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htiest Melee Magician RAW novel - Chapter (175)
올 힘 마법사 175화
황제를 비롯한 황태자가 알테인 스 타디움을 떠나고.
텅 빈 체스판 위에 덩그러니 남게 된 우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 으며 말했다.
“……하마터면 성전기사단 모두와 싸울 뻔했군요.”
“그런데, 황태자는 무슨 생각이었 던 걸까요? 저희를 죽이려고 하더 니, 이제는 살려주었군요.”
황태자의 의중.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저희를 도와준 게 아닙니다.”
“그럼요?”
“빼앗기기 싫었던 것뿐입니다. 하 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 오직 자신만 가지고 놀아야 할 ‘곰 인형’을 사촌 동생에게 빼앗기기 싫 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이네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황태자의
‘집착’ 덕분에 더 큰 위기를 넘어갔 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 싸우게 되었다면, 저희가 졌 겠지요?”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어려운 싸움이었겠지만.
찰나의 순간, 해볼 만할지도 모르 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볼바르 경과 나르메르 씨. 그리고 아이린과 루이나는 모르는…….
내게는, 최정예 기사단 부럽지 않 은 ‘하늘산 오우거’들이 있지 않은
가.
물론, 만약 성전기사단과 맞붙어서 우리가 살아남았다고 할지라도.
뒷수습이 문제다.
그날로 레디안 왕국은 불바다가 될 테니까.
설령 전장의 불길이 왕국 전체를 피해간다 할지라도, 내 고향 ‘아르 델’은 무수히 많은 피를 흘려야만 하겠지.
딱 그 점만을 놓고 생각했을 때, 황태자의 덕을 본 것은 맞다.
“변태 자식. 완전 싸이코 아냐?”
스트랑의 말에는 완전히 공감한다.
덕을 보았지만, 빚을 진 것은 아니 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결국, 황태 자의 ‘소유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 니까.
“이번 일은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다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오늘 보니 누가 황제인지 모르겠더군요.”
“이미 제국의 권력 상당 부분을 황 태자가 쥐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
였습니다. 이번에는 황태자가 방심 했지만, 오늘 이후로 저희 전력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하 였으니 다음은 더 매서워지겠군요.”
“저희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강해져야지요.”
힘을 더 키워야 한다.
아르델이 대륙 제일의 명가(名家) 가 되어야만 한다.
제국도 쉬이 건들지 못할 만큼.
황태자의 날카로운 발톱에도 맞설 수 있을 만큼.
♦ ♦ ♦
염왕 테론은, 황태자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자신의 위치가 조금씩 줄 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여전히 마탑의 주인인 염왕 이며.
‘마법사의 왕’이라고 불렸지만.
“태자 전하께서 독대를 거절하셨습 니다.”
궁 전체에 파다하게 퍼진 불편한 공기가 말하고 있었다.
너는, 더 이상 옛날의 염왕이 아니 라고.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이 위태로워 졌다고.
“묵시의 기사들의 패배로 인해, 늙 은 기사들을 1선에서 내리는 모양이 야.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라더군.”
“황태자의 입맛대로 권력이 재조정 되고 있다던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염왕이 황태자님 눈 밖에 났대.”
“소국(小國)에 8클래스 마법사가
나타났더군.”
“나도 들었어. 고작 17세라지?”
“8성 기사는 많지만, 8클래스 마법 사는 대륙에 ‘염왕’ 딱 한 분밖에 없었잖아? 잠시만, 이렇게 되면 염 왕보다 훨씬 더 빠른 성취인데, 그 럼 염왕이 차지하고 있던 ‘권좌’는 어떻게 되는 거야? 마탑의 주인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야?”
“쉿. 괜히 그 얘기를 입 밖으로 꺼 내지 말라고. 염왕께서 들으시면 어 쩌려고 그래?”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불편한 시선들.
아니, 소문들.
발 없는 말은 제국 전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번 일로 ‘루인 아르델’이 17세에 8클래스에 올랐다는 소문이 제국 전 체로 뻗어 나갔고.
동시에, 염왕 테론은 수십 년간 쌓 아 올린 ‘명성’과 수십 년을 지켜오 던 ‘권좌’를 위협당하는 상황에 놓 였다.
“새로운 탑주가 나타났다.”
“정말 탑주가 바뀌는 거야? 그럼, 위대하신 경계의 마법사는?”
마법사의 탑.
이는, ‘국가 권력’ 기관이 아니다.
제국과는 무관하게 운영되는 ‘마법 사’들의 권력 기구이고.
대륙 전체에서 가장 높은 성취의 마법사가 ‘마탑’의 주인이 된다.
‘권좌’의 주인이 된다.
이제껏 그 마법사가, ‘염왕 테론’이 었을 뿐.
만약, ‘염왕 테론’보다 강하고 재능 넘치는 마법사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가 쥐고 있던 모든 권력은 타인 에게 넘어가게 된다.
염왕은, 처음으로 제집이 아닌 것 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수도 ‘레버다 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황태자가 조금 묘한 구석이 있었다 고는 하지만, ‘대부님’이라 부르며 자신을 곧잘 따르고는 했다.
쇼메르탄은 차기 황제가 될 분명한 재목이었고, 그런 황태자의 등에 날 개가 될 사람은 자신이라 여겼다.
아니, ‘날개’ 그 이상의 더 큰 권력 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날개가 산산이 부서졌 다.
“……루인 아르델.”
그 녀석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염왕 테론’이라는 이름의 역사서 뒷장이 찢어진 것은, 여기서부터다.
8클래스.
인간이 아니라, 반신의 영역이라 여기던 경지.
그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에 라도 레버다인 전체를 잿가루로 만 들어버릴 수 있는 위대한 ‘경계의 마법사’였지만.
이제는 그 ‘유일무이’하던 경계의 영역이, 유일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 ‘유일하던’ 자리가 위협당했다.
17세짜리 꼬마에게.
세상에 태양은 하나만이 존재해야 하고.
황태자의 수집욕에 부합하는,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 역시 하나여 야만 한다.
태양이 두 개 떠올라 있는 이상, 이 땅에 염왕을 위한 역사서는 존재 하지 않는다.
“둠 프라임.”
“……네, 탑주님.”
“작년 대제전에서 네가 루인 아르 델을 상대로 이겼다면 어땠을까?”
“역사가 달라졌을까?”
라이나크 마병 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루인 아르델에게 밀려
대제전 우승을 놓친 또 다른 천재.
마검사, 둠 프라임은 침묵했다.
그 역시 한때는 상상해 본 적 있 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상상하는 것 조차 관두었기 때문이다.
격차는 이미, 아득하게 벌어졌다.
“역시, 너는 재미가 없군.”
염왕은 예상했다는 듯 코웃음 쳤 다.
재미없는 성격은 여전했다.
“이제 곧 탑주가 바뀌게 될 것이 다. 새로운 역사서가 펼쳐지겠지. 그
런데, 너는 왜 나를 떠나지 않는 거 지‘?”
마탑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탑주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 문이다.
그런데, 둠 프라임은 끝까지 염왕 의 곁을 지키고 있다.
루인 아르델의 등장에, 둠 프라임 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을 때도 마 찬가지 다.
‘염왕바라기’라고 불리던 그는, 여
전히 염왕의 곁에 서 있었다.
둠 프라임이 오랫동안 침묵하던 입 을 열었다.
“제게 있어 ‘탑주’는 염왕. 단 한 분뿐입니다.”
“•…”그래?”
염왕 테론은 쓰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 녀석이, 루인 아르델의 등장에 관심을 거두었던 옛 제자라 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이란 말인 가.
테론은, 조금은 장난스러운 목소리 로 말했다.
“그럼, 가서 루인 아르델을 죽이고 와라.”
루인 아르델을 죽이는 것.
이는, 지금 둠 프라임의 실력으로 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황태자가 자신의 먹잇감으로 낙점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으니
까.
죽여야 하지만, 죽여서는 안 되는.
일종의 불가침의 성역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둠 프라임은 고개를 끄덕 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주저 없이 등을 돌리는 옛 제자의 모습에, 염왕 테론이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
“아서라. 농담이다. 네 실력으로는 절대 무리다.”
하지만, 둠 프라임은 못내 아쉬운 듯 주저했고.
염왕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너는, 농담이 아니었던 듯하군.”
“……필요하시다면, 제가 베고 오 겠습니다.”
“네 실력으로? 그래. 너 역시 꽤 강하긴 했다만, 그건 네 나이 또래 들 사이에서였지. 루인 아르델은 이 미 또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겠다? 그건 너무 물렁 한 감정이다. 마법사라면, 세상을 이
성적으로 차갑게 직시해라. 너를 어 여삐 봐줄 염왕은 이제 없으니까.”
“제가 다녀오면, 제가 성공하 면……. 그때는 저를 예쁘게 봐주십 시오.”
둠 프라임의 말에, 염왕이 시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여전히 과거 속에 살고 있구나.”
둠 프라임.
소드 마스터를 배출한 검가(劍家)
프라임 가(家)의 입양아.
거리에서 배를 곯던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프라임 가의 ‘아들’로 살게 만들어 준 이가 바로.
염왕 테론이었고.
“염왕께서 거두어주셨던 목숨이니, 염왕의 뜻대로 쓰이겠습니다.”
오직 염왕의 사랑만을 갈구하던 둠 프라임은, 그 은혜를 갚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순간, 염왕의 눈빛이 빛났다.
“정말, 내 뜻대로 쓰여도 좋겠느 냐?”
“네.”
“그것이 설령, 가서는 안 될 죽음 의 길이라도?”
“지옥이라도 다녀오겠습니다.”
둠 프라임의 진지한 말에, 염왕 테 론은 모처럼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 를 씰룩였다.
“알고 보니, 너도 꽤 재미있는 농 담을 할 줄 아는 녀석이었구나.”
“……그렇습니까.”
“진즉 알았으면 좋았을 뻔했어.”
순간, 염왕의 안광이 까맣게 빛났 다.
“..!”
둠 프라임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려 했다.
마법사의 안광이 까맣게 빛난다는 것.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마법 사인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 니까.
세상이 알고 있던…….
반신이라 불리던 위대한 경계의 마 법사가, 절대 다루어서는 안 되는
마법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후회되느냐?”
“이미, 늦었다.”
후회해 봐야 늦었다.
염왕의 손아귀가 둠 프라임의 머리 에 닿았다.
“크아아아악!”
8클래스 마법사의 정신 지배 마법 이 둠 프라임에게 시전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흑마법과는
그 궤가 다른 듯 보였다.
염왕의 손에 들려 있는 무광의 혹 요석은, 인간의 냄새가 아니라 ‘마 족’의 냄새를 퀴퀴하게 풍겨내고 있 었다.
마족들이 사용하던 ‘마검’을 만드 는 재료.
아니, 더 근본적으로 마족들이 다 루는 힘의 근간.
마영 석.
이 마영석이 강제로 둠 프라임의 마나 서클을 건드리고 있었고.
둠 프라임은 터질 듯한 고통에 몸 부림쳤지만, 그럴수록 염왕의 얼굴
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얼굴은 ‘질투’에 사로잡혀 인 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 었지만.
그는 웃었다.
어느 때보다 환하게.
“네가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지 않 느냐? 그러니, 웃어라. 진정한 내 ‘제자’가 되는 순간이니까.”
‘경계의 마법사’라 불리던 염왕 테 론은, 인간과 마족 사이의 그 아슬 아슬한 ‘경계’를 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