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32
00032 2-2. 우리에게 허락된 새로운 땅 =========================================================================
내 물음에 메타트론이 코웃음을 친다.
“하! 설마 성애의 표현으로 상대의 입에 자기 입을 맞춘다는 뜻을 가진 키스를 생각하는 것이냐?”
“…….”
“역시 인간의 상상력은 이뤄질 수 없는 걸 꿈꾸는 모양이군.”
혼자 망상에 잠시 빠진 건 맞는데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하다니.
너 나중에 두고 보자.
부들부들.
“놔, 일어나게.”
혼자 헛물켠게 민망해 메타트론의 손을 밀어냈다.
그러자 그녀는 킥킥 웃더니 내 머리와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게 너무 기분이 좋아 약간 울컥했던 것도 봄날의 눈처럼 샤르르 녹아버렸다.
안 돼, 안 될 말이지. 표정이 풀린 게 들키면 민망하다. 그리고 어쩐지 진 거 같잖아.
괜히 얼굴을 엄격, 진지하게 바꾸려는 순간 이마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는다.
그 순간 전기 같은 소름이 돋아 목을 타고 어깨까지 내려갔다.
“흐읏!”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곧 이마에 닿았던 메타트론의 입술이 떨어졌다.
“지금은 이 정도로 봐다오. 누군가에게 뽀뽀를 해본 것은 처음이구나.”
“……감사합니다.”
“쿡쿡. 아까부터 왜 존대인 것이냐? 우리 사이에.”
“……아니, 뭐.”
아직도 입술이 닿은 순간 느꼈던 달콤함이 남아 있어, 그녀를 어떤 얼굴로 마주봐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잘해 주었다.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메타트론의 손은 이제 내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충동을 참지 못하고 누운채로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옅은 회색의 머리칼은 내 손가락에 걸렸다가 곧 비단처럼 스르륵 미끄러진다.
메타트론은 작게 웃으며 내 행동을 내버려 두었다. 존체 높은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걸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간 서로를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내 손끝이 그녀의 여기저기에 닿을수록 친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래서 곧 메타트론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려졌다. 나는 내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사실 할 말이 있다.”
손길을 떼고는 무슨 일인지 눈으로 물었다.
“들었을 것이다. 본녀가 자신의 패밀리를 모두 죽였다고.”
갑자기 민감한 주제를 꺼내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나도 메타트론에 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안 좋은 이야기 투성이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난 메타트론은 소문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렇기에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에 대해 묻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한데 메타트론이 이 주제를 먼저 꺼낼 줄이야.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그리 말해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어렵사리 입을 연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사실 그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패밀리는 모두 본녀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모든 이야기는 산달폰이 죽은 날로부터 시작된다. 메타트론은 산달폰의 죽음이 방어 위주의 작전과 대천사들의 소극성 때문이라 확신했고, 적극적인 공세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하지만 분기탱천한 그녀의 주장은 몇몇을 빼고는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메타트론은 무력으로 서열 1위가 되긴 했지만 정치적 역량은 거의 0에 가까웠다. 대천사들의 회합에서도 늘 한 발 빠져있는 모양새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장을 지지해줄 세력이 없었다.
“결국 나는 신성지를 정리하고 혼자서라도 싸우기로 결의했지. 산달폰은 자기 신성지를 버리면 분명히 살 수 있었다. 한데 우리가 만든 고집스러운 방어 작전에 희생된 것이다. 하니 내 입장에서 신성지란 족쇄로만 보였다.”
새삼 나는 메타트론에게 다시 신성지를 선포할 걸 요구한 게 미안해졌다.
“위험한 일이었기에 패밀리는 모두 해산시켰다. 하지만 대부분 끝까지 남겠다고 고집을 부려대더구나.”
원래 메타트론 패밀리는 그녀의 위치에 비해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수는 불과 십여 명이 좀 넘을 뿐이었다고. 서열 2위의 미카엘라가 수백 명을 거느린 것과 비교됐다.
“너, 어지간히 사교성이 나쁜 녀석이었구나.”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래서 결국 패밀리는 어떻게 했어?”
“곤란하더군. 모두 내 주장에 동조해 끝까지 따라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메타트론은 그들과 함께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수년 간 강북지역에서 훌륭히 싸워나갔지만, 모두 하나둘 쓰러져 마지막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결과는 평소 자신을 무심함으로 둘러싸려 하는 메타트론에게조차 큰 상처로 남았다.
“내 결심의 끔찍한 역설은, 진실한 것이었던 적에 대한 복수심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희생을 양산했단 점이니라.”
패밀리와 함께 강북지역을 뒤집는 작전은 수년간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군주급을 몇이나 참살한 업적은 지금도 높게 평가받는다. 아는 이가 적어서 그렇지.
그때 군주급이 여럿 쓰러진 탓에 몬스터의 강남지역으로의 공세가 둔화되었다는 게 중론.
현재 인간과 천사가 누리고 있는 일시적인 평화는 메타트론과 그녀의 패밀리의 희생 덕분이었다.
하면 지금 그녀를 향한 날선 평가는 왜일까?
메타트론의 싸움이 도움이 되었다는 건, 최근에야 겨우 주목받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그녀의 싸움이 여러 소동을 일으켰고 모두 이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강북 지역을 공격당한 몬스터들이 발끈한 탓에 웨이브가 몇 차례나 일어나 도시의 피해가 컸었다. 그 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영웅의 길은 사회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보통 용감한 개인의 영웅적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우리에게 불편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경우는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게 된다.
“그만두지 그랬어? 힘들면 그만했으면 됐잖아.”
“그때는 이미 멈출 수가 없었다. 죽어간 권속들이 생각나서 말이지. 그들은 마지막까지 나의 염원을 지지해줬다. 그리고 믿어줬다. 하니, 어찌 본녀가 사냥터를 휘젓는 걸 포기할 수 있었겠느냐.”
아마 사냥터의 삶이, 다시 만날 수 없는 패밀리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였을 거다.
수년 간 함께 강북에서 경기 북부까지 질주한 그들이다. 메타트론이 패밀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강렬한 기억은 모두 그곳에 있었겠지.
그렇기에 그만두고 떠날 수 없었을 거다.
“도움을 청해볼 생각은 안 해본 건가? 몇 정도는 널 지지해 주던 천사가 있었다며.”
“떠올리지 못했다. 패밀리가 사라지자 혼자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 대답으로, 나는 약간이나마 메타트론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면의 맹세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산달폰의 복수를 한다, 패밀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등을 지키는 것에 온갖 힘을 기울이면서도, 현실적인 많은 부분에서는 무지하고 소홀했던 거다.
심지어 그런 태도는 다른 이가 메타트론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어렵게 했겠지.
그녀는 혼자서 행동했고, 타인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섬 위에 외로운 삶을 건설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시밭 길의 어려운 삶을 살아온 듯했다.
나는 메타트론에게 연민을 느꼈다.
몸을 일으켜서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어?”
“말했지 않느냐. 본녀는 적 앞에서 두려움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
“아니, 혼자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패밀리를 잃은 뒤로 줄곧 혼자였다면서.”
“…….”
“두려움을 느꼈겠지. 너는 인간을 닮았으니까. 너는 진짜 천사가 아니니까.”
타임 루프라고는 해도 메타트론은 생각보다 쉽게 날 허락했다. 비록 적을 격살하기 위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도 망설임은 적었다.
아마 그녀는 지쳤던 거다. 이제 지긋지긋했던 거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삶 자체를 말이다.
메타트론이 말한 걸 토대로 추론해 보면 그녀가 외톨이처럼 적지형에서 떠돈 건 적어도 6년 이상이다. 죽은 패밀리에 대한 기억만으로 버티기에는 가혹한 세월이었겠지. 늘 전투로 점철된 삶이었을 테니까.
그러다 마침내 왕과 싸우러 갔다.
그녀 나름대로 끝을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했고 도주하던 처지에 나를 만났다. 그런 그녀가 내게서 희망을 찾고 싶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난 세월 나처럼 갑자기 자신의 삶에 끼어든 존재는 없었을 테니까.
“…….”
메타트론은 대답이 없었다. 두려움에 대해 인정하는 건 이 자존심 높은 존재에겐 어려운 주문이겠지. 그렇다면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한다.
“메타트론, 혼자서 걸어가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면 한 가지는 꼭 말해줘야 한다. 네가 그 점을 확실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는 사전에 협의했던 것처럼 한시적으로 끝나게 될 거다. 타르하, 우룩켈, 하담, 카르눔은 격살되고 제압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달성된 거지.”
메타트론의 눈빛이 침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에게 연민을 느껴도 분명히 정해야 할 부분은 있는 법이다.
이건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녀가… 아니, 내가 무엇을 말하면 좋은 것이냐.”
나는 그녀의 양손을 강하게 쥐고 요구했다.
그녀가 자신의 결심에 갇혀서 주변에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말을.
“그 입으로 내게 말해. 도와주세요, 라고.”
순간 메타트론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아마 과거 그녀의 아끼던 패밀리에게도 그런 말은 해본 적이 없었겠지. 패밀리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메타트론을 따라나섰을 테니까.
하지만 메타트론은 이제 알아야 한다.
섬처럼 고립되고 외로운 삶을 유지하기 보다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나는 그것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메타트론. 나는 널 돕고 싶다. 기꺼이 너의 화신으로서 조력하고 싶다. 하지만 네가 그걸 그저 말없이 받아들인다면, 나는 과거 네 패밀리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리고 너 역시 과거의 너와 다른 게 없다.”
이제는 달라지고 변해야했다.
“만약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후회는 그때처럼 반복될 거다. 그때 너는 패밀리와 올바르게 시작하지 못했다. 말없이 상대의 호의를 수락하고는 제대로된 관계를 선물하지 못한 거다. 그렇게 모든 게 미결로 남았기에 네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고 남은 거다. 그리고 네 패밀리가 죽을 때, 나는 존경하던 메타트론의 부탁을 받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했다.”
가엾게도 그들은 짝사랑만 하다 죽었다.
“아…….”
“메타트론, 내게도 제대로된 관계를 주지 않을 건가?”
메타트론의 얼굴이 괴로움을 견디느라 찡그려졌다.
“나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권속들의 마음에 아무 것도 돌려주지 못했다.”
“그러니 내게는 말해줘. 그렇게 해준다면 설령 죽는다고 해도 긍지를 갖고 눈을 감을 수 있을 테니까. 이 나는, 천사 중의 으뜸인 메타트론이 의지했던 사람이라고.”
안타깝게도 메타트론은 미숙했던 거다.
태어난 지 겨우 20년. 그 기간도 대부분 전투로 보냈다. 아무리 인간의 창작물을 참고해 자신을 구성했어도 미비한 점 투성이였을 거다. 아마 다른 천사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했을 거다. 미카엘라라면, 스이엘이라면 메타트론과 달랐을 거다.
“흐으윽, 흐윽. 흑.”
갑자기 메타트론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온다.
메타트론은 작은 손으로 어떻게든 눈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막아보려 애쓰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오히려 어깨가 더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내게 도움을 청하는 건 두려워하지 마. 나는 네 화신이니까.”
“내가 널 의지해도 되는 것이냐?”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 너는 바보다, 스이엘보다 훨씬 바보야.”
곧 메타트론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날 올려다본다.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는 얼굴이 실로 엉망진창이었다.
“흐윽! 끅!”
결심이 선 듯했지만 메타트론은 한참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다 겨우, 간신히, 누군가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도와주세요.”
그걸로 충분했다.
유제아와 메타트론 사이에 진정한 계약이 성립한 순간이었다. 이것으로 이제 한시적이란 말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게 됐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그걸로 됐어.”
부디 내 품이 이 강하지만 작은 천사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모습을 봤다고해서, 메타트론을 이해했다는 오만을 갖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살짝 접촉했던 거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작은 이해를 가졌을 뿐이다.
하니, 그렇기에.
앞으로 메타트론과 더 많은 접촉 더 많은 관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