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59
00059 3-3. 개미지옥 작전 =========================================================================
웨이브가 끝나리라 기대하는 시점에 더 큰 웨이브가 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난리가 났다.
급히 12인 위원회가 소집됐는데, 거기서 내가 지형 변화의 가능성을 언급하자 다들 암담한 얼굴이 됐다.
“만약 그렇다면 노량진은 끝장입니다.”
“헌터를 대규모로 증원해야 합니다. 우리도 만 단위는 되어야지요.”
서로 격론이 오고갔다. 그 정도로 모두 흥분한 상태였다.
현재 이곳에 있는 이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서열 1위 대천사 메타트론의 위원 유제아.
서열 2위 대천사 미카엘라의 위원 백이륜.
서열 3위 대천사 가브리엘의 위원 남명우.
서열 4위 대천사 라파엘의 위원 윤혁.
서열 5위 대천사 바라카엘의 위원 임철웅.
서열 6위 대천사 우리엘의 위원 최희조.
서열 7위 대천사 이후디엘의 위원 강풍호.
서열 8위 대천사 라미엘의 위원 심상호.
서열 9위 대천사 나나엘의 위원 방유송.
서열 10위 대천사 카마엘의 위원 장인하.
서열 11위 대천사 자르키엘의 위원 조광혁.
서열 12위 대천사 세라피엘의 위원 유세나.
모두 우리나라 헌터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각 천사에게 한 명씩 허용되는 챔피언을 빼면 가장 강한 헌터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챔피언들이 대외적인 일을 하지 않는 걸 고려해 볼 때, 사실상 우리나라 최고의 헌터 1위부터 12위라고 해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지금까지처럼 지형의 이점을 살릴 수 없다면 대규모 희생이 따를 겁니다. 노량진 신성지를 포기하는 게 어떠신지요?”
“오랜 대치 상황에서 어렵게 얻은 전략적 성과입니다. 하물려 대천사 3위位께서 버티고 있는데, 포기하자는 말이 나옵니까?”
“저는 다만 이번에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듯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시 그 희망 없는 대치를 반복하고 싶다면 그리하십시오!”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몇 시간의 그런 대치 끝에 주전파主戰派가 승리하게 됐다. 노량진 신성지의 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며, 각 패밀리의 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사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이번에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헌터는 최소한 3만.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적이 지형을 일부 변화시킨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가 유리하오. 하지만 최소 3만이 안 된다면 어찌 6만이 넘는 적을 상대하겠소.”
주전파의 대표주자는 이후디엘 패밀리의 강풍호였는데, 태풍과 바람을 관장하는 이후디엘의 권속이라 그런지 호방하고 거친 사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칠기만 한 사내는 아니라 위원들은 정론을 내세우는 그의 주장에 점점 설득되고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한데 그렇게 주전론이 대세가 되자 이상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저희 라미엘 패밀리에선 5백여 명의 헌터를 파견할 수 있습니다. 라미엘님 휘하의 평천사쪽 헌터들까지 하면 적어도 1,300여 명은 가능할 듯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헌터를 움직이는 건 보통일이 아님을 모두 알 겁니다. 그러니 이 노량진 신성지의 주인께서 배려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쉽게 말해 용병비를 내라는 거다.
라미엘 패밀리만이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얘기가 나오자 다들 그놈의 배려를 부탁해 왔다. 전략적인 요충지는 요충지고 자기들 대가도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비용을 내가 어떻게 지불하겠는가.
하이에나를 3만 명 고용해서도 한 달에 3천억은 들어간다. 여러 부대비용을 빼고 순수하게 인건비만.
그런 그들을 석 달쯤 고용하면 어떻겠는가? 1조 넘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근세기 유럽을 보면 용병으로 전쟁을 해서, 전비 때문에 파산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건 지금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었다. 하물며 하이에나도 이런데 헌터 3만의 대가는 어떻겠는가?
물론 그들이 비용을 그대로 다 받지는 않는다.
이번 일은 대승적인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심각한 출혈이 될 건 마찬가지였다. 곧 그들이 원하는 보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메타트론 패밀리에서 충분한 호의를 받긴 했습니다만, 저희 패밀리가 거주하기에는 좀 좁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다른 패밀리들이 원하는 건 땅이었다.
그들은 날강도처럼 메타트론 패밀리의 신성지를 n분의 1로 나누길 원하고 있었다. 이게 왜 날강도냐면, 노량진 신성지 유지에 대한 부담은 메타트론이 지는데, 그 이득인 땅은 자기들끼리 나눠 갖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땅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건 다른 패밀리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신성지의 주인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크기일 게 틀림없다.
벌써부터 노량진 지도에 자기들끼리 줄을 긋고 난리 났다. 의장인 임철웅은 날 의식해서 말려보려고 애를 썼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다른 헌터들은 자기들이 참전하지 않으면 노량진 신성지를 지킬 방법이 없다고 여기겠지. 상식적으로 그게 당연한 결론이고.
그들은 과거 동작구청이 있는 노량진 중심가는 보존해 줄 테니, 나머지는 모두 넘기라고 하고 있었다.
이게 진짜 누굴 호구로 아나….
지난번에 땅을 좀 나눠준 건 어차피 텅텅 빈 땅, 사람 많은 게 우리 패밀리에도 이득이니 생색 좀 낸 거다. 하지만 총 면적 447,700평인 노량진 땅을 12분의 1로 나누는 건 절대 불가한 일이다.
그렇게 하면 각 패밀리에게 돌아갈 면적은 지난번에 나눠준 3,000평의 12배가 살짝 넘는다. 그걸 대천사 휘하의 평천사 패밀리와 또 분배하겠지.
이것들이 어디서 남의 땅을 지들 입맛에 맞게 조각조각 나누려고 하고 있어.
“유제아 위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창 그렇게 속으로 열불을 내고 있는데 강풍호가 내게 묻는다. 그러자 한창 지도를 보며 실랑이 중이던 모두의 시선에 내게 쏠린다.
다들 눈빛에 탐욕이 가득하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거겠지.
그래서 나는 그들의 기대를 부숴 버리는 폭탄선언을 했다.
“제안은 감사하나 필요 없습니다.”
“뭐라고요?”
대표로 내게 물었던 강풍호가 순간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의 표정은 딱 이거다.
‘이놈이 미쳤나.’
이해를 못한 듯해서 다시 쇄기를 박아줬다.
“필요 없습니다. 현 상태만 유지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 메타트론 패밀리에서 전부 해결하겠습니다.”
급기야 강풍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건지! 메타트론 패밀리라고 해봐야 유제아 위원을 포함해서 넷 밖에 없지 않습니까?”
“걱정 안 해주셔도 됩니다. 저희 패밀리엔 이 사태를 충분히 해결할 여력이 있습니다.”
회의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강풍호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어이없다는 제스쳐를 했고, 주변에선 탄식이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명이 날 이성적으로 설득하려 했으나 내 태도가 변함없자 급기야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물론 이 칼만 안 들었을 뿐, 강도나 다름 없는 놈들에게 까칠하게 대응한 내 탓도 있다.
“그렇게 땅 욕심이 나십니까? 그런데 다 빼앗기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시죠! 자기 욕심 때문에 이 중요한 일을 망치려는 겁니까!”
지들은 무슨 식민지를 맛있게 나누는 열강처럼 굴었으면서 웃긴다, 아주.
나는 차분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여러분들은 참 다정하시군요. 저희 패밀리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데 굳이 도움을 받으라고 언성을 높이시니 말입니다. 거, 적당히 하시죠. 침 튀겠습니다.”
“이런! 무식한 작자가!”
모두를 닥치게 하는 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여기서 현현을 해버리면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때는 그야말로 서열 1위 메타트론의 화신이자 그녀에 준하는 권리자이다.
막말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러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비난을 받아낼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내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차분히 눈빛을 빛내는 위원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패밀리의 남명우 같은 경우다.
과연 환영과 지혜의 천사인 가브리엘의 위원이라 그런지 태도 자체가 남들과 달랐다. 그는 오히려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외에 미카엘라 패밀리의 백이륜과 우리엘 패밀리의 최희조는 묵묵히 중립만 지킨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쪽 편이지만, 내 말이 황당하다 생각했는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면 적극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편을 드는 위원도 하나 있었다.
바로 성녀 유세나였다.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강 위원!”
기가 세기로 유명한 강풍호에게도 한 발짝 물러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녀! 처음으로 연애를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요! 당신 남자 관리 제대로 하시지!”
“안 그래도 잘 관리하고 있거든요!”
누가 봐도 내 열렬한 연인처럼 보이는 유세나였다.
유세나의 그런 태도에 몇몇은 화내는 것도 잊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까지 남자 한 번 안 만났던 유세나가 나라면 목숨 걸 것처럼 악을 쓰고 있으니 기가 막힌 모양이다. 남성 위원 중 일부는 부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평소 유세나에게 연심을 품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유 위원, 요구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저희 패밀리는 지금 주둔하고 있는 헌터들까지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미엘 패밀리의 신상호가 강수를 뒀다.
이유를 물어보니 증원 없이는 노량진은 풍전등화라, 뻔히 죽을 자리에 자신의 패밀리를 둘 수 없다는 얘기였다.
뭐, 상식적인 얘기긴 하다만 내 대답은 여전히 같다.
“그러면 돌아가시지요.”
“정말 정신이라도 나간 것입니까!”
나는 심상호가 악을 써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과열되자 의장인 임철웅이 나섰다.
“유제아 위원, 너무 요구가 과도하면 제가 중재를 하겠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시지요.”
자기가 나서 좀 조건을 완화할 테니 받아들이라는 협상안이었다. 그제야 몇몇이 아! 하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여태까지 협상을 위해 어거지를 부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리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겠지.
강풍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 저희도 그렇다면 약간은 양보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사태가 수습될 듯한 그때, 나는 다시 이 바보들에게 확언해 줬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 웨이브는 저희 메타트론 패밀리에서 처리하겠습니다.”
타협의 여지조차 없다는 내 말에 다들 벙찐 표정이 되어서 입만 뻐끔거린다.
그러니까 사람이 한 번 말하면 좀 들어라, 이것들아.
***
12인 위원에서 배째라는 의지로 버팅기던 나는 결국 대천사 셋에게 소환 당했다.
내 결정은 지금 헌터계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상필이 말로는 앤젤릭헌터넷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난 인터넷 같은 거 잘 안 보니까 상관없다.
나 보지 않는 곳에서 지들끼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겠다는 데 뭐라고 하겠나.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카페 라 푸앙이다.
라 푸앙은 메타트론 신성지와 미카엘라 신성지가 절묘하게 겹치는 곳에 있는 작고 예쁜 건물로, 천사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게 특이점이었다.
나는 유럽풍 건물에 도착해 작은 정원을 지나다가 익숙한 천사를 만났다.
“안녕!”
“어?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를 보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내겐 은인이나 다름없는 스이엘이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미카엘라님과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끝나고 잠시 정원을 구경 중이었어.”
지금 스이엘은 본체가 아니라 환영 상태다.
신성지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을 때 천사는 이렇게 환영 상태로 움직이곤 한다.
“그러시구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이엘님.”
“헤헤, 기뻐.”
내 말에 방긋 웃는 스이엘.
왜냐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녀가 대답해 준다.
“가식 없는 솔직한 말이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를 만나서 반갑고 좋아하고 있어.”
그리 노골적으로 지적해 주니 좀 민망한데.
나야 뭐 스이엘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호감이 있다고 할까.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네게 연락을 하려고 했어.”
“무슨 일이신지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메타트론 신성지도 어려운데, 말이라도 정말 고맙네. 다른 게 아니라….”
스이엘은 8등급 헌터 중 자질이 좋은 이를 내게 팔고 싶다고 했다.
원래 스이엘은 대지의 천사. 소속된 하급 헌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육성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천사를 다른 패밀리에 이적시켜서 돈을 번다.
한데 그 8등급 헌터를 내게도 이적시켜 주겠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스이엘의 패밀리는 그러고보면 헌터의 기초 학교나 다름 아니었다. 9등급으로 각성한 헌터를 교육시키고 키워서 8등급으로 만든 뒤, 다른 패밀리로 이적시키니까.
타 패밀리에서도 스이엘 패밀리 출신을 좋게 평가했다. 그래서 내겐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먼저 이렇게 선뜻 제의할 줄이야.
“물론이지. 유제아, 너니까 특별히 봐주는 거야.”
“매번 도움만 받아서 미안하군요.”
“됐어, 네가 몬스터와 잘 싸워주면 우리에겐 좋은 일이니까. 그것보다 어서 들어가 봐. 대천사님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던데, 또 뭔가 거하게 하나 터뜨렸나봐? 이 사고뭉치. 쿡쿡쿡. 그럼, 안녕!”
스이엘은 내게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나는 스이엘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하고는 라 푸아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메타트론, 미카엘라, 우리엘이 보인다. 둘은 본체였고 우리엘만 환영이다. 까칠한 미남자인 우리엘이 인상을 팍 쓰며 날 부른다.
“네놈, 이야기 좀 하자.”
옆에 있는 미카엘라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반면 메타트론만 핫초코를 홀짝이며 태평한 태도였다. 그러면서 살짝 혀를 찬다.
“둘 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니까. 쯧쯧. 우리 메타트론 패밀리야 말로 그 규모가 최대인 것을.”
그렇다.
헌터인 권속의 수는 뒤지지만 종복까지 합치면 명실상부 최대 규모의 패밀리였다.
그리고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이번 작전명은 개미지옥이라고 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