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73
00073 3-6. 흔적 =========================================================================
가엾게도 전대 군주의 거처를 지키던 몬스터는 모두 죽였다.
그 뒤, 내가 지배했던 카미닥, 쿠루투의 수하들은 각각 자신의 무리로 돌아가 나머지 인원을 선동했다. 반대편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니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싸움이 벌어졌고 다시 많은 인원이 죽었다. 전투가 끝난 뒤에는 극히 일부의 몬스터만이 자신들의 보스에게 돌아갔다.
상대가 약속을 깨고 마정석을 훔쳐갔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후 상황은 어찌되었는가?
부연할 필요도 없다. 카미닥과 쿠루투는 그야말로 펄쩍 뛰며 놀라서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모두 끌어 모았다. 시간만이 살 길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부딪친 둘은 나흘이 넘게 하르쿰을 불바다로 만들며 전투를 벌였다.
“드디어 복귀로군!”
그간 정양을 하던 말리쿤은 완전히 회복됐다.
“크흐흐흐. 다쳐서 빠져 있었던 게 이리 도움이 되다니. 내가 없는 사이에 다들 동귀어진 중이군.”
말리쿤은 내가 전한 소식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바리둔은 사망했으며, 카미닥, 쿠루투는 함께 사이좋게 파멸해 가고 있는 상황 말이다.
“말리쿤, 이제 그대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으러 가자.”
그 뒤로는 우스울 정도로 쉬웠다.
카미닥과 쿠루투의 다툼이 절정에 오른 순간, 말리쿤과 내가 난입해 둘을 단번에 해치웠다.
긴 싸움으로 지쳐있던 그들은 우리의 협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남은 몬스터들은 후계자가 모두 정리되자 태도를 싹 바꿔 복종해 왔다.
드디어 하르쿰을 달궈왔던 후계자 다툼이 끝난 것이다.
“그대 덕이다! 어디서 그대와 같은 이가 나타났는지!”
말리쿤은 두 개의 머리로 동시에 떠들어 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그는 전대 군주급 몬스터의 권좌에 앉아있었다.
“온당한 주인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뿐이다. 이걸로 내 역할은 끝났으니 퇴장하겠다.”
원래 화장실이 급할 때랑 다녀와서가 다르듯, 내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물러나겠다고 하자 말리쿤은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정말 무척이나 탐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욕심이 많으면 넘어지는 법이다. 두 손에 쥔 게 많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그대에게 힘을 하나 건네주고 가지. 앞으로 권좌를 지키는 데 유용한 힘 말이야.”
“뭐라! 그게 정말인가!”
말리쿤은 반색한다. 이미 그는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해서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는다.
여러 번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이라고 저어하겠는가.
“그렇다.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내게 맡기게.”
“좋다. 오늘은 좋은 일만 생기는군.”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말리쿤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서의.
***
하르쿰은 새로운 군주인 말리쿤의 뜻에 의하여 일타 카르네움으로 개칭하였다.
정확히 따지면 말리쿤을 수족처럼 부리는 내 뜻에 의해서지만.
“말리쿤.”
“네, 주인이시여.”
두 개의 흉악한 늑대머리를 가진 그는 내 발치에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군주의 권좌에 등을 기댔다.
서늘하고 기분 좋군.
“여긴 네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건 이 몸이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하신 일입니다.”
“당연하다… 당연하다. 크크큭.”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어 나직이 웃었다.
그렇게 잠시 승리를 만끽하다가 말리쿤에게 주문했다.
“전쟁을 준비하라. 때가 되면 이 강북 일대가 뒤집어질 대전쟁이 터질 것이다. 하니, 부대를 육성하며 무기를 비축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나는 그의 충성스러운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다.
이게 다 고생한 보람 아니겠는가.
노량진, 황금갑충에 이어서 일타 카르네움이란 새로운 영지가 생겼다.
흐뭇함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
“받아라.”
나는 그에게 마정석 3개를 던져주었다.
바리둔, 카미닥, 쿠루투에게서 뽑아낸 것들이다.
“한 개는 네가 직접 먹어라.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유능한 싸움꾼을 끌어들이는 데 사용하라.”
원래 말리쿤의 힘을 강화하라고 한 개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네 후계자 후보의 다툼으로 엉망이 된 상태다. 단순히 도시가 파괴된 걸 떠나, 전투력의 근간이 될 몬스터가 많이 죽었다.
그래서 추가로 두 개의 마정석을 더 줘 전력을 보충하게 시킨 것이다.
나야 몬스터들이 떼로 묻힌 광산까지 합치면 9조 원이 넘는 자신의 소유자니, 이런 마정석 세 개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공연히 짠돌이처럼 굴다가 이 도시가 다른 도시에게 침략당해 망하면 훨씬 곤란했다.
생고생을 해서 확보한 지역인데 패망하면 기분이 말이 아닐 거다.
“큰 은혜, 감사드립니다.”
“암, 의당 크게 감사할 일이지.”
서늘한 권좌가 정말 기분 좋았다.
***
노량진으로 복귀했다.
복귀하고 느낀 건, 어색함이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한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주변에 많이 있는 것도 나를 퍽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장 몬스터의 도시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번에 너무 몰입을 했던 모양이다.
“인간이란 나약해.”
나는 황도 켄을 따기 위해 오프너를 찾으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몬스터 나이트 셰이드 시절에는 손톱만으로도 가능했을 텐데.
“대신 섬세한 작업은 인간이 우월하지 않느냐.”
옆에서 황도 냄새에 코를 실룩실룩 거리는 메타트론이 대꾸한다. 확실히 그건 그렇다.
켄이 열리자 황도의 달달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파블로스의 개도 아니고 어째서 황도 냄새만 나면 입가에 침이 고이는 걸까.
“아.”
옆에서 메타트론이 입을 벌리고 있기에 황도를 포크로 찍어서 먹여주었다.
“맛있구나!”
메타트론은 소소한 황도 켄으로도 무척 기뻐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식탐을 이겨내고 내게 황도를 하나 찍어서 내밀었다.
“자, 아 해.”
“오?”
메타트론이 먹을 걸 양보하는 건 드문 일이었기에 대뜸 받아먹었다.
“착하구나, 복스럽게 먹네.”
메타트론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기에 얼른 손으로 쳐냈다. 그러자 그녀는 섭섭한지 발끈했다.
“왜 거절이냐!”
“우리 누나도 내 머리는 안 쓰다듬는데 어딜 감히.”
“그렇구나. 그래도 본녀는 네 머리를 쓰다듬, 쓰다듬 하고 싶다. 섬세하게 만질 테니 허락할 생각은 없느냐?”
어림없다. 거절의 의미로 대답도 안 하고 황도를 집어 먹었다. 그러자 메타트론이 결심한 듯한 표정이 되더니 자신의 머리를 내 쪽으로 내민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더냐. 우선 본녀의 머리를 쓰다듬게 해주마.”
대신 내 머리를 쓰다듬게 해 달라?
하… 기가 막히는군.
어이없어서 단박에 거절하려다가 눈앞의 머리가 굉장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그랗고 작다. 그리고 반짝이고 윤기 나는 회색 머리칼은 참으로 미려했다.
어느새 나는 오른손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충동이란 인간에게 거절하기 어려운 부류다.
나는 어느새 메타트론의 맨질맨질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뭐지, 이거… 생각보다 기분 좋은데. 하지만 당사자는 더 좋은 듯하다.
“흐흐흐….”
외형은 귀여운 녀석이 아저씨처럼 즐기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가마를 따라 회전하면서 머리 중앙에서 바깥으로 쓰다듬는 솜씨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1쪼꼬우유의 가치가 있을 듯하다.”
1초코우유라니, 극찬이었다.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어쨌든 인간 주제에 감히 서열 1위인 이 메타트론님의 머리를 강아지처럼 쓰다듬다니. 자, 어서 그 머리를 대거라.”
뭔가 불합리가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따져봐야 어쩌리.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나는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메타트론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에잇!”
그런데 그 순간 내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메타트론이 머리를 쓰다듬는 대신 갑자기 날 끌어당긴 거다.
뭐야, 이거.
나는 메타트론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었다.
의외로 이 녀석의 허벅지는 살집이 있어서 말랑말랑 부드러웠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메타트론이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 날 꼼짝 못하게 했다.
“어딜.”
“놔줘, 일어날 거야.”
잠시 안간힘을 쓰다가 나는 곧 항복하고 말았다. 요즘 까먹고 있었네. 이 눈앞의 기려한 소녀가 사실 대군주급도 때려잡는 무력 위주의 캐릭터란 사실을 말이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이 방에는 그대와 나 둘 뿐이니. 그런데 혹시 기분이 나쁜 것이냐?”
그럴 리가. 이런 미소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는 호사가 싫을 까닭이 없다.
“아니, 솔직히 좋은 편이지.”
내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메타트론은 부드럽게 내 머리칼을 만져줬다.
우리는 그대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졸았을까? 감았던 눈을 살짝 떴는데 몽롱한 기분이었다.
아, 꿈을 꾸고 있는 것 것이로군.
꿈속에서도 메타트론은 여전히 내게 허벅지를 내주고 있었다.
“이제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틈에 또 이렇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비몽사몽 중에 물었다.
“…산달폰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몰랐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무게를 절감하고 몸을 떨었지. 그래서 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옆에서 손을 잡아줄 존재가 말이다. 한데 어느 틈엔가 또 이렇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구나.”
메타트론의 손이 어느 틈엔가 내 손등에 닿아 있었다. 꿈이라서 그런가 그녀는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놔버리면 더는 근심도 없이 마음이 편할 것도 같은데, 이 손바닥에 느껴지는 작은 온기가 좋아서 도저히 그러질 못하는구나.”
“아…….”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메타트론은 걱정하고 있었던 거다. 나를 적지에 보내놓고 두려워했던 거다. 잃어버릴까봐.
왜 여태껏 몰랐을까?
언제나 태연하게 배웅하는 모습만 보고 짐작도 못했다.
하지만 메타트론은 내색하지도 못한 채 마음을 졸여왔겠지.
나는 메타트론에게 이런 일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래, 꿈이니까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과감한 짓을 해도 되겠지.
나는 손가락을 까딱여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러자 메타트론이 궁금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숙여왔다. 삽시간에 고운 얼굴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다.
나는 손을 위로 뻗어 그녀의 뒷머리를 감싸고는 살며시 아래로 내리눌렀다.
“유제아?”
놀란 듯한 목소리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타트론의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입술에서는 초코향이 났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정말 그녀답다는 생각을 했다.
***
어제 그건 정말 꿈이었을까?
떠올려 보면 꿈치고는 너무 생동감 넘쳤다. 하지만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이불을 덮고 혼자 누워있었다. 언제 잠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꿈이었던 듯하다.
그녀의 말랑한 허벅지가 편해서 그대로 잠들었고, 메타트론은 그런 날 침대에 누이고 이불까지 덮어줬던 모양이다.
그래도 어쩐지 입가에 아직 초코향이 남은 듯해서 혼자 싱숭생숭했는데, 태연자약한 메타트론을 보고는 그게 진짜 꿈이었단 확신에 도달했다.
“뭘 그리 보는 것이냐?”
시기가 안 좋았다.
하필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을 때 봤더니, 메타트론이 날 보고 으르렁거렸다.
저런 모습을 보니 역시 꿈이었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리며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중요한 문제였지만 선결 과제가 많아서 좀 미뤄두고 있던 사안이다.
“배신자 말이야.”
“그래, 안산에 있는 대천사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 매우 가치 있다고 본다. 본녀도 그 얘기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그 단서가 될 물건이란 걸 좀 봐야겠구나.”
그 물건은 말리쿤을 고문하는 데 사용됐던 도구다.
이 물품의 추적을 위해서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거야.”
아공간 주머니에서 획득해 온 물건을 꺼내놓자 순간 메타트론이 들고 있던 초코우유를 떨어뜨린다. 메타트론의 표정이 멍하다.
바닥의 대리석에 초코우유가 쏟아져버렸지만 놀란 그녀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심지어 몸을 가늘게 떨고 있기까지 했다.
“대체 왜 그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당황해서 메타트론의 어깨를 짚었다. 그러자 메타트론은 겨우 짜낸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이 상자… 산달폰이 만든 것이다. 이제는 남아있지 않을 텐데…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