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78
00078 4-1. 하룻밤의 대결 =========================================================================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산달폰은 죽었다고 들었다. 메타트론이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서글품은 그런 과거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과거에 했던 그녀의 방황 역시 산달폰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어찌 보면 산달폰의 죽음 때문에 나와 메타트론이 만났다고도 할 수 있었다.
“흐…….”
메타트론이 자신의 쌍둥이를 잃은 서글프지만 이미 지난 일.
바꿀 수 없는 과거이다.
아무리 물리학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거가 갑자기 이리 현재로 튀어나올 수 있는 건가.
“왜, 기세등등하시더니 겁먹은 겁니까?”
라파엘의 외형을 가진 산달폰이 내게 묻는다. 적어도 그녀가 질문하는 동안은 몬스터들이 덤벼들지 않고 있었다.
진짜 라파엘은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모르는 사이 살해된 게 틀림없었다.
내가 하르쿰에서 몬스터들이 모르게 공작을 했듯 저들 역시 우리의 눈을 피해 무언가 해왔겠지.
“겁을 먹다니, 이 메타트론의 화신에게 그런 일은 없다.”
메타트론이란 말에 산달폰이 미간이 살짝 움직인다.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완벽히 가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날까지 그건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산달폰의 쌍둥이 언니인 메타트론조차 완벽히 속았을 정도니까.
대체 산달폰의 목적은 뭐였을까?
왜 모두를 속이고 몬스터와 손을 잡았던 건가.
머리가 복잡하긴 했지만 시간 역시 없었다. 현현을 유지하는 건 제한이 있다.
그래도 지금은 몸으로 싸우는 것보다 말로 싸우는 게 유리할 것 같긴 하다. 군주급 넷에 산달폰까지… 죽었다 깨어나도 정면승부로는 절대 못 이긴다.
“메타트론 말입니까.”
“그래, 너와는 관계가 깊을 텐데?”
“뭐, 좋은 동료긴 하지요. 자연의 대천사인 저와는 상성이 별로긴 합니다만.”
“그런 얘기가 아니다.”
지금 내 전술적 목표는 명확하다. 전투에 대비하고 있는 상대를 흔든다. 그래서 지금 산달폰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강력한 수비 병력이 이후 들어온 헌터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무슨 이야긴가요?”
“네 진정한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산달폰.”
“무슨….”
시종 생글생글 웃는 인상이었지만 아주 짧은 순간 굳어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산달폰, 네 이름 말이다.”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지금 제 정체가 예전에 죽은 그녀라는 것입니까? 상상력이 지나치시군요.”
“상상력이 아니다. 이 방패 덕분이지. 이 방패는 태양의 신격이 사용하던 것.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네 가장이 아무리 대단해도 태양신격 앞에선 소용없는 법이지.”
“…….”
“가벼운 힘만으로도 네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한데 전력을 집중해 태양광을 폭사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거짓된 외형 따위는 완전히 타서 사라질 거다. 그러니 기쁘게 본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 곧 네 사랑하는 쌍둥이 언니가 이곳까지 올 테니까. 그녀뿐만이 아니다. 미카엘라와 각 패밀리의 많은 헌터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때 네 정체를 만천하에 폭로하도록 하겠다.”
산달폰은 내 말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그런 협박을 제게 믿으라는 겁니까?”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신격의 힘은 그저 이루어질 뿐이니까.”
그 말은 들은 산달폰은 주변에 날 반드시 죽이라고 명한다. 군주급 몬스터들이 호위를 위해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산달폰은 거절했다.
“반드시 처리하세요. 가능한 빠르게.”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군주급 몬스터와 고위 몬스터가 날 향해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마치 해일처럼 날 집어삼키려고 한다. 나는 검은 마력의 날개를 펴 공중으로 피했다.
콰아앙!
그 순간 내가 있던 좌석이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박살났다.
급한대로 공중에서 태양광 폭사로 바글바글 달려든 몬스터들을 지져버렸다.
효과는 확실했다.
사방이 몬스터의 비명으로 넘실대는 불바다가 됐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반격도 살벌했다.
어디선가 오징어의 다리 같은 촉수가 길게 뻗어오더니 공중에 있던 날 잡아 좌석 한 가운데 패대기쳤다.
콰아앙!
“커억!”
의자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오른다.
바닥에 처박히면서 입 안이 터졌는지 피 맛이 비릿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내 전투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많은 싸움터를 넘어온 나다. 즉각 일어서 지배 능력으로 한 덩치 큰 고위 몬스터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대한 방패로 삼았다. 녀석은 나 대신 걸레짝이 되어 쓰러졌다.
“산달폰! 이깟 수단으로 날 막을 수 없다! 네 모든 걸 실패할 거다!”
들고 있던 태양신격의 방패를 산달폰에게 내던졌다.
콰앙!
마력의 방어막이 그걸 튕겨내긴 했지만 집중에 방해를 받은 듯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산달폰은 공중에 떠오른 방패를 잡아채려했지만, 빛이 번쩍이자 방패는 다시 내 손 안에 돌아왔다. 나는 나타난 방패를 즉각 왼쪽으로 내밀어 태양광 폭사를 사용했다. 그러자 막 커다란 주둥이를 벌리고 달려들던 고위 몬스터 하나가 고열로 구워졌다.
이후의 싸움은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나는 계속 도망 다니면서 산달폰을 방해했다.
“어서 죽여지 않고 뭐합니까!”
급기야 산달폰이 분기를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분명히 내가 방해가 되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쪽도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아무리 도망만 다니고 있다지만, 집요하게 달라붙는 군주급 몬스터 넷에 의해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계속 치료 스킬을 쓰고 있었지만 이것도 하루에 열 번이라 한계가 있었다.
답답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싶던 그때 갑자기 천장의 돔의 일부가 부서졌다.
콰직! 카아앙!
그리고 돔 위쪽에서 10여 명의 헌터들이 떨어졌다. 12인 위원회의 백이륜을 비롯한 미카엘라 패밀리의 헌터들이었다. 나는 낙하하는 백이륜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백 위원님!”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마법진 한가운데의 산달폰을 가리켰다. 백이륜은 즉각 내 뜻을 이해했다. 곧 시야가 날아갈 정도로 태양광이 찬란하게 빛나며 내리꽂힌다.
쿠아아앙!
타격은 준 건가?
기대감을 갖고 산달폰을 살펴보니 백이륜의 절기도 충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꽤 방해를 준 듯 산달폰이 일순간 휘청이는 게 보였다. 손 하나라도 아쉬운 이때 저거라도 어딘가.
“백 위원님! 몬스터를 상대해 주십시오!”
떨어진 백이륜과 다른 헌터들은 즉각 싸움에 나섰다.
하지만 기세등등하게 등장한 것과 다르게 그들은 서둘러 통로 쪽으로 후퇴해야 했다.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군주급 몬스터들이 다 내 쪽으로 집중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드디어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기어코 건물을 부수고 몬스터를 물리치며 여기까지 도착했다.
아군의 전력이 밀리고 있었지만 내가 주의를 끌고 있는 사이에 다들 적당한 위치를 잡았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도움 탓에 쫓기던 나는 잠시 숨을 돌릴 여유를 갖게 되었다.
사방에서 헌터들이 때맞춰 들어오기 시작한다.
몬스터들은 마법진 가운데의 산달폰을 둘러싸 보호에 들어갔다. 어쨌든 그들로서는 시간만 끌면 이기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내 최고 능력인 현현 역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메타트론, 미카엘라의 경우는 화신체라 힘이 없었다.
S등급이 코앞인 백이륜의 절기도 산달폰을 흔들었을 뿐 유효타는 아니었다.
하니 어찌 저 산달폰을 저지하겠는가.
산달폰이 게이트를 여는 걸 막기 전에 몬스터들에게 헌터들이 전멸할 수도 있었다. 이후 계속 증원이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정도로 군주급 몬스터 넷의 포함된 저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달폰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고 메타트론에게 설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른다. 잠시 그것에 기대하던 나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어림없는 얘기지.
산달폰의 성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쌍둥이 언니를 배신할 정도로 독한 구석이 있다. 이제라고 메타트론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오히려 어린애 같은 점이 많은 메타트론의 멘탈이 걱정된다.
분명히 오늘 메타트론은 큰 상처를 받을 듯했다.
정말 그건 싫은 얘기였다.
“시발….”
눈앞에서 달려들던 고위 몬스터 하나를 날려버리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드디어 현현이 풀린 것이다.
이제 내 위력은 군주급 몬스터를 일 대 일로 상대하지 못하게 됐다.
한데 특이하게도 이렇게 힘을 잃어버리니까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꼭 내가 싸울 필요는 없지.
다른 이를 이용하면 된다.
직접 적을 참하는 거나, 남을 유도해 적을 참하는 거나 결과는 같다. 그리고 그게 내 의지에 부응한다하는 점에서 차이는 없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유세나, 해줄 일이 있어. 급해, 지금 당장 움직여 줘.”
빠르게 유세나에게 내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유세나는 즉각 움직이겠다고 했다. 수완이 좋은 녀석인 만큼 일처리는 똑바로 해주겠지.
자, 그러면 내 히든카드가 도착하기 전까지 귀염둥이인 초코우유 천사의 멘탈 관리에 대해 고민해 볼까. 그리고 헌터들의 희생도 최대한 줄여야 했다.
나는 사방에 소리쳤다.
“포위하고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말라. 일단 진영을 갖추고 몬스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조치 해!”
지금 전황을 아는 자가 본다면 분명히 패착에 가까운 지시였다. 하지만 헌터들은 현 상황이 버거웠기에 즉각 그렇게 했다. 그래도 백이륜 같이 식견있는 자들은 즉각 반발해 왔다.
“유 위원! 망하려고 작정을 한 것이오!”
한시 바삐 게이트의 완성을 저지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전투를 피하고 대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으니 어이없을 수밖에.
백이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간부들도 내 곁으로 득달같이 와 따지고 들었다.
“모두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지금은 한시라도 바삐 게이트를 저지해야겠지요.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서라도.”
“그런 분이 이런 명을 내린다는 말씀이오!”
애초에 내게 모두에 명령을 할 권한은 없었지만 최근 내 명성과 권위가 그걸 가능하게 해주고 있었다.
“제게 복안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위한 포석입니다. 어차피 지금 공격해 봐야 게이트를 저지하지 못합니다. 백 위원님께서 돔에서 낙하하며 날린 절기, 안타깝지만 큰 효과가 없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저 역시 현현이 풀려서 백 위원님과 별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몬스터는 어찌한다고 해도 라파엘을 막을 방법이 전무하죠. 그러니 제가 준비한 한 수를 믿어주십시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비장의 한 수가 있다고 하자 다들 어느 정도 납득했다. 여기 모인 간부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다. 지금 상황 그대로 가면 패배라는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일단 산달폰을 라파엘이라 칭했다.
바쁜데 그것가지 설명하기 번잡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곧 산달폰의 정체는 드러난다.
“모두 맡은 헌터들을 통제해서 적을 적당히 압박 해주십시오.”
“그러면 자네의 그 한 수라는 건 대체 언제인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저를 믿어주십시오.”
일단 그렇게 백이륜 이하 간부들을 물렸다.
점점 돔구장 안으로 들어오는 헌터들의 수가 많아졌다. 몬스터와 헌터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서로 상대를 밀어내는 듯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유제아!”
그때 아름다운 대천사의 환영체가 내 곁으로 날아온다. 메타트론이었다. 미카엘라의 환영체도 곧 도착했는데,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고는 자신의 패밀리 쪽으로 날아가 헌터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보면 미카엘라는 만화에 나오는 성실한 학생회장 같단 말이지. 친구가 없어서 문제지.
“와아! 미카엘라을 지켜라!”
딱히 버프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미카엘라의 등장만으로도 그녀의 패밀리는 힘을 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메타트론의 물음에 나는 개괄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대단하구나. 답답한 상황인 듯한데 해결책을 마련했다니. 그게 무엇이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에겐.”
“음?”
나는 메타트론의 손을 잡았다. 물론 환영체라 실체가 없어 손가락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지만, 그래도 내 손을 그녀의 손과 마주 두었다.
메타트론은 그런 내 태도에 금방 상황을 눈치챘다.
“말하라, 속 시원하게. 무엇이 그대를 힘들게 하는 것이냐.”
“네가 걱정돼.”
“하, 그대는 나를 겉모습 그대로의 여자애 정도로 보는 것이냐?”
“마음 단단히 먹어. 사실….”
막 라파엘의 정체에 대해 말해주려고 할 때 전화가 울렸다.
유세나였다.
-지시한 대로 이행했습니다.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되도록 서둘러 주셨으면 좋겠군요. 이쪽 분께서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기에 말이죠.
-알겠어. 원래 사랑에 눈이 먼 여인은 다 그런 법이지.
전화를 끊고는 나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태양신격의 방패를 꺼내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메타트론, 내 옆에 있어.”
“본녀는 언제나 네 곁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그녀의 환영체는 등 뒤에서 날 감싸 안았다. 그러자 내게 여섯 장의 검은 날개가 돋아난 듯한 형상이 됐다. 언젠가 대군주급과 사투를 벌일 때도 이 같은 모습을 했었지.
구우우우웅.
태양신격의 방패가 일순간 막대한 마력의 진동으로 공명을 내기 시작했다.
게이트 마법을 진행 중인 산달폰은 입술을 깨물고는 날 바라본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망가려면 지금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게이트를 포기하지 못하는 듯했다.
번쩍.
강화된 진실의 시야가 작렬했다.
그리고 빛이 파도처럼 앞으로 쏘아져 거짓된 모든 걸 태워버린다.
라파엘의 외형을 하고 있던 산달폰은 그대로 그 힘에 노출되었다.
갈색 머리의 미남자의 외형은 타서 사라지고, 그 속에서 여성 천사가 나타났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번쩍이는 금발에 신비로운 금안을 가진 아름다운 천사였다.
그 금발, 금안만 빼면 나머지 외형은 메타트론과 놀랄 만큼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 검은 날개까지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대천사 산달폰.
메타트론의 쌍둥이 여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