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physical therapist RAW novel - Chapter (105)
기적의 물리치료사-105화(105/205)
# 105
어제보다 나은 오늘 (1)
퇴근 시간을 앞둔 명성 병원 특수치료실.
종례를 위해 한데 모인 치료사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앞에서 한창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강한수 때문이었다.
“정수정 선생님, 지금 담당 환자가 몇 명이에요?”
“…….”
“왜 말을 못 합니까? 본인이 생각해도 할 말이 없죠? 그리고 선생님, 환자분한테 컴플레인 나온 거는 알고 있죠? 변명이라도 해 보세요, 네?”
그러나 침묵은 계속되었다. 강한수가 답답하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내 참 답답해서. 내가 지금 어디 허수아비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나? 지금 위기입니다, 위기. 정신 바짝 차리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제야 사람들로부터 대답이 나왔다.
“네…….”
“에이, 나 참. 멀뚱히 앉아서 다들 뭐 하는 건지. 다들 언제까지 나만 보고 있을 겁니까? 선생님들은 환자들 끌어올 생각을 안 해요? 쯧쯧, 다들 퇴근하세요.”
잔뜩 성질을 낸 강한수가 몸을 돌려 실장실로 사라진 뒤 치료사들이 모두 수정을 향해 모여들었다.
윤세진이 쉬쉬하며 말했다.
“수정 샘, 괜찮아? 아니, 애초에 그지 같은 환자를 배정해 주고서 컴플레인 나온다고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런 환자는 자기가 받아서 치료해야지, 실장이 괜히 실장이야? 기적 실장님이었으면 그런 환자는 알아서 케어하셨을 텐데.”
“괜찮아요. 아무튼 제가 환자 케어를 제대로 못 한 거니까 할 말 없죠, 뭐.”
“왜 저렇게 히스테릭을 부리는지 모르겠네. 우리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차근차근히 알려 주면 되지. 저렇게 윽박지른다고 뭐가 달라지나?”
임정도가 조심스레 의견을 개진했다.
“그래도 강 실장님 덕분에 환자는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 같은데…… 솔직히 기적 실장님 나가면 특치실 당장 망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비슷하게 운영되는 거는 강 실장님 덕이 크잖아요. 그래서 본인도 환자 유치하느라 엄청 스트레스받는 것 같은데…….”
그러자 윤세진이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그러니까 실장이지, 달리 실장이야? 기적 실장님 있을 때는 실장님 소문 듣고 환자들이 알아서 찾아왔잖아. 우리가 영업 사원도 아니고 뭘 나가서 환자를 끌어오래? 진짜 어이 상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맹동식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윤 선생님 말이 맞아요. 여기는 아픈 분들이 오는 병원이잖아요. 병원에서 환자를 끌어오라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더구나 수정 샘이랑 저는 인턴이잖아요. 괜히 인턴 월급을 받는 게 아닌데…….”
“동식 샘 말 잘했다!”
속 시원하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보인 윤세진이 이내 화제를 전환시켰다.
“에휴, 여기까지 하고 퇴근하자. 오늘 다들 약속 안 잊었지?”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밝아졌다. 우울했던 분위기가 일시에 밝아졌다. 맹동식이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요. 오늘 기적 실장님 센터 방문하기로 했잖아요. 오픈 기념으로요.”
“화분은 제대로 배달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빨리 가 봐요. 어떤지 궁금하다. 옷 갈아입고 요 앞에서 만나요.”
“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기분 좋게 대답한 사람들이 빠르게 탈의실을 향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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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 왜 안 왔어? 뭐, 바쁘다고? 야, 그래도 좀 와 줘라. 오면 너도 치료받고 좋잖아.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어차피 실비도 되잖아. 뭐? 10%는 내야 되고…… 청구하는 것도 귀찮다고? 야, 나 RPT 있는 사람이야……. 나한테 치료받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아무튼…… 내일은 올 거지? 뭐, 내일도? 그럼 모레는 꼭 좀 와 줘. 부탁 좀 할게. 친구도 데려오면 더 좋고…… 알았지? 어? 야! 야……!”
실장실로 돌아온 강한수의 스마트폰에서는 불이 날 지경이었다. 벌써 십수 통째 전화를 돌린 탓이었다. 전화를 끊은 강한수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놈들. 한 번 오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못 온다는 거야? 그리고 뭐, 귀찮아? 나한테 치료받는 게 귀찮아?”
새로운 실장으로 부임한 강한수는 능력을 보이기 위해 지인들을 병원으로 끌어들였다. 기적이 퇴사한 이후 많은 환자들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숫자가 유지된 것은 강한수의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다.
사실 치료에 대한 강한수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어렵다는 RPT를 수료한 그에게는 치료만큼은 내가 최고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제아무리 몸이 별로 아프지 않은 지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치료를 한 번 받으면 곧 자신의 열렬한 팬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강한수의 프라이드는 오래지 않아 깨져 버렸다. 처음에만 해도 열심히 방문하던 지인들의 발길이 서서히 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강한수가 틈만 나면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것은.
그러나 반응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일이 바쁘고 몸도 편해져서 자주 방문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가끔씩은 대놓고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니까. 당장 1명이 아쉬운데 성격대로 퍼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한수의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이던 그의 입에서 곧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아…… 오늘 방문한 회원이 총 42명……. 간신히 40대 유지하기는 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40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르겠는데…… 이를 어쩐다?”
40은 그가 정한 마지노선이었다. 이 숫자가 무너진다면 정말 심리적 타격이 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지인들까지 총동원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문득 전임 실장이었던 기적이 떠올랐다.
‘환자들 마사지나 하던 그 사람도 잘 운영하던 치료실이었는데…… 내 치료가…… 한낱 마사지보다 못하다는 거야?’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괴감만 밀려들었다. 강한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었지만 답답한 마음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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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조금 편해지신 것 같으세요?”
“네, 아주 좋네요. 엄청 편해졌어요.”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시각, 기적은 오늘 두 번째 환자를 받아 치료하고 있었다.
허리가 아파서 찾아온 이현숙이라는 여자였는데, 기적의 치료가 마음에 들었는지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와 봤는데 안 왔으면 아주 후회할 뻔했네요. 찾아오길 진짜 잘했어.”
“다행이네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겁니다. 허리를 최대한 안 쓰시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요. 애기도 안아 줘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데요.”
“그건 또 그러네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남편분과 가사 분담을 잘해 보세요.”
“앓느니 죽죠. 집에 오면 손도 까딱 안 하는데 됐다 그래요.”
“뭐…… 제가 왈가왈부할 부분은 아니네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또 치료받으러 오세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인 기적이 치료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문득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 퇴근을 마친 특수치료실 팀원들이었다.
“실장님, 저희 왔어요.”
“어? 선생님들. 어떻게 왔어요? 잠깐 거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한쪽에 설치된 대기석을 가리킨 기적은 다시 이현숙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기적이 팀원들을 맞이하는 사이 돌아갈 준비를 마친 이현숙이 기적을 향해 말했다.
“5회 이용권 끊으면 10% 추가 할인된다고 하셨죠? 저 5회 이용권 끊을게요.”
“그러실래요? 그러면 회원가 10%에 추가 10%해서 40만 원 결재해 드릴게요.”
결제를 하는 기적을 향해 이현숙이 말했다.
“혹시 친구랑 같이 와도 5회 이용권 쓸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양도 가능한 거니까요. 대신 회원 가입은 꼭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다음에 봬요.”
“네, 살펴 가세요.”
이현숙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센터를 나섰고, 배웅을 마친 기적은 팀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했다.
“아니, 다들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말도 없이.”
그러자 윤세진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서프라이즈 해 드리려고요. 화분도 보냈는데 그건 잘 도착했나요?”
“네네, 잘 도착했습니다. 저기 있잖아요.”
“어, 그러네요? 잘 왔네요. 실장님, 센터 오픈하신 거 진짜 축하드려요.”
네 사람 중 연차가 가장 높은 윤세진이 먼저 말하자 나머지 3명이 말을 보탰다.
“실장님, 센터 오픈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기적은 멋쩍게 웃었다.
“병원에서 잘리고 차린 센터인데요, 뭐.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커피라도 한 잔 하실래요?”
“네, 주세요, 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커피를 타러 이동하는 기적을 향해 윤세진이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실장님, 돈 엄청 버시는 거 아니에요?”
커피를 준비하던 기적이 무슨 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예? 아니…… 무슨요. 오늘 딱 2명 받았습니다.”
“2명이면 80이요? 와, 실장님 오늘 하루에 80만 원 버신 거예요?”
“에이, 80을 벌긴요. 이제 두 번 했으니까 겨우 20만 원 번 거죠.”
임정도가 모처럼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센터는 식당처럼 재료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버는 족족 순수익이니 20만 원도 적은 돈은 아니지 않나요? 한 달이면 600이니까…….”
마침맞은 타이밍에 윤세진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제 첫날이잖아요. 오늘의 2명이 내일의 4명이 되고, 또 모레는 8명이 되고…… 이런 식으로 회원은 계속 늘겠죠. 실장님 이제 부자 되실 일만 남았네요.”
“말처럼만 되면 세상 살면서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스릴 있지 않나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까요.”
알 수 없기에 비로소 재미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 같은 기적의 말에 사람들은 야유를 쏟아 냈다.
“저 여유 뭔가요, 지금 좀 밉상이었던 것 같은데?”
“실장님 정도 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저희 같은 사람들이야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든데. 실장님 나가시고 특치실 분위기 장난 아니에요, 어휴.”
뜻밖의 말에 기적은 고개를 갸웃했다.
“특치실 분위기가 왜요, 안 좋아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윤세진으로부터 나왔다.
“실장님 나가시고 환자가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그런 거죠, 뭐.”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요, 얼마나 줄었는데요?”
“실장님 환자들 반 이상 빠져나가고, 실장님이 저희한테 배분하신 환자들도 조금 빠져나가고, 또 새로운 환자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들어오고……. 그래도 처음에는 강한수 실장이 환자들을 끌고 와서 숫자가 어느 정도 유지가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들도 서서히 안 나타나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들었어요. 당연히 특치실 수입도 줄었고요. 그래서 아주 비상이에요, 비상. 이러다가 저희, 팔자에도 없는 영업 뛰게 생겼다니까요?”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무책임하게 그만둬 버렸어요.”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세요.”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격하게 저은 윤세진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센터 인테리어 완전 좋네요. 저 예전에 일하던 센터보다 훨씬 고급지고 아기자기한 것 같아요. 안 그래, 수정 샘?”
“네? 아, 네. 실장님이 직접 인테리어에 참가하셨다고 들었어요.”
“그으래? 실장님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세진 샘, 또 시작이네. 저는 그냥 의견만 개진한 겁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그러나 특수치료실이 어렵다는 말 때문일까?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적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