
세상이 이러는 데도 새는 평소처럼 지저귀는구나.
초겨울 아침의 햇살이 기분 좋았다.
나는 물이 차가워서 조금만 먹고는 건조 식량을 씹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지만 그런 무리한 짓거리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냥터에는 별별 위험이 다 있다.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
그런데 그때.
쿵, 쿵, 거리는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먹던 건조 식량을 황급히 넘기고는 창가에 바짝 붙었다. 무언가 크고 덩치 좋은 녀석이 이 근처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틀림없이 거물이다.
긴장 때문인지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5분여.
건물의 그림자 사이에서 거대한 괴물이 쑥 나타났다.
키는 3.5미터 정도.
네이비 색의 피부에 노란색이 선명한 뿔이 인상적이다.
총 4개의 뿔이었는데 특이하게 뿔에서 스파크가 튀어서, 마치 왕관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또한 폭이 넓고 거대한 검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저걸 검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검폭은 50센티미터가 넘어보였고 베기보다 때려죽이는 게 목적인 것처럼 무식한 생김새였다.
전혀 검이 가진 세련된 이미지가 없다.
게다가 검 끝은 각이지게 뭉뚝했고 손잡이는 대강 천을 칭칭 감아놓은 상태였다.
그 천은 피 얼룩으로 더럽다.
나는 망원경 덕에 이 모든 건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괴물이 눈을 돌려 날 쳐다볼까 두려웠지만.
“군주급이다.”
확실했다.
저 녀석, 군주급 몬스터였다.
메타트론이 노리고 있다던 그 녀석인 것 같았다.
군주급 몬스터는 다른 군주급 몬스터의 마정석을 노린다고 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분명히 죽어나자빠진 동료의 사체는 유혹적이었으리라.
아니, 군주급 몬스터들의 관계를 동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르르릉!
녀석은 사방을 한 번 살피더니 곧장 죽은 사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래.
사체를 내리쳐라.
그러면 함정이 발동하겠지.
내가 몇 번이나 당했던 함정이라 남이 당할 처지가 되니 그렇게 기대가 될 수 없었다.
“간다, 간다.”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리며 상황에 집중했다.
사체에 다가간 군주급 몬스터는 거검巨劍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내 눈동자 역시 커졌다.
찍어라! 그대로!
마음속으로 열렬히 그리 외친 게 도움이 되었는지 녀석은 사체의 흉부를 가르기 위해 거검을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장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에 메타트론의 함정이 작동된 것이었다.
이쪽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발광과 열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야할 정도였다.
저런 지독한 함정에 걸렸었으니 우리 팀이 전멸한 게 당연하구나. 오히려 내가 살아남았던 게 경이로울 지경이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태양신격의 방패를 매만진 뒤 앞을 내다보았다.
저 녀석, 아직 살아있네. 지독하다 정말.
함정에 당한 군주급 몬스터는 몸에 불이 붙은 채 큰 대자로 뻗어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흔들더니 몸을 일으킨다.
꽤 피해를 입은 듯했지만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곧 큼지막한 손으로 몸에 붙은 불을 털어서는 꺼뜨린다.
쿠아아아앙!
일갈하는 게 뜻하지 않은 함정에 대단히 분노한 것 같다.
녀석이 있는 곳 일대가 온통 불바다였다.
슬슬 이제 메타트론이 등장할 때라고 생각하던 그때, 군주급 몬스터의 앞에 화염 회오리가 몰아친다.
그리고 그 회오리 한 가운데서 검은 날개 여섯 장을 가진 미려한 천사가 출현한다.
평소 그녀의 위명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가녀린 외형이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위압감만은 그녀가 천사 중의 서열 1위임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파직!
메타트론이 나타나자마자 군주급 몬스터가 전격으로 공격했다.
머리 위의 뿔에서 왕관처럼 반짝이던 스파크가 쏘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메타트론은 방어막을 전개해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콰앙!
폭음과 함께 스파크가 사방으로 튄다.
전류는 곧 회색의 방어막을 타고 원형으로 퍼져버렸다.
메타트론은 곧장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화염검을 뽑아들고는 반격에 나섰다.
“오오오!”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질 정도로 대단한 싸움이었다.
천사 중 최고의 무력을 가졌다는 메타트론과 군주급 몬스터의 싸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귀를 떨어뜨릴 것 같은 폭음이 일어나더니 반절 밖에 안 남았던 동작구청이 완전히 사라졌다.
싸움 자체는 메타트론이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그래! 패라고!”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원래 싸움 구경이 재밌다지 않나. 게다가 이건 인세의 감각을 초월하는 괴수 대혈전이다.
예전에 사냥터에서 고위 헌터 둘이 시비가 붙어 재판 결투를 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재밌게도 그들은 하이에나인 내게 참관인을 부탁했다. 내가 하이에나치고 명성이 있으니 제대로 증인이 되어줄 것 같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때 그 두 명이 인간 같지도 않게 싸워 대서 겉으로는 태연자약했지만 오줌 지를 뻔했던 기억이 있다.
한데 오늘 이 싸움을 보면 그건 애들끼리 투닥거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콰아아앙!
메타트론의 손을 뻗자 폭발이 일어났고, 근육질 덩어리인 군주급 몬스터가 뒤로 날아가 건물 잔해에 처박혔다.
딱 보니까 이대로 메타트론의 승리로 끝날 듯했다.
나는 이제 승부 따위보다 메타트론과 만나서 뭐라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일단 내 목적이란 게 애매하고 막연하다.
메타트론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99%의 사망 확률이 메타트론과의 만남에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녀의 함정에 걸려 세 번이나 죽지 않았나.
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한데 이 모든 걸 뭐라 설명을 하냐는 말이지.
다짜고짜 가서 제가 당신이랑 엮이면 죽을 확률 99%입니다. 그러니 함께 극복해 봅시다 라고 하면, 분명히 저 칼로 심장을 찔러버릴 것 같다.
그리 고민하던 나는 앞으로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 위치가 위치인지라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넓게 멀리에서부터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는 존재를 셋이나 더 발견했다.
“뭐야!”
황급히 망원경을 당겨서 그 존재들을 살폈다.
놀랍게도 둘은 군주급 몬스터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덩치가 더 좋고 강해 보인다.
이 무슨… 군주급 몬스터보다도 상위의 존재가 출현하다니.
저게 설마 개념적으로만 듣던 왕인가?
그래도 왕이라고 하기에는 포스가 좀 부족하긴 하다.
확연히 강해보이긴 하는데 다른 군주급 몬스터를 압도하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나는 저 처음보는 존재를 대군주급이라고 분류했다.
그렇게 군주급 둘과 대군주급 하나는 건물 사이사이로 움직이며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이 형국은 마치, 메타트론의 계획과는 달리 그녀가 적의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최악의 상황인데.”
서둘러 장비를 챙겼다. 저 메타트론이란 존재가 아웃사이더긴 하지만 인간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이대로 적의 함정에 빠져 죽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내가 저 막강한 적을 상대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나저나 스이엘.
이제 보니까 생존 확률 1%도 많은 거 아닙니까?
애초에 그 1%도, 내가 태양신격의 방패를 뽑는다는 가정 하에 나온 거 같다는 말입니다.
============================ 작품 후기 ============================
*위位-귀신이나 신령을 세는 단위. 천사는 사람이 아니라 명으로 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