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75
00075 3-6. 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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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사들과 라파엘 문제를 골몰한지 며칠이 지났을 때 유세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라피엘의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장소를 알아냈어요.
-정말? 어떻게?
-말씀대로 좀 무리를 했죠. 그 때문에 흔적이 많이 남았어요. 며칠 안에 세라피엘이 눈치챌 테니 바로 움직이셔야 해요.
지시대로 정말 승부수를 띄웠구나.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잘했다. 적절한 때에 과감하게 움직여줬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는 잠입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서 잘 한 건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아니, 넌 내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과를 내줬다. 그것보다 자세한 말해 봐.”
“네.”
유세나에게 자세한 내용을 들은 후 안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메타트론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세라피엘이라… 좋은 기회로구나. 사실 증거가 좀 부족하긴 하다. 라파엘 쪽이 두 헌터의 일을 개인적인 일탈이라 끊어버리면 사태가 애매해진다. 더군다나 라파엘은 존경과 흠모를 가득 받는 천사다. 쉽게 밀어낼 수 없지.”
“그래서 말인데, 상점의 아이템 중에 잠입에 좋은 게 있을까? 돈은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어.”
“흠……. 적당한 게 있긴 한데 내 상점에는 없다. 우리엘의 상점에 있지. 그게 대천사의 감각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는 거라 특별한 경우 외에는 판매가 안 되는 물건이긴 한데, 이번 일의 경우는 다르니까 한 번 가서 얘기해 보거라. 아니다, 본녀도 같이 가겠다.”
메타트론은 최근에 힘이 많이 회복되어서 환영체를 멀리까지 보낼 수 있게 됐다.
우리는 곧장 우리엘의 신성지로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협조해 줘야겠지.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엘은 날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이 녀석은 예전부터 내 어디가 그렇게 못 마땅한 건지 모르겠군. 그래도 협조할 때는 잘 협조해주는 지라 뭐라 하기도 애매하다.
“대신 조건이 있다. 이번 작전에 사용하고 내게 반납할 것.”
“제 돈을 내고 사고도 그래야 합니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가져가서 사용하게 해주겠다.”
뭐야… 마치 공기총을 경찰서에 영치해 뒀다가 사냥 시즌에 가지러 가는 느낌 아닌가.
그 정도로 구매하려는 물건이 대천사들에게 위협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대로는 내키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엘 단독으로 제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제안을 했다.
“아이템은 일이 끝나면 미카엘라님께 맡기는 걸로 하죠. 그리고 다시 쓸 일이 있으면 대천사 세 분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메타트론, 미카엘라, 우리엘 중 둘이 동의하면 가능하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메타트론이야 언제나 내 편이고 미카엘라도 일이 터지면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조건이 더 엄격해진 듯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고.”
우리엘은 그걸 알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같이 간 메타트론이 거들고 나서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했다.
“맘에 안 들지만 그렇게 하지.”
합의가 되자 나는 우리엘의 상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엘은 곧장 창에 해당 아이템을 띄워줬다.
“세상에….”
가격은 2조 2,500억.
말이 안 나온다. 입 벌어진 내 모습에 우리엘은 고소를 머금었다.
“왜, 쫄리냐?”
“…….”
대천사가 쫄리냐가 뭐냐, 쫄리냐가.
내가 다소 비난이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자 우리엘이 황급히 헛기침을 한다.
“커흠. 산다고 하지 않았나. 얼른 구매하고 가버리도록. 서부 공략으로 요즘 바쁘기 그지없다.”
우리엘 패밀리는 바라카엘 패밀리와 연합해서 인천 방면으로 뚫고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대천사의 패밀리가 둘이나 움직이니 휘하의 평천사 패밀리도 대거 동조하고 있다. 꽤 거창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뉴스에서 두 패밀리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더라.
“흐흐흐.”
내가 별 대답 없이 웃기만 하자 우리엘은 작게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망할 놈.”
이 까칠한 천사를 내가 그리 싫어하지만 않는 이유는 이런 귀여운 구석도 있기 때문이랄까. 천사들은 분명히 강하고 뛰어난 존재인데 때때로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신기하다. 서열 1위, 2위인 메타트론과 미카엘라만 해도 그렇다.
“사겠습니다.”
이걸 질러도 광산 덕에 내 자산은 아직 튼튼하다. 최근 황금갑충이 내 명에 의해 광산 일부의 개발을 시작했다. 케낸 마정석은 차곡차곡 쌓여, 지하에 새로 굴토한 길을 따라 노량진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메타트론의 대저택 밑에는 황금갑충이 뚫어놓은 지하 갱도와 저장고가 은밀히 존재했다. 그 길을 타고 여의도 지하까지도 갈 수 있어 비상시 몰래 탈출하기도 좋았다.
“좋다. 결재 버튼을 눌러. 바로 진행해 주지.”
나는 주저 없이 2조 2,500억짜리 아이템을 질렀다.
-담당 천사 전송 절차를 시작합니다.
전송에 걸리는 시간은 38시간이나 된다. 나는 돈을 추가로 들여 즉각 전송을 선택했다.
워낙 비싼 물건이라 38시간을 절약하는 즉각 전송에 21억이 들었지만 상관치 않았다. 지금 제일 소중한 건 시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아이템의 이름은 란 물건이었다.
*동굴바람은 깊은 지하 세계의 전설적인 도둑이었습니다. 그는 은퇴해 사라지기 직전에는 신격에게 일을 의뢰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머플러는 간단하지만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은신, 전방위 투시.
은신과 전방위 투시라.
“어떻게 쓰는 건지 아십니까?”
우리엘에게 묻자 대답은 간단했다.
“써보라. 그러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명답이었다. 은신이나 전방위 투시나 사용했다고 건물 일부가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일단 은신을 사용하자 내 존재가 지워진다.
“앗!”
옆에 있던 메타트론이 놀라서 감탄을 터뜨린다. 우리엘에도 펴졌던 얼굴을 다시 찡그렸다.
“역시 짜증나는 아이템이다.”
우리엘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메타트론은 달랐다. 그녀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시선이 따라왔다.
“보이는 건가?”
“뭐라고 할까, 느껴지는구나.”
“뭐야? 이거 불량 아닌가?”
우리엘이 고개를 흔든다.
“메타트론이야 우리 중에서도 특별하니 감을 잠은 모양이지만 나는 전혀 모르겠군.”
우리엘은 서열 6위다. 서열 6위에게 잘 먹힌다면 아이템의 효과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나저나 이만 나타나지 그러나? 무례한 놈.”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게 우리엘은 무척 불편한 듯했다.
그래서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다.
우리엘의 짜증스러운 태도에 평소에 약간 쌓인 것도 많고 말이야.
툭.
나는 옆에 있던 컵을 건드렸다. 그러자 안에 담겨있던 쥬스가 우리엘의 토가를 닮은 의상에 쏟아졌다.
“으익!”
평소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엘이 놀라서 체신없는 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메타트론이 빵 터져버렸다.
“꺄하하하! 뭔가, 그 소리는.”
나는 얼른 은신을 풀고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우리엘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뭐! 이 인간 놈이! 감히!”
우리엘은 벌떡 일어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옆에서는 메타트론이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렸다.
“우리엘, 그렇게 인상 쓰면 주름살이 생기는 거다.”
“너는 좀 빠져!”
“실수라지 않느냐, 호호호.”
우리엘은 정말 무섭게 날 노려보았다. 나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듯 다시 사과했다.
손이 미끄러진 걸 나라고 어쩌겠는가.
그저 한 번의 실수가 있었던 거다. 나는 잘못한 거 없다.
“용서해 주십시오.”
“빌어먹을 놈…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야. 메타트론을 저렇게 웃게… 나도 그녀를….”
뒷말은 웅얼거리고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참아라, 우리엘.”
메타트론 덕분에 얼레벌레 결국 넘어갈 수 있었다. 이후 투시도 시험해 보려고 했지만 성질난 우리엘의 축객령에 메타트론과 나란히 쫓겨났다.
***
그날 바로 안산으로 출발했다.
안산은 몬스터 사태 이후 군포와 의왕, 수원의 일부를 흡수해 거대해졌다.
외국인도 엄청 많이 사는 아주 국제적인 도시다.
안산시에 편입된 구 의왕시에는 왕송호수란 장소가 있는데, 현재 그곳은 안산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재개발됐다.
구봉산과 왕송호수 사이에는 그야말로 으리으리한 대저택으로 가득했다. 이 지역은 윗새우대, 중간새우대, 아랫새우대라는 특이한 이름의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윗새우대 쪽의 이곳에서도 최고존엄으로 돈 뿐 아니라 권력도 가져야 들어갈 수 있다는 지역이다.
중간새우대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 많고, 아랫새우대에는 개인사업으로 성공한 자들이 주류를 이뤘다.
“근데 왜 이름이 새우대야. 특이하네.”
내 말에 유세나가 설명을 한다.
“풀이 많은 평야라고 새우대라고 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새우라고 해서 먹는 새우를 떠올렸던 나는 입을 다물고 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별 걸 다 알고 있네.”
“근처의 노인에게 들었습니다. 몬스터 사태 전에는 평범한 논밭이었다고 하네요.”
“그렇구나. 그런데 세라피엘이 드나드는 곳은 어디야?”
“윗새우대에 있는 한 저택이에요.”
유세나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탐색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루트는 문제가 많으니 산을 따라 들어가시면 될 거예요. 저택이 구봉산과 바로 붙어있거든요.”
“알았어, 위치만 말해줘.”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조심해 주세요.”
“그래, 너는 이대로 세라피엘 패밀리에서 이탈해서 노량진으로 가. 메타트론에게 말하면 거처를 마련해 줄 거야. 미리 말해 두고 나왔어.”
“배려 감사드려요.”
구봉산 등산로는 철저히 통제된 지역이다. 오직 새우대에 거주하는 주민만이 들어갈 수 있다. 유세나의 경우는 세라피엘이 중간새우대의 건물 하나를 새로 사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난 은신을 사용해야 했다.
“그간 세라피엘은 환영체로만 움직였는데 이제는 본체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곳이 그녀의 신성지 안인가?”
“그녀뿐 아니라 많은 천사들의 신성지가 겹치는 지역이죠. 이곳이 괜히 이렇게 발전한 게 아니에요.”
“역시 수상한데. 윗새우대에 라파엘 쪽의 건물도 있나?”
“모르겠어요. 윗새우대 건물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드러나 있지 않아요. 그간 소유자라고 알려진 건 가짜인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전 있다고 생각해요.”
역시 직접 들어 가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겠다.
“저 집이에요.”
산 아래쪽엔 펜스로 상당부분 가려진 대저택이 보였다.
“알겠어. 이제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조심해 주세요.”
유세나와는 그렇게 헤어지고 나는 은밀히 그 대저택으로 내려갔다. 온갖 보안 장치가 있겠지. 기계 장치뿐 아니라 마법적인 장치 역시 말이다.
하지만 동굴바람의 머플러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가격은 2조가 넘고 한정사용의 아이템이니 이 정도 효과가 있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내 존재 자체는 반쯤 지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라 정원의 잔디를 밟아도 아무런 흔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니 아무리 부지런하고 눈을 날카롭게 뜬 감시자라도 날 찾을 순 없었다.
높은 담을 넘어 도착한 곳은 후원으로 추정되는 정원이었다. 작고 예쁜 연못은 뒤로는 경복궁 교태전에 부속된 아미산을 재현한 정원이 있었다.
4층 구조에 조선궁궐의 굴뚝을 만들어 놓은 게 누가 봐도 아미산의 그곳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의 원판이 되는 경복궁은 대군주급 몬스터의 거처가 됐다고 들었다.
강북에서 가장 강력한 대군주가 경복궁에 있다고 하니 언젠가 강북을 수복하기 위해서는 경복궁을 공격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교태전 뒤에 있는 진짜 아미산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는 건물까지 몰래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넓은 건물 안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녔다. 어디로 가야할지 영 감이 안 잡혔는데 곧 이정표를 발견했다.
어떤 통로를 지키고 선 역천사 둘을 발견한 것이다.
역천사라면 미카엘라를 지키던 디피넬과 아피넬이 생각난다. 이 녀석들도 아마 비슷한 일을 하는 듯하다.
나는 역천사의 가운데로 지나쳤지만 그들은 결코 눈치채지 못했다. 복도는 왼쪽으로 꺾여 있었는데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지하실로 향하는군. 계단을 내려가자 기계 암호장치와 마법 암호장치로 엄정히 잠겨있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것이라 최고 수준의 도둑이라고 해도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하지만 태양신격의 방패를 가진 내겐 어림없었다.
태양신격의 방패는 이런 암호에 대해 언제나 진실을 알려준다. 차라리 열쇠로 막아놨으면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말이야. 물론 열쇠라고 해도 몰래 파괴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훨씬 걸렸을 거다.
가만 일단 투시를 사용해 보자.
동굴바람의 머플러의 주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인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지.
일단 바로 투시를 사용했다.
그우우웅.
건물 전체의 구조가 한눈에 파악된다. 마치 엑스레이로 뼈대를 보는 것처럼 건물의 구조가 투시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건물 안에 있는 존재들의 위치 역시 낱낱이 알 수 있었다. 회색빛으로 보이는 투시된 건물 사이사이에 열을 가진 생명체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이는 식이었다.
2층에는 복도를 지키던 역천사 외에도 다른 천사들이 있었다. 대천사 라파엘과 대천사 세라피엘은 다행히 건물에 없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 들어가려는 지하실도 살펴보았는데 놀랍게도 안은 감옥이었다.
그리고 감옥 안에는 헌터 하나가 잡혀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해하며 조심스레 장금 장치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누구기에 이곳에 감금되어 있는 걸까.
조심스레 감옥으로 접근해 들어가 봤더니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그곳에 있었다.
바로 12인 위원회에서 라파엘 패밀리를 대표하는 헌터 윤혁이었다.
라파엘의 챔피언인 한주오와 함께 라파엘 패밀리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그가, 아무도 모르게 이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