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82
00082 4-2. 산달폰 =========================================================================
안산 게이트 사태는 극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번 사건은 모두가 힘을 내줬지만 최대 수훈자는 역시 나다. 직접 게이트를 무효화하고 산달폰을 사로잡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싸움 후의 처리였다.
안산 사태야 대외적으로 비밀로 하는 방향으로 결정됐지만, 대내적으로는 정리할 게 많았다. 원래 신상필벌이 가장 중한 법 아니겠는가.
훈공勳功과 죄과罪科는 가려서 처리해야 한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면서도 동시에 답답하기도 했다.
분명히 이번 사태의 최대 공훈자는 바로 나다.
대천사들은 내게 커다란 보상을 해줄 게 틀림없다. 그러나 휘하에 거둔 산달폰의 처지가 문제였다. 이번 사태의 주범인 만큼 엄중한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텐데 그건 내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얘기다.
일단 메타트론이 슬퍼할 테고, 나 역시 지배하게 된 존재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내게도 여동생 같은 존재가 되어 줄 테니까.
“오빠라고 불러.”
“시끄러워! 저리가!”
뭐, 언젠가는 말이다.
산달폰은 내게 날 선 태도 그 자체였다. 천사 지배는 몬스터 지배와 다르게 대상의 이지를 억압하지 않는다. 내게 속하고 명령도 들어야 했지만 보통 때는 지배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적대적인 행동에는 제한이 가해지지만, 말로 하는 건 예외였다.
“산달폰, 내 화신에게 그런 태도는 좋지 않다.”
“너도 시끄러워, 이제 자매도 아닌걸.”
“이 언니에게 너라니.”
메타트론과 나는 서로 난처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산달폰은 우리에게 잡힌 이후로 줄곧 이런 태도였다. 그럼에도 우리 둘이 그녀에게 관대한 자세를 유지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정신은 몬스터의 왕에 의해 변환된 그대로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정체성을 그대로 두는 천사 지배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왕을 처리하지 못하면 산달폰은 정상이 될 수 없어.”
산달폰을 지배하고 그녀를 자세히 조사하면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과거 그녀는 죽음 직전까지 갔고 그 때 몬스터의 왕에게 지배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타락한 인격은 그 당시 재구성된 거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한 것이구나.”
메타트론의 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가뜩이나 왕을 죽이는 게 목표인 그녀인데 이제 여동생의 정상화까지 달려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산달폰이 자의로 타락한 게 아니라서.”
“그건 정말 그렇다.”
산달폰은 스스로의 의지로 이쪽을 저버린 게 아니다. 적에게 당해 꼭두각시로 전락한 거지. 그게 그나마 메타트론의 마음에 작은 평화를 선사해 주는 듯하다. 지금 산달폰은 어렵긴 하지만 고칠 수 있는 병에 걸린 상태라고 할까. 만약 자의로 타락했던 거면 문제는 훨씬 복잡했을 거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재판이 문제네.”
“그래도 사형은 면하지 않겠느냐.”
그리될 것 같기는 하지만 내 입장에선 산달폰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계속 전세계 유력 매체에 메타트론+아리엘 패밀리 모집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나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 기회에 산달폰 패밀리까지 확충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 산달폰 패밀리는 내 사병의 역할을 하게 된다.
명실상부 나는 인간이면서 3개의 패밀리를 지휘하는 전무후무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후의 전쟁에서 산달폰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해.”
“흥! 누가 이용당해 줄지 알고!”
옆에 있던 산달폰이 소리를 빽 지른다.
“그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결정하는 거다, 산달폰.”
“우우…….”
내 고압적인 말에 자기 처지를 실감한 듯 산달폰은 위축된 얼굴이 됐다. 그래도 그 눈빛에는 아직 반항기가 남아있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지배력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내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기가 죽어서 축 늘어져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산달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메타트론과 계속 논의했다.
“어쨌든 재판에 대비해야 해.”
“맞다. 심신상실로 인한 무죄를 주장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 앞으로의 싸움과 널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관철할 부분이야. 이건 양보할 수 없어.”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유제아.”
메타트론은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살며시 웃는다.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주니까 꽤 고마운 모양이다. 어쩐지 하얀 볼도 약간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당장이라고 껴안아 버리고 싶었지만, 옆에서 못 봐주겠다는 듯한 표정의 산달폰 때문에 참아야했다.
“쯧쯧, 하여간 젊은 것들은. 좀만 눈 맞으면 물고 빨고 난리칠 기세라니까.”
완전 할아버지 말투다. 그건 그렇고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처제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산달폰은 정신이 아픈 녀석이다.
병자는 이해하고 포용하는 수밖에 없다. 산달폰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언니 못지않게 달달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미래를 대비해 호감도를 쌓아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처제라…….
왜 그 처제란 단어가 설레는 건지. 나도 참 썩은 인간이라니까.
***
재판이 시작됐다.
배심원은 없고 대천사가 전원합의체로 판결한다.
보통 천사 관련 사건이 터지면 대천사 중 3위位가 모여서 하나의 부를 구성하고 그 부에서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이런 대형 떡밥의 경우는 대천사 12위位 모두가 모인 전원합의체가 구성된다.
의장은 서열 1위인 메타트론이 맡는다.
그런데 여기서 논란이 일었다.
메타트론과 피고인 산달폰의 친족관계를 이유로, 법관의 제척을 일부 대천사가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쌍둥이 여동생이니 제대로 재판이 될 리가 없다는 이유였으니 나름 수긍할만했다. 하지만 메타트론은 여기서 그런 식으로 따지면 천사는 모두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따지고 보면, 이들 천사는 먼 우주에 있다는 기연을 담당하는 신의 권속들로 메타트론이 한 얘기가 틀린 게 아니었다. 결국 서열 1위가 그렇게 버티자 법관의 제척 이야기는 없던 걸로 처리됐다. 역시 의장의 파워가 무섭긴 했다.
그렇게 시작된 재판은 먼저 세라피엘의 문제를 다뤘다.
산달폰의 안건이 복잡한 걸 모두 알고 있기에 뒤로 미룬 것이다.
세라피엘의 죄는 너무 명명백백했기에 금방 판결이 났다.
평천사로 강등하고, 무기한 금고에 처하게 됐다. 그녀는 대구에 있는 특별한 요새의 지하에 수감될 예정이었다.
“속전속결이군.”
천사의 재판은 인간의 것을 흉내 내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다르다. 변호인의 자격의 제한이 없는 거나, 단심으로 진행되는 등 훨씬 간단하다고 할까.
마땅한 법률 조항도 없고, 오로지 중요한 건 대천사들의 합의일 뿐이다. 결국 나머지는 구색만 갖춘 것이었다.
그렇게 세라피엘 패밀리의 자산은 모두 압류되고 그녀의 헌터들은 다른 패밀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만 세라피엘의 챔피언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한 흔적이 명확했기에 같이 무기금고에 처해졌다.
12인 위원회의 유세나 역시 같은 형벌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현재 실종 상태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유세나, 즉 다르쿠다는 현재 황금갑충의 둥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녀석은 곧 강북 지역의 공작 활동에 동원될 예정이었다.
“다음은 피고인 산달폰에 대한 판결이 있겠다.”
메타트론의 건조한 목소리가 재판장을 울렸다. 거의 200여 명에 가까운 참관인들이 오늘 재판을 구경하러 왔다. 그들 모두 이번 판결이 어떻게 날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참고로 산달폰의 변호인은 나다.
천사의 재판에서 변호사 자격증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노예다.
내가 지켜내고 돌봐야 하는 존재였다.
“산달폰. 오늘 너를 구해서 네게 기회를 주겠다.”
“무슨 기회?”
“자신의 죄를 속죄할 기회 말이다. 비록 스스로의 의지로 행한 것은 아니라지만, 네가 한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앞으로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다면 네 참행에 손에 죽은 헌터들도 널 용서할 것이다.”
“흥, 웃기는 소리.”
“지금은 내 말이 어이없게 들리겠지. 하지만 후에 정신을 회복한다면 내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거다.”
정말 기대가 되는군.
그때 산달폰이 내게 무슨 보답을 해줄지 말이야.
기왕이면 달콤한 게 좋겠는데.
“어쩐지 오한이 드는데.”
산달폰은 자기도 모르게 팔로 몸을 감싸며 떨었다. 뭔가 농담이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장 산달폰의 변호를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녀를 기소하는 검사 역할은 권천사인 메르디엘이란 녀석이 맡았다. 메르디엘은 산달폰의 죄를 조목조목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르디엘의 차례가 끝나자 메타트론이 내게 묻는다.
“변호인 반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재판장님.”
나는 산달폰의 모든 일이 심신상실 상태에서 본의 아니게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앞으로 산달폰이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며, 내가 이번 사태에서 세운 공로로 산달폰의 과를 상쇄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더불어 이번에 제가 받게 될 2조 5,000억 원 역시 포기하겠습니다.”
그 돈은 안산 중앙 운동장에서 죽은 군주급 몬스터, 고위 몬스터의 마정석에서 내 몫으로 떨어진 것과 포상금은 더한 금액이었다.
그 때문인지 방청석이 술렁술렁하다.
대부분 그들은 이번 일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내가 그만큼의 배당을 포기한다면 자신들이 가질 금액은 크게 늘어난다.
하니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저는 자신의 의지로 한 게 아닌 일로 가혹한 처벌을 받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정상적이던 과거에 여러 훌륭하고 모범적 행동을 했던 산달폰 같은 경우는 더더욱 말입니다. 우리는 병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보듬고 안아서 그녀가 회복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나는 2조 5,000억을 허공에 뿌려 로비를 한 셈이었다.
이들 방청객들은 배심원은 아니지만 분명히 대천사들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세한다.
다들 용서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굳이 반대를 하며 벌을 줘야한다고 외칠 대천사가 얼마나 있을까. 일부 대천사가 내 연설을 제지하려 했으나 메타트론과 미카엘라가 막자 결국 포기했다.
역시 서열 1위, 2위가 깡패구먼.
“그렇다고 여기 산달폰이 자신의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겠다는 건 아닙니다.”
오늘 방청객 중에 산달폰에게 원한을 가진 이 역시 있다. 이번 사태 때 동료를 잃은 이들은 그녀의 상태와 상관없이 미움이 있을 터. 그러니 무조건 용서해 달라는 것도 곤란했다.
“앞으로 산달폰은 평천사의 위를 가지고 대 몬스터 작전을 위해 백의종군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께서는 그녀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내 말에 많은 호응이 있었다.
됐어, 이대로라면 유리한 판결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뭐든 꼭 초를 치는 인물이 나타나는 법. 가만히 있던 대천사 이후디엘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대천사 라파엘을 살해한 죄는 무거운 것입니다. 심신상실으로도 넘어갈 수 없는 문제지요.”
이후디엘의 말에 갑자기 공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2조 5,000억 때문에 들떴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산달폰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사전에 나와 전혀 협의도 안 된 부분이었다.
“라파엘은 되살릴 수 있어.”
“뭐?”
이후디엘이 평소의 중후한 분위기도 잊고 벙찐 목소리로 되물었다.
“분명히 내가 그 녀석을 죽이긴 했지만 다시 살릴 수 있다고.”
산달폰은 다시 말했다. 그러자 이후디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피고인, 그게 허언이면 본관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자, 봐.”
산달폰은 품에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복숭아씨를 닮은 씨앗이었다.
“이게 라파엘이야. 내게 라파엘의 처분하라고 한 왕의 명령은 완벽하지 않았어. 분명히 라파엘을 죽여야 했지만 빈틈이 있었지. 어째서인지 나는 라파엘을 소멸시키고 싶지 않더라고. 그래서 녀석이 죽어 씨앗이 되었을 때 이렇게 남겨뒀지. 너희들도 알 거 아니야, 라파엘이 자연을 다루던 대천사였던 걸. 땅에 묻고 물을 주면 금방 부활할 거야.”
황당한 말이었지만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
자연의 대천사니까 가능한 재주라고 할까. 나 같은 경우는 죽은 후 제자리에서 부활이 가능하다. 반면 라파엘의 경우는 씨앗상태로 몸을 추스를 수 있나 보다.
다행히 산달폰은 그 씨앗을 깨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었다.
나는 이때를 놓칠 수 없었다.
“보십시오, 여러분. 산달폰은 몬스터의 왕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지만 선량했던 본성을 약간이나마 발휘해 라파엘님을 보존해 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녀를 치료하고 과거 빛나던 그때로 되돌릴 노력을 아낄 수 있겠습니까? 모두 들어주십시오! 산달폰은 제대로 된 조치가 따른다면 예전의 깨끗한 천사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아픈 동료를 저버리겠습니까?”
게다가 여기서 빼먹지 말아야 할 추궁이 있다.
나는 방청인들이 아니라 이번에는 대천사들을 보며 따지듯 물었다.
“과거 그녀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러자 대부분의 대천사들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산달폰은 그 당시 무리한 작전의 희생양이었다.
“이후디엘 님. 저는 이번 안산 사태에서 강풍호 위원을 구했습니다. 평소 강 위원과 그다지 원만한 사이가 아님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산달폰을 구해주십시오. 그녀는 동료입니다. 동료를 구하는 건 우리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끄응….”
급기야 이후디엘까지 입을 닫아버렸다.
산달폰의 처벌을 주장하던 대표가 그리 굴복해 버리자 상황은 결국 명확해졌다. 눈치 빠른 방청인들은 자신들에게 떨어진 돈 때문에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나 박수를 쳤다.
결국 우르르 모두 일어났고 그걸로 재판은 끝이었다.
산달폰은 내 감시 하에 백의종군을 하게 됐다.
다만 그 조치는 한시적으로 왕이 죽을 때까지였다. 후에 왕이 죽어서 산달폰이 본성을 되찾는다면 그때 그녀의 복권을 논하기로 했다.
그리고 라파엘은 씨앗을 땅에 묻자 사흘 뒤에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