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87
00087 4-4. 몬스터의 왕 =========================================================================
“끄아아아아악!”
시커먼 방 안에서 내 비명이 울려 퍼진다.
지금 나는 어린애처럼 울면서 자비를 간청하는 중이다.
“제발! 그만해! 제바알!”
내 갈비뼈는 마치 날개를 핀 갈매기처럼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내장기관에 잔혹한 손길이 계속됐다. 고문을 하는 몬스터는 내 위장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온갖 것을 끊임없이 밀어 넣는다. 압박감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게 배가 터져 죽는 게 아닐까 싶다. 위장으로 느끼는 통증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살면서 몇 번 크게 체해서 심한 고통을 느낀 적이 있는데 지금 상황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랄까.
“끄아아악!”
고문은 벌써 48시간째 쉬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다.
사실 나는 잡혀 온지 5분 만에 후회했지만, 처음부터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미 대군주급 몬스터 셋의 주의를 끈 이후로 모든 게 끝장이었다.
애초에 이들의 감각에 걸리지 않아야 했지만,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 존재조차 몰랐으니 어찌 대비하겠는가.
“차라리 죽여줘! 제발 죽여!”
내 간절한 요청에 고문을 지켜보고 있던 대군주급 몬스터 하나가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세르카두란 이름이었지.
“진짜 독한 놈이네. 어떻게 하나도 불지 않는 거지. 죽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정작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지.”
“정신에 간섭하는 방법도 안 통했지. 보기보다 훨씬 거물인 것 같아.”
카크닥이란 이름의 대군주급 몬스터가 맞장구를 쳤다.
둘은 그야말로 앙숙이었지만 나라는 공통된 관심사 때문인지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모진 고문에게 정보를 하나도 토설하지 않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메타트론이나 여타 천사들의 핵심 정보를 흘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내가 버티고 있는 건 의지력 능력치 때문이다. 잔혹한 고문은 인간적인 결심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울며 짜고 있지만 아무것도 토설하지 않은 건 오로지 의지 수치에 기반했다. 간혹 고문이 심할 때는 거의 굴복할 뻔했으나 어떻게든 간신히 견뎌냈다.
“일단 그만하자. 무조건 몰아붙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 녀석은 고통에 탁월하게 저항하는군. 회유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 오히려 지켜보는 이쪽이 먼저 지치는군.”
대군주급 셋 중의 선임인 녀석이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카크닥과 세르카두도 뒤를 따랐다. 하지만 중간에 멈춰서 그 노랗고 깊은 눈동자로 날 들여다보고 갔다.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모든 걸 꿰뚫어 볼 듯했지만, 정작 그들은 내 비밀을 뭐하나 밝혀내지 못하고 물러갔다. 상태창을 보니 어느새 이곳에 갇힌지 49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후우… 후우… 후….”
홀로 남겨진 나는 깊게 몰아쉬며 진정하려 노력했다.
몸은 이미 반병신이 된 상태다. 눈알도 하나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탈출할 수만 있으면 치료 능력으로 완전히 복원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치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감금된 특수한 장소 때문이었다. 반들반들하고 광택이 도는 돌로 지어진 이 감옥은 마력이 흐르지 않는 장소였다. 요컨대 전기 콘센트가 없는 방과 같다고 할까.
하니 배터리가 있는 것처럼 자체적인 마력이 있는 물건만이 사용 가능했다.
생각보다 이 방안의 효과는 놀라워서 저 대군주급 몬스터들조차 마법을 부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내게 정신계열 마법을 걸려고 할 때는 이 방 안에서 데리고 나간 뒤에 행했을 정도니까.
“으으….”
입술이 사라져서 침이 그대로 흐른다.
아파 죽겠다.
하지만 이대로 쉬고 있을 틈은 없다. 겨우 다르쿠다에게 연락을 넣을 시간이 왔으니까. 그건 텔레파시는 자체적인 마력을 가진 아이템으로 하는 거라 여기서도 가능했다.
-다르쿠다.
-네, 주인님.
-위치는?
-주인님께서 계신 곳에 잠입해 있습니다.
역시 다르쿠다로군. 다르쿠다는 모습만 변형하는 게 아니다. 희생자의 뇌를 먹어치우고 그 기억까지 흡수한다. 그렇기에 희생자로 연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한 대체가 가능하다. 몬스터임에도 유세라가 되어 대천사 세라피엘을 완벽히 속이지 않았나. 아마 지금은 이 감옥의 간수 중의 하나로 변한 모양이었다.
-바로 구출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안 돼.
-다들 심각한 고문으로 주인님께서 곧 죽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더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반드시 왕을 만나야 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버틴 거야. 놈들이 돌아오면 왕과 대면하고 싶다고 말할 거다. 원하는 정보를 넘길 테니 왕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들이 들어주겠습니까?
-글쎄. 사실상 도박이지. 하지만 내가 분명히 왕의 호기심을 자극할 거라고 생각해.
양각도를 엉망으로 만든 데다가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있다. 정체불명의 인간인데 왕에게만 따로 하고 싶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내가 왕이라도 어떤 놈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을 거다.
-어차피 내 힘은 왕에게 위협이 못 돼. 왕이 날 만나는 걸 꺼릴 이유도 없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더욱 탈출과 멀어지는 것 아닙니까. 도망가려면 지금입니다.
확실히 그건 그렇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나는 탈출을 거절했다. 고문의 고통 때문에 엄청나게 후회했지만, 지금까지 당한 게 억울해서라도 싫다. 기왕이면 왕뿐 아니라 대군주급 녀석들도 진실의 시야로 비춰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은 없겠지.
나를 고문하고 협박했던 대군주급 몬스터 셋은 기필코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줄 작정이었다.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다르쿠다, 네가 날 도와줘야겠어.
-말씀하시길.
다르쿠다에게 계획한 걸 털어놓자 즉각 반대하고 나선다.
-너무 위험합니다. 원하시는 것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안 된다는 보장도 없지.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야.
-확률에 목숨을 거는 건 좋지 않습니다.
-나를 잘 모르는군, 다르쿠다. 지금까지 나는 늘 그 확률에 생명을 걸어왔다고.
-하지만!
-더 듣지 않겠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충분히 주의하길.
-…알겠습니다. 꼭 그러시겠다면.
-따라줘서 고맙군.
탈출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자 죽음이 한결 더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난관을 돌파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은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기회였다.
***
다음날 고문은 재개됐다. 이번에 그들은 전략을 선회한 듯 살살 날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몇 가지 사항만 대답해. 그러면 살려서 보내주지. 네놈이 하도 끈질기게 버텨서 그래.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지랄하고 있네.
차라리 자비로운 죽음을 내리겠다고 하면 솔깃하겠다, 등신들아. 살려주겠다고 하니까 애초에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자기들도 그런 걸 느꼈는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으르렁거린다.
“이 작은 원숭이 새끼가 언제까지 애를 먹이려고 그래! 역시 이놈 팔다리를 바로 뜯어버리자니까!”
“그만둬. 고문이 아니라 죽일 셈이야? 그거야말로 이놈이 원하는 거잖아”
나 때문에 모처럼 의기투합했던 카크닥과 세르카두가 다시 다퉈댄다.
하여간 답이 없는 놈들이구나, 이놈들.
나는 일단 그들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요구 사항이 있다.”
고문당하고 있는 포로 주제가 건방지게 뭘 요구했건만 그들은 반색한다. 드디어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 무엇이지?”
“왕을 만나게 해다오. 왕에게 할 말이 있다. 그렇게만 해주면 뭐든 들려주지.”
내 요구에 대군주급 몬스터들은 놀라더니, 이내 고민스러운 기색이 됐다.
“흐음…. 별난 요구를 해오는군.”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물어왔다.
“그건 왕에게 직접 말하겠다.”
“그러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왕은 선물 없이 만날 수 없어. 너도 필요한 정보로 성의를 보여라. 그러면 왕께 네 말을 전하지.”
몬스터는 간교한 존재다.
순진하게 여기서 밑천을 다 드러냈다가는 그대로 팽 당할 터. 나는 어느 정도 정보를 판 뒤 버텼다.
“더 말해보라고. 그 정도로 왕을 만나겠다는 거냐!”
“이 이상은 불가하다.”
“이런 건방진! 오냐오냐하니까!”
다시 잔인한 고문과 구타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굴복할 수는 없는 터.
“퉤.”
침을 뱉자 이빨 두 개가 튀어 나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내 입안에 있던 마지막 이빨이었다.
역시 좀 더 제대로 된 정보를 풀어야 할까?
하나 그로인한 위험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책임질 수도 없음에도 말이다.
고민만 깊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대군주급 몬스터 중의 하나가 나직하게 웃음을 흘렸다. 바로 셋 중의 선임이었던, 아직 이름도 모르는 녀석이다.
어째서인지 카크닥과 세르카두는 그 선임을 어떠한 호칭이나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그를 선임, 상관, 대장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종일 투닥거리는 카크닥, 세르카두와 달리 진중한 태도를 가진 녀석이라, 갑자기 웃어대는 게 낯설게 보였다.
의아한 듯 쳐다보자 그가 내게 말한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지만 눈썰미는 별로구나. 바로 앞에 있는 상대를 그렇게 찾아대고 있으니.”
그게 대체 무슨?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갑자기 그자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제까지 막혔던 것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압도적인 위엄이었다.
“허억!”
갑자기 그 박력에 숨이 막혀서 제대로 호흡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린 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전혀 다른 존재가 오롯이 서 있었다.
나는 곧장 그가 왕이란 걸 알았다.
이럴 수가. 대군주급 몬스터의 하나가 사실 왕이었다니.
“궁금한 모양이군?”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왕은 설명해왔다.
“날 지키는 네 명의 대군주급 몬스터 가운데 하나는 사실 짐이다. 짐은 그들 가운데 하나로 위장해서 돌아다니지. 지난번에 어떤 년에게 찔린 이후로 고안해 낸 방법인 것이다.”
그 어떤 년은 누군지 알기 쉽구나.
그나저나 엄청난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럼 지금의 왕은?”
“꼭두각시다.”
왕을 연기하는 가짜를 두고 진짜 왕은 옆에서 호위인 척하는 건가. 그러면서 사방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그러고보니 어쩐지 좀 이상했다. 이들은 고문을 하며 거의 이틀이나 내 곁에 붙어있었다. 왕을 지키는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도였지. 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참 임무 수행에 충실했던 놈들이 아닌가. 바로 곁에서 왕을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옆을 보자 왕이 모습을 드러낸 탓인지 카크닥, 세르카두의 태도는 극히 공손했다.
전에는 자신들의 상관에게 툴툴대는 듯한 태도를 취했는데 그게 다 연기였단 말인가. 실로 무서운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 비밀을 서슴없이 밝히다니, 오늘 날 여기서 죽일 생각이구나.
어차피 처분할 작정이니 이런 비밀을 노출해도 상관없다고 여긴 모양이다.
“자, 인간. 나를 무슨 이유로 보고자 했던 것이냐? 짐이 네게 자비를 베푸는 조건으로 무슨 선물을 하려는 것인지 말해 보라.”
“영험한 방패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 방패는 먼 우주의 신격이 만든 것이죠.”
일단은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호? 그 들 수 없었던 방패 말이냐?”
“그렇습니다. 저 외에는 사용이 불가하니 그런 작용이 일어난 겁니다. 하지만 그런 귀속을 풀어 왕께 바치겠습니다.”
“재밌군. 짐도 그 방패라면 흥미가 동하니.”
좋아. 이걸로 왕의 면전에 방패를 들이댈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