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htiest Melee Magician RAW novel - Chapter (174)
올 힘 마법사 174화
웃는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서.
자신의 패배가 확정되는 상황에서.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잠 시 고민했지만.
이는 우스운 고민이었다.
황태자의 얼굴에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위기감 따위는 조금도 존 재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자 신을 죽일 수 있음에도.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비숍 둘이 맥없이 잡혀 버렸군. 진짜 체스였다면, 뭐 하나라도 바꿔 먹어야지만 계산이 맞겠는데 말이 야.”
“바꿔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 다. 저들은 체스 말이 아니라, 제 가족들이거든요.”
“이제는 7클래스 마법사 둘 가지고 는 재미도 못 볼 만큼 강해진 건 가? 대부님께서 유난 떠시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군.”
“체크메이트입니다. 항복하시는 겁 니까?”
내 질문에, 황태자의 시선이 자신 을 지키지 못한 묵시의 기사들에게 향했다.
황태자의 시선엔 경멸이 가득 담겨 있었다.
“킹을 지키지도 못한 쓸모없는 나 이트들이군. 감히 나를 이다지도 수 치스럽게 만들다니.”
“……죄송합니다.”
“자결하라.”
“존명.”
“뭐, 뭣?”
황태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 시의 기사들은 서로의 심장을 찔렀 다.
한치의 주저도 없이 검을 쑤셔 넣 었고, 즉사할 수 있도록 검을 비틀 어 뽑기까지 했다.
풀썩.
왈칵 피를 쏟아내며, 서로가 마주 보고 그대로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
다.
이 뜨악한 광경에 알테인 스타디움 의 모든 이들이 헛숨을 집어삼켰다.
놀라기는, 묵시의 기사들과 싸우던 볼바르 경과 나르메르 씨도 마찬가 지.
“하아•…”
볼바르 경은 슬픈 눈으로 시신을 바라보며, 기사들에게 짧게 조의를 표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여전히 분이 풀 리지 않는다는 듯 경멸 어린 시선으 로 입을 열었다.
“한때는 황제를 지척에서 모시던
묵시의 기사들이 늙은 퇴물이 다 되 었구나. 고작 소국의 뜨내기들에게 사족을 못 쓰다니.”
순간 열이 났다.
분명, 적이었지만.
사람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무 서우리만큼 소름 돋는 황태자의 태 도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볼바르 경과 나르메르 씨는 모두 8성입니다. 저들은……! 같은 8성 고수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황태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라고 요!”
“최선? 감성적인 소리를 다 하는 군.”
하지만, 황태자의 태도는 도저히 내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는 장차 제국을 이끌어갈 황태 자다. 황태자의 목숨을 위협받게 만 들고, 수치스럽게 만든 죄를 죽음으 로 물었을 뿐이다. 오히려 목숨 ‘두 개’로는 싼값이지. 안 그런가?”
“오히려 잘된 일이지. 칼날이 무뎌 진 나이트를 미리 걸러낼 수 있었으 니까. 나를 지키는 나이트라면, 무릇 소국의 뜨내기들과의 싸움은 혼자서
도 능히 이겨낼 수 있어야지.”
황태자는 마치, 재미는 다 보았다 는 듯 시시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러고는, 내 손바닥 위에 들려 있 는 열화의 불꽃을 바라보며 중얼거 렸다.
“약속은 지켜주마. 네 여동생의 소 드 그랑프리. 마음껏 즐기도록. 소국 의 자그마한 소녀기사가, 얼마나 위 로 올라갈 수 있을지 나도 기대하도 록 하지.”
황태자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 렸다.
하지만, 그는 오래 걸어가지 못했 다.
어느새 알테인 스타디움 반대편에 도착해 있는 1개 중대 가량의 무장 기사들.
성전(聖戰)이라는 깃발이 적혀 있 는 수십여 명의 기사들 사이에서 찡 그린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노쇠 한 노인 때문이었다.
“……아버지.”
둥! 둥! 둥!
황태자는 분명 그렇게 중얼거렸고,
곧 성난 뿔피리 소리와 함께 북소리 가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 납시오!”
어디선가 이러한 외침이 들려왔고.
척척!
성전기사단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알테인 스타디움에 앉아 있던 일반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
난데없이 등장한 황제(皇帝)에 의 해 영문도 모른 채,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것도 잠시.
“아르델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은 밖으로 나가시오!”
모두 나가라는 축객령에, 스타디움 을 가득 채우고 있던 관객들이 빠르 게 스타디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 다.
어느새 스타디움 안에는, 황제와 성전기사단.
황태자와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황제라…….
제국의 황제가 여기에 왜 온 것일 까.
나는, 제국의 현(現) 황제 타이탄
라이나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불같은 기상으로 제국 연방을 이끌 던 철혈의 군주라 불리는 남자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쇼메르탄.”
“아버지를 뵙습니다.”
……저 사람이?
철혈의 군주라 불리던 황제의 상태 는 무척이나 병약해 보였다.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있었던 듯, 안색이 창백했고 기침을 멈추지 않 았다.
듣지 못한 소문이다.
제국은 현재 ‘반국 페르나’와 전쟁 중인 ‘분쟁’ 국가다.
그렇다는 것은, 황제가 병상에 누 웠다는 소문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 음이 분명했고.
그런 황제가 알테인에 직접 찾아왔 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사안이라는 의 미였다.
그게 무엇일까?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시선의 끝에 ‘낯익은 마법
사’ 한 명이 들어왔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할 수 있 었다.
황제가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찌 여기까지 오셨……
“소드 그랑프리는 유구한 세월 동 안 이어져 온 제국의 명망 높은 대 회다. 네 개인적인 감정으로 좌지우 지할 놀이터가 아니란 말이다!”
“황태자라는 녀석이 이렇게 가벼운 행동을 하느냐!”
황제가 터뜨리는 사자후가 스타디 움 전체를 장악했다.
그는 분명 병약했지만, 이 순간만 큼 그의 눈에는 ‘철혈’이라 불리던 그것이 존재했다.
하지만, 황태자 역시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다 끝난 일 을 가지고, 아랫놈들이 보는 앞에서 제게 이렇게 면박을 주십니까.”
“흥! 면박이라 느끼는 것을 보니, 부끄럽기는 한 모양이구나.”
“예. 부끄럽지요. 제 나이가 벌써 서른이 넘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 가지고, 아버지에게 꾸중 들을 나이는 지났지요.”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하느냐?”
“사소하지요.”
“황태자라는 녀석이, 제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수모를 당한 일이?”
황제는 가타부타 다른 말은 더 필 요 없다는 듯 말했다.
“이미 물은 엎어졌고,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병을 엎지른 놈을 벌할 수는 있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의 시선은 황태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사람을, 귀찮은 벌레로 보는 듯한 눈빛.
“테론에게 모두 전해 들었다. 장차, 제국을 혼돈에 빠뜨릴 마법사라고 하더군. 그런 녀석을 살려 보낼 수 는 없다. 이 자리에서 죽여, 싹을 잘라내겠다.”
스릉! 스릉! 스릉!
황제의 말을 끝으로, 성전기사단 모두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수가 족히 일백에 가까웠고.
모두가 7성 이상의 기사들이었고, 그중에 8성도 여럿 섞여 있었다.
최정예 중의 최정예.
가히, 제국의 위용이다.
저런 기사단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면,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제가 스무 놈은 반드시 데려가겠 습니다.”
하지만, 볼바르 경은 아무런 고민 없이 가장 먼저 창을 치켜드셨고.
나르메르 씨 역시, 죽음을 각오한
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영광이었습니다, 도련님.”
“……너무 빨리 포기하시는 것 아 니에요?”
나는, 여차하면 ‘차원문’을 열어 하 늘산의 오우거들을 불러낼 요량이었 다.
내 힘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것보 다, 내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먼저 니까.
하지만, 끝까지 신중함을 유지했다.
누구 하나가 움직인다면, 당장 전 투가 시작될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서…….
아주 의외의 사람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감히 누구 앞에서 검을 뽑는 것이 냐.”
황태자, 쇼메르탄 라이나크.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 다.
“검을 집어넣어라.”
“얼른!”
황제와 황태자의 명령 사이에서.
몇몇 기사들이 혼란한 듯 시선이 흔들렸고.
황태자는, 황제를 노려보며 다짐하 듯 말했다.
“싫습니다.”
“뭐라?”
“죽여도 제가 죽입니다. 아버지께 서 건드실 녀석이 아닙니다.”
“이놈이!”
병약한 황제가 또다시 성난 사자후 를 뿜어내려 했지만, 순간 입가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무리한 탓이다.
그러자, 황태자가 말을 이었다.
“뜻을 번복할 생각 없습니다. 루인 아르델은 이번 소드 그랑프리를 무 사히 끝낼 겁니다. 제국의 황태자인 제가 약속했으니까요.”
“이, 이놈이……!”
“정녕 저를 계속해서 부끄럽게 만 드실 생각이십니까!”
황태자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말씀드렸습니다. 죽여도 제가 죽 입니다. 저 역시, 미치도록 죽이고 싶은 녀석이니까요.”
그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절대자 의 기세였다.
설령, 황제라 할지라도.
‘철혈’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남 자는, 황제가 아니라 황태자였다.
검도, 마법도.
무(武)에 관해서는 그 어느 것도 익히지 않은 남자가, 어떻게 저런 기운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일까.
황태자의 차가운 시선이, 황제의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염왕 테론’에 게 향했다.
“역시, 대부님께서 꾸미신 일이로
군요. 병상에서 휴식을 취하셔야 할 아버지까지 끌어들이시다니……. 하 나 묻겠습니다. 이건 대부님께서 말 씀하시던 황제에 대한 ‘불충’이 아 닙니까?”
“대답을 못 하시는군요. 앞으로 하 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게 직접 말씀하십시오. 물론, 그걸 들어 드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황태자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내게 닿았다.
그 시선 속에는 ‘애증’에 가까운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루인 아르델.”
“•…”네?”
그건, 곧 ‘증오’로 변했다.
하지만 증오를 완벽하게 감추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보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방심은 없다는 것을.
다음은,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말을 끝으로 황태자가 앞으로
걸어갔다.
“비켜라. 아버지에게 가겠다.”
성전(聖戰)기사단 모두가 황태자에 게 고개를 숙였고, 이 모습을 바라 보는 나는.
정녕, 제국의 황제가 누구인지 헷 갈릴 지경이었다.
이 정도이던가.
쇼메르탄 라이나크.
황제에게 호통을 칠 수 있는 황태 자라니.
그 어떤 신하들도, 황태자에게 입 도 뻥긋하지 못했다.
황제가 병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차 황가를 이을 핏줄이 유일하기 때문일까.
둘 다 맞는 말이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정말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를 모셔라. 레버다인으로 돌아가겠다.”
그가, ‘쇼메르탄’ 라이나크이기 때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