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21
00021 1-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
***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을까?
애초에 나는 저 습격자들을 물리치고 메타트론을 공주님처럼 구할 생각 따위는 없다.
그건 분명히 가슴 뛰는 일이긴 하지만 빠른 고통과 후회를 동반할 거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져 진창에 뒹굴게 되면 더는 명예를 찾아볼 수 없겠지.
하이에나는 자신보다 강한 자와 싸우지 않는다.
그러니 전술적 목표만 달성하고는 빠지면 그만이다.
일단 아공간 주머니에서 휴대용 무반동포를 꺼냈다.
칼 구스타프 M4라고 불리는 걸작으로 중량이 7킬로그램 정도 밖에 안 되기에 휴대가 용이하다.
게다가 대인특화고폭탄, 대전차탄, 섬광탄 등 다양한 탄을 사용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 하이에나들이 애용하는 병기였다.
뭐, 장전수가 없이 혼자 쏘려면 좀 귀찮긴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즉각 FFV469탄을 꺼냈다. FFV469탄이라 하면 뭔가 대단한 걸로 여겨지지만, 그냥 연막탄이었다.
어차피 대전차탄을 써도 저 군주급 몬스터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 좀 놀라게 하는 게 다라면 차라리 시계視界를 제한하는 게 제일 낫겠다 싶었다.
물론 저 정도 되는 괴물이면 연막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앞을 꿰뚫어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리력이 미치지 않는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 여겨졌다.
철컥.
칼 구스타프의 뒤쪽을 열어젖히고는 묵직한 연막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조립한 뒤 안전핀을 걸었다.
좋아.
견착한 뒤 목표를 조준한다.
목표는 가장 가까이 있는 군주급 몬스터다. 용과 같은 머리가 둘 달린 거인의 팔 역시 네 개였다. 실로 기괴한 생김새였지만 강해 보인다.
3배율 광학 조준기로 보니 육안보다 훨씬 제대로 녀석이 보인다.
그렇게 조준하고 막 쏘려고 하는 순간, 두 개의 용머리 중 하나가 날 정확히 쳐다본다.
“!”
이 거리에서 어떻게?
심장이 멈출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놀라서 그런 게 아니다. 군주급 몬스터와 눈을 마주치니 일순간 몸에 패닉 증상이 올 정도였다.
방패에 의해 신체가 강화된 나도 이러는데 일반이라면 눈만 마주쳐도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녀석은 날 무섭게 노려보긴 했지만 선뜻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곧장 장거리 공격을 날리면 메타트론이 눈치챌 테니까.
군주급 몬스터가 고민하던 그 짧은 순간이 내겐 동아줄과 같았다. 마치 가슴을 꽉 누르던 무언가가 일시적으로 풀린 듯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즉각 무반동총을 쏘았다.
타당!
화약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그 후 쇠로 만들어진 총의 몸체 때문에 땡! 하는 쇠 울림이 뒤따른다.
곧 폭음과 함께 탄이 떨어진 곳에서 연막이 피어오른다.
나는 그 즉시 방패를 들고는 건물의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연막탄이 일으킨 소음은 메타트론에게 경고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위험한 건 나였다.
기습이 실패할까 잠시 망설였던 군주급 몬스터는 이제 절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쿵! 쿵! 쿵!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는 발소리처럼 내 심장도 세차게 뛰었다.
내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태라 진짜 위험했다.
콰아아앙!
곧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내가 있던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이 미친 새끼 같으니라고.
대체 뭘 한 건지 건물은 JDAM미사일에도 맞은 것 같았다. 머리 위에서 콘크리트와 시멘트 가루가 우르르 쏟아졌기에 방패를 들어 올리고 웅크렸다.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황급히 위를 보자 마땅히 있어야할 천장 가운데 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현재 위치가 건물의 중간쯤인데, 이렇게 하늘이 보여서는 참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불이 나게 달렸다.
아직 계단이 멀쩡할 때 건물을 빠져나가야 했다.
콰아아아앙!
이후 다시 폭발이 일었고 난 간발의 차이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대로 계단을 타면 안 될 듯해서 3층에서 뛰어내렸다. 본능적으로 방패가 지면으로 향하게 해 앞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방패가 땅에 부딪치는 순간 앞으로 굴렀다.
덕분에 3층에서 앞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런 충격이 없었다.
확실히 방패에는 충격을 감쇄하고 상쇄하는 능력이 있는 게 확실했다.
일단 그 뒤로 무작정 달렸다.
그러자 뒤에서 우르르릉! 콰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있던 건물이 폭싹 주저앉았다. 망할 군주급 몬스터 새끼들, 적당이란 단어를 모르는 것 같다.
“씨팔! 좆같네!”
소리치자마자 다시 광선 같은 게 날아와 무너진 건물 옆 건물을 때린다.
우르르릉! 콰아앙!
와, 이 미친놈들.
무슨 레이저포냐?
위력도 장난 아니다. 7층짜리 건물이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는다.
내게 연막탄을 맞은 용머리 녀석이 분노해 날뛰는 게 틀림없다.
이미 기습은 틀렸겠다 건방진 방해꾼을 가루로 만들겠다는 건가. 그런데 위력은 발군이었지만 섬세함이 부족했다.
색적索敵 능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
상대적으로 작은 내가 건물 사이로 질주하자 도저히 찾아내질 못하고 있었다.
쿠아아아앙!
분기탱천한 음성이 일대를 쩌렁쩌렁 울린다.
그 외에도 마법과 괴성이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메타트론 쪽도 싸움이 붙은 모양이었다. 그쪽은 3대 1의 상황이니, 사정이 영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가세해 봐야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이 용머리 군주급 몬스터를 붙잡고 늘어지는 수밖에.
이놈까지 가서 합세하면 메타트론은 정말 답이 없을 것이다.
숨어서 달리던 나는 용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 놈이 작은 놈을 찾긴 어렵지만, 작은 놈이 큰 놈을 찾긴 어렵지 않았다. 건물의 옥상 위쪽으로 용의 뿔이 슬쩍 보인 걸로 녀석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나는 사방으로 두리번거리는 녀석을 피해 돌아갔다. 이럴 때는 복잡한 서울의 구시가지가 도움이 됐다. 아파트들이 크고 구획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진 신도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녀석의 뒤를 몰래 잡아냈다.
마치 도그 파이팅을 펼치는 2차 대전 당시의 전투기처럼 말이다.
한 방 쏴줄 생각을 하자 심장이 크게 뛰었고 나는 입술을 깨물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무반동총은 미처 건물에서 회수하지 못했지만 아공간 주머니 안에는 아직 화기가 많았다.
일단 RPG-7을 꺼냈다.
이 고리짝 무기는 아직도 현역이며 많은 하이에나 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헌터들도 쓴다.
방어막이 없는 7등급 이하 몬스터라면 헌터도 화기에 의존할 때가 많다.
고위 헌터야 마력이 넘칠 테지만 그 밑으로는 어떻게든 마력의 근검절약이 요구된다. 하니 잡몹 정도는 화기로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
“흠….”
가늠쇠로 대강 조준했다.
광학장비에 익숙한 탓에 이런 옛 방식은 서툴지만 워낙 목표가 커서 대강 쏴도 들어갈 것 같다.
찰각.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곧 탄두가 명중해 폭음이 터졌다.
퍼어엉!
폭발로 일어난 충격파와 열이 목표를 헤집는다. 하지만 이건 소리가 큰 거 외에는 무용할 터. 나는 쏘자마자 즉각 내달려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콰아아앙!
내가 있던 곳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쿠아아아아앙!
이번에도 내가 쥐새끼처럼 빠져나가자 녀석은 정말 열 받은 느낌이었다. 곧 사방에 힘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도망치면서 보니까 주둥이에서 광선을 쏘고 있었다.
판타지에 나오는 드래곤 브레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식한 놈.
횟수 제한도 없나 보다.
아무래도 이대로 계속 이런 도발을 하긴 무리였다. 패턴도 어차피 뻔하다. 게다가 더 열 받게 했다가는 용머리가 이 일대를 아주 평탄화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용머리 녀석을 무시하고는 주택가 골목길로 달려서 동작구청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자 그야말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 명의 적을 홀로 상대하는 메타트론.
그녀의 싸움은 아름다웠지만 처절했다.
회색 머리칼은 피로 뭉쳤고, 전신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런 메타트론의 상대는 군주급 몬스터가 둘, 그리고 그보다 강한 대군주급이 하나다.
군주급 몬스터 하나는 이 습격이 있기 전, 메타트론에게 당해서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그러나 새로 나타난 둘이 생생했기에 이 싸움은 가망성이 없었다.
게다가 곧 또 다른 군주급인 용머리 두 개 달린 놈까지 합류한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도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대로는 메타트론이 당할 게 자명하다. 나는 더 관망하지 않고 끼어들었다.
물론 이 괴수 대전의 결과를 나 따위의 존재가 맘대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도 작은 단초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비록 무능력자라지만, 변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나는 달려가면서 태양광 폭사를 준비했다.
우우우우웅!
방패가 백열등처럼 하얗게 타오른다. 3등급 몬스터도 일격에 날려버릴 위력을 가졌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한 번 정도 시전하는 게 한계다.
그렇다면 노릴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메타트론에게 이미 두들겨 맞았던 군주급 몬스터다.
머리에는 네 개의 뿔이 있고 거기서 일어난 스파크가 마치 왕관처럼 화려해 보이는 존재였다. 그리고 길이 3미터는 될 듯한 거검을 무섭게 휘두른다. 거검의 파공음이 어찌나 크던지 듣기만 해도 내 마음은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질 때처럼 쪼그라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공격을 주저할 내가 아니다. 녀석도 약해져 있던 터라, 기습적으로 나타난 내게 반응하는 게 느렸다. 달려가던 나는 멈춰 서서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조준했다.
“크아아압!”
그리고 기합과 함께 마치 내 안에 모든 걸 쏟아내는 느낌으로 힘을 발동시켰다.
번쩍.
광열이 작렬한다.
빛 가운데 마치 스케치한 선 정도의 윤곽을 보이는 녀석은 새하얗게 타들어간다. 그리고 태양광 폭사가 끝났을 때 거금을 든 군주급 몬스터는 몸을 뒤틀며 사방으로 뒹굴었다.
쿠아아아아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감색 피부가 완전히 화상으로 뒤덮였다. 그 틈을 타 몰려있던 메타트론이 날 듯 빠져나와 내 옆에 선다.
“헌터! 이건 내 싸움이다. 빠져나가라. 네가 당할 적이 아냐!”
그녀는 다급히 말하는 게 갑작스러운 내 난입에 당황한 듯했다.
음? 이게 소문의 그 메타트론이 맞나? 그녀는 자기 필요에 의해 휘하의 권속도 모조리 죽인 천사로 악명 높다. 그래서 지금은 한 명의 권속도 없다는 잔혹한 천사다.
그런 그녀가 처음 보는 인간에게 도망부터 치라고 걱정해 주고 있었다.
“틀린 게 두 가지다, 메타트론.”
“뭐?”
“첫째. 일단 난 헌터가 아니다. 그리고 둘째, 이건 네 싸움만이 아니라 나까지 관련되어 있다.”
메타트론은 적의 마법을 검으로 쳐낸 뒤 무슨 황당한 말이냐는 표정으로 날 봤다.
군주급 몬스터들은 갑작스러운 내 난입에 잠시 관망하는 기색이다. 한 번 마법을 쏴 메타트론의 도주를 견제하고는 곧 자기들끼리 수근거린다. 그 틈을 타 이쪽도 빠르게 얘기를 나눴다.
“머리가 아픈 인간인 것이냐? 여기에 있다가는 죽고 말 것이다.”
“일단 난 머리에 문제가 없다. 그리고 죽음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끼어들지 않았겠지. 너는 모르겠지만 군주급이 하나 더 있다.”
“안 그래도 시끄럽긴 하더군.”
용머리 두 개가 달린 군주급 몬스터, 아니, 그러면 표현이 기니까 일단 용머리 군주라고 하자. 그 용머리 군주가 주변 건물을 무너뜨리는 소리가 역시 들렸겠지.
쿵. 쿵. 쿵.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그 용머리 군주는 크게 땅을 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날 찾기 포기하고 원래 계획대로 이쪽으로 온 모양이다.
그런 용머리 군주는 날 보더니 곧 두 개의 머리 모두 입을 벌리고 사납게 포효한다.
찾았다 이거냐.
쿠루우우우웅!
“저게 널 보고 무척 화난 거 같은데, 인간.”
“그래. 잠시 내가 붙잡아 두고 있었거든. 메타트론, 너 때문에 말이다.”
메타트론은 놀랐다는 표정이 됐다.
“대체 너는 누구지? 무얼 알고 있는 것이냐?”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페이즈에는 힘들겠어. 다음으로 넘겨야지. 일단 습격을 알아챘으니 사전에 막을 수 있겠지.”
“아까부터 알 수 없는 얘기만 하는군, 인간.”
“유제아다.”
“뭐?”
“내 이름은 유제아다. 기억하도록.”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정정했다.
“아니지. 기억해 내라, 내 이름.”
“대체! 너처럼 이상한 인간은 처음이야.”
나는 그녀에게 한 번 웃어줬다. 이 고고하고 멋진 천사가 당황하는 모습은 정말 볼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그녀의 표정은 경악으로 무너져 내렸다.
웃던 내가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했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것이냐! 이 정신 나간!”
누가 봐도 죽으려고 작정한 모습이겠지.
“엿 먹이려는 거다!”
쉽게 말하자면, 다 된 밥에 재라도 뿌릴 생각이었다.
군주급 셋에 대군주급 하나까지 총 넷.
메타트론은 이 강력한 존재를 따돌리고 도주하긴 무리였다. 하지만 만약 시간 속으로 도망간다면 어떨까?
제 아무리 강해도 시간을 거슬러 도망가는 자는 잡을 수 없는 법.
“크아아아!”
나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괴수들에게 돌진했다.
그러자 전격과 광선 브레쓰와 각종 강력한 힘이 쏟아져 내렸다. 저 강력한 힘들은 나를 순식간에 분해할 것이다.
우우웅!
그러자 방패에서 황금빛 광채가 찬란하게 빛났고,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보았다.
대군주급의 몬스터가 경악하는 꼴을.
“#^@$@^#$!”
녀석은 뭐라뭐라 외치는 게 무척 당혹한 음색이었다.
기분이 어떠냐? 헌터도 뭣도 아닌 인간에게 엿 먹으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대군주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러자 녀석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