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69
00069 3-5. 몬스터들의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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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향앞으로 가!”
내 구호에 맞춰 100여 명의 순찰자들이 일제히 좌로 몸을 꺾어 걷는다.
“뒤로 돌아 가!”
이번에는 순찰자 무리가 반전해서 걸어간다.
“제자리에 서! 좌향좌!”
이 얼마나 늠름하단 말인가.
내가 중대장 켄의 몸에 빙의한 뒤, 이 군기 빠진 순찰대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비록 내가 군대식 제식에 밝은 건 아니었지만, 군출신과 같이 일하며 보고 들은 게 있다. 그것을 적극 활용해 군기 빠진 순찰대 녀석들의 정신 개조를 시행했다.
순찰자들은 지난 도살자와의 싸움에서 내 모습을 본 탓에 한 마디의 불만 없이 적극적으로 따랐다. 차분해 지고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보인 무위가 놀랍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금일도 수고 많았다, 해산하라.”
나는 부대의 제식 상태에 만족해하며 훈련을 종료했다.
혹자는 제식 훈련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하나, 나는 나폴레옹이 말했던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란 말을 믿는다. 물론 전열보병과 전혀 다른 순찰자에게 제식훈련이 전투력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줄을 맞춰 걷고 하나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건 군인의 덕목이요, 군인이 일반 싸움꾼과 다르게 하는 요소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제식 훈련만 사흘간 죽자고 시킨 결과 제법 다들 자세가 나오게 됐다. 게다가 도살자 고기를 풍부하게 먹어 다들 기운이 넘쳐났다. 그간 부실한 보급으로 인해 고통 받던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곧 중대의 명운을 가를 작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다.
“보자.”
중대장실로 돌아온 뒤 어제 받은 밀서를 다시 체크했다.
후계자 중의 하나인 바리둔 측에서 온 것이다. 나는 바리둔 측을 도와 이틀 뒤에 왕의 무덤을 방문할 말리쿤을 도모하기로 합의했다.
밀서에는 오늘 중으로 그쪽 인사가 구체적인 협의를 위해 중대를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습격 작전을 계기로 바리둔 진영에서 입지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건 마치 대통령 선거와 비슷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많은 표 대신에 많은 칼질이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점이었지만.
***
이틀 뒤.
왕의 무덤으로 가는 말리쿤을 습격하기로 한 D데이다.
중대는 이미 전날 출발해서 약속한 지점에 은거해 있었다. 우리는 곧 바리둔 일파와 합류했고, 습격의 시간까지 대기 중이었다.
한데 기대한 것과 달리 중대는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우리가 순찰자라 무시하는 것이겠지요.”
내 부관인 콩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순찰자는 몬스터 중에 제일 약한 부류다. 나름대로 쓸모가 있어서 어느 정도 위치를 점하고는 있으나 결코 제대로된 대우는 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원래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시장 상인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것처럼, 바리둔 일파도 손 하나라도 더 빌리겠단 심경으로 우리에게 연락한 것이리라.
100여 명의 인원이기도 하니 제법 쓸만하기도 했고.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이번에 공을 세우면 된다.”
영웅호걸이 어디 처음부터 영웅호걸이어겠는가.
유방이나 유비나 모두 괄시받으면서 시작했다.
이번에 잘 하면 이쪽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리라. 어차피 중대 자체는 순찰자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나만 주목 받으면 된다.
아직 바리둔을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전공을 세우면 치하하기 위해 부르겠지.
혼자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왕의 무덤에 말리쿤이 도착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중대에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했다.
“그나저나 왕의 무덤이라….”
왕의 무덤은 한때 용산구 일대에서 이름을 떨쳤던 군주급 몬스터의 무덤이라고 한다.
메타트론과 싸운 그 왕처럼 진짜 왕은 아니지만, 몬스터들이 존경의 염을 담아 왕이라고 불렀다.
진짜 그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가 안치된 건 아니고 생전에 그가 사용했던 물건과 비석이 있다고 한다. 이 하르쿰의 몬스터들에겐 일종의 성지로 새로 도시의 주인이 된 자가 왕의 무덤을 찾는 게 일종의 관례였다.
아마 도시의 지배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닐까 싶다.
한데 말리쿤은 이 왕의 무덤을 군주급이 되지도 않았는데 방문하려 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야 말로 정당한 후계자라고 과시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건 그렇고 약간 불안한 기분이 드는데.
이런 위험한 일을 티 나게 하다니. 의심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나 그렇다고 내가 이런 부분을 간언할 위치도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곧 말리쿤 일파가 왕의 무덤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우리 중대를 포함한 500여 명의 습격자 무리가 왕의 무덤으로 향했다. 상당히 대규모의 싸움이 될 듯하다. 말리쿤 쪽도 듣기로는 200여 명의 호위를 데려 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숫자만 보면 정말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고, 이제 말리쿤은 죽은 목숨이었다. 한데 왜 이리 찝찝할까. 내 쓸만한 직감이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이미 기호지세다. 가서 싸우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습격자 무리는 우르르 왕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무덤은 과거 많은 시민이 피할 수 있는 방공호를 개조해 만들어져 있어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원래도 큰 방공호 같았는데 몬스터들이 배로 늘려 놨다.
우리는 곧 안에서 제사라도 지내려는 듯한 말리쿤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누군가. 손님이 왔군.”
저 자가 틀림없이 말리쿤이군.
말리쿤은 악마적 형상의 인간형 몬스터로 뼈로 만든 갑주와 장신구를 걸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거대한 생물의 두개골로 만든 방패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이 만들어낸 비웃음이 제법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배를 하려면 우리가 먼저이니 기다려야 할 것이야.”
말리쿤의 말에 이쪽 진영에서도 한 명이 발끈하며 나선다.
“집어치우라. 네놈의 그 짜증나는 말버릇은 징글징글하니까! 오늘 네놈을 쳐부수러 온 것이니 어디 그 보잘 것 없는 몸 잘 건사해 보거라!”
이쪽에서 나선 저 자가 아마 바리둔인 듯하다.
바리둔은 세 개의 개머리를 가진 이족 보행의 몬스터로 마치 걸어 다니는 켈베로스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역한 유황 냄새를 풍겼고 말할 때마다 입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교묘한 성품인 듯 보이는 말리쿤과 다르게 이쪽의 바리둔은 그야말로 불같은 성정인 듯하다.
“이런이런, 위대한 분의 영묘에서 이게 무슨 패악인지. 그러고도 후계를 주장하려는 것인가?”
“더 듣기도 싫다! 모두 쳐라! 저 가증스러운 말리쿤은 오늘 살아서 무덤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도합 700여 명의 인원이 영묘 안에서 맞붙었다. 아무리 안이 넓다지만 이 정도의 인원이 싸움질을 시작하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와아아아!”
“죽여라! 말리쿤 만세!”
“닥쳐! 바리둔께서 지배하신다!”
곧 바리둔이 입에서 불을 토했다. 좁은데 화염까지 난무하니 그야말로 상황은 점입가경.
싸움 전에 질식해 죽겠다.
게다가 이래가지고는 공을 세워도 누가 알아보지도 못할 듯했다.
처음에 쓰러지는 부하들을 치료로 살리다가 하도 정신이 없어 포기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죽겠으니까 부하들이고 뭐고 신경 쓰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이 육체는 본래의 나에 비하면 굉장히 약하다. 무모하게 싸워서는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내기에는 꺼려지는 점이 많다. 졸개라면 상관없겠지만 고위급에서는 방패를 알아보는 존재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현현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불가였다.
일단은 사태가 적당히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양측에 사상자가 쌓여 좀 한산해지면 그때 활약할 구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한데 나의 그런 기대는 곧 깨어졌다.
“매복이다!”
“적이 새로 나타났다!”
이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 좆같네.
시팔,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영묘 자체가 사실은 성질 급한 바리둔을 끌어들이기 위한 거대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복병의 등장으로 갑자기 전세가 역전됐다.
새로 나타난 적이 어찌나 강하고 거센지 이대로라면 바리둔 일파가 몰살되게 생겼다.
어떻게 하나.
나라도 도망쳐야 한다.
아무리 빙의한 몸이라지만 역시 죽음은 무섭고, 피하고만 싶었다.
나는 중대원들을 내버리고는 비어있는 통로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방공호에는 여러 통로가 있었는데 한 곳만 적이 쏟아져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여러 몬스터들이 그쪽으로 피해 들어갔다.
“비켜!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주변에 몬스터가 많았기에 어떻게든 파고 들어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가엾게도 순찰자의 몸은 튼튼하지 못해 오히려 내가 튕겨날 뿐이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도 나보다 덩치가 좋아서 새삼 순찰자가 왜 무시당하는지 절감할 수 했다.
이미 싸움은 망했다.
이렇게 다들 도망가고 있어서야 뭐가 되겠는가.
그런데 말이지.
왜 이 통로만 몬스터가 없었을까?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입장에서 적이 도망갈 구석을 방치할 리가 없다.
역시 이 길은 유도된 죽음의 길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몬스터의 무리에 휩쓸려 가면서도 조금은 냉철히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미묘한 마력의 유동을 감지하고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무언가 강력한 발동되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내 행동은 단순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곧장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냈다. 일부러 태양광을 쏴대지만 않으면 이 방패가 튈 일은 없다. 게다가 주변에는 거물은 안 보이고 졸개뿐이니 상관없을 터.
나는 곧장 주저앉은 채, 방패를 머리 위로 올렸다.
마치 거북이처럼 버티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위이잉, 하고 귀가 울리더니 대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
“끄응…….”
목에서 비린 혈향이 가득 올라온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끄아아악!”
조금 몸을 움직이자마자 비명이 터졌다.
이런, 아직 켄의 몸이구나.
그렇다는 건 내가 아직 안 죽었다는 거다.
역시 마지막에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낸 게 탁월한 방법이었다.
태양신격의 방패는 방어력 +341에 생명력 +120을 해준다. 원래 순찰자의 생명력이 20이 채 안 될 텐데 +120이면 엄청나다.
게다가 화염 저항 +30%까지 있으니, 어떻게든 그 폭발을 견딘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야.
마지막에 바닥이 폭발로 꺼져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아래쪽으로 떨어진 듯하다.
주변은 온통 돌무더기였고 파묻힌 몬스터의 팔다리 몇 개가 튀어나와 있었다. 나 역시 하반신이 묻혀있었다.
“아프다….”
진짜 지독스럽게 아팠다.
나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몸을 빼냈는데 다리가 다 뭉개져서 엉망진창이었다. 얼른 치료를 사용해 몸을 되돌렸다.
“후아, 후아.”
겨우 한숨 돌리고 나자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정신을 차린 뒤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고립된 장소는 아니었다.
고립된 곳이라면 빙의를 풀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최상의 상황. 쉽게 말해 게임 오버로, 하르쿰 잠입부터 반복해야 한다.
인생에서는 세이브가 없으니 제발 그런 건 제발 사양하고 싶었다.
“복도 아래 또 복도가 있었군.”
폭약을 설치했던 자들도 이건 몰랐던 듯하다.
나는 돌무더기를 치우고 앞으로 나갔다. 뒤쪽에도 원래 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너질 돌과 흙 때문에 가려져서 알 수가 없다. 바닥의 흔적을 보니 살아남아서 움직인 몬스터는 없는 듯했다. 고로 내가 유일한 생존자다.
“후….”
한숨이 길게 나왔지만 그래도 또 살아서 기분 좋긴 했다.
역시 삶이란 애착이다.
나는 태양신격의 방패로 빛을 쏘아내 주변을 밝히며 앞으로 걸어갔다. 워낙 방패의 광채가 환한지라 형광등이라도 킨 듯 사방이 밝아졌다.
곧 나는 어떤 기다란 방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어째 기분이 좀 꺼림칙하다.
뭔가 여기도 함정이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이번엔 급할 거 없는지라 진실의 시야로 앞을 비췄다. 그러자 기계 장치와 마법으로 마련된 함정이 다수 드러났다.
뭐지?
뭐가 있는데 이런 함정이.
기다란 방의 끝에는 육중한 철문이 보인다.
수상하기 짝이 없네.
일단 함정부터 돌파하자.
함정을 지나는 건 솔직히 어렵지 않았다. 진실의 시야로 밝혀서 잘 피해 지나가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개의 마법적인 함정이 피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이건 방패의 또 다른 기능인 마법 무효화로 날려버렸다. 방패에 내재된 마법 무효화의 능력이 워낙 강해서 그냥 바람 앞의 등불처럼 함정 마법이 사라졌다.
그렇게 문까지 도달한 나는 다시 한 번 마법 무효화를 사용해야 했다.
문이 마법적으로 잠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나 해제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지만 태양신격의 방패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철컥.
잠금장치가 단번에 풀려나갔다.
이후 문을 밀자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나면서 밀려난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에는 방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사체가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군주급 몬스터의 사체였다.
군주급 몬스터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강력하고 위압적인 기세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진짜 무덤이었구나.”
상징적인 가묘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주인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