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22
00022 1-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
***
나는 또 죽었군.
그렇다면, 이번이 네 번째 페이즈인가?
적어도 인식상으로는 그렇다.
설령 내가 모르게 수백 번의 타임 루프를 거쳤어도 별 의미 없으리라. 인식하고 못하면 쓸모도, 가치도 없는 거니까.
나는 철저히 준비해서 노량진으로 가는 길로 잠입했다.
이번에는 사전에 메타트론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그녀에게 타임 루프에 대해 설명하고 함정에 대해 말해줘여만 했다.
그런데 말이지.
내가 메타트론을 어떻게 설득할지는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그녀를 찾는담?
메타트론은 어딘가에 은거해 있거나, 어떤 목적으로 위해 돌아다니고 있을 터.
비록 그게 노량진 근처긴 하지만 갑갑한 건 마찬가지다. 노량진은 그 옛날 노량진이 아니다. 괴물로 가득 찬 사냥터로, 헌터들이 다니는 사냥터 중에서도 위험한 축에 속한다.
한데 고작 하이에나인 내가 길 잃은 아이를 찾는 것처럼 메타트론을 찾아다닌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 10년의 세월 동안 파악한 루트를 통해서다.
반면 노량진은 내게 미답지였고 어디가 안전한지, 어디가 위험한지 알 길이 없었다. 군주급의 사체가 있는 동작구청도 역에서 100미터 안이었기에 쉽게 접근했던 거 뿐이다.
그러니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긴 무리다.
결국 부를 수밖에 없는데, 현재 그녀를 부르는 방법은 함정을 건드리는 게 유일하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함정을 터뜨려야 한다.
흠, 그래도 이제 그 폭파는 지긋지긋한데.
다치는 것도 싫고.
짧게 고민하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간단하군.”
내가 다치지 않으려면 남을 시키면 되는 게 아닌가?
***
“거기 서 이 새퀴야!”
나는 도망가는 몬스터를 쫓아가고 있다.
벌써 몇 번째 보는 녀석이었다. 이러다 아주 그냥 정들겠어요.
바로 반포 숲지대를 나와 만날 수 있는, 그 외눈박이였다.
나는 숲 지대를 통과하자마자 한 마리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를 사로잡으려 했다. 한데 녀석이 몇 대 쥐어터지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게 아닌가?
“덩치가 아깝다!”
물론 이 말을 저 녀석이 알아들으면 어이없을 거다.
외눈박이 놈은 진짜 최선을 다해 도망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허리에 차고있던 식량 주머니를 끌러서 버릴 정도였다.
그러자 조각난 사람의 몸이 와르르 쏟아진다.
우와, 이거 진짜 엽기적인 새끼네.
그 정체를 알 수 없던 거대한 허벅지는 주식이고 인간의 몸 조각은 간식인가 보다.
그나저나 급하긴 한가 보다. 먹거리에 대한 집착이 하늘을 찌르는 이 녀석이 식량 주머니를 포기할 정도니.
안 되겠네.
사지 멀쩡하게 잡으려고 했지만 이대로는 놓치겠다.
반병신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방패를 도주하는 외눈박이의 등 뒤에 던졌다. 방패가 박히지 않게 힘을 좀 조절하긴 했다.
부웅!
위력적인 소리를 내고 날아간 방패가 맞자 외눈박이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른다.
키가 3미터인 녀석이 저러 구르자 실로 큰 구경거리였다.
“콜록! 콜록!”
먼지가 좀 곤란했지만.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굵고 긴 채찍을 꺼냈다.
웬 채찍이냐?
이번에 이 녀석을 조교하기 위해 따로 장만한 거다. 채찍뿐만이 아니다. 쇠사슬 달린 목줄도 있었다.
맹수를 다룰 때와 같은 이치다.
차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외눈박이의 등에 일자로 자국이 생겼다.
쿠아앙!
녀석은 고통에 겨워 울며 엉금엉금 기어서 피하려 한다.
아프겠지.
달려오면서 전력으로 내려쳤으니까.
참고로 이 물건, 방어막도 뚫고 들어가는 변태적인 아이템이다. 스이엘에게 부탁해서 천사의 상점을 연 뒤에 샀다. 뭐, 모아둔 돈이 많아서 이런 채찍 정도는 무리 없었다.
그래도 5억 9천이란 거금이 들긴 했지만.
차아악!
다시 때렸다.
외눈박이의 등 뒤로 핏줄이 그어진다.
참고로 이 채찍은 순수하게 조교용이다. 잡아온 몬스터를 굴복시키기 위한 용도다. 전투용이라기에는 사실 피해를 주는 게 미진했으나, 아픔을 주기에는 더없이 적당했다.
“이 새끼야! 그러니까 사람을 간식처럼 오독오독 처먹지 말았어야지!”
이 외눈박이의 간식으로 쓰이던 사람은 헌터였을 수도 있고, 하이에나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민간인이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쏟아져 나와 구르던 그 시체가 생각나 화가 났다.
차아악! 착! 차악!
마구 채찍을 휘두르자 외눈박이는 비명을 지르고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의 동료를 일격에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방패를 이마에 던져 단번에 머리를 깼다.
질릴만도 하겠지.
그 뒤로 찰지게 계속 때려주자 외눈박이의 전신은 피투성이가 됐다.
쿠으으으. 쿠응!
녀석은 울먹거리는 듯한 시늉까지 한다.
기가 막히는군.
하나 뿐인 눈을 최대한 비굴하게 뜨고는 봐달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애초에 봐줄거면 방패로 편안한 죽음을 내렸겠지.
나 같은 하이에나가 이런 식인 괴물에게 동정심이 생기는 일은 없다. 10년의 세월 동안 몬스터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는 동료를 한두 번 본 줄 아나.
그 녀석들이 생각나서라도 나는 더욱 세게 채찍질을 했다.
쿠웅! 쿠우웅!
굵고 낮은 목소리로 외눈박이는 절을 해댄다.
재밌게도 인간처럼 두 손을 비비고 무릎을 꿇은 채 목숨을 애걸해왔다.
지독한 녀석,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를 낄낄대며 뜯어먹는 게 이 외눈박이다. 그런데 자기 목숨이 위험하자 이런 태도라니. 이중성에 치가 다 떨릴 정도다.
차악!
다시 한 번 때려서 녀석의 뺨에 핏자국을 만들었다.
다른 부위 말고 뺨을 때린 건 일부러였다. 아직 자존심이 남았다면 뺨을 맞은 일 때문에 독기를 보일 터. 한순간이라도 날 노려본다면 그 시선을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 외눈박이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아공간에서 쇠사슬 달린 개목걸이를 꺼내서 던졌다.
“차라. 제대로 안 차면 죽여 버릴 테니까.”
인상을 구기며 으르렁거리자 외눈박이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더욱 채찍을 휘둘렀다.
쿠르릉!
알겠다는 듯 커다란 개목걸이를 쥐는 외눈박이.
역시 이런 새끼들은 죽도로 패야 말을 듣는단 말이지.
곧 외눈박이는 사슬에 묶인 개와 같은 처지가 됐다.
“걸어, 새끼야.”
나는 뒤쪽에서 채찍을 치며 외눈박이에게 걸어갈 곳을 알려줬다.
이건 실로 기묘한 광경이리라.
작은 인간이 외눈의 거인을 사슬로 채운 뒤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이야, 나처럼 근사한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 봤어?
***
결국 노량진까지 외눈박이를 끌고 왔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노련한 나니까 문제없었다. 아니, 외눈박이가 함께해서 편리한 부분도 있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들이 외눈박이를 보고 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현재 외눈박이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지하도에서 내가 3등급 몬스터인 거대 벌레를 일격에 날려버리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자기 상식으로 내 힘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부지런히 걸어라.”
찰싹!
다시 채찍을 내리쳤다.
까불고 있어, 이 이집트 노예 같은 새끼.
내가 얘를 데려온 이유는 단 하나다. 안전하게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안전이 내게만 해당되는 사안이었지만.
나는 녀석을 그대로 동작구청에 데려갔다.
그러자 외눈박이가 대경해서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떨어댔다. 애초에 안 들어오려는 걸 채찍질로 겨우 데려왔는데 죽은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를 보고는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쫄지 마, 죽은 거 보고 그러냐.”
나는 괜찮다는 듯 녀석의 앞에서 사체를 발로 차고 나중에는 전기톱으로 썰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외눈박이도 좀 진정이 됐다.
“자, 이거 받아라.”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게 커다란 곡괭이를 꺼내 던졌다.
이것 역시 일부러 준비한 거다. 나는 사체 가슴팍 쪽에 올라가서 내리찍을 부위를 락카로 칠했다.
“자, 여길 파는 거야. 알겠지?”
그 뒤에 나는 사슬을 근처의 건물 잔해에 묶었다. 마치 철골 구조가 드러난 곳이 있었기에 사슬을 묶기 적당하다.
“어서 해.”
채찍을 쥐고 노려보자 외눈박이는 결국 곡괭이를 들고는 사체 위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지도 별 수 없겠지.
게다가 죽은 군주급 사체가 별 거 아니란 것도 알게 됐고.
곧 곡괭이질에 피가 튀길 시작한다.
퍼억!
진짜 다시 봐도 이상한 피야. 죽고 응고되지도 않다니. 아마 저 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내가 아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이에나에게 하이에나만의 지식이 있듯, 헌터도 헌터만의 지식이 있다.
헌터 중에서도 마법사 계열이 저런 것의 용도를 잘 안다.
그건 상당히 고급스러운 비전이었다.
퍼억! 퍽!
곡괭이가 살점을 파고드는 소리가 꽤 끔찍하다.
외눈박이가 힘껏 내리찍느라 죽은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가 흔들거린다. 마치 심폐소생술 할 때 의식없는 환자가 흔들거리는 모습과 비슷했다.
나는 한동안 바닥에 채찍질을 하며 외눈박이를 재촉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됐다 싶어서 슬쩍 몰래 빠졌다. 다행히 외눈박이 녀석은 작업에 열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여기까지야, 눈 하나뿐인 친구.
안전거리까지 물러난 나는 그걸로도 못 미더워서 콘크리트 뒤에 숨고는 방패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폭음이 터져나왔다.
아, 건드렸구먼, 건드렸어.
콘크리트에 등을 기대고 있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화끈한 열기가 밀려온다. 그리고 콘크리트가 가리지 않은 옆쪽으로 뭐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하하!”
황당해서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외눈박이의 눈깔이었다. 야구공보다도 큰 그것은 뒤쪽으로 길게 시신경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시신경 쥐고 눈을 들어올렸다.
막 오븐에서 나온 요리처럼 뜨거운 게, 난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 기념품도 없겠지.”
마음 같아서는 이 눈알을 식량 주머니의 간식으로 변했던 이름 모를 이에게 공양하고 싶을 정도다.
원래 내 복수는 남이 해주는 법.
부디 저승에서나마 원한을 푸시길.
아공간 주머니에 외눈박이의 눈을 던져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앞이 불바다다. 뜨거운 바람이 화끈하게 불어와 앞머리를 뒤로 넘겨줬다.
그런데 올라간 앞머리가 내려오지 않는다.
이것 참. 자연적인 드라이기라고 해야 하나.
열풍 탓에 올백이 된 머리칼을 만지며 앞으로 걸어갔다.
불이 화끈했지만 내 방패는 화염 저항 +30%를 갖고 있다. 폭발 후에 사방에 들러붙은 불길 따위는 무시해도 좋았다. 아까 뜨겁게 달궈진 눈깔을 선뜻 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반면 부츠에서는 밑창의 고무가 타면서 특유의 안 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자,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
이미 몇 번이고 겪은 상황이다. 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란 놈은 참 적응력이 남달라요.
이제는 뭐가 뻥뻥 터져도 기념품 수집에 여념이 없고. 아주 그냥 전쟁형 인간이야.
대강 목줄과 사슬을 정리하고 있자니 곧 화염의 회오리가 일어나며 검은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난다.
언제 봐도 죽여주게 예쁘다.
그러나 메타트론의 아름다움은 뭔가 위화감이 있었다.
마치 인형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녀는 나를 발견하더니 성큼성큼 걸어서 다가온다. 그리고 막 뭐라고 하려는 순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왔군, 기다리고 있었다. 네게 할 말이 있다, 메타트론.”
“뭐?”
인형 같은 무표정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진다.
“할 말이 있다고, 메타트론. 지금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협조 좀 해줬으면 하는데.”
“우리가 원래 아는 사이인가? 헌터.”
“나는 헌터가 아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유제아다.”
“그게 무슨?”
메타트론은 너무나 친근하게 말을 거는 꼴이 무척 고민스러운 듯했다.
나는 그런 메타트론을 보고 씩 웃고 말았다.
“기억해 내라고 했지, 내 이름.”
============================ 작품 후기 ============================
주말이라 연참입니다. 메타트론 에피소드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앞으로 더 재밌으니 계속 함께해 주시길. 이 에피소드의 마무리로 도입부가 끝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이 세계관에서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질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