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94
00094 4-6.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자 =========================================================================
그건 그렇고 설마 이렇게 딱 잘라서 거절할 줄 몰랐다.
메타트론이나 나나 잠시 벙찌고 말았다.
“요구 조건이 있는 거야?”
“물론이에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것 아니겠어요?”
“좋아.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봐.”
산달폰은 대답 대신 옆에 있는 메타트론을 살펴보며 음흉하게 웃는다.
“흐흐히히.”
깜찍한 미소녀의 외형에 안 어울리는 아저씨 같은 웃음 소리였다.
“뭐? 왜 그러느냐?”
메타트론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흐히히.”
“산달폰, 그리 웃지 말거라. 숙녀답게 굴어야지.”
메타트론의 지적에 산달폰은 대뜸 내 팔짱을 낀다.
“좋아, 정했어. 나랑 데이트해줘요. 형부.”
“뭐?”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놀라서 되물으니 산달폰이 더욱 바짝 붙는다.
잠깐, 잠깐만. 가슴이!
탄력 넘치는 유방의 압박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헤 벌어졌다.
메타트론과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역시 여자는 가슴이 깡패란 말인가.
“잠깐 무엇을 하는 것이냐! 떨어져라! 떨어지래도!”
발끈한 메타트론이 끼어들어 산달폰을 떼내려고 했다.
한데 그게 여의치 않자 내게도 화를 낸다.
“유제아 이놈! 이놈!”
그러거나 말거나 산달폰은 여유만만이다.
“언니가 그랬잖아. 형부랑은 아무 사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내가 가져도 상관없겠네? 보니까 형부도 내 몸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고.”
산달폰은 요염한 표정으로 젖가슴을 내 팔에 문질러 댄다.
“나는 언니랑 나눠쓰려고 했는데, 언니가 자기께 아니라고 하니까 혼자 쓰는 수밖에. 어쩔 수 없잖아?”
부들부들.
부들부들부들.
두 손을 불끈 쥔 메타트론을 마구 몸을 떤다. 보니까 눈가에 약간 물기까지 어려 있었다. 메타트론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바보! 멍청이!”
빽 소리를 지른 메타트론은 그대로 방을 뛰쳐나가 버렸다. 저 바보 멍청이는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나를 향한 말인가, 산달폰을 향한 말인가. 아니, 우리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이겠지.
“언니를 저렇게 울리면 어떻게 해?”
서둘러 산달폰을 떼어놓자 그녀는 순순히 떨어지더니 문밖의 동정에 감각을 기울인다. 그래서 나 역시 감각을 집중에 밖의 상황을 살폈다.
“아….”
가여운 메타트론.
너무나 여실하게 기척이 느껴졌다.
안의 상황을 엿듣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저렇게 박차고 나갔으면 자기 방으로 가버릴 법도 한데.
역시 메타트론은 쿨이라는 단어와 너무 멀다. 안쓰러워서 나도 눈가가 습해졌다.
산달폰은 언니의 그런 기색을 느끼더니 들으라는 듯 말했다.
“어머! 형부! 이번 일정은 한 달 정도라고요? 그러면 월 말에 저랑 데이트하시면 되겠네요!”
“…너무 티 나게 연기하는 거 아니냐?”
“저는 안산에 있는 산타랜드가 좋아요! 어므머어? 형부도 좋다고요! 그럼 이번 달 마지막 일요일에 함께 가요! 자기 신성지에 묶여서 못 오는 어떤 대천사는 내버려두고 실컷 놀자고요!”
곧 밖에서는 쿵쿵거리는 성난 발걸음이 멀어져 간다.
“야, 진짜 화났잖아. 어쩌려고?”
내 책망에 산달폰은 오히려 가슴팍으로 바짝 붙어온다. 그리고 풍만한 가슴골은 은근히 어필한다. 이거이거, 요망한 것 좀 보게.
“어쩌긴 뭘 어째요. 형부는 예쁜 처제랑 흐뭇한 시간 보내시면 되는 거죠.”
대답대신 내가 밀어내자 산달폰은 깔깔거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날 우리 둘만 오붓하게 보내지 못할 테니까. 어디 사는 대천사께서 환영체로 분명히 미행할 거예요. 아! 정말 기대되네요! 아까 화내는 언니는 정말 귀여웠죠?”
뭐랄까.
이 녀석… 언니 사랑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 같았다.
“호호호, 형부랑 호감도도 올리고, 귀여운 언니도 잔뜩 보고 정말이지 최고네요. 언니의 작은 가슴만큼 마음도 작은 점, 저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대체 평소에 자기 언니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그건 그렇고.
“나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야. 데이트 정도로 호감도가 오르지 않는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곧 이어진 대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안 오를까요?”
***
어두컴컴한 건물 안.
버너의 불빛이 생각보다 예쁘다. 내 앞에서는 근사한 미녀가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호사로군.
하이에나와 헌터 생활을 다 합쳐도 이런 호사가 없었는데 말이야.
어두운 와중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를 써는 주인공은 바로 다르쿠다다. 이제는 원래의 다르쿠다란 존재와 너무 멀어져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도 인간형이네?”
“이쪽이 좋으니까요. 숨어 있을 때까지 몬스터 모습일 필요는 없잖아요.”
특이한 대답이었다. 몬스터가 이 녀석의 본 모습이다. 누구든 자기 본류로 있을 때가 제일 편한 게 아닌가. 그런데 굳이 아름다운 여성의 외형을 포기하지 않는다.
유세나로서의 삶이 다르쿠다에게 내 생각보다 엄청난 영향력일 끼친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얼굴도 유세나와 비슷한 편이다. 나름대로 그녀의 얼굴을 자기 입맛대로 변형한 모양이다.
콧대가 높고 도도한 인상의 미녀였다.
“이제 완전히 여자가 되어가는걸.”
“흠…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
“여자의 성 역할은 출산이 아닌가요? 저는 임신은커녕 성경험도 없으니 완전한 여자라고 하기 어렵겠죠. 저는 아직 아이와 같은 상태가 아닐까요?”
“…허.”
누가 몬스터 아니라고 할까 봐 관점이 아주 독특하다.
“주변에 괜찮은 남자들 많잖아. 한 번 골라보지 그래.”
강남 전체가 안정된 탓에 노량진에게 유입된 인구가 꽤 된다. 나는 토지를 임대하고 꽤 짭짤한 수입을 얻고 있었다. 최근 건물도 여러 개 올렸다. 한국에선 역시 건물주가 최고지.
“글쎄요. 이런저런 관계를 만들기는 별로 원하지 않거든요. 지금 정도가 좋아요. 그러니 남자도 제가 지금 아는 정도에서 고르고 싶네요.”
다르쿠다와 같이 잘 지내고 있는 건 메타트론, 산달폰 자매와 함가윤, 함지윤 자매, 그리고 나와 상필이 정도다.
잠깐, 여기서 남자를 고르자면 나랑 상필이 밖에 없는데?
설마 이 녀석 상필이가 마음에 든 건가.
놀랍군. 언제 상필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거지? 이렇게 된 이상 주인님으로서 적극 응원해 주자.
“그 남자에게 부탁하면 되겠네. 뭐, 지가 남자라면 책임을 지겠지. 걱정 마. 내가 꼭 책임지게 할 거니까.”
“기뻐요! 그렇게 자발적으로. 책임까지 지신다니 저도 안심하고 임신할 수 있겠네요.”
환하게 웃는 다르쿠다를 보니 뭔가 대화가 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곧 된장국이 완성된 탓에 신경 쓰지 못하게 됐다.
“맛있네, 잘 끓였다.”
“고마습니다, 주인님. 시집갈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저 신부수업에 더 힘낼게요.”
“어, 그래.”
조만간 상필이에게 이 사실을 귀뜸해 줄 필요가 있겠다.
몬스터라고 해도 완전히 변형한 다르쿠다는 인간과 차이가 없다. 게다가 이런 미모를 보게 된다면 다르쿠다의 본질은 아주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남자란 원래 여자의 아름다움 앞에 서면 여러 가지 문젯점을 축소 해석해 버리는 버릇이 있으니까.
“많이 드세요, 주인님.”
오늘따라 다르쿠다 녀석이 상냥하단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작전을 점검했다.
현재 나와 다르쿠다는 동대문구로 잠입해 왔다. 이쪽으로 온 이유는 간단하다. 내 지배를 받고 있는 말리쿤이 중구와 성동구의 군주급 몬스터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대문구의 군주급 몬스터를 내가 지배하게 되면 남서쪽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연합전선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동대문구와 용산구 양쪽에서 감시하면 동맹자인 중구와 성동구의 군주급 몬스터를 관리하기 훨씬 쉬어진다.
“일단 동대문구 상황에 대해 브리핑 해줘.”
“네, 주인님. 동대문구를 장악한 군주급 몬스터의 이름은 비가디입니다. 녀석은 과거 서울시립대학교 일대를 기점으로 자신의 도시를 만들어 놨습니다. 몬스터치고는 의외로 엄격한 규율을 내세우는 성격이라, 도시는 제법 정비되어 있습니다. 그래 봐야 자재를 뜯어서 엉성하게 만든 곳이긴 합니다만.”
“뭔가 공략할 부분이 있을까? 정치적 문제점이라든가, 갈등 사항이라든가.”
“네, 비가디는 바로 옆동네인 중랑구의 군주급 몬스터인 오르파와 앙숙입니다.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심심치 않게 싸움을 벌이고 있죠. 일주일 전에도 중랑교 일대에서 수백이 죽는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머리가 재빨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남을 이간질 시키는 것이야말로 내 특기.
뭔가 근사한 게 나올 것 같은 예감이었다.
이런 고민은 정말 즐겁다는 말이지. 텐션이 오른다니까.
“흠…….”
곧 나는 둘을 공멸시킬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건 상책이 못된다.
이것 이상의 방법이 분명히 있다. 다시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나는 곧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내리쳤다.
“그래, 이거야!”
“뭔가 방법이 떠오르신 겁니까?”
“일단 그전에 네게 물어볼 게 있다. 군주급끼리 분쟁이 심해지면 보통 어떻게 하나? 윗선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것도 이상하단 말이지. 결국 전력을 깎아 먹는 일이니까.”
“그건 대군주급에서 중재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싸우게 내버려 뒀죠. 왜냐하면 그 정도로 몬스터의 전력이 우세했기 때문입니다. 신성지에 막혀 못 내려가고 있었지 숫자적 우위는 확실했거든요. 그리고 그런 과정으로 옥석이 가려진다는 시선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르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중재할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 그렇게 할 게 확실하지요. 지금 강북 일대의 입지는 매우 불안합니다. 자기들끼리 싸워 전력을 깎아 먹는 짓은 대군주급에서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상황에서 따라 이쪽에서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겠군?”
“물론이죠.”
거기까지 들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질문했다.
“중앙에서 내려온 세르카두 말이야.”
“네.”
“입지가 좀 불안하지 않을까? 아니면 서울을 관리하고 있던 대군주급 둘과 사이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궁금하군.”
“입지가 불안한 정도는 아닐 겁니다. 본인 역시 몬스터를 끌고 내려왔구요. 다만 기존에 있던 대군주급 둘이 세르카두를 아니꼽게 생각할 확률은 충분합니다. 원래 중앙에서 갑자기 내려온 관리는 불편하기 마련 아닙니까.”
다르쿠다의 말로는 충분히 견제가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세르카두가 실수하면 다시 중앙으로 올라갈 테니까요. 기존의 대군주급 몬스터의 입장에서는 반색할 일이겠죠. 인간이나 몬스터나 마찬가지인 건 상황이 어려워도 자기 자리가 더 소중하다는 점 아닐까 싶네요.”
“반면 세르카두 입장에서는 강북에서 자기 영향력을 강화하고 싶겠지?”
“네, 게다가 제가 강북에 있을 때 듣기로 세르카두는 오지랖이 넓은 성격이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끼어들면서 충돌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좋아, 이것으로 필요한 건 다 들었다.
“계책이 있다. 세르카두를 여기까지 끌어들일.”
“듣고 싶군요.”
“일단 비가디나 오르파를 먼저 지배할 필요가 있다. 둘 중 하나만 지배해도 일의 성사를 점쳐볼 수 있겠으나 기왕이면 둘 다 사로잡는 게 완벽할 것이다. 일단 그렇게 군주급 몬스터를 지배한 뒤에 서로의 싸움을 더욱 맹렬하게 일으킨다. 하면 당연히 대군주급 몬스터에게서 제지가 들어오겠지. 그때 나는 기존의 대군주급 몬스터가 아닌 세르카두에게 중재를 부탁하게 시킨다. 세르카두는 특유의 오지랖에 자기 영향력도 확보하고자 동의하겠지. 실제로 그가 전통적인 앙숙의 중재를 멋지게 성공한다면 강북 군주급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그러니 우리는 미리 완벽한 덫을 만들고 대기해서는 중재를 하러 올 세르카두를 사냥한다.”
“명분이 있습니까? 군주급이 대군주급을 살해하는 건 큰 죄입니다. 몬스터가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지만 이번은 좀 경우가 다릅니다.”
“명분은 아무래도 좋다. 대강 이유를 만들면 돼. 예를 들면 세르카두가 자신과 함께 기존의 대군주급 몬스터를 찍어내자고 해서, 충심으로 이를 막았다고 보고해도 된다.”
이리하면 세르카두와 사이가 미묘한 대군주급 둘은 이쪽의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왕이 분노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몬스터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아니냐. 강북이 혼란스러워지면 그걸로 좋지. 아마 그때는 대군주급 몬스터 둘이 이쪽을 감싸주지는 않을 거다. 하면 배신당했다고 발표하고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대군주급 둘에게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뒤집어 씌워야지. 사실 세르카두를 죽인 건 둘이 교사한 거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난장판이 싫다고 해도 세르카두에게 중재를 부탁해야 하는 건 같다.”
세르카두가 훌륭히 중재하면 다른 대군주급 몬스터 둘은 불안해질 거다. 그리고 내가 그 분란의 씨앗을 조종하면 된다.
“요컨대 세르카두를 죽이고 이 강북 일대의 화약고를 빨리 터뜨리거나, 아니면 세르카드에게 공을 세우게 하고 장기적인 분란을 조장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주인님이라면 전자겠군요. 성격이 급하시고 뭐가 빵빵 터지는 걸 좋아하니.”
“그래. 하지만 어느 길로 가도, 세르카두가 중재를 결정한 순간 파멸로 이어진다. 설령 세르카두 암살에 실패해도 상관없다. 모든 책임을 기존의 대군주급 둘에게 뒤집어씌울 테니까. 어차피 비가디는 내 지배를 받는 상태일 거다. 거짓된 증언을 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주인님은 진정 무서운 분이네요. 뭐가 어떻게 되던 적의 파멸로만 결정 나게 하시다니.”
“그래. 세르카두가 중재라는 업적에 현혹되어 무대에 오른다면, 절대 내 손길을 벗어날 방법은 없어. 녀석은 상상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적에게 능욕당하며 단지 눈앞의 상황과만 싸워야 할 테니까.”
날 보는 다르쿠다는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분야에서만큼은 탁월하시군요. 왕도 주인님을 따라 하지 못할 겁니다. 역시 이 다르쿠다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어요.”
어째서인지 다르쿠다는 자신의 입술을 붉은 혀로 요염하게 핥는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는 불륨있게 부푼 자신의 젖을 그리고 왼손으로는 탄력있는 허벅지 사이의 비소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하앙…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주인님께서 절 여자로 만들어 주실 날이.”
뭐야, 얘 왜 이래?
길고 색정적인 숨결을 토해내는 그녀는 애타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