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physical therapist RAW novel - Chapter (101)
기적의 물리치료사-101화(101/205)
# 101
새로운 도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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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당장 내일부터 뭐 하세요? 당분간 쉬시는 건가요?”
“네. 내일부터는 늦잠도 자고 그동안 못 봤던 TV도 몰아 보고, 맛있는 것도 시켜 먹고…… 또…… 뭐 아무튼 아주 축 늘어져 볼 생각입니다.”
“와! 또 그렇게 들으니까 엄청 부럽네요.”
“하긴 실장님이야 재취업에 대한 걱정이 없으실 테니까…… 직장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신 거 축하드려요.”
사람들의 농담을 기적은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쳤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절대 탈출하지 마세요. 바깥바람이 벌써부터 차갑네요.”
이어 그는 술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자, 한 잔 하시죠.”
기적은 기분 좋게 술을 넘겼다. 내일 근무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인지 술이 술술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 잔을 위해 탄알을 장전하고 있는데, 임정도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실장님…… 정말 푹 쉬기만 하실 거예요? 혹시 생각해 둔 진로 같은 것은 없으세요? 실장님 같은 분은 집에서 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네? 왜요?”
“아깝잖아요. 실장님 같은 분은 1명이라도 더 환자를 치료하셔야죠.”
보통 상태의 기적이었다면 아직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을 터였다. 하지만 알맞게 오른 술기운 때문일까? 기적은 꼭꼭 숨겨 두었던 속마음을 모두에게 털어놓았다.
“요 앞에 요양 병원 생기는 거 다들 알고 계시죠? 얼마 전에 그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었습니다. 좋은 조건이 들어왔는데 원장님하고의 의리를 지키고 싶어서 거절했었죠.”
“헐! 그래요? 그럼 그 병원으로 가시겠네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같은 병원에서 일했고, 또 존경하는 상사인 기적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을 하기는 아직 일렀다.
“글쎄요. 그것도 선택지가 될 수는 있겠지마는…… 요즘에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택지라면……?”
적절한 질문이 나왔고, 기적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병원에 입사하기 전에 센터를 운영했었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세요? 그때 파리만 날려서 센터를 닫았었는데, 요즘 들어서 다시 센터를 차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센터를 차린다는 말에 직원들이 반색했다.
“와! 그러면 힐링 센터 시즌 2가 시작되는 건가요? 그러면 실장에서 센터장으로 승진도 하고 좋네요.”
“아직 생각만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래도 한번 해 봐서 그런지 장벽이 높다고 느껴지지는 않네요.”
“저도 힐링 센터에 한 표요! 그리고 잘되면 저도 꼭 불러주세요.”
“제가 이런 말이 나올까 봐 가급적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한 겁니다. 선생님들은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병원에서 열심히 하세요. 대기업 정규직이 좋은 거죠. 언제 망할지 모르는 힐링 센터가 웬 말입니까? 자 자,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죠. 좋은 사람들하고 마셔서 그런가, 오늘 술맛이 엄청 달달하네요.”
그렇게 사람들은 다시 술잔을 들었고, 분위기는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금요일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
“실장님이 많이 그리울 거예요. 연락드릴게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적은 같은 지하철을 타는 수정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실장님이랑 지하철 같이 타는 것도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예전에는 종종 이렇게 같이 걸었었는데…….”
수정이 살짝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첫 출근 날 지하철역 앞에서 실장님 만났을 때는 완전 꼬였다 싶었거든요. 진짜, 진짜 같이 가기 싫었어요.”
“어, 왜요? 내가 그렇게 비호감인가?”
“아니, 아니요. 그래서 그런 게 아니고 면접 날에 제가 좀 실수를 했잖아요. 그래서 아…… 망했다 싶었던 거죠.”
“실수요? 선생님이 저한테 실수를 했었나요?”
“아…… 왜 웃었냐고 다그치고…… 제가 밥 사겠다고 막 까불었었잖아요…….”
“예에? 아아……. 그런 걸 뭐 실수라고까지 하세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러니까…… 괜한 고민이었다는 말인가요? 헤헤, 어쩐지 억울하네요.”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일까? 역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자연히 둘의 대화는 길어졌다.
“아까 눈물을 흘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러게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죄송해요.”
“죄송하긴요. 우는 사람한테 이런 말 조금 그럴지 모르겠지만…… 수정 샘이 울어 줘서 솔직히 좋았습니다.”
수정은 무슨 말이냐는 듯 기적을 바라보았고, 기적이 말을 이었다.
“사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접점이 없으면 자주 보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수정 샘하고는 앞으로도 자주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렇고 수정 샘도 그렇고 이 안에 그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아까 그 눈물이 그걸 보여 준다고 생각했어요. 맞나요?”
기적이 가슴에 살짝 손을 올리며 묻자 수정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는 의미였다.
“…….”
“……!”
이후로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색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곧 그들의 앞에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둘만의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두 사람은 에스컬레이터에 올랐고, 곧 사람들 틈에 섞여 플랫폼을 통과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퇴근길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겠다는 기적의 계획은 첫날 아침부터 어그러졌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던 습관 때문인지 7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진 것이다.
“아우…… 조금만…… 조금만 더 자자.”
기적은 어떻게든 다시 잠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좀처럼 다시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기적은 더 이상의 뒹굴거리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TV나 볼까?”
기적은 습관처럼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일까? 뉴스를 제외하면 별로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밥이나 먹을까?”
문득 허기를 느낀 기적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는 인스턴트커피 제품과 김치 한 그릇, 그리고 생수 한 병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삼시세끼를 병원에서 해결한 부작용이었다.
“오랜만에 요리나 해 볼까?”
어차피 오늘은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낼 요량이었다. 그렇다면 잔뜩 장을 봐서 거창하게 요리를 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기적은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나가 보자.”
적당히 씻고 모자를 눌러쓴 기적은 집 앞 마트로 나갔다. 그러고는 한 봉지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닭부터 손질할까?”
오늘의 메뉴는 닭볶음탕. 더운 날씨에 걸맞는 나름 보양식이었다.
꽤나 어려운 요리였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스마트폰 검색 한 번으로 모든 레시피와 조리법이 해결되는 세상이니까. 아무리 요리 초짜라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기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나름 오랜 기간의 자취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어렵지 않게 맛있는 닭볶음탕을 만들어 냈다.
“캬! 맛있겠다~”
즐겁게 식사를 끝낸 기적은 다시 뒹굴거리며 시간을 죽였다. 이북 소설도 구매해서 보고 TV도 보고 하면서.
오후 3시쯤에는 컴퓨터를 켰다.
“역시 휴일에는 여유 있게 게임이나 해야지.”
그가 선택한 게임은 레전드 오브 리그. 이는 5 대 5 방식의 AOS 게임으로 병원에 입사하기 전 그가 가끔씩 즐기던 게임이었다.
그러나 공백기 때문일까? 기적은 본의 아니게 트롤링을 해 버렸고, 팀원들로부터 정치를 당했다.
-트롤님, 부모님은 안녕하신가요?
-혹시 발컨하고 있는 건 아니지?
-실론즈 클라스 오졌따리 오졌따.
결국 기적은 악의적인 채팅을 이기지 못하고 두 경기 만에 게임을 종료했다.
“역시 지금 시간에는 게임을 하는 게 아냐. 셧 다운 이후에나 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기적은 다시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참을 수 없는 무료함이 밀려들었다.
‘설마, 반나절 만에 지친 건가?’
기적은 피식 웃었다.
적어도 보름 이상, 그러니까 9월이 될 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쉬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불과 하루 전이었다. 그런데 보름은커녕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벌써 몸에 좀이 쑤시는 것이었다.
‘벌써 이래서는 곤란한데.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일순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오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난번 기적을 찾아와 스카우트 제안을 했던 행정국장 최병렬로부터 온 문자였다.
-최병렬입니다. 우리 병원 원장님이 실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한번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은 것일까? 거절 의사를 밝힌 이후로 연락을 해 오지 않던 최병렬이 다시 연락을 한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기적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과분한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무래도 국장님 병원에서 일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요.
그러나 최병렬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실장님 입장은 이해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할까 합니다. 아마 실장님에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고 거절하셔도 되니까 한번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마냥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기적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만나는 걸로 할까요?
-저희야 지금 실업자 신세라…… ㅎㅎ. 아무 때나 괜찮지만은…… 실장님은 근무하시는 중 아닙니까? 5시에 퇴근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5시 20분쯤 어떻습니까?
‘그만둔 걸 알고 연락했는지 알았는데 아직 몰랐던 모양이네. 하긴 그걸 어떻게 알겠어. 가만있어 보자…… 지금 시간이…….’
현재 시간은 4시 10분.
약속 시간인 5시 20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는 걸로 하죠.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양재 역 7번 출구 앞 카페에서 뵙는 걸로 하죠. 그럼 잠시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문자 대화는 그것으로 종료.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기적은 이내 공들여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리 스카우트 제의를 위해서라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쓰겠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데 조금 전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