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98
00098 4-6.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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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디가 내 지배하에 떨어졌다.
이로써 나는 동대문구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가능해졌다. 세르카두를 잡을 덫이 반쯤 완성됨과 동시에 가까운 미래에 있을 반란의 준비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비가디.”
“기꺼이 저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왜 이제야 주인께 지배되었는지 한탄이 나올 뿐입니다. 지난날의 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욕망에만 가득 찬 삶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께 지배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건 소명이자 사명이며, 운명입니다. 제 모든 걸 위대한 당신께 헌신하겠습니다.”
나의 열렬한 추종자가 하나 더 생겼다.
군주급으로는 네 번째로군.
유송연, 콰르강, 말리쿤, 비가디, 이렇게 말이다.
게다가 각종 몬스터에 천사들까지.
지배의 힘이 무섭긴 무섭다. 방금 전까지는 죽네사네하면서 꽥꽥거리는 녀석도 이제는 충신이 따로 없었다.
“첫 번째 명을 내리겠다.”
“말씀하십시오.”
“주변에 있는 네 부하들을 모조리 죽여라. 오늘 일이 외부로 흘러나가서는 안 되다. 단, 저기 인간을 붙들고 있는 저 녀석은 예외다.”
내 손끝이 가리키는 건 변신한 유송연이었다.
그녀는 축 늘어져 있는 강유미를 잡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곧장 학살이 일어났다.
몬스터들은 비가디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도 모르고 죽어나간다.
“위대한 분이시여! 이게 무슨!”
“크아아악!”
그 살육의 행렬에 벌레들도 동참했다.
이미 상당수가 진압된 상태였지만 이쪽에서 본격적으로 정리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끝이 났다.
사방에 끈적한 혈향이 가득하다.
“송연아.”
“주인님.”
유송연에게 가보니 강유미는 의식이 없었다.
“센스 좋네.”
“기본이죠.”
안 그래도 현현해 싸우면서 강유미가 목격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 고민이었다. 내가 몬스터를 지배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강북의 군주급 몬스터에게 손을 뻗치고 있다는 건 되도록 D데이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다.
비밀의 자물쇠를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록 굳건한 법이다. 언젠가 다 밝힐 얘기라도 말이다.
그래서 어쩌나 싶었는데 유송연이 알아서 기절시켜놨다. 하는 짓이 너무 예뻐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 아가씨는 여기 왜 온 거야?”
“글쎄요. 아군이라 심문하기도 어렵고.”
진실의 시야를 써보자 기절한 상태라 그런지 별다른 메시지가 안 뜬다. 다만 무언가 찾으러 왔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한데 이 고민은 비가디가 해결해 줬다.
“주인이시여. 이 헌터는 천사의 파편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입수한 소지품 중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비가디는 자신의 마법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주었다.
그것 서울, 정확히 강북 일대의 정밀 지도였다. 총 네 곳에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동대문구의 한 곳이었다.
“천사의 파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짓을 하는군.”
천사의 파편은 다른 게 아니다.
과거 천사들이 달에서 내려올 때 힘의 손실이 있었다. 전기가 전선을 흐르면서 손실이 발생하는 것처럼 지상으로 내려온 그들의 힘 일부는 떨어져 나가 흩어졌다.
그걸 천사의 파편이라 부르는데, 헌터가 얻게 되면 경험치를 올리는 데 쓸 수 있다.
그래서 경험치 스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지만 원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진정한 기연 중 하나로 통한다.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지도의 표시가 모두 맞다면, 어떻게 강유미는 네 곳이나 천사의 파편을 특정했을까?
“흠….”
그녀가 비록 고위 헌터라고는 하나 그 정도의 힘은 없을 터. 하면 강유미의 오빠인 강풍호?
아니다. 11인 위원회 위원이라도 강북 일대를 그리 광범위하게 스캔할 수는 없겠지. 역시 그렇다면 그들이 속한 패밀리의 대천사 이후디엘일 거다.
언제부터 이후디엘 패밀리의 헌터들이 천사의 파편을 찾아다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천사의 파편을 찾는 기술을 가진 건 확실하겠지. 메타트론 패밀리인 내가 지배의 권능으로 재미를 보는 것처럼 그건 그들만의 능력이었다.
일단 나는 지도를 내 품에 넣었다.
“이건 내가 챙기도록 하지.”
목숨 값이라고 쳐, 강유미 아가씨.
“송연아.”
“네, 주인님.”
“이 녀석 어디까지 봤냐?”
“함정 터지자마자 기절시켰어요. 그러니 주인님은 못 봤답니다. 그냥 자기가 몬스터 소굴에 끌려와 죽겠구나 싶었겠죠. 심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이제 보니까 바지가 축축하다.
오줌까지 지린 모양이다.
“비가디.”
“말씀하십시오.”
“일단 이 녀석 감옥 같은데 가둬놔. 그리고 내가 허락하면 탈출할 수 있게 해줘.”
탈출을 유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유미는 허접한 몬스터 몇을 죽이고는 자력을 탈옥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하면 소지품에 대해서도 포기하겠지.”
무기랑 갑옷 정도만 옥 근처에서 되찾을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세르카두의 일을 끝내고 천사의 파편을 다 찾아볼 작정이었다. 지도에 표시된 4개를 다 차지하면 그때 강유미를 풀어줄 계획이다.
“이 녀석 오빠가 좀 강해. 구출하러 올 수 있으니까 옥의 방비를 철저히 해.”
강풍호가 날고 기어 봐야 비가디보다 못하다.
만일 강풍호가 힘을 감추고 있고 실상 S등급이라고 해도 부하를 잔뜩 거느리고 있는 비가디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없다.
하니 이후디엘이 직접 오지 않는 이상 구출은 무리다. 강풍호는 한동안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겠지. 아무리 여동생이라고 해도 이후디엘 패밀리의 헌터를 무모하게 죽여가며 구할 그가 아니다.
원래는 구해주고 은혜를 입힐까도 싶었는데 천사의 파편 때문이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군. 그러니까 평소에 사람이 심성을 곱게 써야지.
강풍호가 나한테 협조적이고 잘 해왔다면 지금의 결정은 분명히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
비가디를 지배했으니 그다음은 중랑구의 군주급 몬스터 오르파가 목표였다.
오르파를 지배하는 건 생각보다 쉬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지배된 비가디의 전폭적인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이시여, 계획하신 게 있으십니까?”
“물론이다.”
나는 비가디의 궁전 가장 깊은 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현재 앞에선 비가디와 유송연이 내 말을 듣는 중이다.
“먼저 카쿠로 하여금 이 영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비가디 너와 대적하게 하겠다.”
카쿠는 누구냐?
전에 유송연이 변신해서 연기했던 비가디의 신하 중의 하나다. 지하에서 유송연은 카쿠란 몬스터의 모습으로 강유미를 붙잡고 있었다.
“네? 소인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제 땅에서 왜 반란이 일어나게 하는 것인지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 명하신다니 알겠습니다.”
이후 유송연은 카쿠의 모습을 연기해 몬스터들을 선동했다. 마침 타이밍 좋게도 지하 부화장에서 비가디의 총신寵臣이 거의 죽어 영지가 흔들리는 상태였다.
유송연은 그것만으로 부족해 옆 동네에서 돈을 주고 용병 몬스터까지 끌어들였다.
정상적인 영지라면 진즉 차단되었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비가디가 뻔히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곧 양 세력이 동대문구 곳곳에서 싸움을 벌였다.
나는 여기서 요란하게 싸우면서도 최대한 인원 손실을 줄이라고 했다. 그러자 유송연은 선동한 무리를 이끌고 시설을 파괴하거나 불을 질러댔다.
그리고 정작 큰 싸움이 일어나면 적당히 싸우다 빠지길 반복했다. 곧 이 내전에 대한 소문은 사방의 영지로 퍼져 나갔다. 특히 중랑구에선 아주 잘 들을 수 있었겠지.
“됐다. 그 정도로 해라.”
나는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싸움을 중단시켰다.
그렇게 영지의 본래 주인이 반란자 카쿠를 물리쳤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오르파 놈의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요즘 공공연하게 수하들을 이쪽으로 보내 도발 중입니다. 썩을 놈이!”
동대문구 영지의 단결이 약해지자 옆 동네에서 승냥이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굴욕적인 양보뿐이었다.
대군주급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멋대로 남의 영지를 초토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공물을 받거나 여타 이득을 얻는 등의 협정은 가능하다.
오르파 원하는 건 그거였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때가 왔다. 오르파 놈을 의심 없이 끌어들이는 자연스러운 상황 말이다.”
그제야 내 뜻을 알아챈 비가디는 감탄하며 크게 절해왔다.
“탁월하십니다. 기세등등해진 오르파 놈은 방심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다. 그러니 너는 어서 오르파와의 회담을 협의하라. 굴욕적인 수준이라도 좋다. 오르파가 회담에 어떻게든 욕심을 내서 달아오를 정도로. 다만 의심을 살 수준으로 퍼주는 건 피하라.”
“급해서 최대한 양보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겠군요.”
“잘 이해했다.”
그때부터 비가디는 오르파에게 수하들을 보내 대화의 뜻이 있음을 알렸다.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자는 얘기였다.
오르파는 꿀릴 게 없었기에 흔쾌히 응해왔다.
“놈은 단순히 협의만 아니라 제 불행을 한껏 비웃어 주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속임수를 벌이면서도 비가디는 분한 것처럼 보였다. 대체 둘이 사이가 얼마나 나쁜 거야.
“그 마음을 알겠으나 그 때문에 일이 틀어지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개인의 감정보다 주인의 사업이 더 중한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이고 양쪽의 수하들이 협의를 위해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틀 뒤 중랑천 가운데 있는 섬에서 만나기로 결정이 났다.
중랑천의 섬은 부서진 떠내려온 쓰레기 위에 건물 자재를 쌓아서 만든 장소다. 중랑교나 여타 원래 있던 다리가 부서진 탓에 이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습격은 나, 유송연, 비가디 모두가 일시에 들이칠 작정이었다. 비가디 하나만 생각하고 온 오르파 입장에선 황당할 거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충분히 병력을 데려오겠지만 아무 소용없을 거다.
애초에 오르파는 군주급 몬스터 하나를 상대한다는 입장에서 경호를 준비할 텐데, 실상 따지고 보면 군주급이 하나 더에 대군주급이나 다름없는 나까지 있는 셈이니 결과는 뻔하다.
“쓰레기 섬 밑에서 숨어 계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 말라고. 필요하면 하수도로도 다닐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유송연과 나는 기척을 감추고 쓰레기 섬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엄청 차가웠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나라 버틸만 했다.
그래도 추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자재의 틈 사이에 가슴팍까지 물에 잠겨있었다.
“주인님.”
“미안, 좀 춥지?”
유송연이 약간 콧소리를 내며 불만 어린 말투를 하자 나는 살살 달래는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이 코맹맹이 소리를 다 낼 줄이야.
게다가 투덜거리는 모습 역시 충격적이었다.
이제 정말로 그녀는 완전히 달라졌다. 애벌레가 변태해서 나비로 변한 것 이상의 느낌이라고 할까.
“춥단 말이에요.”
계속 칭얼거리는 유송연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졌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바짝 와서 붙는다.
“야, 왜 그래?”
“추우니까 이렇게 안고 있으면 될 것 같아서요.”
유송연는 내 목을 팔로 휘감고는 바짝 껴안아 온다. 물의 젖은 그녀의 탄력 넘치는 몸이 찰싹 달라붙는다.
순간 정신이 멍해져서 임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싶었다. 역시 남자는 미녀 앞에서는 지능이 한없이 디버프되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쿵. 쿵. 쿵.
그런데 그때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 나는 긴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왔다.”
나는 유송연을 떼어내고는 입가에 검지를 세워 조용히 하란 신호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