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7
00007 1-1. 은퇴를 꿈꾸는 하이에나 =========================================================================
“어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러자 싱글거리던 스이엘이 발끈한다.
“야! 그 한숨은 뭐야? 너도 내가 평천사라고 존나 무시하냐?”
“아닙니다.”
“꼭 천사 많이 못 본 티를 내요. 10년차 하이에나라며?”
“하이에나가 천사 님들 뵐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겠네. 내가 널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다.”
한숨에 대한 카운터가 즉각 날아오는구나.
“뭐, 이번에 너한테 신세진 것도 있고 하니 방금 무례는 넘어가 주지.”
스이엘은 내 앞쪽 소파에 앉더니 팔걸이에 팔을 거만하게 올린다. 외형은 예쁜 소녀라 거들먹거리는 게 귀엽게만 보인다.
“아무튼 이번 일은 고마워. 우리 애들이 신세 졌어. 그래서 이리 시간을 낸 거야. 업무로 바쁜 가운데 말이야.”
특별히 ‘바쁜’을 강조하는 스이엘.
오늘 일없는 거 다 알고 왔는데 말이야. 쇼핑도 업무에 들어가는 건가. 이 천사, 점점 여러 가지로 믿음이 안 간다.
“우리 애들이랑 시비 붙었는데도 구해준 건 진짜 고마워. 너에 대해 그 점은 높게 평가해.”
“어라?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그 두 놈은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조만간 조치할 거야. 이 스이엘 님의 애정 가득한 훈육으로. 흐흐히히!”
뭔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나 꽤 좋게 보여지고 있었구나.
하이에나인데도 선뜻 만나준다 했던 것도 그래서였군.
“아무튼, 인사치레는 이 정도하고. 오늘 방문한 목적이 뭐야? 부디 내 아이들을 위해 노력이 보답 받을 수 있길 바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스이엘은 한쪽 눈가를 올리더니 물어보라는 듯 턱짓을 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확실히 천사는 천사구나. 평천사가 이런데 대천사는 과연 어느 정도란 말인가.
“다른 천사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누구?”
민감한 주제라 잠깐 숨을 가눈 후에 말했다.
“메타트론.”
“뭐?”
스이엘이 깜짝 놀라 반쯤 몸을 일으킨다.
“그년은 왜? 너 진짜 어이없는 질문 하고 있는 거 아니?”
메타트론을 ‘그년’이라 부르고 있다.
같은 천사에게도 꺼려진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평천사보다 한참 높으신 분일 텐데?
내가 알기론 메타트론은 그 쟁쟁한 대천사 중 서열 1위다.
“그년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그건 좀 그렇나. 나름 사정이 있어. 뭐 잘못하긴 했네.”
얼버무리는 얘기를 들어보니 스이엘의 상관이 대천사 미카엘라인데, 메타트론에게 겁쟁이라고 모욕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이엘은 미카엘라를 무척이나 흠모하는 느낌이다.
그런 탓에 감정이 안 좋은 듯하다.
“그런 이유군요.”
“맞아. 그래서 내겐 이 주제가 불편해. 흥!”
더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팩 돌리는 스이엘.
하지만 난 들어야 한다.
어르고 달래서라도 말이야.
“그래도 제 궁금증에 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제게 보답해 주는 자리 아닙니까?”
“이 하이에나 얼굴 두꺼운 것 좀 보게. 아까부터 날 너무 편하게 대하는 거 아냐?”
“천사는 인간에게 친근하고 다정한 존재 아닙니까? 설령 당신들이 진짜 천사가 아니라도 천사를 참칭하고 있다면 응당 인간을 그리 대해야겠죠. 그리고 저를 하이에나로 비하하는 건 무척 천사답지 못한 태도입니다.”
정론으로 밀어붙이자 스이엘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러더니 곧 솔직히 사과한다.
“미안.”
이런 면은 꽤 담백한 천사이군. 사실 정론은 정론일 뿐, 천사 중에 꼬인 성격이나 더러운 성격을 가진 이도 꽤 있다고 한다.
일단 이 화제의 중심인 메타트론만 해도 쌍년, 개년, 그년으로 통칭되고 있지 않나.
호칭이 상당히 호화롭고 일관된 인물이란 말이야.
“너 말이야. 왜 그년… 아니 메타트론에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안 그러는 게 좋을 걸. 메타트론은 날개도 까마귀처럼 검어. 속도 분명히 음흉할 거라고.”
저게 보통 세속적인 평가다.
하지만 내 시각은 좀 달랐다. 여기 오기 전에 메타트론에게 대해 상당히 조사한 후 뭔가 특이점을 발견했달까.
“하지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대나 선입견이 대상에게 색을 입히고 있는 거 아닐까 하고 말이죠.”
“엥? 그게 무슨 생뚱맞은 말이니?”
간단한 얘기다. 메타트론이 과연 나쁜 존재냐는 그 말이다.
그녀가 우리의 기대나 소망대로 행동하고 있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관한 기록을 살펴보니 인간에게 해악을 끼친 적은 없다.
몇 번의 장대한 도심 파괴가 그녀의 불명예로 남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몬스터가 연관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소문 그대로의 인물은 아닐꺼라 설명했다.
과거의 사건 하나하나를 분석해 나의 견해를 덧붙인 내용이었다.
“물론 성격 나쁜 천사란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만.”
“호오…….”
스이엘은 매우 재밌다는 표정이 됐다.
아니, 이제까지와 다른 얼굴이 됐다고 할까. 감탄했다는 기색마저 느껴진다.
“꽤 재밌는 견해를 가진 하이에나네. 그래. 네 말은 메타트론은 검은 게 아니라 우리가 검게 인식하고 있다 그거구나.”
“비슷합니다.”
스이엘은 소파 뒤로 털썩 기대더니 턱을 작은 손에 기댔다.
“10년을 하이에나로 살아왔다고 들었어. 그게 역시 우연은 아니구나. 우리 애들보다 훨씬 낫네.”
“무슨 뜻이신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스이엘은 곧 다시 방긋 웃는다.
처음 쇼핑을 하던 그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흥미로워. 오랜만에 제법 쓸만한 아이가 나타났어. …좋아. 어쩌면 이 비루한 하이에나가 그녀에게 파문을 일으킬지도 모르지. 네가 원하는 걸 질문해.”
다행이다.
허락이 떨어졌다.
그녀에 대한 질문은 미리 정리해 왔다. 나는 메타트론의 권속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그리고 그 외의 몇 가지를 물어봤다.
스이엘은 내게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생각보다 자세히 알려줬다.
그녀에게 들은 정보는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스이엘조차 메타트론에게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 점을 얘기하자 스이엘은 어깨를 으쓱한다.
“대천사 님들조차 메타트론의 꿍꿍이를 몰라. 그녀가 우리 천사의 배신자일지 아닐지 두려워하고 계시지.”
“대천사들조차 두려워합니까?”
“그럴 수밖에. 어쨌든 그녀는 최강의 천사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모시고 있는 미카엘라 님마저 한 수 접어줘야 해.”
정말 더럽게 강한 년이에요, 라고 스이엘은 덧붙였다.
“크게 도움이 못된 것 같아서 미안하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다야.”
“아뇨.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단순 사례 차원이 아니었다.
내가 했던 말이 어째서인지 스이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안 그랬으면 수십 억을 준다고 해도 스이엘은 지금 얘기를 털어놓지 않았을 거다.
“알긴 잘 아네. 천사를 돈으로 매수하긴 무리지. 호호호, 너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구나. 혹시 우리 패밀리에 들어오지 않을래?”
당연히 거절했다. 스이엘은 꽤 아쉬운 기색이었다.
“정말 거절이양?”
스이엘은 놀랍도록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거린다. 보고 있자니 이 치명적 귀여움에 심장이 아파올 정도다.
이게 갑자기 어디서 아양이야.
거, 그만두지? 사람을 맛있는 먹이 같이 보는 눈빛은.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패밀리가 부실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꽤 잘 살고 계시네요?”
“췟, 말이나 돌리긴. 뭐 좋아. 그건 말이야. 패밀리가 부실한 건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그럴 수밖에 없거든. 호호호.”
스이엘의 패밀리가 볼품없는 건 그녀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대지의 천사인 스이엘은 무언가를 길러내는 데 특화된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헌터를 거둔 뒤 7등급까지 빠르게 키워낸 뒤, 다른 패밀리에 이적시킨다고 한다. 그걸로 버는 돈이 상당하다나.
“전쟁을 수행하는 건 꼭 헌터로 몬스터를 밀어버리는 게 아니야. 그런 주특기를 가진 천사는 나 말고도 많지. 하니 나는 자금적으로 지원하는 길을 택했어. 내 능력으로는 휘하의 헌터가 전투에 특화되고 싶어도 지원하기 어렵거든. 진짜 강한 헌터가 되고자 한다면 미카엘라 님의 밑으로 들어가 광휘 속성을 마스터하면 좋겠지.”
미카엘라의 헌터들은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빛으로 대단하다는 몬스터조차 조각내 버린다.
그녀와 그녀의 패밀리가 있기에 전진기지 안양이 철옹성으로 버티고 있는 거다.
“현명하시군요.”
“그렇지? 호호호.”
스이엘은 손으로 턱을 바치더니 교만하게 웃는다.
쉽게 우쭐해지는 성격이구먼.
아무튼 이제 슬슬 일어날까.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스이엘이 날 붙잡는다.
“얘.”
“네?”
“가기 전에 점 한 번 보고 가지 않을래?”
“점이요? 갑자기 무슨….”
그냥 심심풀이로 하자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내게 손해는 없을 것 같다. 천사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
신문에서 운세란을 보는 마음으로 가볍게 해볼까?
“좋습니다.”
“꺄! 잘 생각했다. 그럼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볼까?”
“뭘로 하는 건가요? 타로 카드?”
뭔가 서양풍이라면 그런 이미지가 아닌가.
그런데 타로란 말에 스이엘이 질겁한다.
“뭐어? 타로? 오컬트의 서자, 점성술과 수비학의 사생아, 심리학의 이단아인 그 타로? 너 지금 또 나 존나 무시하냐?”
“에?”
타로가 그런 위치였나?
뭔가 역린을 건드린 것 같아서 무섭다. 곧 스이엘은 열변을 토했다.
“그런 근본도 모르는, 19세기 이전 어떤 신비주의 기록에도 없는 타로라고? 그거 원래 귀족 애들 교육용 카드였던 거 모르고 하는 말이야? 난 말이야! 그거랑 차원이 다른 거로 할 거거든! 수비학Numerology이라고 들어는 봤냐? 엉?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뼈대 있는 방법이라고. 어디 근대기에 그 아서 에드워드 뭐시기가 정리한 잡스러운 타로와 비교를 하나! 어!”
완전 화났네.
뭐 애초에 내가 그런 걸 아나……. 난 잘못한 거 없다.
그리고 당신이 역사 운운하긴 이상하지 않나. 강림한지 20년도 안 된 주제에 타로를 무시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그럼 수비학으로 부탁드릴게요.”
“흥! 정말 이래서 하이에나는 안 된다니까. 왜 헌터 각성은 못하고 맨날 하이에나인지 생각해 보라고. 노력이 부족하다니까.”
전혀 상관없는 얘기로 흐르고 있단 느낌이다.
애초에 헌터 각성과 노력은 관계없다. 내가 헌터에 한 맺혀서 안 해본 짓이 없는 입장에서 자신한다. 대한민국에 나처럼 헌터가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 어딨을까.
“흥흥!”
다시 성대하게 콧김을 내뿜은 스이엘은 그래도 차곡차곡 준비한다. 하얀 A4용지랑 펜을 꺼내고는 내 이름을 끄적끄적 쓴다.
글씨체가 완전 유치원생이다.
이런 애 같은 필체도 오랜만에 보네.
스이엘은 하얀 종이 위에 삐뚤빼뚤 유제아란 이름을 썼다.
“수비학이란 간단한 거야. 수야말로 사물의 본성, 인물의 미래와 운명을 볼 수 있는 수단이란 말이지. 수는 우주의 근본이야. 그리고 그 수로 길을 찾는 게 수비학이고.”
뭔자 수비학에 대한 긍지가 느껴진다.
“우주의 모든 건 수에 의해 일체화되고 측량될 수 있어. 니네 인간들은 E = mc²를 그렇게 신봉하고 있잖아. 이게 수에 의한 정의가 아니고 뭐겠어.”
듣다 보니 좀 그럴싸하네.
나는 나름대로 기대가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일단 지켜볼까.
“그럼 시작한다? 자 일단 ‘유’란 글자를 ㅇ과 ㅠ로 나눌게. ㅇ는 획이 1개고 ㅠ는 3개네. 히힛! 둘이 합치면 4개다!”
잠깐.
잠깐, 이거 뭐야?
스이엘은 내 이름을 분해한 뒤에 획을 숫자로 적고 아래로 선을 그어 더한 뒤 다시 더하고 있었다.
“이거 어렸을 때 애들이 하는 놀이잖아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스이엘은 깜짝 놀란다.
“뭐야? 인간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마치 자기만의 비밀이 들킨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다. 잠시 뒤 눈물을 조금 글썽이기까지 했다.
부들부들.
“인간이 내 특허를 훔쳐갔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지금 상황이 농담 아닌 게 더 무서워, 난.
“인간은 정말 대단해. 얕볼 수 없다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던 스이엘은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한동안 계속 숫자를 가지고 놀더니 벌떡 일어나며 경악에 찬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오옷! 이것은!”
“뭡니까? 뭐가 나온 거예요?”
나까지 덩달아 놀라서 종이에 얼굴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