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67
00067 3-5. 몬스터들의 도시 =========================================================================
일주일 뒤.
패밀리의 여러 문제를 정리한 나는 한밤중에 잠행에 나섰다.
목적지는 강북 지대인 용산구이다.
“잘 다녀 오거라. 무운을 빌겠다.”
“응.”
몰래 떠나는 거라 배웅은 메타트론과 아리엘만이었다.
이번 작전은 그야말로 극비다.
“메타트론, 내가 없으니까 패밀리 일에 신경 좀 써줘.”
“알겠다. 그래도 사람 대하는 건 역시….”
사람들은 메타트론이 차가운 천사라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단순한 대인기피증이다.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싸움질이 주특기며, 그 외의 시간은 아무도 없는 신성지 안에서 유유자적하는 걸 좋아한다.
“직접 휘하의 헌터를 대면해야 하는 건 아리엘에게 시켜.”
아무리 아리엘이 영락했어도 그 신분은 기본적으로 천사다. 권위있는 존재니만큼 아리엘을 통해 명을 전달하면 잘 먹히리라.
“알겠다. 그럼 잘 다녀 오거라.”
“그래. 갔다 올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아리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리엘이 미간을 좁히며 묻는다.
“뭡니까?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러자 옆에 있는 메타트론이 얼른 인사하라는 듯 팔꿈치로 아리엘을 찔렀다.
결국 아리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공손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다녀오세요, 주인님.”
“그래, 그래.”
나는 일부러 숙인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처럼 말이다. 그러자 아리엘은 움찔하더니 몸을 가늘게 떨었다.
바르르르.
아무래도 굴욕감이란 건 좀처럼 적응되지 않은 감정인 듯했다.
***
몬스터 사태가 터지기 전의 용산역은 굉장히 번화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공허하고 거대한 폐허일 뿐이다. 많은 건축물이 해체되어 그 자재는 몬스터의 도시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몬스터 중 인간형은 지능이 있는 존재였고 인간처럼 도시를 만들었다. 과거 효창동 일대에는 현재 몬스터의 도시 하르쿰이 자리잡고 있다.
효창 운동장은 군주급 몬스터의 성으로 개조됐고, 효창공원과 숙명 여대가 도심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북으로는 배문 고등학교, 남으로는 금양 초등학교, 동으로는 신광여자 고등학교, 서로는 공덕 초등학교까지 뻗어있었다.
거주하는 몬스터는 4,000여 마리 정도.
그런데 현재 하르쿰은 혼란의 도가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하르쿰의 주인이 노량진 공략에 나섰다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개미지옥에 묻힌 두 명의 군주급 몬스터 중의 하나가 바로 하르쿰의 주인이었던 듯하다.
이렇게 군주급 몬스터가 죽으면 도시의 다른 강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따로 중앙에서 군주급 몬스터가 내려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지금 하르쿰에 군주급이 될 후보자가 넷이나 있어서 다들 다툼이 치열하다는 것. 그 때문에 현재 도시가 혼란에 빠져 연일 조직 간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좋아, 잘 말해줬다.”
“살려줘! 나는 아는 걸 다 말했다고!”
현재 내 앞에는 순찰자라고 불리는 몬스터 한 마리가 묶여있다. 순찰자는 판타지의 고블린과 유사한, 체구가 작은 인간형 몬스터로, 늘 무리지어 헌터를 찾아다니는 행동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순찰자들은 헌터와 직접 싸울 정도로 강하지 않아, 일단 헌터를 발견하면 더 강한 몬스터를 불러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헌터에겐 꽤 골치 아픈 몬스터로 통한다.
직접 싸우면 아무것도 아닌 놈들인데 어디 가서 꼭 무서운 몬스터를 데려오기 때문이었다.
“네 협조적인 태도에는 정말 감사하고 있어.”
나는 하르쿰 주변을 몰래 감시하던 중 홀로 다니는 순찰자를 발견해 곧장 납치했다.
빙의를 할까 했지만 혼자 다니는 게 수상해서 추궁해 보니 탈영병이라고. 몬스터 탈영병에겐 죽음 밖에 없다.
“어디로 도망가려고 했는데?”
“강원도에도 있는 독립 군주에게 가려고 했어.”
그러고 보니 전에 함 씨 자매를 납치하려던 놈들도 강원도 튀려고 했지. 그 독립 군주란 놈 밑에는 양 진영에서 이탈한 놈들이 어울려 사는 모양이다.
“그놈의 독립 군주는 어디에 있는데.”
“강원도 방태산. 주억봉 밑에 용갱골이라고 있는데 거기가 독립 군주의 영토야.”
“그래?”
“알았으면 이제 나를 놔줘.”
사실 빙의로 알아보면 더 확실하긴 했지만 빙의력을 낭비하긴 싫었다. 독립 군주에 대한 정보도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었고.
“좋아.”
그렇게 대답한 나는 마치 묶은 끈을 풀어주려는 듯 녀석의 뒤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주머니에서 질긴 끈을 꺼내서는 곧 녀석의 목을 감은 뒤 잡아당겼다.
“으그그그!”
순찰자가 발버둥을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롭게 녀석을 질질 끌면서 계속 목을 졸랐다.
“편히 쉬라고.”
“그그그그!”
순찰자의 두껍고 뒤집어진 입술 위로 게거품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그러는 것도 잠시.
녀석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더니 손발이 축 늘어졌다.
어리석은 놈.
내가 몬스터와 한 약속을 지키리라 생각한 거냐.
어쨌든 이 놈 덕분에 중요한 정보를 두 개 얻었다. 몬스터 도시 하르쿰의 상황과 강원도에 있다는 독립 군주의 거처를 말이다.
질질질.
나는 죽은 순찰자의 사체를 유기하면서 어떻게 하르쿰에 잠입할까 고민했다. 역시 그래도 순찰자 중 하나에 빙의해 들어가는 게 제일 무난하다.
일단 근처의 다른 건물 안에 들어가 숨은 뒤, 감시의 눈길을 발동했다. 36개의 눈을 통해 200미터 안의 원하는 걸 볼 수 있는 이 능력을 다가오는 순찰자를 찾기 적합하다.
범위가 200미터라 좁긴 하지만, 지금 있는 용문동은 좁고 복잡한 주택가라 이런 감시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굳이 복잡한 주택가에 있는 건 순찰자 무리 중 하나에 자연스레 빙의하기 위해서였다.
우우우웅.
마력이 진동하며 곧 적에게는 보이지 않는 36개의 눈이 출현했다. 나는 이것을 주택가에 CCTV처럼 뿌리고는 대기에 들어갔다.
내가 숨어든 집은 파괴나 약탈의 흔적이 없이 비교적 깨끗했다. 그래도 버려진지 20년이 넘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으나 내겐 별로 꺼려지지 않았다.
하이에나 생활을 오래 하면서 흉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면 오성급 호텔이나 다름 아니다.
나는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력 포트를 꺼냈다. 몬스터 사태 이후에는 전기 포트 대신에 이런 마력 포트가 대세가 됐다.
작은 마정석만 박아 넣으면 되니까 유용하다.
일단 물을 끓이며 컵라면을 뜯었다. 역시 작전을 나와 먹는 컵라면은 각별하다.
볶은 김치에 즉석밥까지 준비하자 아주 근사한 식사가 마련되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른 컵라면의 김이 얼굴을 기분 좋게 간질인다.
“후, 후.”
입김을 불어 식힌 뒤 면발을 입안으로 잔뜩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고소한 맛이 나는 볶음 김치까지 넣고 씹자, 입 안에서 감칠맛이 가득 찬다.
그렇게 배를 가득 채우고 나자 만족감에 졸음이 쏟아졌다.
적지에서 부주의하게 잠드는 건 위험했지만 감시의 눈길을 뿌려놓은 상태에선 괜찮다.
이 눈들은 약한 인공지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 조건에 반응해 신호를 주니까. 나는 5개의 눈만 따로 불러들여 내가 있는 건물 주위에 배치하고는 잠에 들었다.
“끄응….”
얼마나 잔 걸까.
역시 불편한 장소에서 자고 일어나니 온 몸이 피곤하다.
잠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36개의 눈 중 하나에서 신호가 왔다.
몬스터구나.
나는 신호를 보낸 눈을 통해서 상황을 살폈다.
보니까 7마리로 이뤄진 순찰자 무리였다. 무리의 행동거지는 매우 부주의해 보였다.
하긴 그럴 거다.
이곳은 그들이 만날 순찰을 도는 장소일 테니까. 게다가 헌터는 이 강북으로는 아직 올라오지 않는다. 군기가 빠지는 건 당연하다.
나는 주변을 정리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36개의 눈을 재조정해서 순찰자 무리까지의 길을 찾고 주변에 문제가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 함의 야행복 능력을 사용해 그림자로 변해 나아갔다.
그림자가 되면 지면에 달라붙는 바람에 시야가 제한되지만 36개의 눈이 보조해 주니까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쉬고 있는 순찰자 무리 근처로 다가가 대화를 엿들었다.
“정말 이 새끼는 어디로 도망간 거야?”
“진짜 미치겠다. 이런 고문관 새끼 하나 때문에….”
들어보니까 탈영병을 찾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 못 잡아가면 돌아가서 다 뒤지는 거야. 각오하고 찾으란 말이야.”
리더로 보이는 순찰자가 채찍을 휘두르며 성질을 낸다. 그러자 부하들이 얻어맞을까 몸을 웅크리는 꼴이 우스웠다.
휴식은 생각보다 길어지는 듯 그들은 곧 밥을 꺼내먹기 시작했다. 불결하고 더러운, 주먹밥 같은 먹거리였는데 고기의 지방과 알 수 없는 재료를 뭉친 듯했다.
와그작, 와작.
그래도 잘들 처먹는구나.
그나저나 무리에서 좀 떨어지는 녀석이 나와야 하는데.
빙의할 타이밍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무리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하면 가장 뒤에 녀석을 납치할까 했는데, 다행히 곧 한 녀석이 오줌을 싸러 일어났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떨어진 녀석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오줌을 다 싼 녀석이 돌아가려 할 때 빙의를 걸었다.
“으읏!”
혼이 밀려나자 잠시 움찔한 녀석은 그걸로 끝이었다.
순찰자는 8, 9등급 정도의 약한 몬스터라 빙의에 너무 쉽게 굴복했다.
흠… 그건 그렇고 이 꿉꿉함은 대체.
순찰자가 불결한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체험하니까 당장이라도 빙의를 그만두고 싶었다. 온 몸에서 냄새가 나고 기름이 번들번들한 게 아주 죽겠다. 그래도 하수도로 기어 다니던 짬밥이 있어서 참을 수 있었다.
얼른 돌아가야지.
무리가 있는 데로 가니까 다들 짐을 챙기고 있었다.
“킨! 서둘러라! 존만한 새끼가 빠져가지고는.”
리더가 나를 보며 으르렁거린다.
“알겠습니다!”
아마 이 빙의한 순찰자의 이름이 킨인가 보다.
일단 다들 다시 움직일 준비가 되자 리더가 새로운 명을 내렸다.
“이대로는 도저히 그 망할 놈을 찾지 못하겠다. 하니, 삼인일조로 흩어져 일대를 뒤진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나는 곧 켕, 킹이라는 이름의 순찰자와 셋이서 다니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빙의한 킨과 막역한 사이인 듯 친근하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과연 오늘 복귀할 수 있으려나.”
“그러게 말이야. 그놈은 평생 도움이 안 됐는데 마지막에도 똥을 주고 가는군.”
켕과 킹은 걱정 어린 말투였는데, 나는 혼자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왜냐면 탈영병의 사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찾아내면 공을 세우는 게 된다.
나름 포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상이 없어도 상관없다. 이대로 순찰자 무리에 묻어서 도시로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걱정스러운 건 목을 졸라 살해한 흔적이다.
그게 어쩌면 몬스터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르쿰의 유력한 몬스터들은 후계 구도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아래쪽에서의 보고를 무시할 확률이 높았다.
그게 아니라 목의 사흔 때문에 헌터에 대한 순찰자의 경계가 강화돼도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난 도시 안에 들어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일단 결심을 한 나는 일행을 사체가 유기된 장소로 유도했다.
“켕, 킹. 아무래도 저쪽이 수상하다.”
“에엥? 전혀 안 수상한데. 그냥 무너져가는 집이잖아.”
“내 생각도 같아. 저 안이라고 뭐가 있겠어?”
켕과 킹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나는 대로 적당한 핑계를 댔다.
“뭔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뭐? 정말?”
“킁카킁카, 난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둘은 코를 벌렁거렸지만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야. 저 집에서 피 냄새가 나. 한 번 들어가 보자고.”
둘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지만 결국 마지못해 따라 들어왔다.
“킁! 킁!”
나는 혼자 사냥개 흉내를 내며 냄새를 따라가는 시늉을 했다. 그 꼴이 재밌었는지 켕과 킹은 낄낄거린다.
그렇게 집에 들어간 나는 계단을 따라 2층에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죽어있는 탈영병의 사체를 찾아냈다. 그러자 켕과 킹은 놀라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찾아낸 거야!”
어떻게긴 어떻게야. 내가 숨긴 거니까, 찾았지.
“내가 원래 좀 냄새를 잘 맡거든.”
그러자 켕과 킹이 선뜻 믿지를 않는다.
“이 새끼, 어쩌다 얻어 걸린 거 가지고 구라치네.”
“안 그래도 나도 이 건물이 좀 수상하긴 하더라.”
“맞아. 사실 킨이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내가 오자고 했을 거야. 킨은 그냥 먼저 말한 것뿐이지.”
이것들이 그냥.
속으로 어이가 없었으나 그냥 셋이서 발견한 걸로 하자고 했다. 그러자 켕과 킹이 아주 좋아한다.
“좋아. 이 녀석을 찾았으니까 오릉 덩이를 몇 개 받을지도 몰라.”
“요즘 계속 배가 고팠는데 잘 됐다.”
오릉은 식사 시간에 이들이 먹던 그 냄새나는 이상한 덩어리를 말한다. 빙의한 킨의 기억 덕에 알 수 있었다. 그런 게 포상이라면 전혀 받고 싶지 않다. 내 눈에는 오릉 덩이가 아니라 오물 덩이로 보였으니까.
하긴 이런 하급 몬스터들의 처우야 뻔하지. 금화라도 받을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뭐, 공훈을 나눠준다니까 협조적으로 변한 켕과 킹이 위안거리랄까.
“어서 옮기자고. 이놈을 가지고 가면 이제 돌아갈 수 있어.”
우리 셋이서 사체를 가지고 가자 리더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이제야 좀 일을 해주는구나! 키키킥.”
리더는 죽은 탈영병의 몸뚱이만 가지고 가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인을 궁금해 하지도 않았기에 혼자 고민했던 게 어이없을 정도였다.
“자, 돌아가자. 오늘의 순찰은 이걸로 끝이다.”
리더의 명에 우리는 무질서하게 걸으며 몬스터의 도시 하르쿰으로 향했다.
나는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몬스터의 유력자들에게 접촉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