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ng and construction tycoon RAW novel - Chapter (158)
광산 찍고 건설 재벌-158화(158/230)
158화 내분(3)
“돈은?”
“여기 있다.”
남자가 끌고 왔던 여행용 트렁크를 하나 넘겼다.
파란 지폐가 가득 든 돈가방이었다.
액수를 확인한 최무룡이 표정을 구겼다.
“에이, 두 배는 더 쳐준 줄 알았네.”
여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최무룡의 투정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한다.
“싫으면 말아요. 청일 자동차 주식이 금값인지 똥값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 텐데.”
70년대 부잣집 사람들만 모는 자동차라 그런가, 청일이 유독 경영을 잘 못해서 그런가.
청일 자동차는 시장에서 유독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일 쇼크 이후 청일 자동차 주식은 연일 하한가다.
알짜인 중장비가 태양 그룹에 넘어가고, 기술 제휴할 돈이 없어서 로열티로 지불하던 돈도 끊었다.
“에이, 누가 싫댔나? 싫었으면 먼저 부르지도 않았어.”
최무룡은 돈을 챙기고, 여자는 청일 자동차 주식을 챙겼다.
“시중 가격보다 좀 더 쳐줬어요.”
초명 은행이 다른 기업이나 은행이 아닌, 이 여자와 거래하는 이유였다.
‘이 돈이 없었다면 초명 은행은 진즉 망했다.’
그래서 최무룡은 감히 그녀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최무룡은 비굴한 웃음을 띠며 연신 손바닥을 비볐다.
“거기 돈가방은 왜 가져왔을까? 흐흐흐.”
“이게 탐나요? 돈 더 필요해요? 그럼 우리 다른 것으로 거래하죠.”
그녀가 꼰 다리를 바꾸며 웃었다.
“듣자 하니 초명 은행엔 고위 관료층과 손잡고 빼돌린 장부가 있다면서요?”
최무룡이 흠칫했다.
사채업 하던 시절에 정재계 인사들의 약점을 틀어쥐었던 물건이다.
이것 덕분에 8.3 사채 동결 조치에서 살아남았다.
“어차피 비상용으로 놔뒀을 뿐이잖아요. 청탁하면서 원본을 건넨 이상 딱히 효과도 없을 텐데.”
그건 그렇다.
원본은 이미 사채 동결 조치 때 교환했다.
지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사본을 남겨 놨지만 쓸모는 다했다고 봐야 한다.
“그거랑 바꾸죠. 상급은 1천, 중급은 5백, 하급은 2백.”
1천만 원이라면 75년도 물가를 감안하면 서민 아파트 2채 가격이다.
최무룡이 한숨을 쉬었다.
“두 배. 상급 2천부터 시작합시다.”
“깍쟁이처럼 깎으면 재미없어요. 상급 5백. 자꾸 토 달면 또 반 토막 낼 거예요.”
“너무하는 거 아뇨?”
“싫으면 말아요. 한 번 쓰고 버린 그깟 치부책 찌꺼기, 내겐 별로 쓸모도 없을 것 같은데.”
일어나려는 여자를 최무룡이 잡았다.
“성급하기는. 내가 욕심이 과했네. 처음에 제안했던 대로 상급 1천.”
“상급 250. 자꾸 흥정할래요? 난 또 반으로 깎을 자신 있는데.”
“젠장.”
솔직히 그깟 치부책은 사채 일을 할 때나 협박할 거리가 됐지 양지로 나온 지금은 별 쓸모가 없다.
양지로 나오니 은행 자체가 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 없는 은행에 권력이 있겠나.
돈을 얻으려면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아야 한다.
‘한청호, 나는 살아야겠다. 너 때문에 같이 죽을 순 없어.’
이건 배신이 아니야, 안 그렇수?
* * *
똑똑똑.
태수의 호텔 방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문을 열어 보니 안소정이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종이 봉투를 흔들며 웃었다.
“흐음, 태수 씨가 기다린 게 저예요, 아니면 이거?”
분명 장난인 게 분명한데, 어째 저 여자는 요염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태수는 문을 크게 열어 주며 옆으로 비켜섰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이왕이면 절 기다렸다고 말해 주지 그랬어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엎드려 절 받기란 걸 알면서도 기쁘군요. 다음에도 그렇게 대답해 줘요. 알았죠?”
기분이 좋아진 안소정이 종이 봉투를 태수의 품에 안겨 준다.
“여기. 당신이 기다리던 물건이에요.”
“이번엔 몇 퍼센트나 됩니까?”
“7%에요.”
“고생하셨습니다.”
태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그걸 확인하고 안소정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이 여자는 그냥 웃는 게 분명한데도, 어째 눈웃음 짓는 기분이 든다.
신기한 여자다.
안소정이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많이 기다렸어요?”
“조금.”
약속 시간은 오후 8시였다.
하지만 그녀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최무룡이 이번에도 사람들을 풀어 내 뒤를 쫓았어요. 꽤 끈질기고 집요한 남자예요.”
최무룡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건넨 청일 자동차 주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안소정은 번번이 최무룡의 추격을 따돌렸다.
덕분에 멀리 돌아오게 되었다.
“서울 도심을 차로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몰라요.”
“고생하셨습니다.”
안소정은 눈을 반짝였다.
“수고비를 받고 싶어요.”
“수고비? 당연히 드려야죠.”
태수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드는 순간, 안소정이 입술을 삐죽였다.
“누가 돈 달래요? 저 배고파요.”
그녀가 털썩 테이블 위에 엎드리며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엄살을 부린다.
“여태 굶었어요. 중요한 얘기를 나눌 힘이 없네요.”
“이런, 컨디션이 나쁘면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줬어도 됐는데.”
“…….”
“다음에 다시 얘기합시다. 바래다 드리죠.”
“…….”
이건 축객령인가, 눈치가 없는 건가.
어쩔 수 없이 안소정은 미끼를 던졌다.
“차기범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지 않나요?”
차기범의 소식이라면 거부할 수 없지.
태수는 웃었다.
“뭐 좋아합니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멀리 가도 돼요?”
“물론.”
“좋아요.”
안소정이 벌떡 일어났다.
“제가 아주 맛있는 집을 알고 있어요.”
* * *
태수와 안소정이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로비로 내려가던 도중 3층에서 문이 열렸다.
땡.
문이 열리는 순간,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장서연이었다.
“어?”
장서연이 태수와 안소정을 번갈아 보았다.
‘7층에서 둘이 같이 내려온 걸까?’
태수는 7층에서 묵고 있었다.
태수는 장서연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좋은 저녁입니다. 안 탑니까?”
“아, 네. 타요.”
장서연이 놀란 기색을 수습하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녀가 몰래 안소정을 재빠르게 훑어보자 안소정은 장서연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흐음.”
안소정이 태수의 팔을 슬쩍 잡으며 웃었다.
“비싼 거로 골라도 돼요?”
“마음껏.”
장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남자는 바보가 아니다.
목적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돈을 쓰지 않는다.
그게 설령 돈이 넘쳐 나는 재벌 총수라고 해도 똑같다.
‘비싼 거? 뭐 어떤 거? 보석?’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저도 모르게 집중하는 장서연이다.
안소정은 평소보다 더 요염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이따 술도 같이 곁들일까요?”
“술?”
반주를 하겠다는 뜻인가.
“은밀한 이야기에 술이 빠져서는 안 돼요.”
“그도 그렇군요.”
장서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술을 빼놓고 나눌 수 없는 은밀한 이야기는 또 뭔데?’
안소정과 장서연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땡.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태수와 안소정이 먼저 내렸다.
장서연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안소정이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흐음.”
“흐음.”
안소정과 장서연은 동시에 같은 소리를 내었다.
* * *
성북동 대운각.
고급 요정을 찾은 태수와 안소정.
안소정이 익숙한 발걸음으로 내실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고급 요정이기에 지금 상황은 조금 뜻밖이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가 따로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이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밥 한 끼 먹겠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이쪽으로.”
안소정이 능숙하게 태수를 안내한다.
별채에 자리 잡고 앉아 안소정이 물었다.
“혹시 못 먹는 음식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제가 음식을 추천해도 될까요?”
“좋습니다.”
안소정이 종업원을 불러 복잡한 주문을 한다.
메뉴판조차 보지 않는다.
그녀는 확실히 이곳에 익숙했다.
“청주 괜찮아요?”
“좋습니다.”
“따뜻한 거와 차가운 것 중에 어떤 게 좋아요?”
“따뜻한 거로 하죠.”
순식간에 종업원이 물러난다.
안소정을 대하는 종업원의 태도 역시 조금 미묘하게 다르다.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안소정은 정보 상인을 거느리고 있다. 그 정보 상인은 어디서 고급 정보를 얻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범상치 않은 음식 솜씨를 갖고 있지. 더구나 젊은 여자가 드나들기 어려운 이곳이 익숙할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만 봐도 자주 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태수는 안소정을 새삼스럽게 보았다.
“이렇게 고급 요정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뜻밖이군요.”
안소정이 태수를 묘한 눈으로 본다.
어쩐지 감탄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흐음, 어떻게 눈치채셨을까? 이제 보니 눈썰미 역시 보통이 아니시군요.”
안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내가 성북동 대운각의 주인이에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태수 역시 전생에서도 그녀가 이곳의 주인이란 사실을 몰랐다.
‘전생에서는 주인이 대운각을 기부하여 사찰이 되고 말았으니까.’
전생에선 대통령 암살범으로 몰려 안정우가 죽고, 장말동은 사채 때문에 쫄딱 망하고.
그녀 역시 정보 상인을 이을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굳이 대운각을 사찰로 만들었던 건 죽은 가족들을 추모하기 위함이었을까.
“대운각은 꽤 오래전에 세워졌다고 들었습니다만.”
“돌아가신 어머니께 물려받았죠. 음식 장사, 술장사 하는 여자는 별로인가요?”
“성북동 대운각을 일반 음식점 취급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70년대 대한민국 3대 고급 요정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성북동 대운각.
박정환과 차기범을 비롯해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은밀하게 만나는 곳이다.
태수 역시 이곳에서 몰래 박정환과 차기범을 만난 적이 있다.
“베일에 싸인 대운각의 주인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태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건후는 날 삼청 호텔 레스토랑에 데려가고, 장서연은 금산 호텔 바에 데려가더니 안소정 역시 대운각에 데려왔구나.’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안소정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웃었다.
“제가 이곳에 오자고 청한 이유는 그저 밥이나 한 끼 먹자는 속셈이 아니에요.”
“압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흐음.”
그녀가 시계를 확인한다.
“앞으로 20분 후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20분 후?”
“식사하면서 기다리기 딱 좋은 시간이죠?”
마침 식사가 나왔다.
으리으리한 진수성찬이었다.
따끈하게 데운 청주를 태수의 잔에 따르며 안소정은 웃었다.
“이곳은 다른 룸과는 조금 다른 곳이에요. 옆방과 통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당신을 이곳에 데려왔죠.”
얇은 장지문으로 가로막힌 옆방이라.
장지문만 열면 하나로 이어 붙일 수 있는 방이었다.
“혹시 짐작하고 계신가요? 옆방을 예약한 손님이 누군지.”
“차기범.”
차기범에 관한 소식을 전하겠다며 태수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나.
“그럼 차기범은 잠시 후 누구와 만날 것 같나요?”
그녀가 굳이 태수를 대운각 옆방으로 부른 이유.
태수더러 직접 확인하라고 전하는 이유.
이제 알 것 같다.
“한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