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85
00085 4-3. 감옥겸 사육장 =========================================================================
그렇지만 이건 신중하게 생각해 볼 문제였다.
왕이란 존재가 어디 호락호락하겠는가.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간다.
“그래도 너무 좋은 기회란 말이지….”
메타트론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평소에 왕은 자신의 안전한 궁전에서 4마리의 대군주급 몬스터에게 보호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암살을 하려고 해도 좀처럼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것. 그녀가 과거에 왕과 대면했던 것도 꽤나 운이 따른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더더욱 아깝지 않나.
“그런데 왜 왕이 직접 오는 거야?”
“처형식이 있다고 합니다.”
“처형식?”
“네, 이번에 잡은 인간들을 공개 처형한다고 합니다. 그간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인간의 저항이 끝났다는 걸 과시하는 것 같습니다.”
“흠…….”
저항 조직의 그 유능한 리더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사람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하긴, 그러니 몬스터들에겐 눈엣가시였겠지. 얼마나 아니꼽게 생각하면 공개 처형을 하고 왕이 직접 행차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왕을 암살하고 싶어졌다.
승리를 목전에 둔 적이 미끄러지는 건 무척이나 볼만한 것 아니겠는가.
아니, 꼭 암살이 아니더라도 사전에 포로를 빼돌리면 행사를 준비한 왕의 체면이 상할 게 틀림없다. 이쪽도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기도 하고.
어떻게 할까.
“일단 알겠어. 너는 일단 무리 속에서 상황을 주시해 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다르쿠다를 보낸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암살과 구출, 무엇을 더 중시할지 말이다.
그리고 장고 끝에 구출을 우선 하기로 했다.
그래, 처음 목표에 집중해야지 도중에 마음을 바꿔먹고는 잘 된 적이 없었지.
결정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 왕이 도착하려면 충분히 시간이 있다. 나는 몰래 양각도 호텔로 나아갔다.
주변은 몬스터로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날 발견하는 이가 없었다. 마치 공기와 같이 녹아든 나는 거침없이 호텔로 들어갔다.
“으…….”
안에 들어가자마자 온갖 악취가 풍긴다.
썩은 내에 비릿한 혈향이 섞여서는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냄새를 만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전혀 닦지 않아 핏자국이 겹치고 겹쳐져 온통 시커멓게 변한 상태다.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밀려온다. 아마 여기서 수많은 인간이 도살되었던 모양이다.
밤에 귀신이라도 나올 분위기다.
일단 계단을 통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 같은 건 전력이 끊겨서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계단에는 먹다 버린 듯한 인간의 뼈가 굴러다닌다.
그리고 인간의 것은 아닌 듯한 내장 뭉치도 있었는데, 오물이 흥건하게 흘러나온다. 아주 개판이구나.
또한 어떤 층은 인간의 뼈가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곳도 있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생각날 정도인데, 어찌나 뼈가 많은지 안으로 진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얼마나 많은 인간이 이 건물 안에서 도살된 걸까.
그래서 자꾸 감정적이 되어 왕의 암살을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무모한 일이다. 왕과 나의 격차는 분명하다.
게다가 여긴 적지 한가운데.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그 뒤에 살아서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했다.
역시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포로만 빼내서 도망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밖에서 한창 준비 중인 행사를 엉망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혼란이 가득한 상황이 되면 탈출하기 용이하기도 하고.
일단 나는 머플러의 능력인 투시를 사용해 목표를 찾았다. 그러자 건물의 구조와 함께, 안에 있는 몬스터 그리고 구출 대상이 파악된다.
이 양각로 호텔 안에는 갇힌 인간은 채 열 명이 안 됐다. 북한 지역에 인간 9할이 사라진 지금은 예전처럼 잡아올 인간도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킬링필드처럼 쌓여있는 인골도 꽤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이었지.
좋아, 결정했다.
일단 바로 미카엘라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은둔자 느낌인 메타트론보다 미카엘라가 정부에 영향력이 강하기에, 지금 할 부탁의 상대로 적당하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전세계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뜬다. 심지어 아프리카 오지라도 공중에 떠있는 와이파이 중개소를 통해서 인터넷이 가능하다.
-미카엘라, 나야.
-응. 일은 잘되고 있어?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어.
-말해,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순항 미사일 3발만 날려줘.
-뭐? 진짜?
터무니없는 말을 너무 쉽게 했나? 미카엘라는 놀라는 기색이다.
-응, 농담하는 거 아냐. 지금 몬스터가 드글드글 모여있는 곳이 있어. 네가 원했던 북쪽 인물 둘의 탈출에 꼭 필요한 일이야.
나는 내가 생각한 작전을 제대로 설명했다.
-확실히 그렇네.
미카엘라는 내 의견에 동의해 줬다.
-뭐, 쏘려면 못 쏠 것도 없지.
정부에 대해 대천사가 가진 영향력은 무시무시하다. 일전의 안산 사태 때 경찰력을 전화 하나로 투입했던 건 애교 수준이다. 미사일 발사 같은 대단한 일도 부탁할 수 있다. 물론 부탁은 무척이나 완곡한 표현이다.
사실 명령이나 다름 아니다.
-알았어, 내가 전화해 볼게.
-어디까지나 녀석들의 행사를 망치기 위해서야. 사실 죽는 몬스터는 거의 없을 거야.
과거 북괴가 평양에 출신성분이 양호한 인민을 모아놨듯, 지금의 평양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몬스터만 상주한다. 최소 6등급 이상의 방어막을 가진 존재들이란 얘기다.
그렇기에 미사일 자체로 피해를 주는 건 못한다. 그래서 몬스터 VS 헌터의 구도가 확실히 자리 잡은 지금은, 실속도 없고 돈만 낭비하는 미사일 발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공연히 몬스터를 자극해 웨이브를 일으켜 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말이다.
하니 이번에 미카엘라가 순항 미사일을 쏴달라고 하면 대통령부터 무척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탄도 미사일이 아니라 순항 미사일을 발사해 달라고 한 건 오차 범위 때문이다. 양각도 행사장에 정확히 꽂아 넣어야 하기에 탄도 미사일은 적당치 않았다.
순항 미사일 3발만 떨어지면 지금 부산히 준비하고 있는 행사장은 엉망진창이 되겠지.
지이잉, 지이잉.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미카엘라와 처음 통화한지 4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제아, 정부 쪽 허락받았어. 좌표 좀 보내줄래?
일단 좌표를 보내고 잠시 뒤 다시 연락했는데, 미사일 진지에서 평양까지 15분이 걸린다고 했다. 역시 순항미사일이라 느려터졌구나. 그래도 뭐, 마하로 날아오는 거긴 하지만.
-늦지 않겠어?
-걱정 안 해도 돼. 왕이 도착하기까지 3시간 이상 여유 있으니까.
-무리하면 안 돼. 절대로. 왕이 도착하기 전에 꼭 포로만 구해서 빠져나오기? 알겠지?
-그래, 정말 고마워. 미카엘라.
미카엘라 덕에 화력 유도도 다 해보네.
순항 미사일 3기가 날아온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30분 뒤에 발사해 줄 수 있을까?
-한 시간은 잡아야 할 걸. 그쪽도 발사 준비를 위해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니까.
-그럼 한 시간 뒤로 부탁해.
-알겠어. 또 연락할게.
일단 그 사이 나는 포로가 있는 걸로 생각되는 12층으로 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감시는 생각보다 어설펐다.
덩치 큰 몬스터들이 나른하게 사방에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 환경은 매우 불결하다. 나는 도저히 역한 냄새를 참을 수 없어서 방독면을 착용했다. 어차피 내가 뭘 하든 이놈들은 날 찾지 못한다.
그렇게 대비를 하고 12층의 가장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갇혀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쪽 저항조직의 수장인 리영혁과 투시 능력을 가진 최룡이었다. 살펴보니 붙잡히는 과정에서 얻어맞은 듯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식사를 제공 받지 못해 힘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그건 그렇고 몬스터 쪽에도 기술자가 있긴 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방 일부를 감옥으로 개조해 놓다니.
그런데 딱히 바로 앞에서 지키는 몬스터는 없었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할 거라고 자신한 모양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불렀다.
“구하러 왔습니다.”
내 말에 다 죽어가던 둘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든다.
나는 서둘러 조용히 하게 하고는 설명에 들어갔다.
“리영혁씨, 최룡씨. 미카엘라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한 시간 뒤에 탈출할 예정이니 준비하고 계세요.”
“그제 정말인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들은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 듯했지만 나는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마법 주머니에서 회복 포션 몇 개를 꺼내서 건넸다.
“몸을 추스르고 있으십시오. 시간이 되면 오겠습니다.”
그 뒤 머플러의 힘을 사용해 모습을 감췄다. 내가 별다른 징조도 없이 바로 사라지자 둘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인골로 가득한 8층으로 돌아왔다.
30분 정도 지나자 미카엘라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발사 준비 됐어. 쏘라고 할까.
-응, 부탁할게.
그리고 1분 뒤, 순항 미사일이 발사됐다.
앞으로 15분가량 뒤면 이 양각도에 순항미사일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난리가 나겠지. 나는 다르쿠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피난할 것을 명했다.
이제부터 시간을 잘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12층의 몬스터를 모두 해치운 포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면 10분 이상은 걸릴 테니 슬슬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나는 12층으로 올라가며 은신을 해제했다. 더는 숨어있을 필요도 없었다.
“기왕하는 거, 철저히 사냥해 주지.”
투시 능력을 이용해 12층 몬스터의 위치는 다 파악했다. 한놈도 남기지 않고 죽일 작정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12층 입구부분에 있는 거대한 몬스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지만 발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기에 졸고 있는 녀석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졸지 않았다면 적어도 동료들에게 경고는 해줄 시간은 있었을 텐데. 태양신격의 방패로 그대로 녀석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이마가 함몰되어 놈은 절명했다. 뭉개진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털썩.
쓰러진 녀석을 지나 계속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에서 비대한 몸집을 가진 몬스터 셋을 만났는데 이들은 훨씬 간단하게 처리했다.
곧장 지배 능력으로 셋을 사로잡은 뒤에 명을 내렸다.
“자살하도록.”
그러자 셋은 반항도 못하고, 스스로의 목을 뾰족한 것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푸욱! 푹! 푹!
사방에 피가 튀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절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피투성이가 되어서 풀썩 쓰러졌다.
지배 능력만 있으면 이깟 몬스터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쉽게 12층을 정리한 나는 감옥으로 가 리영혁, 최룡을 빼냈다.
“갑시다.”
아까 주고간 포션 덕분인지 둘은 어느 정도 안색이 괜찮아졌다. 나는 그들에게 물약을 하나씩 더 주었다.
“이건?”
“개구리 인간의 물약이란 것입니다. 마시면 수중에서 호흡이 가능해 집니다.”
내 말에 리영혁이 물어온다.
“혹시 대동강을 타고 탈출할 겁네까?”
“맞습니다. 일단 가지고만 계시고 물에 들어가기 전에 드시길 바랍니다. 물약의 효과 때문에 손발이 개구리처럼 변해서 도망갈 때는 좋지 않습니다.”
이미 대동강에는 대치를 대기시켜놨다.
몬스터 사태 때 대동강 하류의 서해갑문이 파괴된 상태라, 녀석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자, 그럼 이쪽으로.”
리영혁, 최룡을 인솔해 나는 양각도 호텔 저층부로 내려와 대기했다.
“곧 순항 미사일이 떨어질 겁니다. 그때의 혼란을 틈타 빠져나가겠습니다.”
내 설명에 둘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표정에서 절대 여기서는 죽을 수 없단 강인한 마음이 느껴졌다. 하긴 20년 이상 고향이 유린당하는 꼴을 봐왔으니 이들이 품은 한은 보통이 아니니라.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치 제트기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쌔액 하는 소리가 짧게 들렸고 그 다음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소리였다. 나는 미사일의 폭음이 이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다.
충격파 때문인지 우리가 숨어있는 방의 호텔 유리창도 일제히 깨져나갔다. 이 강력한 진동은 피부로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서둘러 창 밖으로 보니 거대한 검은 연기가 위로 치솟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모여 있던 곳은 난장판이 됐다.
“됐습니다. 나갈 테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나는 둘을 이끌고 재빨리 호텔 밖으로 나갔다. 강변으로 가는 길은 사전에 봐뒀기 때문에 헤매는 일은 없었다. 그때 두 번째 미사일이 떨어졌다.
구아아앙! 쌔액! 콰아아아앙!
돌아보니 많은 몬스터가 허공으로 장난감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정신이 없었는데 그렇게 한 발이 더 떨어지자 혼란은 점입가경이었다. 왕을 맞이 하기 위해 준비한 것들은 엉망진창이 됐다.
그 사이 강가에 다다른 우리는 서둘러 개구리 인간의 물약을 복용했다. 그리고 물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치를 불렀다.
곧 높은 파도가 일더니 길이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수중 괴물이 나타난다. 리영혁과 최룡은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표정이었다.
“서두르십시오. 이 녀석은 제 지배를 받는 몬스터입니다.”
“알갔습니다.”
당황도 잠시, 내 재촉에 그들은 서둘러 대치 등 위로 올라탔다.
“머뭇거려 면이 없습네다. 서둘러 출발하시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치에게 어서 잠수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곧 그 명령을 재고해 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맙소사.”
대동강 하류 쪽에서 갑자기 해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물이 역류해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대동강의 물결 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문어 다리 같은 게 여러 개 튀어나왔던 것이다.
저게 뭐지.
판타지에 나오는 크라켄 같은 건가?
어찌나 덩치가 큰지 강줄기를 완전히 혼자 틀어막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것에 비하면 대치조차 송사리 같아 보였다.
“저건!”
내 뒤에 있던 리영혁 뭔가 아는 눈치였다.
뭐냐고 눈으로 묻자 그가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저건, 틀림없이 대군주급 몬스터…. 소문만 들었는데 실제 했을 줄이야…. 저 녀석은 과거 우리 공화국의 배를 통째로 몇 번이고 삼키곤 했다는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