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76
00076 4-1. 하룻밤의 대결 =========================================================================
일단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윤혁에게 다가갔다.
은신 때문에 내가 접근하는 걸 그는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은신부터 풀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고개를 숙여 바닥만 보고 있던 윤혁은 놀라서 머리를 든다.
“헛! 아니, 자네는!”
“쉿!”
큰소리를 내려고 하기에 얼른 조용히 시켰다.
“맞습니다. 메타트론 패밀리의 유제아입니다.”
“…여긴 어떻게?”
귀신이라도 봤다는 표정이다.
“그러는 윤 위원님께선 어찌 이렇게 갇혀 계십니까?”
“서로 쉽게 밝힐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구먼.”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나를 좀 여기서 빼주게, 어서 라파엘님을 막아야 해.”
윤혁의 말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라파엘님이 뭘 꾸미고 계십니까?”
“그건 나가서 설명하지. 어서 날 좀 빼주게.”
여기서 나는 일부 정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라파엘이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 아마 도를 넘는 짓이었던 모양. 그래서 윤혁이 그걸 반대하다 결국 여기 갇힌 듯하다.
한데 내가 라파엘에 대해 물어도 쉽게 대답해 주지 않는 걸 보니, 패밀리 내부에서 일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지금 라파엘이 벌이는 짓이 외부로 알려지면 사달이 나는 게 틀림없다. 하니 이대로는 입을 열지 않고 시간만 갈 것 같으니 바로 정곡을 찌르자.
“갇혀 계셔서 잘 모르겠지만 이미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긴 어렵게 됐습니다, 윤 위원님. 더는 배신자 라파엘을 감싸지 마십시오.”
“어억….”
윤혁은 놀라서 입만 벙긋벙긋 벌린다.
몇 초 사이에 윤혁의 얼굴에 오만가지 표정이 다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이는 감정은 체념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인가. 대체 어찌?”
“하르쿰의 후계 구도에 개입했던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정황이 있고요.”
물론 다수의 정황이란 건 허세였지만 윤혁은 납득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네. 그래서 라파엘님께서 그리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가. 아니, 그 분이 정녕 라파엘님이 맞으신 건지도 모르겠군.”
“시간이 없습니다, 윤 위원님. 어서 자세한 사정을 말씀해 주셔야 저희가 조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윤혁은 결심이 선 듯했다.
“알겠네. 일단 날 좀 풀어주게. 같이 이곳을 빠져나가면서 말하지.”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복도의 입구를 역천사 둘이서 지키고 있더군요. 저 혼자라면 모르겠으나….”
“걱정할 것 없네. 이 지하실에도 외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으니까. 라파엘님을 위해 이 저택을 지은 게 바로 날세. 역천사 놈들도 알지 못하지. 사실 알았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힘이 봉인된 상태니까.”
안타깝게도 라파엘에 의해 능력이 회수된 모양이다.
능력이 없으면 헌터도 그냥 일반인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S랭크에 올라간다고 위풍당당했던 윤혁도 이렇게 쇠창살 안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증인이 되줄 자니 데리고 나가면 좋겠지.
“한데 이 쇠창살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냥 힘으로 해결하게. 애초에 헌터를 가두기 위한 시설이 아니야. 일반인을 수감하기 위한 곳이지.”
“일반인을요?”
“그래, 우리 패밀리의 치부이지. 자세한 이야기는 재판장에서 밝힐 날이 올 걸세.”
나는 일단 완력을 쇠창살을 휘어서 그를 빼냈다.
“이쪽으로.”
윤혁이 앞장섰고 우리는 비밀통로를 통해 빠져나왔다.
그후 유세나를 불러서 차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유 위원!”
윤혁은 유세나를 보고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어 나는 일단 윤혁을 채근했다.
“일단 라파엘이 벌이고 있는 일부터 설명해 주십시오.”
“알겠네. 라파엘님은 안산에 대규모 혼란을 일으키실 작정이야. 아니, 혼란 정도가 아니지. 안산은 멸망할 걸세.”
놀랍게도 라파엘은 안산 일대의 신성지를 일시적으로 블랙아웃 시킬 작정이었다. 그리고 신성지가 먹통이 된 상황에 대규모 게이트를 열어 몬스터 군대를 안산 한 가운데 풀어놓겠다는 계획. 그야말로 미친 짓이 아닌가.
“맙소사. 몬스터의 규모는요?”
“자세한 건 모르네. 적어도 5만은 몰려나올 거라고 추정되네.”
“안산은 끝장나겠군요.”
“그리고 라파엘 패밀리는 다시없는 오명을 뒤집어쓰겠지. 반드시 막아야하네.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하신 건지!”
어째 몬스터 쪽에서 당하기만 하고 있는 듯하더니, 무서운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구나.
강남을 거의 잃은 몬스터들은 상황이 무척이나 나빠졌다. 그렇기에 상황을 반전시킬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라니.
현재 경제 구조를 감안해 봤을 때, 몬스터 사업의 중심인 안산이 사라지면 대한민국도 망하는 거나 다름 없다.
게다가 추가적인 문제 역시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천사 라파엘의 배신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천사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뀔지도 모른다. 그건 장기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최대한 외부에 알리지 않고 해결하는 것에는 찬성이다.
“어딥니까? 라파엘이 블랙아웃을 준비하고 있는 장소가.”
“안산 중앙 운동장일세.”
안산 중앙 운동장은 새로 만들어진 거대한 돔구장이다.
아직 완성이 안 된 상태라고 들었는데… 설마….
“그 운동장, 라파엘 패밀리 소유입니까?”
“그렇네.”
“기가 막히군요.”
어쩐지 완성된 돔구장이 개방을 안 하며 차일피일, 안전이니 뭐니하며 야구팬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안에서 그런 작업 중이었나.
확실히 돔구장이라면 대규모 작업을 하면서도 들키지 않기 적당하다.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군요.”
“맞네. 라파엘 패밀리에서도 최상위 임원만 알고 있는 극비지. 사실 돔구장 공사는 이미 반 년 전에 끝났어.”
진짜 머리 잘 굴렸구나.
“그래서 블랙아웃 일시는 언제입니까?”
“문제는 그건 알 수 없다는 거야. 오직 라파엘님만 알고 계시지. 그 마법진의 용도도 우리는 최근까지 몰랐거든. 다만 이제 곧이라는 건 확실하네. 오늘이지도 모르고, 내일일지도 모르지.”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지금쯤 역천사가 윤혁의 탈출을 눈치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세라피엘이 유세나가 무리하면서 남긴 흔적을 생각보다 빨리 찾을지도 모른다.
만약 라파엘은 자신의 계획이 방해받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으면 곧장 일을 시작할 터.
오늘 밤이라도 당장 게이트가 열릴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면 안산은 곧장 지옥으로 변한다.
민간인이 대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가지 전투가 벌어지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빠르게 쳐야겠군요.”
“낭비할 시간이 없긴 하지.”
바로 동원할 수 있는 헌터들이 얼마나 되나.
메타트론 패밀리에 50여 명이 있긴 하나 다들 테이머인 게 압박이다.
아무리 몬스터 사태가 터진 상황이라고는 해도 도시에서 거대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면 안 좋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돔구장이랑 노량진을 바로 게이트로 연결해야겠구나.
이 외에 미카엘라와 우리엘 패밀리 헌터들의 도움도 받으면 되겠지. 당장 다른 패밀리를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제가 100여 명 정도는 가능해요.”
유세나가 세라피엘 패밀리에서 데려오겠다고 했다. 아직 그녀는 걸리지 않은 상태로 추정되니 폰으로 불러 모으겠다는 것.
“배신자는 없을까?”
“위원인 저도 모르는 걸요. 세라피엘이 일반 헌터들에게 이런 계획을 말했을 리가 없죠.”
“그러면 당장 안산에 있는 헌터들을 불러줘.”
유세나에게 집결지와 시간을 알리고는 윤혁을 데리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윤 위원님께서는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저희 패밀리의 안전가옥에서 지내주십시오.”
“나도 이 일에 책임이 있는 만큼….”
“그렇다면 이후에 증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현재 라파엘에게 힘을 환수 당해 일반인이나 다름 아닌 상태 아니십니까. 하니 윤 위원님이 해주실 일은 나중입니다.”
“알겠네.”
막강한 헌터에서 보통 사람이 된 탓인지, 아니면 라파엘의 폭주 때문인지 윤혁은 무척이나 심란해 보였다.
지난 번 12인 위원회에서 봤을 때 보다 10년은 더 늙은 듯하다.
“저랑 바로 메타트론님을 만나러 가시죠. 아니, 한 번에 다 불러야겠군요.”
카페 라 푸앙으로 윤혁을 데리고 가서는 메타트론, 미카엘라, 우리엘을 모두 불러 모았다. 배신자에 관해 긴급한 사항이라고 그러니 5분도 안 되어 모두 라 푸앙에 도착했다.
메타트론, 미카엘라, 우리엘이라는 쟁쟁한 대천사가 셋이나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S등급이 코앞이었던 윤혁도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면 나는 담담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세 대천사를 꽤 평범하게 대하고 있구나.
메타트론이 매일 보는 초코징징이고.
미카엘라는 섹시한 채팅친구.
우리엘은 까칠하긴 해도 의외로 놀려먹기 좋은 놈.
이 정도 느낌이었다고 할까.
대천사들도 내겐 위압감을 발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굴었다.
옆에 있던 윤혁은 내가 대천사 셋과 이런 막역한 분위기인 게 놀라운 듯했다.
“대천사님들 모두 앉아 주시길. 배신자에 대해 알아낸 정보를 보고하겠습니다.”
그래도 평소 관계가 어쨌던 지금은 윤혁도 있는 자리다.
필요한 만큼의 공손함을 가지고 대천사들을 대했다. 그리고 윤혁과 번갈아가며 사태를 보고해 나갔다.
“…의 이유들로 바로 공격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최대한 헌터들을 차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대천사 셋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방안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라파엘이 블랙아웃을 시도할 수 있기에 기다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우리가 공격하면 라파엘이 곧장 진을 발동시키지 않을까?”
우리엘의 우려에 미카엘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대규모 마법진이라면 가동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가동한 뒤에도 술법의 완성까지 또 시간이 걸리지. 공격이 몇 시간이고 지연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다만 녀석들이 지형적인 이점을 살려서 그 정도로 막아내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미카엘라의 의견을 메타트론이 이어서 보충했다.
“라파엘의 돔구장을 평범한 돔구장이라고 보고 공략했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이미 여러 가지로 방비가 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달려드는 게 맞다.”
메타트론은 돔 부분이 방어막으로 씌워져 있을 거라고 했다.
“일단은 뚫어보려고 시도해 보아야겠지만 본녀가 라파엘이라도 여러 가지 방비를 했을 터. 아마 돔구장 자체가 결계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구나.”
나는 일단 그 문제는 이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 헌터의 차출부터 부탁했다.
“최대한 빨리 모을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바로 투입이 가능한 인원을 모아주십시오.”
내 요구에 미카엘라 패밀리에서는 300여 명, 우리엘 패밀리에선 150여 명을 제시했다.
“유제아, 일단 선발대를 보낸 뒤에 계속 인원을 모아서 추가로 보내겠다.”
“감사합니다, 미카엘라님.”
이렇게 되면 총 600여 명의 헌터로 돔구장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세라피엘 패밀리의 인원들은 현장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이쪽 세 패밀리의 인원은 노량진에서 집결한 뒤 게이트를 타고 단번에 돔구장으로 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작전은 인원들이 모이는 시간 동안 하고요.”
대천사 셋은 동의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대천사 셋 중 둘이 이번에 환영으로 따라오겠다고 한다.
메타트론과 미카엘라였다.
이유를 들어보니 최악의 경우 신성지를 포기하고, 본체로 강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무리 자기 신성지가 귀해도 안산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환영체로 보고 있으면 상황을 판단하기 용이할 거야.”
중요한 결정이니만큼 남의 보고만 듣고 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카엘라는 자기가 직접 판단하고자 했다.
“용단에 감사드립니다. 미카엘라님.”
메타트론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솔직히 이 노량진 신성지를 포기하고 안산으로 직접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내겐 이미 보살펴야 할 식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메타트론이 빠지면 여의도 지하의 황금갑충이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꼭 본체가 직접 오는 문제 외에도 대천사들이 있으면 마법진의 해체에 조언을 얻는 등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헌터들의 사기도 오를 테고. 우리엘의 경우는 바라카엘 패밀리와의 서부 공략 때문에 꼼짝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공격이 시작되면 바로 다른 패밀리에 연락을 넣어 설득을 시작하겠다.”
“감사합니다.”
공격이 개시되면 더는 보안이고 뭐고 없다.
우리엘은 그때 라파엘의 배신을 모든 대천사에게 전파하고 설득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오늘밤은 아주 길 것 같군요.”
오늘밤에 실패하면 내일의 안산은 잿더미로 변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