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physical therapist RAW novel - Chapter (136)
기적의 물리치료사-136화(136/205)
# 136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7)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강만수는 기어이 센터를 찾아왔다. 그것도 하루 일과를 시작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양손 가득 선물 꾸러미를 든 조연출과 함께였다.
치료를 하다 공유진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기적은 고개를 돌려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있는 조연출을 보고는 ‘에효~’ 하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굳이 찾아온 강만수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됐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진 씨, 지금은 치료 중이니까 10분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해 줄래요? 의자 2개 내주세요.”
“네, 그럴게요.”
유진은 다시 강만수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강만수는 알겠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씩씩했던지 기적은 물론 치료를 받고 있던 회원까지도 뒤를 돌아보았을 정도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아.”
기적은 어쩐지 골치가 아파 왔지만 이내 치료에 집중했다. 지금 기적의 시간은 1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낸 회원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적은 회원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회원이 착하고 별말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양해를 구하고, 회원이 진상이라고 해서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아니 오히려 회원님처럼 착한 분들께는 더 잘해 드려야지.’
그렇게 생각한 기적은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치료했다, 회원이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는 5분간 주어지는 휴식 시간을 통해 재빨리 강만수를 만나러 이동했다. 손에 세정 젤을 문지르며 기적이 말했다.
“피디님, 안 오셔도 되는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나란히 앉아서 조연출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던 강만수가 재빨리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이고, 센터장님. 덕분에 방송 잘 끝냈습니다.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상진아.”
그러자 상진이라 불린 조연출이 앞으로 나서며 커다란 꽃바구니와 선물 세트를 내밀었다.
“이거 면역력이라 불리는 홍삼 선물 세트인데요. 피곤할 때마다 하나씩 쪽쪽 하십시오.”
“뭘 이런 걸……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받으십시오. 시청률이 잘 나와서 보너스 개념으로 출연료 챙겨 드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흠…… 잘 먹겠습니다.”
기적은 선물 세트와 꽃바구니를 받아 타이밍 좋게 다가온 공유진에게 넘긴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예약 회원이 있어서 3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을 끌 것 없다는 판단을 내린 기적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강만수가 다급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엇! 그러세요? 이거 어쩐다? 커피나 한잔하면서 센터장 님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그러면 저도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아까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은 저희가 무릎 건강 관련해서 추가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센터장님이 꼭 나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연료는 이번 촬영분의 2배로 인상해 드리겠습니다.”
강만수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기적의 눈치를 살폈다. 출연료 2배.
지난 출연료로 받기로 한 출연료가 50만 원 정도였으니 무려 100만 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기적 같은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큰돈이었기에 강만수는 기적이 흔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강만수는 바로 그 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기적이 흔들리는 순간 애초에 생각했던 150만 원을 배팅해 마음을 돌리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기적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센터가 아주 바쁘거든요.”
출연료로 100만 원을 받는 것보다 센터를 운영하는 편이 나에게는 이득이다. 기적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에 한 방 얻어맞은 강만수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 기적은 다시 한 번 펀치를 날렸다.
“저는 방송인이 아니라 물리치료사입니다. 지난번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은 곤란합니다. 저를 좋게 평가해 주시는 피디님께는 정말 감사하지만 방송 출연은 정중히 고사하겠습니다.”
“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센터장님이 출연해 주면 참 고마운 일인데…….”
기적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강만수를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 말고도 훌륭한 물리치료사가 많습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많고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도 피디님의 역할 아닐까요?”
“음…… 그래도…….”
강만수는 끈질기게 권유했다. 그러나 기적은 한없이 매몰찼다.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다음 회원님이 기다리고 계셔서요. 힘들게 오셨는데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 유진 씨, 여기 두 분께 커피 좀 부탁드려요.”
기적의 응대는 거기까지였다.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렸고, 강만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목덜미를 주물렀다.
다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각이 그의 전신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훌륭한 출연진을 찾아내는 것도 피디가 할 일이라……. 하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군.’
강만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기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다시 한 번 뇌까렸다.
‘지난번에 느낀 찬란한 후광이 단지 햇빛 탓만은 아닌가 보구먼.’
피식 웃는데 때마침 공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립 커피로 드릴까요? 믹스 커피로 드릴까요?”
그 질문에 조연출은 슬쩍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하려고 했다.
강만수의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 자신이 나서 일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강만수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밝기만 했다.
“드립으로 두 잔 부탁드립니다.”
조연출은 교차시키려던 팔을 슬그머니 내리고 말았다.
*
*
*
강만수가 돌아가고, 대략 2시간이 흐른 시점.
점심을 먹는 기적의 눈앞에 돌연 메시지가 떠올랐다.
-3포인트를 얻었습니다. 2만 포인트를 초과했습니다.
-퀘스트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를 달성했습니다. 6,531명의 척추 환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보상으로 명성을 얻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레벨 업 확정권을 얻었습니다.
-조기에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보너스로 4,0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메시지였다. 목표였던 72시간이 채 절반도 흐르지 않은 시점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보상들이 들어왔지만 기적은 이보다는 6,531이라는 숫자에 집중했다.
‘6,531명이 만족해하고 있다라…… 진짜 뭔가 큰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긴 하네.’
6,531.
간단한 수치로 표기되었지만 그 수치만큼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인구를 5천만 명으로 단순 계산했을 때 적어도 1만 명 중에 1명은 자신의 운동을 알고 있고, 이를 통해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 작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이것도 나름 보람 있네. 이런 맛에 방송을 하는구나. 하지만…….’
방송에 출연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일은 분명 보람된 일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적은 다시 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역시 온라인을 통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보다는 직접 몸을 부딪치고 치료하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잘 맞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기적은 메시지를 지운 뒤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어서 오세요, 3일 만에 오셨죠? 집에 계시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으셨죠?”
또 1명과 몸을 부딪치기 위해서. 오늘도 그는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있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1)
힐링 센터는 매일이 치열하다. 회원들을 치료할 직원들은 한정되어 있는 데 반해, 치료를 원하는 회원들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기적은 매일을 풀타임으로 일하고, 수정 역시 평균 두 타임 정도를 쉴 뿐이었다.
데스크를 맡은 공유진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대기 회원들을 상대하고, 전화를 받고, 상담을 받고, 필요한 물품들을 충원하는 등 센터의 잡무를 모두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적과 수정 못지않게 치열한 하루를 보낸다.
그 덕분에 첫 출근을 한 이후로 허진욱은 거의 방치되었다시피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못하니 그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가끔씩 공유진이 다가와 말을 걸어 주었지만 그가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허진욱은 나름 열심히 움직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적의 치료를 옵저베이션하고, 바쁠 때는 공유진의 일을 돕기도 하면서 제 스스로 할 일을 만들었다. 기적은 그런 허진욱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진욱 샘, 어때요? 일은 할 만해요?”
“네네. 선배님…… 아니, 센터장님.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일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서…….”
“에이, 나름 바쁘게 움직이고 있잖아요. 원래 어딜 가든 신입 치료사는 한 달 정도 옵저베이션하고 적응하면서 보내요. 진욱 샘도 그 기간을 갖는 거니까 잘 적응하면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정 팀장님?”
정 팀장이라는 말에 수정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팀장이라니까 되게 어색하네요. 저 진짜 팀장이에요?”
허진욱이 새로이 입사하면서 힐링 센터는 직급을 개편(?)했다.
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직급을 부여한 것이다. 기적이 실장에서 센터장으로 승진했고, 수정이 평직원에서 팀장으로 승진했으며, 공유진과 허진욱이 평사원의 직함을 받은 것이다.
직장 놀이를 해 보자는 기적의 장난 섞인 제안으로 시작된 개편이었지만, 마냥 장난에 머문 것은 아니었다.
기적이 각각의 직함이 섞인 명함을 제작해 주었고, 직급에 따른 추가 수당까지 지급하기로 했으니까. 시작은 장난이었을지 몰라도 더는 장난이 아니게 돼 버린 것이다.
“수정 팀장님, 직장이 장난이에요? 네?”
기적이 짐짓 갈구듯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수정이 손을 공손히 모으며 보조를 맞춰 주었다.
“아니요. 센터장님! 돈 더 받는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당한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기적이 다시 진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팀장님이 여기 진욱 선생님 케어 좀 잘해 줘요. 본인 팀원은 본인이 챙겨야지요.”
“어? 제 팀원이라구요? 진욱 선생님이 제 팀원이에요?”
“그럼요? 여기 팀이 하나밖에 더 있습니까? 여기 유진 선생님이랑 진욱 선생님 다 팀장님 팀원이에요. 그러니까 신경 써서 잘하세요.”
“아…… 아무렴요.”
그렇게 네 사람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하루를 마감했다. 센터의 문을 닫은 그들은 내일 다시 보자는 인사와 함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12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 주인공은 허진욱이었다. 출근 시간인 9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어찌된 셈인지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