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52
00052 3-1. 사냥개를 삶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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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모두 내 말을 따르도록.
북쪽 벌레의 사신이 오고 있으니 재빨리 행동해야 했다.
-쿠루쿠, 로테, 레테는 모습을 감추고, 아무드와 하르담은 내 곁을 지키도록.
전력을 숨기는 건 북쪽 벌레들이 우리를 과소평가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쓸모없다는 인상을 줘도 곤란했기에 둘은 곁에 남겼다.
-동맹을 요구할 텐데, 여러 가지로 우려가 됩니다.
아무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그들은 듣기 달콤한 약속으로 동맹을 체결하자고 하겠지. 여왕을 몰아낸 뒤의 자치 따위를 보장하며 말이야. 하지만 그게 독이든 과실인 건 누가봐도 자명하다. 그러니 우리는 역으로 그들을 이용해야 한다. 어수룩하고 단순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라. 그저 써먹고 버리면 좋을 패 정도로 인식하게 말이야. 그래야 우리가 역으로 저들의 의표를 찌를 수 있다.
-복안은 있으신 겁니까?
하르담은 대체 무슨 방법인지 궁금한 듯했다. 그러나 아직 말해줄 수 없었다. 아직 나도 계획만 세웠을 뿐이니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밀어붙여야 한다. 리더를 오래 한 나는 이럴 때 호언장담하는 게 중요한 걸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날 믿도록. 반드시 이 부화장에서 북쪽 벌레와 여왕의 세력을 모두 몰아내겠다.
그리 확언하자 둘은 안심한 기색이 됐다.
이럴 때 수하들에게 의문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의문은 리더의 가슴 속에만 혼자 간직하면 그만이다.
-보고 드립니다! 사신이 왔습니다!
장교 벌레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알렸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모셔라.
-넷!
잠시 후 수행원을 데리고 온 사신이 나타났다. 그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귀뚜라미 같이 생겼고, 배는 살이 쪄 비대했다. 걸음은 뒤뚱 뒤뚱거려 웃겼으나 태도 자체는 무척 거만했다.
-북쪽 여왕 폐하의 뜻을 전하러 왔소이다.
말을 하면서도 사신은 나의 거대함에 놀란 기색이었다. 그는 특히 내 황금갑주에 크게 감탄한 듯했다.
-네임드에 영웅이 있다고 들었는데 실로 기골이 장대하시구려!
-반갑소, 어서 오시오.
-크흠!
사신은 자신이 너무 놀란 티를 냈다고 생각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자세를 가다듬는다.
-바쁘니 바로 본론에 들어가겠소이다. 북쪽의 여왕께서는 그대들, 이름을 가진 벌레들의 분투에 크게 감탄하셨소이오. 하여 우리는 그대들을 돕고 원하는 독립을 쟁취하도록 후원하고 싶소이다.
-그거 감사한 말씀이시구려.
-그대들은 운이 좋은 것이오. 우리 북쪽 여왕께선 자비로운 분이라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손을 내밀길 주저하지 않소이다.
그건 아니지.
손을 내밀었던 남쪽 여왕을 지금 공격하고 있잖나.
-여왕 폐하 만세!
내가 나서서 외치자 옆에 있던 아무드와 하르담도 눈치껏 따라한다.
-여왕 폐하 만세!
-여왕 폐하 만세!
사신은 이 광경에 매우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폐하의 자비로운 결정에 대해 그대들도 마땅히 보답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물론이오.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하겠소이다. 군사적 협력이라면 이쪽도 기대하는 바이오.
내 자발적인 말에 사신은 이런 호구들을 봤나, 하는 표정이 됐다.
그 기색을 눈치 챈 하르담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기에 내가 서둘러 눈치를 줬다. 우리는 사신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남쪽 촌뜨기 정도로 비춰져야 좋다.
-그러면 우리 폐하의 조건을 말하겠소이다.
-듣겠소.
사신과 우리는 실무적인 부분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최대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였다. 대놓고 바보 같은 척하는 것보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나 결국 속일 수 있는 대상인 척하는 게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는 잘 해냈다.
나는 눈앞의 이득이 보이는 곳에는 집착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인 것은 모른 척했다. 그렇기에 사신은 신이 나서 입을 놀렸다.
아마 자신이 지금 한 호구를 탈탈 털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장장 여섯 시간의 마라톤 회의가 끝나자, 그야말로 을사조약 뺨치는 호구조약이 탄생했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티내지 않고 좋아했다.
-여왕께서 우리의 안녕과 존엄 유지를 보증하신다니 이 이상의 조약이 없소이다. 이제 우리 자유충도 여왕 폐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소이다.
-서로 납득할만한 조약이 맺어져서 다행이오.
사신은 순진한 고객을 거하게 털어먹은 악덕 상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조약은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옆에서 하르담은 무심한 척하느라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반면 나는 외교나 자치에 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그저 여왕의 보호에 만족한다는 반응만 피력했다.
-그럼 연락 장교를 보내겠소이다. 앞으로 군사적으로 협의할 내용이 많을 것이오.
-좋소.
일단 그렇게 북쪽 벌레의 사신은 돌아갔다. 그러자 간신히 참고 있던 하르담과 아무드가 폭발했다.
-타르손님! 어쩌자고 이런!
-이건 외교에 대해 무지한 제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됩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우리를 바보 취급하고 있다 그건가?
-맞습니다!
동시에 대답하는 그들. 나는 벌레 껍질 위에 새겨진 조약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대들의 견해가 옳다. 본충은 이 조약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갖지 못한 듯 행동했다. 하지만 말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지키지도 못하는 것이다.
-네?
의아해 반문하는 그들.
나는 그들 앞에서 조약이 새겨진 벌레 껍질을 밟아 뭉개버렸다.
-이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장난질에 불과하다. 조약의 성립 요건에는 조약이 적법하고 실현 가능할 것이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건 그 두 개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지. 적법하지 못한 불평등 조약이며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
내 말에 아무드가 반색한다.
-지키실 생각이 처음부터 없으셨군요?
-그렇다.
반면 하르담은 우려를 표한다.
-북쪽 여왕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상관없는 문제다. 남쪽 여왕이 축출되면 그 다음은 우리 차례다. 이딴 조약 놀이로 잠시 시간을 끌 수 있으면 우리에게 나쁠 건 없지.
결국 힘으로 물리치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나당전쟁이 생각났다.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덕을 보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당나라와 싸워야했다. 북쪽 벌레는 당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최대한 놈들에게 협력하는 척하며 힘을 키운다. 그리고 때가되면 그대들에게 본충의 안배를 보여주마. 하니 근심하지 말라.
그렇게까지 얘기하자 둘은 알겠다고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내 안배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
북쪽 벌레들은 승승장구를 이어나갔다.
원래 남쪽 벌레들보다 호전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그들이다. 게다가 부화장을 운용한 역사 역시 남쪽보다 길다. 그런 북쪽 벌레의 공격에 우리 자유충까지 호응하고 나서자 여왕은 연일 궁지에 몰려갔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자, 여왕은 결국 자신의 거대한 방 안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은 마지막 방어선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견고했다. 연일 계속된 북쪽 벌레의 공격도 별 효과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적당히 싸우며 북쪽 벌레의 승리를 도운 우리는 슬슬 그들에게 필요가 없어진 시점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이탈에도 북쪽 벌레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내 앞에는 쿠루쿠, 하르담, 아무드, 로테, 레테, 이렇게 내 밑의 다섯 장군 벌레가 모여 있었다. 오호대장군이라고 칭해도 되겠구먼.
-그간 본충을 믿고 북쪽 벌레들과의 불안한 동맹에 응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노니, 이제 뒤통수를 칠 때가 되었다.
-드디어!
-오오오!
장군 벌레들이 기뻐했다. 이들은 북쪽 벌레를 매우 증오한다. 지역감정도 애초에 뿌리 깊은데, 그들이 동족을 토벌하고 있으니 싫을 수밖에. 아무리 여왕의 벌레들이 적이라지만 여왕이 죽고 지배력이 사라지면 함께해야 할 동포들이다.
-다행히 북쪽 벌레들은 마지막 과제에 전력을 집중한 상태다. 처음부터 우습게 여긴 이쪽은 안중에도 없지. 우리는 그들에게 하찮게 보이는데 실로 우아하게 성공했다.
-하면 이제 타르손님의 복안을 들려주십시오.
쿠루쿠가 대표로 물어왔다.
-모두 말할 테니 신중히 듣고 고민을 거듭해다오. 사실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그대들에게 충격적일 것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내 설명이 다 끝나자 장군 벌레들은 모두 깊게 침묵했다. 그들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해결책이었기 때문이었다.
***
장군 벌레들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 역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조용한 토굴에 자리를 잡고, 반나절 정도 절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명을 내렸다. 토굴 앞에는 호위 벌레들을 잔뜩 배치해 장군 벌레들이 찾아와도 물리치라 전해 두었다. 그렇게 조치한 나는 빙의를 풀었다.
인간의 영혼으로 돌아와 팔과 다리를 보자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하다.
-크르르?
타르손이란 이름을 갖게 된 벌레는 갑자기 빙의에서 깨어나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 재빨리 지배를 걸어 복종시켰다. 그리고 내가 일을 보러 간 사이에 어찌 행동해야 할지 정해줬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배의 대상이 대답을 해 오자 신기한 기분이 되었다. 희류나 대치는 말을 못했기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타르손을 일변한 뒤 군소차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본체에 다시 안착해 노량진으로 순간이동했다.
“아!”
돌아왔구나.
오랜만이다. 머리 위의 햇살조차 신선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뺨을 간질이는 바람과 함께 지저와 전혀 다른 지상의 냄새가 확 밀려왔다. 나는 경이로움을 느껴 잠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정이 바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없어 원룸으로 돌아가는데, 직립 보행하는 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쯤 기듯 돌아가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에 누가 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랄까. 건물로 들어가 메타트론의 원룸의 벨을 눌렀다. 그러자 오랜만에 보는, 인형 같이 깜찍한 소녀가 놀라워하며 날 맞이한다.
“살아있었던 것이냐!”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 너무하는군.
“왜 유감이야?”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대를 걱정하느라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메타트론은 우는 시늉을 한다.
물론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고 있지 않았지만.
“자, 그리 서있지 말고 어서 들어 오거라. 그간 어떻게 지냈던 것이냐?”
“할 말이 많아. 그런데 별로 시간은 없고.”
원룸 안으로 들어가 작은 탁자를 두고 마주보며 앉았다. 힐끔 탁자 위를 보니, 빼곡한 글씨로 채워진 서울 지도가 보였다. 주요 공격 목표나 적에 대한 정보가 정리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이 녀석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
“말하라, 유제아. 듣겠다.”
사안이 중하다고 여겼는지 메타트론은 진지한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신성지를 늘리자. 여의도 방면으로.”
메타트론은 대천사다. 그것도 서열 1위의. 당연히 노량진의 면적보다 넓게 신성지를 펼칠 수 있다. 방어 문제로 그리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의도 말이냐? 물론 그곳이 본녀의 다음 목표긴 하다만…. 이해가 안 되는 말이구나, 유제아. 노량진도 지형을 변화시키는 기적으로 근근이 유지하는 우리다. 허허벌판과 다름없는 여의도에 신성지를 만들어도 어떻게 버틴다는 말이냐?”
상식적인 의문이었다.
신성지를 넓히는 건 문제가 아니다. 지킬 방법이 없으니 못하는 거다.
하지만 내가 지금 요구하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여의도 방면으로 신성지를 늘리되 지상이 아닌 지하로 하자는 말이지.”
“뭐? 지하?”
메타트론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생각해 봐. 꼭 헌터가 인간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